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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와 판의 소원 편지

2014. 4. 14. 13:42 | Posted by 용기있는 꼬마 눈사람


판 크라운라스
"크레이군도 슬슬 일을 맡기는 게 선배의 애정이라는 걸 이해해줬으면 하네"


"판 녀석, 싱글벙글한 얼굴로 이쪽으로 일을 밀어붙이니까 방심할 수 없어"

크레이브 소릿슈

 

 

프라카 더 카피캣 인도의 눈동자

 

 

잭 더 리퍼 배반의 칼날

 

 

 

1화
아나스타샤
북의 나라는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를 귀족이 양자로 삼는 관습이 있어. 하지만 마음의 고상함에 혈연은 필요 없지 (판)

 

 

2화 카쿠텐소쿠 마코토
뭐랄까 천재고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어. 시스콤도 극한까지 가면 굉장하네 (판)

 

 

3화 키보우
일시적으로 내가 기억을 잃었을 때 만난 아가씨야. 그녀가 자기 이름의 의미를 알아낸 때 나는 가르쳐줬어 (크)

 

 

4화 소가니야
굉장한 여성이었어... 여신이니까 굉장한 게 당연하지만. 압도적이야... 아아아... 으흐 (크)

 

 

5화 조안
그 비극의 배에 이 녀석이 타고 있었던 건 만인에게 행운이었다. 티다는 남장도 모른척하고 볼일이네 (크)

 

 

 

프롤로그 우편국의 오후

 

 

세상 바깥에 영원의 오후 숲이 있다.
항상 부드러운 태양 빛이 무성한 나뭇잎과 가지 사이로 들어와 크고 작은 여러 건물이, 나무들 사이에 살짝 자리하고 있다.
나무들의 태반은 온대지방이 원산지인 활엽수다.
영원히 오후이지만 계절은 지나간다. 봄에는 싹이 트고, 여름엔 초목이 무성하고, 가을엔 단풍이 붉에 물들고, 겨울엔 눈이 쌓인다.
그저, 그 순서와 길이는 일정하지 않지만---.

"야아, 어젠 벚꽃이 눈처럼 쏟아졌는데, 오늘은 또 예쁜 단풍이네"

딸랑하고 가벼운 방울 소리.
문이 열리는 신호지만, 그 방울소 리와 같을 정도로 맑은 목소리가 목소리 주인의 방문을 알린다. 비쳐 보일 정도의 금발을 가진 단정한 얼굴의 소년이다.

"어서와 판군"

따스한 목소리가 마중한다.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에이프런 여성이다.
조용한 영원의 오후 숲에서 드물게 활기찬 장소. 펍이다.

"야아, 벳카. 일단 흑맥주! 통으로!"

"통은 빼"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멈춰선 금발의 소년 --- 판의 등을, 뒤따라 들어온 흑발의 청년이 밀었다.

"어서 와, 크레이군. 항상 귀엽네"

크레이라고 불린 소년은 선은 가늘지만 예리한 얼굴로 눈매가 무섭다. 보통 귀엽다고 불릴만한 용모는 아니다.

".... 항상 의미를 모르겠어. 벳카, 피쉬&칩스. 물고기 빼고"

"그건 감자튀김을 주문하면 되는 게 아닐까나?"

에이프런 아가씨 벳카가 쓰게 웃는다.

"메뉴에 없잖아"

크레이라고 불린 소년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어찌 되든 좋지만 나는 역시 흑맥주. 큰 잔으로"

어느새 카운터 자리에 앉은 판은 기분 나쁜듯한 시선을 보내는 크레이를 헤실거리는 미소로 받아친다.

"저기 말이야 후배군. 보기엔 이래도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어느 나라의 법률이라도 내 술집은 전혀 문제 없으니까?"

"술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도 있는데?"

벳카가 1리터 잔을 판의 앞에 두었다.

"제대로 고형물도 배에 넣으라고 말하는 거야"

크레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체로 뚱하게 말했다.

"몸에 나쁘니까? 이 숲에 사는 한, 그런 문제완 연이 없지만"

한번에 반 정도를 비우고도 붉어지지 않고 판이 말한다. 크레이는 옆에 앉았다.

"기분의 문제야. 타락해버려. 타락하면 일에도 해이해져"

"남에게 그런 설교를 한다면 편식하지 말고 물고기도 먹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크레이의 앞에 소복하게 담은 감자 접시를 두고 벳카가 말했다.
미즈와리 한잔 자신의 몫을 가지고 테이블 끝에 앉는다.

미즈와리- 술에 물을 타 마시는 일본의 음주법.

"아까 기사가 와서 말이야. 지난번 일은 찢는 자와 화려한 배틀을 했다고"

이 숲은 세상 밖에 있다.
몇 개의 멸망한 세상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단편 중에 비슷한 것을 이어 재생한 누덕누덕 기운 신세계를 지키는 것이 숲 주민의 일이다.
그들은 잇는 자 라고 불리고 있다. 이런저런 직능, 권능을 갖추고 하루하루 세상을 한 번 더 멸망시키려는 찢는자와 싸운다.

"틀림없이 뜨거운 말이었겠네. 기사군은 마음먹으면 자기주장이 격해지니까"

두 번째 잔도 빨리도 반을 비우고 입 주변에 거품을 묻힌 채로 판이 웃는다.

"진지하고 이상에 불타고 숨어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해. 그리고 너는 입가를 닦아"

냅킨을 잡아 크레이는 판의 손에 밀어 넣는다.

"그래서, 당신들 우편국의 일은 어때? 세계의 파편은 제대로 느껴져? 당신들이 옮기는 말이 세계를 잇는 다리 같은 거지?"

"적어도 인연이라던가 예쁘게 말해줘. 전해지지 못 한 편지나 보내지 못한 편지 잃어버린 편지. 찾아내는 건 꽤 큰일이야. 두뇌노동이 일의 태반이니까"

판이 말과는 정반대된 고생 따윈 모른단 인상의 미소를 띠고 말한다. 그러면 옆에 앉은 크레이가 흘끗 시선으로 일단 반격했다. 이어서 바로 말.

"전하는 쪽이 귀찮아. 받아주지 않는 별난 사람도 있으니까. 우편국은 옮기는 게 일이야. 너는 나를 육체노동담당이라고 부르고 있잖아. 받아들인 기억은 없지만 어느 쪽이던 간에 귀찮은 건 나야"

"와 너희 사이 좋네"

벳카가 깔깔 웃었다.

"뭐 잘됐네 판. 옛날의 당신은......"

"청년을 상대로 옛이야기 하는 건 글쎄...."

그녀가 뭘 말 하려는지 짐작하고 판이 헤실거리며 입을 막는다. 결국 어느 쪽이고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가게 구석 벽에 걸려있는 전화가 울려서다.
벳카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조금 받고 대답하고선 판을 봤다.

"본국에서야. 일이라고"

"봐. 큰일이지? 제대로 쉬게도 해주지 않으니까"

어깨를 움츠리고 판은 전화를 받았다. 크레이와 판은, 이 영원의 오후 숲 지국 담당이다. 몇 개인가의 영원의 숲 우편국을 총괄하는 것이 본국.
세계는 비슷한 기술시대 파편을 이어, 몇개인가 존재한다.
이 영원의 오후 숲은 증기와 톱니바퀴 시대의 지구 바깥에 붙어있는 것이다.

"....네. 그런겁니까.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판이 대화를 끝내기까지, 크레이는 감자접시를 비웠다.

"그럼 이건 서비스, 똑바로 가세요"

벳카가 아주 작은 겁을 카운터에 두었다. 향이 강한 커피다.
단숨에 들이키고 판과 크레이는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밖을 향했다.
문을 열면 영원의 오후 숲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밖은 희미하게 빛나는 하얀 안개에 싸여있다. 세계의 안과 밖을 잇는 안개다.
크레이와 판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우편국을 세계 밖에 잇는 영원의 오후숲에서 그들을 필요 하는 세계의 안으로 인도하는 이상한 안개.
그리고 오늘도 다시---.

 

 

 

 

 

 

 

 

 

 

 

 

 

 


제 1화 도읍의 눈을 차올려서

 


세상 밖에 있는 영원의 오후 숲과
세상 안에 있는 눈이 많이 쌓인 도읍을
하얀 안개가 잇는다---.

 

 

 

 

1.

붉은 벽돌을 만드는 저택 둘에 끼인 좁은 골목길에서 빛나는 안개가 나왔다.
안개 안에서 날씬한 젊은이의 실루엣이 둘, 떠오른다.
푹하는 소리를 내며 두 쌍의 다리가 눈을 밟았다.
한쪽은 제복 같은 하얀 복장에 금발. 달빛에 반짝여 설경에 녹아든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제 가을이 끝났지만, 북국의 도시는 이미 눈에 덮였다.
다른 지구에서 그것은 모스크바라고 불리겠지, 눈의 대도시다.

"춥네에, 실로 점점 추워져. 춥다는 건 이래야지"

금발의 소년이 멈춰서 벌벌 몸을 떨었다. 그렇게 말하는 데 비해 입가에는 즐거운 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춥다면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되겠지"

흑발 쪽은 무뚝뚝한 얼굴이다. 거친 표정과 어울려 청년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듯한 분위기다. 가지런한 얼굴인데 눈매가 매서운 것도 있어 사람이 다가오지 못할 분위기를 두르고 있다. 바람이 불어, 눈을 흩뿌린다. 청년은 고양이 귀처럼 뾰족한 후드를 깊게 눌러 썼다.
골목길에서 나오면 광장이다. 중앙에는 지쳐서 주저앉은 왕과 그를 보좌라는 듯이 팔을 붙잡고 손가락질하는 시민의 동상이 솟아있다. 이전, 이 나라가 적대하는 나라에서 공격받았을 때 피폐해진 왕을 젊은 시민이 일으켜 세웠다는 옛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지금 그 동상은 왕의 머리 부분이 잘려있다.
기온은 영하 20도를 밑돌고 있다. 도시 중앙부 오후라면 제일 활기찰 광장에서도 역시나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저기 우선 조금 덥히지 않을래?"

금발의 소년이 오른손을 한번 흔들면 요술쟁이처럼 어딘가에서도 아닌 작은 금속제 수통이 나타났다. 재주 좋게 오른손만으로 태엽식 뚜껑을 열고 꿀꺽 한 모금.

"차가 정말 맛있어. 너도 어때?"

"네 차를 마시는 날에는 어떤 꼴을 당할지 알아. 그런 것보다 어느 쪽이야? 회수처를 알아 내는 게 네 일이겠지"

"네네, 성급하네 크레이군은"

"추워. 추운 건 싫어. 빨리 끝내자"

흑발의 청년-- 크레이가 노려본다. 금발의 소년 -- 판은 조금 어깨를 으쓱했다. 수통을 어디에서도 아닌 곳에 집어넣고 미끄러지는 듯한 발걸음으로 발소리마저 내지 않고 걸어간다. 크레이는 빨리 눈을 대충 차올리며 빨리 걸어 바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바람이 강하지 않아서 눈이 쌓여있다.
입으론 춥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 눈의 도시에 걸맞은 방한구를 일제 몸에 두르고 있지 않은 얇은 옷차림으로 태연히 있다.
광장을 벗어나 좁은 통로로 들어온다. 낡고 그다지 눈이 쌓이지 않은 주변 민가가 들어차 있다. 어느 집도 단단한 문을 열지 않고 조용하다. 방한 대책이다.
그 민가 앞에서 판과 크레이는 동시에 다리를 멈췄다.

"이런 너도 알겠니 후배군?"

"나로선 코와 귀와 눈이 있어. 평범한 사람보단 조금 예민할까"

두꺼운 문 앞에서 정말 약간의 온기와 그리고 독한 술과 보르시치 냄새가 흘러나온다. 애초에 집 현관은 대충 눈이 치워져 있어서 눈으로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크레이는 그곳을 뛰어 내리는 듯이 단숨에 내려갔다. 판도 따른다.
크레이는 왼손으로 문 손잡이를 붙잡고 거칠게 열었다. 금속제였다. 가까스로 피부가 벗겨질 뻔 했다. 방한구가 없어서 장갑도 없다.

"이런 이런. 이제 그만 슬슬 정면돌파 이외의 방법도 배우면 좋잖아"

스르륵 다가온 판은 몸을 굽히고 열쇠 구멍을 바라본다.

"안 보이네. 문은 잠군 걸까?"

"여기까지 왔으면 역시 정면돌파지"

크레이가 만을 밀친다. 이번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붙잡는다. 그 손은 은색으로 빛나고 있다. 금속제다. 냉기로 데미지를 입은 게 아니다.
하지만 크레이가 돌리는 것보다 빨리 문이 손잡이가 돌아갔다. 문이 안에서 열린다.
얼굴을 내민 것은 수염을 기른 흉악해 보이는 얼굴의 남자였다. 두꺼운 눈썹 아래로 작은 눈이 번쩍인다.

"남의 집 앞에서 꺄꺄 떠드는 거 아니라고 어이. 전부 들린다고"

문을 닫은 채로도 바깥 소리가 들리는 장치가 있었던 것 같다.
남자는 크레이와 판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빙긋 웃었다.

"뭐어 들어와. 거긴 춥겠지. 계속 열어두면 여기도 추워"

먹잇감을 찾아낸 하이에나와 닮은 미소를 남자가 띤다. 판의 섬세한 얼굴과 크레이의 거칠지만 가지런한 얼굴에 이 남자는 속고 있다. 사냥하기 쉬운 먹잇감이 아닌 것을 모르고 있다.

"아니 아니. 감사. 여자애랑 조금 싸워서 문을 열어주질 않는단 말이야. 살았네. 이쪽의 그는 사실만 말하니까"

판은 적당히 말하면서 권총에 떠는 모습도 없이 스르륵 안으로 들어간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누르고 크레이는 집 안으로 다리를 디뎠다.

"그래서 네놈들 어쩔 생각이야!"

수염 남은 정신을 차리고 위협했다.

"초대한 건, 그쪽이야"

크레이가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사실인데. 그건 너무 노골적이라 재미없어"

판이 깔깔 웃으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거실이었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서 쾌적하다곤 말할 수 없다.
그저 난로의 불만은 따듯했다.
테이블 위에 서류봉투와 거기에 텅 빈 지갑이 하나 올려져 있다. 지갑 안에 들어있던 동전과 지폐는 3개의 산으로 나뉘어있다.
지폐에는 피가 묻어있다.

"우리가 배달할 편지는 강도에게 빼앗겼네 확실히"

크레이는 무뚝뚝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참혹한 사건이 없었으면 저녁밥 먹는 중에 불려나올 일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불행 중 다행인 건 희생자가 한목숨을 건졌다는 걸까"

"네놈들... 뭐하는 놈들인진 모르지만, 그냥 돌려보내진 않는다고 어이"

수염 얼굴이 부르면 안방에서 또 두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뺨에 커다란 상흔이 있고 또 한 명은 매끈매끈한 대머리다.
그들이 덮치기 전에 크레이가 움직였다.
찰나의 순간에 거리를 좁혀 수염 얼굴을 때려눕혔다. 은의 주먹을 턱에 히트시켜 수염 얼굴이 간단히 기절한다.

"네놈! 우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뺨에 상처가 있는 남자가 총의 방아쇠를 손에 끼우고 일어섰다. 매끈매끈한 머리는 아무 말 없이 커다란 나이프를 빼냈다. 그때는 이미 바닥에 스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낮은 자세로 크레이가 상흔 남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 누구던 좋아"

몸 전체를 밀어 올리는 어퍼컷으로 상흔 남을 기절시킨다.
매끈매끈 머리 쪽은 정식 나이프술로 판을 덮쳤다. 하지만 마른 나뭇잎이 강풍에 날리는 듯한 움직임의 판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잠깐 육체노동담당? 빨리 와주지 않을래?"

"직접 반격해. 거기까지 나에게 맡기지 마"

투덜거림과 함께 크레이는 작전 없이 다가가 은으로 된 손을 뻗어 나이프를 단단히 붙잡는다. 구부릴 정도는 아니였지만 이제 움직일 수 없다.
매끈매끈 머리 남은 자신의 나이프를 잠시 바라보고 그리고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프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그대로 항복 사인으로 양팔을 들었다.
판이 나이프를 크레이에게서 받아들었다. 덤으로 권총도 수염 남의 손안에서 줍는다. 그가 양손을 비비는 듯한 행동을 하면 어디로도 아닌 곳으로 사라져버린다.

"너는 일일이 퍼포먼스 하지 않으면 주운 걸 주머니에 넣지도 못하는 건가"

"핫핫하. 그래서 크레이군. 네 발밑에 때마침 로프가 있어"

지금 알아차린 척하며 판은 줄을 크레이 쪽으로 차 날린다.

" 왜 일일이 나야"

"내가 묶으면 풀릴지도 몰라. 자, 이런 육체노동은 무의식적으로 대충하니까 나는"

"대충 하지 마!"

소리 지르고 크레이는 꼼꼼히 사람을 묶었다. 도중에 눈을 뜬 수염 남은 갑자기 떠들어댔다.

"네놈들 잘도! .... 알겠어, 목숨 만큼은 살려줘! 우린 범죄자지만 작은 동물이야 퇴치할 정도의 악당이 아냐. 전쟁 중에 태어난 도시로 돌아와서 여긴 제대로 된 일이 없고. 주변은 제정타도 중인데 혁명 소란으로 시끄럽게 불타오르고 있지. 오늘 내일도 혁명파가 대궐로 밀어닥치는 거야 피비린내가 나기 전에 도시에서 도망칠 돈이 필요했어"

"피가 흐르는 곳에서 도망치기 위한 돈을 피로 물들이면 어쩌자는 거야"

판이 말하자 수염 얼굴은 풀이 죽었다.

"... 주, 죽일 생각은 없었어. 상대가 권총을 빼 드니까 그만 쏴버려서... 정말이야. 정말이다. 처음으로 한 강도짓이야 당황해도 어쩔 수 없잖아?"

"멋대로 처형 하는거 아냐. 세력권 다툼으로 거칠게 화내는 갱이 아니니까"

판이 말하자 남자들은 멍해진 모양이다.

"경찰도 아니니까 통보는 해둘게"

맹렬한 저항의 소리를 무시하고 판은 테이블에 다가가 서류봉투 안을 확인한다.

"회수완료 그럼 다음은 배달처네"

관공서 공용으로 쓰는 봉투로 안에는 몇 권의 수첩이 들어가 있다.
여권이었다. 그래도 국경에소 특별취급하는 외교관용이다.
수염 남이 초조한 얼굴로 말한다.

"모두 도망치고 있는 지금이라면 비싸게 팔릴 거야. 어때 절반으로..."

"우린 우편국이야"

크레이가 탁 바닥을 밟아 소리를 내며  읽어섰다. 차가운 눈으로 남자들을 내려다본다.

"이걸 전하는 게 일이다"

거기서 문득 난롯불이 사라져서 주변이 어둠에 싸였다.
어딘가의 교회가 날짜가 바뀌는 시간이라고 알리기 위한 종소리를 내고 있다.

"어이 문닫고가! 춥잖아!"

"누가 빨리 오면 좋겠네"

크레이와 판은 밖으로 나갔다.

 

 

2.

 


그때 마을에서 떨어진 귀족 저택가 한 면에서 한 명의 소녀가 결의를 다졌다.
의붓오빠들의 말을 따르지 않아, 라고.

『여권이 도착하면 집사인 이완이 너를 항구까지 데리고 간다. 그대로 이 나라를 나가는 거야. 따듯한 나라로 가면 돼. 우리와 따라가려고 생각하지 마. 죽은 네 어머니는 평민이었다. 너는 순수 귀족인 우리완 달라』

『오늘부턴 이완을 가족이라 생각해. 이 집에 머무는 것은 용서하지 않아』

어제 소녀의 의붓오빠들이  그렇게 말하고 저택을 나와 궁궐로 향했다.
뇌제 폐하는 약속했다. 그 약속을 돕기 위해서다.
약속은 민중과의 대화다.

『이 나라의 체제를 크게 변경할 지어다』

그렇게 주장하는 민중대표와 뇌제 왕이 직접 대화한다.
폐하가 결단해 천지가 깜작놀라는 듯한 소란이 일어난 것이 3일 전.
뇌제 폐하는 나라를 2개로 나누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전국의 대표가 모이는 한밤중에서 날이 밝기까지 대화를 하려 했다.
시조 대 뇌제 이래 이 나라의 대사에 관해 열리는 회의는 한밤중에 시작하기로 돼 있다.
고위귀족들 사이의 의붓오빠들 처럼 호의에 참가하려 궁궐로 향한 자들은 적다. 민중대표가 얌전히 이야기할거라고 믿지 않아서다. 폭력으로 묻고 대제 타도를 시험하려 한다고 거의 그렇게 믿고 있다.
난폭하게 거들려고 영토로 돌아오거나 내전을 싫어해 외국으로 도망친 귀족이 많다.
의붓오빠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충의를 관철할 생각이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에게는 도망치라고 말했다.

(... 치가 이어진 여동생도 아니고 도움될만한 힘도 없어서야)

의붓오빠들은 집사인 이완에게도 많은 지도를 해줬다.
우리가 관공서에서 여권을 전해줄 테니까 그게 닿자마자 아나스타샤를 데리고 나와 외국으로 도망치라고.
하지만 평소라면 의붓오빠들이 우선인데 어딘가 빠져있다.
이완에게 여권이 닿으면 어찌하여야 하는지를 지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회의 당일이 되어 시작을 알리는 자정의 종이 울려도 아직 도착하지 않는다. 이완은 출발도 하지 못하고 아나스타샤를 방안에 가두고 감시를 계속하고 있다.
감시라고 해도 복도에서 문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 저택에 오기까지 버릇없이 자란 아나스타샤도 역시나 4층 창으로 빠져나갈 순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북극에 가까운 제국의 요점 키스레프 대공에게 전하는 일족의 저택이다. 구조는 호화롭다.
이 저택을 준 것은 3개월 전이니만 그전에 살고 있던 2층 방에서는 항상 탈출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고 나서 창문으로 탈출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건 못해서가 아니었다. 하지 않은 것이었다.
3개월 전에는 이미 혁명파는 발생해 움직이고 있었고 제도에서 난리가 났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멀리 구대륙 제국에서 전쟁이 끝나고 전시라 억압돼 있던 사회에 대한 모습이 단숨에 분출한 것이다.
이제까지 특권을 보유하려는 권력자와 반발하는 민중이 부딪쳐 어떻게든 그들을 중재하려는 사람들은 그 양측에서 적시되 버렸다.
그 전형이 아나스타샤의 의붓오빠들이다. 황실과 가깝고 이전 통치자였던 대공가의 말예이기도 하며 사상은 개방적이고 타국의 공화제도에 세세하다.
어젯밤 궁궐에서는 궁궐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알현광장에서는 궁궐을 타도하려는 사람들이 저마다 모여있을 터다. 타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측에는 아나스타샤의 옛 동급생도 있다.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있어 귀족들에게 강제로 양자가 돼버려 그에 반발에 도망쳐 나온 옛 친구.
아타스타샤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동급생들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의붓 오빠들은 그들과도 싸우게 된다.

(의붓오빠들도... 모두도, 스스로 싸움의 길을 택한 거야. 난... 나도, 그럴래. 의붓오빠들이 뭐라고 말해도, 나는 대공가의 은혜에 보답한다)

오늘 의붓오빠들은 분명히 말했다. 아나스타샤에겐 선택지가 없다. 스스로 사지로 향해 귀족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진짜 귀족이 아닌 아나스타샤에겐 허락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 나는 이미 정했습니다. 의붓오빠)

의붓오빠들은 항상 아름답게 아름답게 포장된 도로를 마차를 타고 다녔다. 길이 없으면 다닐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농장에서 자랐다. 숲을 헤치고 눈을 치우고 스스로 길을 찾아내는 것엔 익숙한 것이다.
저택에 남아있는 자들이 도중에 오지 않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학교용 펜과 종이를 가져와 깔끔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
똑바른 활자체. 가늘어 하얀 손가락에 맞지 않는 거친 글자라고 동급생이 비웃은 적이 있다. 웃었던 그는 부유한 농가의 아들로 문어에 습격당한 듯한 손이었지만 글만큼은 아나스타샤보다도 섬세했다.
그도 분명 알현 전 광장에 있을 터다.

(... 그래. 그것도 처분해야지)

그 같은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고 바라며 받은 노트가 있다.
꺼내서 난로에 태운다.

(...눈물이 없어)

한 번 더 깔끔하게 끈다. 그의 유려한 글에는 결국 다가가지 못했다.

『설령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나는 대공가의 딸입니다. 의붓오빠들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당신들은 소란에 휘말리지 않게 도망가 주세요. 제 방에 있는 것은 뭐든 가져가도 좋아요. 소중한 건 이미 처분...』

거기까지 깔끔하게 쓰고 아나스타샤의 손이 멈췄다.
제일 소중한 건 이미 태웠다.
남은 건 .... 그래. 호화로운 침대 머리맡을 그녀는 바라봤다. 이 나라의 수호성인을 그린 작은 성화상이 꾸며져 있다.
어머니가 소중히 하던 그것은 가지고 가자.

『... 이미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다 쓰고 마지막으로 사인을했다. 자신을 '나' 라고 부르는 건 그만두라고 이완이나 메이드 장 조냐는 항상 탄식했다. 오늘부터 두 사람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라고 의붓오빠들이 말했지만 원래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목숨으로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서로 태워버리려는 길을 선택한다면 나도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를.
그래서 『나』라고 쓰기로 했다.『나』라고 자신을 칭하는 것은 아나스타샤의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 되는 자기주장이다. 귀족인 의붓오빠들도 서민인 동급생들과도 다른, 다른 자신인 것을 항상 자각하기 위한.

(자아, 앞으론 나에게 걸맞은 모습이 되겠어요. 말에 따를 생각은 없다고요)

궁궐로 향하는 제일 가까운 길은 아랫마을 중에서도 제일 치안이 나쁜 일대를 빠져나가야 한다. 그곳을 잘도 귀족의 공주님이라는 모습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숨겨둔 남자아이 옷을 몸에 걸친다. 바지에 부츠 그리고 코트도 움직이기 쉬운게 우선이다. 대강 입고 전신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체크 했다.
희미하게 복숭아색으로 불든 뺨 벚꽃 같다고 하녀의 딸들이 칭찬해주는 입술, 이건 난로의 검댕으로 속였다. 하지만 긴 속눈썹에 커다래서 흘러넘칠 것 같은 잿빛 눈동자만은 어떻게든 숨길 수 없다.
이 잿빛 눈동자는 선물을 내려주신 자들에게 많다고 한다. 숨기는 방법이 없고 있다고 해도 그럴 생각은 없다. 이 선물만이 평민인 후처가 데려온 아이인 아나스타샤가 정식 양녀가 된 이유이자 의붓오빠들과의 인연이다.
이 선물이 좀 더 도움이 된다면.....

"... 없는 것을 조르는 것에는 의미 없습니다...네요"

머릴 흔들고 공상을 떨치려고 아나스타샤는 몸치장에 다시 들어갔다.
눈동자 색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빌 수밖에 없었다. 플래티나 블론드인 곱슬머리는 베레모 안에 집어넣는다. 앞머리를 늘어트려 눈을 감춘다.
세세한 것을 채워넣은 가방에 성면상도 넣는다.
단 하나 여자아이다운 장신구로서 어머니의 사진이 들어간 로켓을 가슴가에 밀어 넣는다. 아나스타샤는 14살. 남장하는데 지장 될 가슴의 발육 상태는 지금은 감사해야겠지만 역시 원망이 치밀어오른다.

"그런 걸 생각할 상황이 아니... 었다고"

아랫마을 말투를 연습하기 위해 그럴듯한 말투로 혼잣말을 해본다. 자신은 잘 쓰는지 어떤지 전혀 모른다.

"자아 가죠.... 라고"

시트를 찢어 묶어 만든 로프를 발코니 난간에 동여매 올라갔다. 한밤중 중소리가 들릴 즘에 날씨가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로프는 결하게 흔들린다. 장갑을 끼고 있으면 미끄러지기 쉬울지도 모른다. 일단 벗어서 가방에 넣었다.
난간에서 몸을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저택에 있는 몇 개의 방에서 아직 불빛이 흘러나온다. 그것을 반사해서 눈이 빛난다.

"괜찮아 눈은 내 편입니다....라고"

그렇게 자신을 격려하고 아나스타샤는 에잇 하고 난간을 뛰어넘었다.
갑자기 손이 미끄러져 그대로 지면으로 떨어질 것 같다.
필사적으로 시트로 만든 로프를 붙잡는다. 하지만 줄줄 미끄러져 --- 멈췄다. 잠시 후 아나스타샤는 이를 악물고 으득으득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멈춰 있다.
공포에 떨면서 다시 일어서 심장이 진정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었다.
다시 움직이고 바로 3층을 지난 참에 아나스타샤는 다시 멈췄다.
경사진 아래 창문에서 빛이 비쳤다. 누군가가 창문 커텐을 연 것이다.
혹시 그 누군가가 조금이라고 시선을 움직이면 로프가 들통 나 버린다. 하지만 가능한 것은 몸을 움츠리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뿐이다.
얼마나 움직이지 않았는지. 아나스타샤는 1시간이나 2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정말 수십 초 정도였던 게 틀림없다.
빛이 사라졌다.
멍해진 그 순간에 손에 쥐고 있던 힘이 빠진다.
주르륵 순간 몸이 미끄러져 떨어진다. 꽉 쥐어봤지만 소용없었다. 매듭 부분에서 걸리지도 않고 아나스타샤의 몸은 어디까지고 미끄러 떨어졌다.
아나스타샤는 점점 떨어져서 그리고 허공으로 내팽개쳐졌다.
지면에 떨어진다! --- 그 순간에 눈이 아나스타샤를 푹신하게 받아주었다.
사념으로 눈을 조종한다. 그것이 아나스타샤의 선물이었다.

"... 감사합니다. 블러디밀님"

가방 안의 성면상에 그려진 이 나라의 수호성인에게 짧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지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다면 좀 더 감사 하겠습니다.... 라고 수호성인님"

그런 위협이 담긴 기도를 아버지가 되는 신이나 수호성인이 어찌 생각할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아무도 저택에서 나가지 않았다라는 거다.
아나스타샤를 받아들인 눈이 소리 없이 미끄러져 떨어져 원래대로 돌아온다.
저택은 빠져나왔다. 뒷 뜰이 눈앞이다. 여길 빠져나가 밖으로 가자.
하지만 지금이라면 돌아갈 수 있다. 정말로 의붓오빠들에게 가도 좋은지. 민중 대표와의 교섭은 이미 훨씬 전에 결렬돼서 살육 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으으응. 그렇다 해도 스스로 운명을 함께하는 ---. 대공가의 일원이니까)

그것이 보답이라고 믿고 있다.

(아주 가까운 곳의 소량의 눈밖에 쓸 수 없는 선물이지만 이 계절에는 도움이 될겁니다... 라고)

적어도 거리가 늘어나면 조금 더...  라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시야가 흔들렸다. 눈물이 치밀어오른 것이다. 이대로 무릎 꿇고 포기하고 울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으으응,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의붓오빠들에게 적어도 한 번만이라도 인정받아야 그렇지 않으면.....)

"안돼요. 약해지면.... 이라고!"

아냐스타샤는 작은 목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저기 잠깐 괜찮을까 도련.. 어라 아가씨일까나?"

그때 갑자기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불렀다.


3.


"죄송합니다! 봐주세요!"

그것이 누군가인지 확인할 것도 없이 반사적으로 아나스타샤는 도망쳤다. 누구던 간에, 저택 울타리 안에 있으면 오빠를 따라서 자신을 데리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왜 그래? 그렇게 싫어하지 마 우리 악당이 아니니까"

"헛소리할 상황이야. 쫓아가"

처음엔 웃는 듯한 목소리에 무뚝뚝한 소리가 겹쳤다.
들은 적 없는 목소리지만 자신을 데리고 돌아가려는 것은 틀림없다.
저택 뒷 뜰은 숲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무들이 밀집해 있다. 아나스타샤는 그쪽으로 달렸다. 다리엔 비교적 자신 있고 아나스타샤는 다리를 잡힌 적이 없다. 더욱 항상 산책으로 자신의 작은 몸으로 어느 나무 틈을 빠져나갈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거의 새까만 숲 속을 아나스타샤는 기억만을 의지해 위태롭게 달려나가 --- 지 못하고 굴렀다.
하지만 바로 일어섰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할 일도 없이 아나스타샤의 마음이 선택한 것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디. 아나사타샤는 다시 어둠 속을 달려---.

"...후왁"

이번엔 나무줄기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작은 코를 누르고 코피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다. 이런 때인데 항상 원하던 높은 코였으면 좀 더 심한 꼴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에선 높은 코가 미인이다. 하지만 코가 작으면 키스할 때 부딪치지 않는다고 시험해 보려고---.

(그럴 상황이!)

쓸데없는 회상을 날려버리고 아나스타샤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숲을 빠져나왔다. 놀고 높은 울타리가 뜰을 에워싸고 있다. 꼭대기에는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뾰족한 철망이 둘려 있어 평소엔 올라가서 뛰어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계졀이라면 아나스타샤에겐 간단하다.
정신을 집중하려고 했지만, 숨이 끊긴다. 먼저 심호읍을---.

"저기 너는 남자아이의 복장을 하고 있는데 아나스타샤씨지"

숲에서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뒤쫓아왔다.
깜짝 놀라서 아나스타샤는 뒤돌아봤다.
눈에서 빠져나온 듯한 하얀 옷과 피부와 그리고 그녀와 비슷할 정도의 맑은 색의 금발. 가지런한 얼굴의 소년이 숨이 끊어질 듯한 아나스타샤완 대조적으로 시원한 얼굴이다.

"저기 말이야 우리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너에게 전해야만 하는 편지가 있을 뿐이야 아나스타샤 그린스카야씨"

"아닙니다...  라고!"

다시 도망치려고 달렸다.
바로 구른다.

".... 앗"

아나스타샤를 순간 끌어안은 것은 밤중에 완전히 녹아든 검은 옷과 검은 머리의 청년이었다.

"놔, 놔주세요.."

모기 같은 소리로 말라고 몸을 강제로 떼어놓은 아나스타샤는 그대로 굴러 눈에다 얼굴을 박았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드러운 눈이 싸늘하게 쓰다듬어준다. 남성에게 이 정도로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는 것이다.

"어이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새까만 남자가 다가오는 기척이 든다.

"죄송..합니다"

다가오지 말라는 염을 남아 뒤돌아보면서 아나스타샤의 주변에 있는 눈이 모여 상대를 목표로 돌격했다.


"무슨...!?"

검은 머리에 검은 옷의 청년이 지른 놀란 목소리는 눈에 묻혀 끊어졌다. 커다란 눈산이 순식간에 생긴다.

"...어...라?"

잠깐 기죽게 해서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눈을 쏟아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져 아나스타샤는 도망칠 것을 잊어버린다.

"과연. 이 나라에선 조금 별난 힘이 있는 사람을 귀족이 양자로 맞이하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는데 네가 그런 건가. 확실히 선물이랬나. 저마다의 인간과는 다른 한정된 자연의 무언가를 조종하는 힘이었지?"

"그런 정보는... 먼저... 말해"

설산 안에서 흑발 청년의 얼굴과 오른팔이 나타난다.

"저기.. 상처 같은 거 없으시죠... 라고?"

아나스타샤가 묻자 흑발의 청년이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화내고 싶지만 개운한 것 같기도한 모호한 표정이다.

"뭐 육체노동 담당에겐 자기 책임으로 힘내주는 걸로"

"어이"

노성을 지르면서 흑발의 청년이 다시 아까완 다른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시선이 자신을 매우고 있는 설산으로 향한다.

"일단 나는 두뇌 노농 담당이라서 눈싸움은 봐줘"

그리고 금발의 청년은 정식 야회에서 귀족의 자제가 할듯한 세련된 움직임으로 아나스타샤에게 향해 인사했다.

"나는 판 크라운라스. 판이라고 불러. 저쪽은 크레이브 소릿슈. 부르는 법은 크레이. 닿지 못한 편지 잃어버린 편지를 전하는 우편국입니다"

편지 --- 도착하면 이 나라에서 나가야 하는 편지다. 선택지를 빼앗는 편지.
저택을 뛰쳐나와서 정말 다행이다.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아나스타샤가 부르짖고 발밑의 눈이 파도친다.

"그건 곤란하네"

전혀 곤란하게 들리지 않는 어조로 금발의 소년 --- 판이 말했다.


"하지만 말이야 이건... 그거야?"

소년의 말이 도중에 끊겼다. 아나스타샤에게 뻗은 소년의 손에 나무줄기가 빙글빙글 휘감겨있다. 판은 조금도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방해가 들어온 모양이라 조금 기다려줄래... 어-이, 육체노동담당 이거 어떻게든 해줘"

"이쪽도 최선이야"

한숨에 눈이 무너졌다. 상당히 일어서질 못하던 흑발 청년 -- 크레이는 눈 속에서 모기처럼 휘감겨 있는 나무뿌리와 격투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암흑 건너 숲 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조금 솟소리가 섞였지만 오페라 가수처럼 잘 울리는 바리톤이다.
나무 틈에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저 그 증기는 어둠보다도 새까맣다.
토해낸 어둠에서 인영이 달빛으로 걸어 나온다.
앞머리에 한줄기 하얀 것이 섞여 있지만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다. 연령을 알기 힘든 남자다. 모피 코드를 걸치고 있지만 본래 여윈 몸이겠지.
아나스타샤는 그를 알고 있다. 교사다. 선물을 가진 귀족 자제가 다니는 특수 육성 학교에서 이학 1반을 가르치고 있다.

"... 루이센코 선생님? 왜 여기에? 저, 저기 나는..."

아나스타샤가 루이센코를 막으려고 눈을 흩날린 때 교사는 먼저 입을 열었다. 강의 할 때와 같은 어조다.

"제가 여기에 있는 건 어째선가? 좋은 질문이네요. 이유는 그들에겐 제가 찢는자란 것에 의미가 있어. 이전 너는 외국으로 탈출하는 것 보다 의붓오라버니들과 함께 싸우는 편이 제 연구에 도움이 돼. 이상의 이유에서 저는 학생의 자유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가라, 지금 당장"

루이센코는 말을 자르고 울타리를 가리켰다. 평소처럼 같은 빙 돌려 하는 표현이지만 마지막 말만큼은 아나스타샤에게도 쉽게 이해되었다.

"앗...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시간을 벌어주세요!"

아나스타샤는 머리를 꾸벅 숙이곤 등을 돌리고 지면에 웅크리고 손끝에서 눈에 사념을 보낸다. 적설이 모여 계단을 만든다.

"... 에 뭔가 굉장히 빠릅니다..... 어째서?"

아나사타샤는 뻗은 계단을 올려보았지만 바로 의문을 버리고 더욱 계단의 성장을 가속했다. 울타리를 뛰어넘을 높이가 되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음, 예상 대로다. 그녀를 두고 가는 것보다 그들을 설득 하는 게 보람 있어"

아나스타샤가 눈 계단에 다리를 디디는 것을 루이센토는 만족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눈 계단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아나스타샤는 단숨에 달려갔다.

"구르지 않도록"

루이센코가 말을 걸자 움찔하고 다리를 멈추고 신중히 올라갔다.
그것을 배웅하고 루이센코는 크레이와 판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으로 두 사람의 우편국을 바라본다.

"너흰 영원의 오후 숲의 우편국이지? 처음으로 보는군. 나는 영원의 종언을 맞이하는 골짜기의 주민인 유전학자란 이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찢는 자다.
이 약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찢으려는 자들의 일원이었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고 역사도 하나가 아니다. 조금씩 다른 무수한 지구가 존재한다. 그것 중에는 멸망의 길을 선택해버린 세상도 있다. 하지만 모든 세상이 동시에 멸망하는 건 아니다. 가끔 파편이 살아나는 일도 있다.
그런 멸망한 세상의 파편을 기워 창조한 것이 이 세상 --- 패치 워크 어스다. 그 연결은 하지만 아직 단단한 것이 아니다.
천천히 융합해 하나가 되려고 하고 있지만 떨어져 나가 버리는 경우도 있고 원래 내포돼 있던 파멸의 종자가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니다. 
이 누덕누덕 기워 만든 지구를 매끄러운 지구로 만들기 위해 세상의 인연을 잇는 자들 --- 그것이 크레이나 판 같은 잇는 자다.
세상의 바깥에 거점을 두는 2개의 세력. 세상을 잇는 자와 그것을 거짓이라 거부하는 찢는 자는 많은 형태로 싸우고 있다.

"우리 세상의 바깥 주민은 직함을 닮아 서로 호칭으로 부를 수밖에 없지만 이미 알려진 이상 루이센코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우편국군들. 그쪽의 이름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다시 한 번 부탁할까... 무덤에 기록하기 위해"

크레이와 판의 머리에 나무뿌리와 줄기가 저마다 얽혀 있다. 꽤 단단히 파고들어 어느 쪽이고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다.
하지만 그 상환에서 판은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탁하고 자신의 목 근처를 쳐 보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까 조금 풀어주지 않을래라는 의미다.

"면목없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실제 나와 너흰 목적이 다르다. 너흰 그녀에게 도망 수단을 제공하려고 하고 있지. 그건 그녀를 싸움터에 두어 그 재능을 개화시키고 싶다는 내 연구를 방해하는 것이다. 이상으로 나는 내 식물을 사용해 너희를 무력화해야 할 따름이고 그것은 가급적 빠르게 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럼 너희 무덤에 이름은 쓰지 않아. 그저 우편국 일뿐..."

"말이.. 길어"

크레이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은으로 된 팔을 목과 나무뿌리 틈에 밀어 넣어 어떻게든 목이 눌리는 걸 막고 있다.
루이센코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 순간 요술처럼 판은 오른손에 권총을 왼손에는 나이프를 출현 시켰다. 강도들에게서 받아온 것이다.
판은 왼손으로 나이프를 투척하고 동시에 권총을 루이센코에게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은 루이센코의 발밑에서 갑자기 자라난 나무에 명중했다.

"... 의외로 용서 없네"

"그건 이쪽의 대사야"

이미 괴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크레이가 말했다. 그 손에 나이프가 붙들려 있다. 판이 던진 것이다.

"호우. 권총으로 억지로 잡아떼는 건 무리더라도 날붙이가 있으면 나무뿌리가 순간, 인가. 그것을 가능하 게  하는 건 역량인가 테크닉인가. 흥미 깊습니다만....."

말은 총성으로 막혔다. 파는 탄환으로 덩쿨을 자른 것이다. 남은 건 1발.

"습격에 유리함도 없이 너희와 2대 1로 싸워야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더욱 많은 덩굴과 나무뿌리가 크레이와 판을 덮쳤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 벌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격을 주고받는 사이에 루이센코는 숯으로 도망쳐버렸다.

"이대로 끌려 내려가라. 내 학생의 의지를 존경해야 할 따름이다"

라는 바리톤의 미성을 남기고.

"쫓아갈 필요 없어"

숲으로 뛰어들려는 크레이를 판이 멈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배달. 그렇죠? 안심해. 녀석을 멈추지 않아도 수취인은 노리지 않으니까. 전형적인걸"

그들의 배달에 찢는 자가 엮이는 경우 제일 많은 건 수취인에게 편지가 닿지 못한 경구 그 수취인에 의해 세상의 균열이 확대되는 사태가 일어난다는 상황이다.
거기에 하나 좋은 일이 있다. 그 경우 수취인은 살아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찢는 자에겐 위험한 것이다.
그들의 등 위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아나스타샤가 만든 눈 계단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이런 이 나라의 체제도 이런 식으로 무너지지 않으면 하는데"

"무너져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편이 좋을 때도 있다고. 오늘 밤이 그때일지도 몰라"

라고 크레이가 대답한 참에 두 사람을 허공을 올려다 봤다.

도시 구역을 몇 개인가 나눈 건너편에서 거대한 불꽃이 밤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4.

 

-시작해 버렸어!? 그 사람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이야기하지도 못한 거야!?

두려움에 등을 움츠리고 아나스타샤는 도로에서 『미끄러지고』있다.
자신의 선물에 이런 사용법이 있을 줄을 아까까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눈의 성질을 변화시켜 스케이트의 요령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잘 구르는 아나스타샤지만 어째선지 스케이트는 구르지 않는다. 죽은 모친은 너는 네네하고 대답하기 전에 스케이트를 배웠다고 말했고, 스포츠 만능인 의붓오빠들도 스케이트만은 아나스타샤에게 당해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스케이트던 달기던 아나스타냐에게 이기지 못했다.
그 가는 길의 불꽃이 민중이 궁궐을 덮쳐서 그리고 그것이 봉기의 봉화라면 그 녀석은 절대 도망치지 못하겠지.

(... 의붓 오빠들... 부탁이야)

아나스타샤가 지나가는 대로에도 지금은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지나가는 길 좌우에 늘어선 술집에선 평소엔 방중에도 영업한다. 처마에선 아가씨들이 손님을 끌고 있을 터다.
하지만 지금은 조용하다.
가게에 불이라도 켜져 있으니 영업은 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어느 가게에서도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필 시 이 밤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듯했다.
아나스타샤는 석양처럼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에 길게 뻗친 연기는 불을 비추어 오렌지색으로 빛나 그것은 이제 차라리 아름다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광경 아래에는 화염에 의해 궁궐이 파괴되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상처 입었거나 혹시 사망자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불안이 그녀의 가슴을 죈다.
앞을 바라보지 못한 아나스타샤는 쿵하고 누군가의 커다란 등에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에에에 라고"

굴러서 무의식적으로 눈 쿠션을 사용한다. 모자가 벗겨져 아름다운 금발이 한 떨기 흘러내렸다. 당황한 몸짓에 상대가 돌아봤다. 보였던 걸까.

"아아? 뭐야 너"

움푹패인 눈이 더부룩한 눈썹 아래서 아나스타샤를 노려본다.
수염 남이다. 좌우로 상흔과 맨질맨질한 머리가 있다. 아까 전까지 크레이와 판에게 묶여있던 3인조 강도란 걸 아나스타샤가 알 리가 없다.

"어이. 꼬마. 남한테 부딪쳤으면 사과의 행동 정도는 있어야겠지"

상흔 남이 아나스타샤에게 향해 손을 뻗었다. 발밑에서 눈이 들썩인다.

"내버려둬. 어린애한테서 코 묻은 돈 뺏는 거 아냐"

수염 남이 상흔의 목을 붙잡고 끌고 왔다.

"잔돈 탓에 진짜 돈을 놓치면 어쩌잔 거야. 서두르자고"

아나스타샤를 도와준 게 아니다. 수염 남은 시간을 쓸데없이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아나스타샤도 이런 녀석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곤란한 참에 남자들은 그녀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 것이다. 곤란하다. 스케이팅을 목격당해 선물을 가지고 있다고 특정 당하는 건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다.
이 길을 궁궐로 가는 제일 빠른 지름길이지만 이 녀석들의 눈에 잡히지 않게 샛길에서 스케이팅을 쓰는 편이 빠를까.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망설이는 사이에 그들의 터무니 없는 대화가 들려왔다.

"헤헤 왜 모두 숨어 있는걸까"

뺨에 상처가 있는 남자가 저속한 어조로 미소 짓는다. 거기에 수염 얼굴이 대답한다.

"그사이 깨닫겠지. 지금이라면 궁궐의 돈을 닥치는 대로 가져갈 수 있다고. 빠른 사람이 승자야. 빨리 가져가서 빨리 튀자"

아나스타샤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이 녀석들은 소란을 틈타 궁궐에서 약탈 할 생각이다. 무슨 녀석들이야.... 분노가 부글부글 샘솟는다.

"너무 욕심부리면 안 된다고 왕관 하나면 그걸로 일생 편하게 살 수 있어"

충분 이상으로 욕심부리고 있어! 알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아나스타샤는 참았다.
수염과 뺨에 상처가 뭘 가져가던 멋대로 망상을 펼치는 사이에 스킨헤드인 뚱뚱한 남자가 머리를 갸웃했다.

"그렇게 잘 될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되는 게 당연하잖아"

수염 남이 동료 둘의 등을 두드린다.

"저 꼬마들에게 묶여서 어쩔까 했지만. 그 녀석들이 품까지 뒤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뚱뚱한 남자가 뺨을 집게손가락으로 벅벅 긁었다. 나이프를 가지고 있었던 건 그다.
그는 한숨을 쉬고 자기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찌르는 듯한 시선을 알아차려서다.
아나스타샤는 서둘러 다른 쪽을 향했다. 그녀는 남자들의 대화에 나오는 『꼬마들이』 누구인지 알 이유가 없다. 그저 약탈하게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 왕녀님의 속옷이란 건 의외로 비싸게 팔리지 않을까?"

"너는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게 아니면 변태인건지 전혀 모르겠네"

"그건 아냐. 저기서 난타해대는 녀석들보단 났다고 생각한다고"

"똑같잖아"

남자들의 저속한 웃음소리에 아무래도 아나스타샤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신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남자아이 같다고 아나스타샤는 생각하지만, 말꼬리를 붙이는 걸 잊고 화내버렸다.

"아아 뭐야 너 계집이었나"

다리를 멈춘 남자들이 뒤돌아 아나스타샤를 노려본다.
이런... 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빠아아앙 하고 클락셀이 울려 헤드라이트가 비쳤다.
이미 아나스타샤는 뛰어들었다 남자들은 길 반대 측으로 도망간다.
한 대의 트럭이 달리고 있다.

"간다고! 우릴 눌러 죽이려고 했던 귀족 놈들에게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라고!"

눌러 죽이려고 했다?
말도 안 돼는 소릴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나스타샤도 세금이 엄격하다는 걸 알고 있고 귀족은 거만하고 싫은 녀석들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학교에서 깨달았다.
아나스타샤는 농장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하급 귀족의 막내딸로 사랑의 도피로서 작은 농장을 경영하고 있던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아나스타샤가 7살이 되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농장도 사란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어머니와 어릴 적 아는 사이였던 양부가 후처라는 명목으로 모녀를 빼내준 것은 아나스타샤가 선물을 가지고 있어서다.
귀족의 혈통에서만 나타난다는 초상능력을 갖춘데다 아나스타샤는 귀족이 되어야만 했다.
의부는 조국 방위 전쟁의 최전선에서 전사하고 의붓오빠들도 사선을 빠져나와 돌아왔다. 아니 지금도 사지에 있다.
의부와 의붓오빠들은 아나스타샤에게 친딸처럼 대해 줬지만 모든 파티에서 그녀는 귀족들에게서 따돌림받았다.
그럼 같은 농장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떨까 하면 그쪽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명목만의 입양아들은 사실 제법 많았다. 사실 선물은 신분에 상관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선물은 귀족 특유의 것이라는 규율이 있어 억지로라도 귀족 신분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런 명목뿐인 귀족들은 진짜 귀족들에게 아양을 떨던지 철저하게 미움받던지 둘 중 하나다.
아나스타샤는 모친이 하급 귀족으로 아버지가 농민이니까 어느 쪽에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단 한 명 할퀴고 물고 싸우고 그 후에 인정해준 그 녀석은 있지만.
귀족이라고 해도 많은 사람이 있다.
서민도 많은 사람이 있다.
지금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이 부딪치는 곳이 있다. 서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거기에 아나스타샤는 서두르고 있다. 소중한 사람들이 너는 오지 말라고 말했지만. 너는 있어도 도움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하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

"위험하다고 그 녀석들도 보물을 노리는 게 틀림없다고"

지나간 트럭을 쫓아 남자들이 달려간다.
이 녀석들은 의붓오빠들의 그 녀석의 소원을 방해하는 것밖에 없다.
아나스타샤의 안에 이제까지 느낀 적 없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기다리세요...!"

아나스타샤는 멀어져가는 남자들의 등을 노리고 그 작은 손을 내밀었다. 물론 닿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때 손바닥에서 뭔가가 뛰쳐나오는 듯한 감각이 있었다.
자신의 손이 육체라는 한계를 넘어 더욱 먼 곳으로 가는 감각. 그리고 가상의 손가락이 썰렁한 눈에 닿아. 눈은 아나스타샤에게 힘을 준다.
공상의 손이 점점 커진다. 거인이 두꺼운 융단을 감싸는 듯이 눈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본래 덩어리가 아닌 것이 그대로 질질 끌려 솟아오른다.

"뭐야! 평지에서 눈 사태냐...!"

남자들의 절규가 끊어진다. 눈이 거대한 파도처럼 그들을 삼킨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아나스타샤는 정신을 차졌다. 대체 자신은 뭘 한 거지?
오싹했다. 세 명의 남자가 눈에 묻혀 있다. 자신이 한 것이다. 눈을 붙잡은 감촉은 확실히 손에 남아있다. 눈산에서 밖으로 팔꿈치 끝 무릎에 끝이 나와 있지만 그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박수가 들렸다.
아다스타샤는 눈 산에서 눈을 돌려 뒤돌아봤다.
교사가 만면의 미소를 띠고 있다.
굉장한 성과를 올린 실험동물을 보는 눈으로.

"선생님? 저기 어째서...."

교실에서와같이 루이센코는 입을 열었다. 강의가 시작됐다.

"먼저 첫 번째로 네 훈련 기간은 눈이 존재하는 겨울에 한정됐다. 필연적으로 훈련 부족이 됐다. 두 번째로 너는 신분 제도에 의문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제한을 달았다. 그래 네 능력에는 더욱 광대한 가능성이 있었다. 덧붙여서 내가 수집한 선물은 격렬한 감정에 의해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있다"

루이센코는 만면의 미소를 띠고 아나스타샤에게 다가갔다. 친절하지 않는 행동으로 그녀의 가는 어째를 친다.

"네 감정을 자극해 능력의 광대함을 시험하는 실험이 필요했다. 나는 실시했다. 성공했다"

루이센코는 웅크리고 아나스타샤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린 아이를 칭찬하는 듯한 목소리다.

"예상을 웃도는 성과다. 다음은 그 트럭을 멈춰 보렴. 너라면 가능해. 그러면 네 의붓오빠들도 너를 분명 인정해 줄 거야"

루이센코가 아나스타샤의 양어깨를 끌어안고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다가오는 트럭을 가리켰다.

"저것도 분명 같은 네 의붓오빠를 적대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자아 또 분노에 몸을 맡겨라. 해내는 것이다. 너는 그들의 진짜 누이가... 아니 아내도 될 수 있어. 너희 혈통이 섞이면 굉장한 선물이 태어나겠지. 결론으로 나는 네 연정을 지원한다. 너는 진짜 귀족이 되는 거라고"

정열에 찬 말은 아나스타샤에게 눈을 머리부터 녹이는 듯한 효과를 가져왔다.
...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 남자는.
말에 홀려버린 아나스타샤는 그 순간 차가워졌다.

"오우 네놈 너무 시시한 소릴 하면 날려버린다고?"

난폭한 아랫마을 소년의 말투가 줄줄 나왔다.
루이센코는 눈을 둥들게 뜨고 아나스타샤를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흠. 어프로치를 잘못한 건가. 괜찮겠지, 실험 방침을 바꾸지"

계속 허리를 펴고 아나스타샤의 등 뒤로 돌아간다.

"어쩔까. 네가 죽던지. 그게 아니면 그들을 죽일까. 궁극의 딜레마다"

루이센코는 툭 하고 아나스타샤의 등을 날려버렸다. 앗 하고 생각할 순간도 없이 소녀는 도로 정중앙에 비틀거린다.
아나스타샤의 시선 한점을 빛이 덮는다. 이대론 치인다.
하지만 방금전 남자들을 눈에 삼키게 해버린 때의 죄악감이 그녀를 구속했다. 의붓오빠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 장소에서 그와 살인할 각오를 했을 텐데.


5.


"바보 자식!!"

아나스타샤를 감싸고 남자가 트럭 바로 앞을 달려 나왔다.
지면 위에 구른다.
하지만 사실 그런 필요는 없었다.
트럭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에게 닿지 않을 위치에서 딱 멈춰 서 있었다.

"아니 아니 감사. 다시 어색해지다니 면목없네"

금발의 소년이 트럭 운전대에서 얼굴을 내밀고 빙긋 웃었다.

"켁, 네놈..."

아나스타샤를 구해준 남자가 눈 위에서 누운 채로 신음했다.
그 수염남 이었다.
그걸 깨닫고 아나스타샤는 두꺼운 그 품 안에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자신의 태도가 너무 무례하단 걸 깨닫고 서둘러 꾸벅하고 인사했다.

"저.. 감사합니다. 살아있었던 거네요..."

"아아, 그러네. 죽는가 했는데 지붕에 쌓인 눈은 푹신푹신해서"

이 마을에선 지붕에 쌓여 떨어진 눈 덩어리에 직격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매년 수건은 일어난다. 확실히 그것과 똑같이 죽을 거라 생각해서 아나스타샤는 혼란했다.
하지만 떠올리면 자신이 원한 건 그들의 다리를 잡는 것뿐.

(.... 그래 제대로 조종했던 거야. 폭주한 게 아냐....)

마음이 진정되면 또 하나의 의문을 물을 수 있었다.

"저기...."

말을 걸면 이미 수염 남은 눈앞에 없었다. 멀리 달려간다.

"저기! 어째서 구해준건가요?"

"죽을 것 같은 어린애를 돕는 건 당연하잖아"

수염 남은 아나스타샤에게서 멀어지면서 돌아보면서 화냈다. 상흔과 뚱뚱한 사람이 좌우로 나란히 선다.

"싸우러 온다면 이쪽도 때려버리지만 나도 구별은 한다고. 별로 돈을 내 노라곤 안 해. 봐달라고 너희!"

그렇게 말하고 수염 남은 운전대에서 내려온 2인조에게 손가락질했다.

"너흴 신경 쓸 한가하진 않으니까 우린"

금발의 소년 --- 판이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가는 곳으로 오는 건 그만둬!"

흑발의 정년 -- 크레이가 화낸다. 남자들은 이미 없다.

그리고 둘이 모여 아나스타샤를 바라봤다. 판이 앙손을 벌려 다시 미소 지었다.

"이런 이런 따라와서 다행이야. 너에게 배달해야 할 편지가 있어서"

 "거절합니다. 나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의붓오라버니들이 외교관 여권 조달에 수고해 준 것은 압니다만, 외국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여기가... 죽을 곳입니다"

확실히 말하고 아나스타샤는 둘에게서 등을 돌렸다. 초능력 선물이 급격히 성장한 자신이 아나스타샤의 태도를 뒷받침한다.

"죽는다고 말하지 마"

루이센코다.
방금 전 자기 자신이 아나스타샤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을 잊은 듯이 말했다.
아니 실제로 잊은 걸지도 모른다.
크레이와 판이 그를 바라본다. 하지만 루이센코는 아나스타샤를 오로지 바라보고 있다. 귀중한 보석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죽는 것은 네 귀중한 유전자를 쓸데없이 만들게 된다. 네 유전자는 보다 커다란 힘을 가진 자손을 만들어낼 터다. 그 가능성을 소멸하는 건 그냥 넘기지 않아"

교사로서 과제를 내줄 때의 어조와 변함없다. 교실에서... 아나스타샤는 어떤 것을 깨달았다.

" 당신을 따를 생각은 없습니다. 선생님.... 아니요. 이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아"

도중에 싹 말투를 바꿔 아나스타샤는 말했다. 루이센코는 그녀는 실험재료라고 말했다. 그럼 다른 학생들도 그는 그렇게 보겠지.

"당신이 학생들과 섞여 들어온 비밀경찰을 쫓아내고 혁명파라고 의심받았을 때는 감동했지만 그건 모두 소란을 크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겠지"

아나스타샤가 말하면 루이센코는 호우하고 관심의 한숨을 흘렸다.
그녀의 추리는 맞았다. 살재 도망친 혁명파 학생의 리더는 아나스타샤를 함께 데리고 가고 싶어 했지만 그것을 교묘하게 설득해서 그만두게 한 게 루이센코다.
물론 그건 걸 이제 와서 알릴 리가 없지만---.

"학생이 훌륭한 통찰력을 발휘하면 교사는 기뻐해야겠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너는 학생이 아냐. 연구 대상이다"

그는 스스로 이긴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 경계는 판과 크레이에게 향하고 있다.
아나스타샤는 위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말 수 시간 사이에 아나스타샤가 극적으로 성장한 것을 눈으로 보면서 그것을 선물에 대해서 만을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런 게 아니다.
루이센코는 그가 위협적으로 노려보는 것을 아나스타샤가 정면에서 받아들였기에 더욱 알아차리지 못했다. 교실에선 항상 눈을 피하는 그녀였는데.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루이센코는 위협의 말을 계속하려고 했다.

"이런 이런 아나스타샤군. 너에겐 재교육이 아니 벌이 필....!?"

루이센코는 마지막까지 말을 끝내지 못했다.
아나스타샤가 순간 그를 눈에 가둬버렸다. 직경 수 미터의 눈 공이 길 한가운데에서 굴렀다.
 

"숨이 쉬어질 정도의 공간은 비어있다고. 나한테서 떨어지면 자연히 무너지니까 죽진 않아"

잘 어울리는 소녀의 말투로 말하고 아나스타샤는 지면을 걷어차고 미끄러졌다.
아니 그러려는 참에 다시 장해가 들어왔다. 우편국의 두 사람이다.
금발의 소년이 아나스타샤의 정면에 들어왔다.

"비켜"

옆에서 사념만으로 눈을 모으며 아나스타샤는 말했다.

"의붓오빠들은 내 힘을 알지도 못하고 나에게 함께 갈 선택지를 빼앗았어. 동급생들도 멋대로 가버리고. 나를 두고 갔어. 하지만 나는 스스로 결정해. 스스로 선택지를 만들었어... 비켜! 나는 귀족으로서 이 목숨을 바쳐...."

판은 뺨을 좌우로 무냐하고 붙잡았지만, 아나스타샤는 그 속도에 반응하지 못했다.

"뭐 하느교야"

모처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어릴 적 아나스타샤에게 장난치던 의붓 오빠들 같은 흉내를 내고....

"부드러운 뺨이네. 젊다는 건 좋네. 청춘이네. 소녀의 한결 같은 마음이라는 건 실로 실로 아름다워"

익살맞은 어조로 말하면서 판의 얼굴은 웃지 않는다. 눈동자 안이 차가운 분노의 불꽃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그 불꽃을 보고 아나스타샤는 떨어버렸다.
루이센코에 농락당한 분노로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결의를 관철할 각오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판의 안광은 각오를 순간 지워버렸다. 교수를 압도한 선물도 쓸 기력이 생기지 않는다.

"아름다움 따위가 있을까. 마음이라는 건 귀찮을 뿐이야"

기죽어버린 참에 또 한 명의 우면국이 코끝에 주먹을 들이댔다.

"뭘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여권이라면 이미 당신의 집 집사에게 맡겼다"

무뚝뚝하게 말해서 아나스타샤는 몇 번인가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 그럼 부탁받아 날 데리러 온 게.."

"우린 우편국이라고 말했지. 하는 일은 편지를 전달하는 거야. 잃어버리거나 닿지 못한 편지를 말이야"

크레이가 들이댄 주먹에는 한 장의 종잇조각이 쥐어져 있다.

"당신의 의리 형님들이 써서 여권에 끼워져있었어. 이게 편지다"

편지라는 말에 유달리 힘을 담아 크레이는 말했다.

"그런... 그런 거 뭐인... 거야? 그냥 메모 아닌가요.. 그렇지?"

아나스타샤의 어조가 다시 혼란하고 있다.

"됐으니까 읽어. 그러고도 죽고 싶으면 이제 우린 신경 안써"

코끝에 닿을 정도로 종잇조각을 가까이 대 아나스타샤는 마지못해 받았다.
얼굴을 흔들었더니 판은 손을 놓아줬다.
짧은 문장이었다.
역시 메모 아냐라고 생각했다. 의붓오빠들은 서둘렀던 거겠지. 날려썼다.
다 읽는 데 수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너에게는 무한의 가능성이 있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가능성을 꽃 피워줘』

『그리고 바실리는 그만해 너무 이상한 집 같아. 네가 고생할 뿐이야 』

『오빠는 네가 시집가기엔 이르다고 생각할 뿐이야. 어떻게든 설득해서 네 뒤를 따라 외국으로 나갈게』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아나스타샤는 겨우 얼굴을 들었다.

"이거... 무슨... 의미?"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게 입을 벌리면 오열이 흐를 것 같았다.

"몰라. 네 형님들이지. 네가 생각하고 알아들어"

크레이가 중얼거리는 듯이 내뱉는다.

"뭐랄까 그 남친 있는 거 틀킨 거 아냐?"

판이 일부러 피늩에서 어긋난 대답을 했다.
아나스타샤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다.
의붓오빠들은 그녀가 힘이 없어서 데려가지 않았던 것도 귀족으로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업신여긴 것이 아니라고. 의붓여동생이 새로운 땅에서 날아줬으면 한다고 진심으로 원해서라고.
그리고 물론 아나스타샤도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중한 의붓 오빠들과 첫사랑의 소년이 서로 죽일지도 모르는 곳에 등을 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스스로 함께 죽고 싶다. 그것이 아나스타샤의 소녀의 순정.
이 편지가 그녀의 소원에 내밀어 진 또 하나의 소원.
선택해.
선택지를 빼앗은 건 사실은 누구지.

"하지만... 역시 싫어. 나는 나가기 싫어. 이 나라도 의붓오빠들과도 바실리도 이완이나 조야도 모두와 함께 있고 싶어"

아나스타샤는 다시 고개 숙였다. 뜨거운 눈물이 훌러 넘친다.

"그럼 그러면 되는 거 아냐"

판의 눈에 머문 빛은 지금은 부드럽다.

"너 너무 적당한 소리 하는 거 아냐"

크레이가 넣는 츳코미도 어딘가 부드럽다.

"적당히 말하는 게 아냐. 네 의붓형님은 가능성을 꽃피워 달라고 말한 거니꺼. 그 충고에 따르면 돼"

판이 말하면 크레이는 흥하고 콧소리를 냈다.

"말하는 건 간단하니까 이 녀석은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도 뭘 하면 좋은지도 생각하지 않았어"

크레이의 말이 아나스타샤의 가슴에 스며들어. 그리고 소녀는 앗 하고 얼굴을 들었다. 눈물에 더러워진 얼굴을 닦는다. 좀 더 더러워졌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그 싸움을 멈춰야... 해?"


"나에게 묻지 마. 우린 그냥..."

"그래 우편국씨! 쓰는 거 가지고 있어!?"

말하자 판이 빙글하고 손을 한번 휘둘렀다. 어딘가에서도 아닌 곳에서 펜이 나타난다.
아나스타샤는 오빠들에게서 온 편지를 찢었다. 뒷면은 아직 하얗다.

『나는 싸움을 말립니다. 도와줘』

2초 걸려 어느 쪽이고 그렇게 적었다.

"전해줘 오빠에게. 그리고 바실리에게!"

빨리 말하고 그녀는 크레이와 판에게 종잇조각을 넘기고 수보 걸어 나가갔다. 바실리가 누군가 설명하는 건 잊었다. 그들이 아니면 그 녀석은 누구냐고 물었겠지. 하지만 크레이와 판은 우편국이다.
편지에 대해선 둘에게 맡기고 아나스타샤는 마음을 다잡았다. 소중하고 소중한 소중한 사람들만을 생각한다. 그들 누구도 상처입히지 않겠다고 바란다.
그 소원에 눈이 응했다.
마침 하늘에 다가온 눈구름이 내려온다. 모든 눈이 여왕이 될 그녀의 곁에 모인다.
먼저 이 구획의 모든 눈으로.
그것만으로도 신장 수싶 미터에 달하는 거인의 모습을 취하는데 충분한 양이다.
두껍고 짧은 다리에 길고 긴 팔 작은 머리. 그 거인의 어깨에 아나스타샤가 서 있다.

"간다. 눈의 거인!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거야 철저하게! 철저하게야!"

바람이 아나스타샤의 모자를 날려버린다. 풍부한 빛나는 머리가 북풍에 나부낀다.
그녀는 알현광장까지 닿는 시야를 얻었다.
하늘을 태우는 것은 몇 개의 거대한 불이다. 화공 불이 아니다. 아직 싸우진 않은 것이다.
하지만 방금 트럭 같은 폭주도 그게 대항하는 군도 모여있다.

"어어이 놀라게 하면 안돼요!"

아래에서 충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 에에! 그러네! 그랬어!"

화내는 소리에 아나스타샤는 생각했다. 누구나 떨지 않고 안심할 만한 모습이라 하면... 그래, 이거다,

어머니가 남겨준 성면상. 눈거인을 이 마을의 수호 성인을 빼닮은 모습으로 아나스타샤는 천천히 만들었다.

"정말로 남자애들은 어쩔 수 없네! 싸우기 전에 할 일이 있잖아!"

그녀의 외침은 한번은 파람에 날려가 버렸지만 분명 반드시 닿는다.
눈 거인의 발 밑에있는 두 사람이 전한다.
넘겨준 종잇조각을 바라보고 있던 판은 파너에게 시선을 던지고 빙긋 웃었다.

"그래서 어쩔 거야?"

".... 우린 우편국이니까"

크레이가 크게 걸어 간다.

"... 나는 회수와 두뇌노동 담당이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판은 어딘가 즐거운 듯했다.

 

 

 

제 1화 도시의 눈을 차올려서 끌

 

 

 


제 2화 제국 연산 탑의 난

 

세상 밖에 있는 영원의 오후 숲과
세상 안에 있는 톱니바퀴 두뇌 탑을
하얀 안개가 잇는다---.

 


1.

 

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의 반응은 두 가지다.
동정적인 눈빛으로 '큰일이네'라고 말하던가 크게 웃으며 '제대도 된 게 아니네'라고 말하던가 그 어느 쪽이다.
그게 카쿠텐소쿠 마코토에게는 이해 가지 않는다.
마코토가 8살 일 때 자매 둘이서 3일 밤낮을 자지도 쉬지도 않고 가프토노슈의 천체 운동식을 풀기 싸움을 했던 것도---.
마코토가 10살일 때 준비란 식사를 하고 하는 때 문득 입에 대에 영양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대로 준비한 요리를 실험실로 가져가 분석해버려 정신 차리면 아침이 돼 있었던 것도---.
언니가 대학 동급생 결혼식에 갔다 돌아오는 길 문득 본 나무줄기 곡선에서 새로운 기하 논리를 깨닫고 그대로 밖에서 고찰에 들어가버려 한밤중에 태풍이 다가와 찾으러 간 13살 마코토를 붙잡아 비바람 속에서 의논을 시작한 것도---.
어느 것이고 소중한 반짝이는 보석 같은 추억이다. 마코토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준다.
 그런데 마코토가 누나인 아키코와의 추억을 말하면 모두 슬프게 웃었다.
이상한 일이다.
역시 누나가 너무 천재가 모두 그 언동을 이해 하지 못하는 걸까.
물론 타인이 어찌 생각해도 상관없는 건 상관없다.
마코토는 언니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언니도 마코토를 사랑해줬다.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소중한 언니는 사라져버렸다.

『너라면 그 탑을 맡길 수 있어. 라고  할까 마코토에게 밖에 맡길 수 없으니까. 부탁이야. 그 탑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한가하지 않아. 나는 또 하나 어떻게든 만들어야 하는 게 있으니까...』

죽음에서 도망치는 것이 무리인 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 마지막 연구를 해내기 위해 방에 틀어박혔다.
외로웠다. 만나고 싶었다. 좀 더 잔뜩 이야기하고 싶었다. 둘이서 나란히 같은 계산 식을 빨리 풀기 경쟁을 하고 싶었다.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자는 약속도 결국 마코토가 혼자서 해버렸다.
지금은 몇 주간이고 씻지 않는 사람의 냄새를 맡으면 언니를 떠올리고 울어버릴 것 같다.
하지만 언니는 몇 주간이고 씻지 않아도 어딘가 달콤한 향기가 있었으니까 비슷하긴 해도 완전히 같은 사람과 만날 일은 없다. 닮았을 뿐이니까 울 것 같은 걸로 만족 한다. 완전히 같은 향기가 혹시 있다면 눈물로 눈알이 녹을  때까지 울어버리겠지.
언제까지고 마코토는 언니를 우러러보았다.
마코토가 2살일 때 실험 중 사고로 양친이 돌아가시고 계속 언니와 둘이서 살아왔다.
돌아가신 양친도 언니에겐 미치지 못할 천재였으니까 많은 특허를 남겨두어 금전적으론 곤란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대등하게 이야기할 상대는 언니밖에 없었다.
세간 사람은 언니를 천재에 걸맞은 인격의 소유주라던가 사람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방약무인한 성격이라든가 오만불손이라던가 많이 말하기는 했다.
...... 아니 그래도 대충 정답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코토에겐 정말로 다정한 언니였다.
언니가 자신에게 보여준 다정함의 결과로 항상 마코토가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것을 들으면 어째선지 전원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는 눈으로 마코토를 보지만.
 그건 이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조하게 된 계기가 된 대재앙 때이다.
마코토는 아직 7살이었다.
언니와 둘이서 살고 있던 집이 무너졌다. 중량급 책장이 쓰러졌지만, 언니가 뛰어들어준 덕분에 화를 피했다. 언니는 쓰러진 세상 사고 기계 학회 논문집 사태로 왼팔이 탈골되고 안경에 금이 갔다. 직후 더욱 다른 책장이 쓰러져 모처럼 감싸준 마코토도 오른 다리가 골절됐다.
이대로 말하면 모두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리고 좋은 언니였네 라고 말하는 거다.
아니다.
언니가 다정한 건 여기서부터다.
떨어져 내린 몇 권인가의 논문집에 우연히 열린 페이지에서 언니는 종래와 전혀 다른 인공 사고 기계 어프로치를 떠올린 것이다. 정말이지 다른 논문의 이제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조합이다. 그것이야말로 현재 도쿄 중심 온 전역에서 서비스와 군사적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계차식 인공두뇌 탑 기초 이론이었다.
그 정도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언니가 먼저 물은 것은.

『마코토 괜찮아? 잠깐 기다려도 죽진 않을 것 같아?』
였다.

 언니는 자신의 번득임을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숨 보다도 소중히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언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리하기 전에 마코토의 우선도를 확인해준 것이다. 인생에서 그 정도로 감격한 적은 없다-- 고 마코토는 생각한다.
이제까지 몇 백명이라는 상대에게 설득해왔지만 동의해준 사람은 없다. 제일 좋은 반응으로 애매하게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인 정도다.
뭐, 그걸로도 좋다. 타인이 알아줄 필요는 없다.
지진 때는 이미 마코토는 자신의 육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가능한 지식과 판단력을 지니고 있었다. 언니가 해준 교육 덕분이라고 항상 감사하고 있다.

『괜찮아. 안 죽어』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금후 연구에 지장 될 일은 없다고 판단했다. 언니를 돌봐주거나 가사를 하기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가능성보다는 지금 언니에게 집중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알았어. 그런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이 구해주러 올 때까지 힘내줘』

그렇게 말하고 언니는 즉각 새로운 아이디어를 쓰기 시작했다.
옆집은 불타고 있어 불이 상당히 근처에 다가왔지만 아슬아슬하게 위험해질 때 언니에게 알리자고 정했다.
결국, 불은 불타서 이동할 일도 없이 사라져줬다. 지진이 일어난 건 한밤중이 지나서였지만 다음날 정오쯤에 근처 소방대가 둘러보다 방해하기 전에 언니의 계산은 끝나있었다.

『고마워 마코토. 네 덕분이야』

라고 언니가 말해줬다. 자신이 세운 이론 안에서도 1, 2를 다투는 우수한 것이라고 언니는 눈부시게 빛나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언니의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느낀 마코토였지만 언니는 그것만이 아닌 논문을 발표할 때 마코토의 이름도 게재해 준것이다.
도중 2, 3개만 계산을 도와줬을 뿐인데. 계산하고 있으면 다리의 통증을 잊을 수 있어서 마취제 대신 조른 것 뿐인데도다.
다리 쪽도 추위와 아픔으로 오그라들었지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해도 역시 모두 언니의 다정함에 동의해주지 않는다.
화나지는 않지만 슬프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면 그 둘만 있었던 밤 언니가 옆집 화재 불빛을 의지해 쓴 논문도 일심불란 하게 계산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때는 정말로 행복했다.
이제 그때 같은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언니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전인미답의 업적을 세운 후 세상을 떠나버렸다.
 마음에 빠끔히 생간 구멍에 대고 마코토는 언니가 남긴 도쿄 개차식 인공두뇌 탑을 관리하고 있다. 제도를 오가는 노면 열차나 지하철을 컨트롤 하고 관공서의 기록이나 군사 작전까지 정보를 관리하는 초거대 건축물이다.
이것이 움직이는 원리를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건 언니와 마코토 밖에 없다.
카쿠텐소쿠라는 새로운 성은, 이 탑을 설계한 언니의 공적을 칭찬하며 보내준 것이다. 마코토가 아니 마코토 만이 탑을 관리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칭하는 것을 허가해 줬다.
이 성과 그리고 탑을 언니는 남겼다. 마코토가 지켜주면 언니가 믿은 이상 마코토가 그 소원을 배신할 일은 없다.
그저 사실 언니는 또 하나 뭔가를 남겨주었을 것이다.
죽기 직전 드물게 언니가 연구실에서 나온 적이 있다. 마지막 연구에 대해선 『실패하면 부끄러우니까』라는 이유도 언니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은 마코토가 어지간히 한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

『저기 말이야 이건 마코토를 위해 만드는 거야. 악용되면 큰일이니까 마코토 이외 누구도 만지지 못할 곳에 숨겨둘 테니까. 하지만 필요해지면 찾아낼 거야 분명』

그렇게 언니는 말해줬다. 언니가 마코토의 뺨을 살짝 쓰다듬고 3개월 정도 씻지 않고 막 자란 머리에서 평소 언니의 향기가 났다.
그 후 연구실에 돌아가려는 언니를 참지 못하고 불러 멈췄다.

『언니 또 이야기 할 수 있지?』

『에에, 가능해. 하지만 ... 다음에 이야기하는 건 마코토가 나와 세상 중에 어느 쪽이 소중한지 정해야만 할 떄 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분명 열쇠가 풀릴 테니까....』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아직 마코토는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도 마코토는 언니가 돌아온다면 세상을 전부 내놓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언니의 마지막 연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아직 필요 없어서  일지도 모르지만......

 

2.


천장도 벽도 바닥도 하얀 복도를 두 사람의 우편국이 걷고 있다. 금발에 하얀 옷을 입은 소년 판과 흑발에 검은 옷의 청년 크레이다.
둘의 주변에는 아직 정말 희미한 안개의 흔적이 있다.

"아니, 역시 극동 기계 술 국가 톱니바퀴의 나라라는 이명을 자긴 나라의 중추기관이네"

라고 금발의 소년 ---  판이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왜 그렇게 기뻐 보이는 거야"

무뚝뚝한 얼굴로 흑발의 청년 --- 크레이가 노려본다. 판의 싱글벙글한 얼굴은 항상 그렇지만 오늘은 특히 빛나고 있다.

"알아? 이 마을은 열차도 증기 버스도 모두 기계가 운전하고 있어. 밤이 되 켜지는 가스등도 상하 수도도 모두 이 탑이 조종하고 있다고. 굉장하네에"

"알아. 그러니까 내가 의심하는 건 네가 일하기 전에 관광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야. 알겠어. 무리라고. 여긴 지상 수백 미터야"

초고층 건축물 99층 복도다.
이번 하얀 안개가 우편국을 보내준 곳은 도쿄 중심부, 다른 지구에선 국회 의사당이 세워져 있을 장소에 있는 거대한 육각형의 탑이다.
이 거대한 건축물 전체가 세상 최대 도시 중 하나인 도쿄 중심을 흘겨보며 그 모든 것을 컨트롤 하는 세상에서 제일 우수한 '사고하는 기계'인 것이다.
거대한 탑 안의 내용물은 그 대부분이 증기관과 태엽 계산기다.
인간이 오가는 통로는 탑을 정비하기 위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수는 최저한으로 대부분의 일은 자동 기계가 하는 모양이야. 역시 말이야 자동인형이라던가 인형 기계는 남자의 로망이네"


"... 그런가 ? 그게 로망인 건가?"

마침 두 사람의 정면에 수레바퀴가 달린, 1미터 사방의 상자가 달려왔다.

"로망이라는 건 이족보행 정도는 하도 말해줬으면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라고 크레이가 말한 때 차가 딱 멈췄다.

"움직이지 마"

"오오, 굉장해 말해. 봐 로망이잖아. 네 로망은 쩨쩨해"

"...그냥 금속음이잖아"

"경계 합 니다. 어른 같 은 정답"

상자가 말하면 더욱 2대 더 큰 상자가 복도를 달려 왔다.

"... 로망은 제쳐두고 이 녀석들 디자인 센스가 이상하지 않아"

달려온 한층 더 큰 상자가 말하는 상자 좌우에 딱 멈춘다.
크레이가 디자인 센스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건 큰 상자 위에 곰 인형이 놓여있어서다.
게다가 좌우의 곰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팔을 치켜들었다.

"조금 귀엽지 않아, 이 녀석들?"

라고 판이 말했다.

"정말이지 귀엽지 않네, 이 녀석들"

이라고 크레이가 대답했다.

"실물은 클까? 저 사이즈면 반달곰 비슷하네"

"그게 어떤 곰인가는 모르지만, 손톱 대신 권총이 달려있거나 하는 건가"

크레이가 진절머리난 표정으로 말한 때다.

"반항 좋지 않아 제압 제압"

갑자기 자동인형이 새된 경고를 외쳤다. 동시에 곰 인형이 팔을 위협적으로 빙글빙글 회전시킨다.

"뭐야 이봐 우리가 뭘 했어. 진정해"

"설득은 쓸데없죠. 기계장치일 뿐이니까. 이렇게 되면 해치워버리다. 기계와 살아있는 몸뚱이의 배틀도 남자의 로망이지"

크레이의 어깨를 탁 치고 판은 그를 꾸욱 앞으로 내밀었다.

"전부 떠넘기기냐!?"

앞에서 비틀거리는 판에게 반응해 3개의 상자 정면에 작은 구명이 열려 철 파이프가 튀어나왔다. 어느 것이고 총구로 보인다.

"다아아앗, 정말!"

크레이는 바닥을 스칠 정도로 몸을 숙인 태세로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정면 상자 모양 기계 인형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날아간 건 주사침이 달린 마취 탄이다.
마취 탄이 벽에 닿아 튕겨 나간 때 크레이는 이미 중앙 상자 모양 자동인형을 받침대로 허공에서 춤추고 있다.
좌우 곰 모형이 회전하고 있던 팔을 딱 멈췄다. 손목 근처가 떨어졌다.
권총이 된 끝이 불을 뿜고 크레이를 목표로 날아간다.
크레이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오른쪽 곰의 수갑을 피하고 왼쪽에서 날아온 수갑은 은으로 된 오른팔로 튕겨냈다. 튕겨낸 쪽 즉 왼쪽 곰의 권총은 오는 쪽 곰의 머리에 부딪쳐 그것을 챙 하는 소리를 내며 깨졌다.

"싸게 만들었네 어이!"

아무래도 도기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오른쪽 곰은 움직임이 둔해졌다. 한번 착지한 크레이는 그대로 간발의 차이로 뛰어올라 왼쪽 곰을 밟고 뛰었다. 은 주먹으로 깨진 머리를 때려 부순다.
하지만 그때 중앙에 있던 작은 상자가 상부를 좌우로 톡 하고 열었다. 거기서 연발식 수류탄을 꼭닮은 무기가 얼굴을 내밀었다.

"쓴다고 이봐!"

"에엑"

판의 불만스러운 목소리는 던져진 에너지 캡슐 뒤에서 날아왔다.
받아든 크레이는 은 팔의 팔꿈cl 근처를 슬라이드 시켜 그것을 누른다.
끝나는 것과 동시에 크레이는 팔을 비스듬하게 향했다. 은색 빛이 샘솟았다. 가운데 있는 상자가 중심을 동그랗게 도려내 움직임을 멈춘다.

"역시나 육체노동 담당"

판이 벽에 기대 느긋하게 박수를 쳤다.

"톱니바퀴 나라의 자동인형은 얼마나 굉장한가 했는데 위협할 뿐이였네에"

"마지막은 그냥 위협이 아니잖아"

"에, 하지만 그거 그물 발사잖아"

판이 말하자 크레이의 표정이 얼어 붙었다.

"... 그걸  빨리 말해!?"

"몰랐던 거야!?"

크레이가 소리cls 때 복도 끝에서 경비원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과연 시간만 벌면 되는 거였네"

즐거운 듯이 탁하고 손을 치는 판에게 크레이는 넌덜머리 난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럼 여기부턴 두뇌노동담당의 차례라고"

"네네. 교섭이니까. 눈매 나쁜 너는 안 되죠. 이런, 여러분.정말로 수고하십니다"

판이 벽에서 등을 떼고 총을 겨누는 경비원들에게 머리를 깊이 숙였다.

".. 원하는 동작은 그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긴 한숨을 쉬면서 크레이는 순순히 양손을 들었다.


3.


".....다, 당신들을 신문할 카쿠텐소쿠 마코토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작고 화사한 소녀가 조금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크레이와 판은 얼굴을 맞댔다.
좁고 아무것도 없는 방에 둘은 묶여있다. 창도 없어 시간도 모른다.
머리 위에 있는 전등은 복도에 있는 것과 같은 최신식이다.
이 거대한 건축물에는 감옥 같은 설비는 없다. 빈방이 심문실 겸 구속실로서 준비되었다.
가지고 들어온 건 튼튼한 의자와 작은 책상 그리고 권총이다.
크레이와 판은 옆에 늘어선 튼튼한 의자에 구속돼 있다. 팔은 의자 등받이에 둘러 수갑을 채웠다.
눈앞에 작은 책상이 있어 그것을 끼고 건더 편에 그 소녀가 있다.
평소엔 심문은 두 사람 따로따로 행하겠지만 여긴 이래저래 규격 외인 것 같다.
먼저 나타난 심문관이 소녀이다.
막 자란 머리를 대충 세 가닥으로 따았다. 오래된 디자인의 커다란 안경을 쓰고 군복이 아닌 백의를 두르고 있다.
신장은 크레이의 가슴까지 닿을까 말까 한 어쨌든 호리호리하다.
그 소녀는 의심스러운 크레이와 판의 시선에 반응해 떨림을 누르며 분연히 말했디.

"시, 심문입니다! 정말이예요! 저, 정말로 제가 담당자입니다! 정말이라고요! 믿어주세요!"

"너 몇 살?"

싱글벙글 --- 평소의 싱글싱글이 아닌-- 웃으면서 판이 묻는다.

"16살입니다만, 나이는 관계없습니다! 제가 이 도쿄 계차식 인공 뇌 탑의 관이 책임자 입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을 심문합니다! 쿠데타 파입니까? 그게 아니면 외국의 스파이입니까? 솔직히 말하세요!"

마코토라고 칭한 소녀는 목소리를 뒤집으며 소리치고 책상을 있는 힘껏 두드렸다.
글썽인다. 두드린 손이 꽤 아팠던 모양이다.
그녀의 등 뒤에는 억센 경비원이 두 사람, 총을 들고 서 있다. 크레이를 지켜본다는 것보다 마코토의 경호겠지. 그들은 표정을 눌러 죽이고 입가에 꽉 입을 주고 있다. 힘을 너무 넣어 움찔움찔 떨고 있다.

"웃을 때가 아니예요!"

"물론입니다. 카쿠텐소쿠 대표!"

두 사람은 직립 부동으로 대답했다.
마코토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이지 하고 중얼거렸다. 아직 손이 떨려서 심호흡했다. 학교 체조 풍의 동작이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 배후? 그런 거 없어"

판이 말하자 마코토는 안경을 고쳐 쓰고 둘을 번갈아 노려봤다. 위협 하는 듯 하지만, 어린아이가 노력하는 인상밖에 없다.

"당신들은"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등 뒤의 경비원들에게서 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코토가 뒤돌아보면 경비원 군사들이 모여 떠들고 있어 한 층더 가습을 폈다.

"먼저 묻습니다"

이번엔 어떻게든 냉정하게 묻는 목소리였다.

"발성 경고용 상자형 자동인형을 어떤 수단으로 파괴한 겁니까? 만지면 손끝이 잘리는 절단면. 원통형 파괴. 통상의 권총 같은 걸로는 불가능합니다. 녹은 것도 아냐. 있을 리 없어! 재밌어!"

마코토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흥분으로 눈이 반짝반짝한다.
은으로 된 팔에서 방출된 분해 에너지에 의해... 라는 사실을 말할 리가 없다. 설명할 마음이라도 애초에 크레이도 원리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크레이의 은 팔은 그녀의 기술력으론 정교한 의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크레이의 은으로 된 손을 처음 본 순간 마코토의 눈은 반짝하고 빛났다. 분석이라도 한 거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진짜 기능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기본적인 기술체계가 다르다.

"저기 정말로 정말로 어떻게 한 겁니까? 가르쳐주세요"

마코토가 꾸욱 몸을 내밀었다. 안경 안에서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순수한 호기심에 크레이도 판도 대답하기 곤란하다.
어쩔 거야 두뇌 노동 담당?이라고 크레이가 판에게 눈으로 밀어붙인다.
맡겨둬 라고 판이 눈으로 응한다.

"휴대 폭약이야. 종래에 없을 정도의 고열을 내는 거야. 금속도 증발할 정도의"

판은 평소처럼 생글생글한 미소로 떠오르는 대로 대답한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녹은 것 같지 않다고 전 제대로 말했습니다. 화학적인 의미만이 아닌 열에 대해서도 고려했습니다"

마코토가 판을 노려보기 위해 굉장한 사시 눈이 된다.

"에 카쿠텐소쿠 대표 지금 조사해야 할 것은 그게..."

등뒤의 경비원이 역시니 충고를 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필름이 돌아온 듯이 마코토가 돌아왔다.

"카쿠텐소쿠씨인가. 에에 하늘의 규칙을 배운다는 뜻? 천연의 자연에서 학습한다는 느낌일까. 별난 성이네"

"나, 네. 이건 언니가 개명한 겁니다. 언니는 전공이 생물학이어서 당당히 생명의 조화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커다란 중얼거림이 울린다. 등 뒤에 있는 경비원 하나가 실례했습니다라고 작게 사죄했다.

"... 그랬습니다. 지금은 회의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을 심문하는 겁니다. 이 탑이 커다란 위험에 처했단 해석 정보가 있었을 때 수수께끼의 인물이 나타났다. 관계없을 리가 없습니다"

마코토는 갑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위협을 위한 고문 도구라도 꺼낼까 했더니 희고 길고 가는 천이었다. 마코토는 그것을 이마에 둘렀다. 『내가 허가한다』라는 서툰 붓글씨가 넓은 이마를 가로지른다. 좌우명인 건지 뭔지.
이 나라의 독자적 관습, 마음을 고양시켜 기운을 내는 말하자면 기합을 넣기 위한 장신구 머리띠라는 거다.

"알겠습니까! 당신들은 수상합니다!"

마코토가 다시 판에게 손가락질 한다.

"그렇네에 이상하네에"

판은 지당하다고 말하기만 하며 눈을 감고 응응하고 끄덕였다. 마코토의 등 뒤에 있는 경비원들이 역시나 화내는 기색이 전해진다.

"진지하게 대답해"

크레이가 무심코 충고했다.

"헤이 헤-이. 미안해 귀여운 애를 보면 그만 장난치고 싶어져"

판이. 다정한 미소와 따스한 시선을 보내자 마코토가 얼굴을 붉힌다.
경비원들이 살기를 향한다.

"이 극동 제국의 요인인 도쿄 계차식 인공두뇌탑에 명백한 이국 인간이 출현하면 스파이를 의심하겠지만 우린 정말 그런 게 아니니까. 네가 겉모습으로 판단 가능한 존재가 아닌 듯이. 우리도 인상이란 다른 존재야"

판의 말을 마코토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건 압니다! 당신들은 이상한 점이 몇 개나 있습니다"

아직도 몸을 내밀고 그녀는 판에게 쓰윽 코를 가까이 댔다.

"이 경비는 무척 엄중합니다. 그런데 그 중추 가까이에 당신들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어디에서도 아닌 마치 안개처럼 솟아난 겁니다!"

"응, 실로 정답"

판이 중얼거리고 크레이가 정강이를 걷어찼다.

"대체 당신들은 뭐하는 자입니까?"

"나는 판 크라운라스. 그는 크레이브 소릿슈. 닿지 못한 편지 사라져버린 편지 보내지 못한 편지를 전하는 괴짜 우편국이야"

"그래서, 우리가 이번 편지를 전하러 온 건 당신이야"

옆에서 삐걱이며 몸을 내밀어 크레이가 입을 맞춘다.

"당신들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마코토는 당황해  등뒤의 경비원들에게 이 이상 헛소리는 용서못한다는 위협의 기색을 전한다. 판도 여시나 진지한 얼굴이 됐다.

"우린 말이야 너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 여기에 온 거야. 그저 편지 회수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편지라는 형태일지 어떨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탑 안 어딘가에 있을 거야. 네 언니가 너에게 남긴 메세지가"

판의 말을 듣고 마코토는 수상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낯빛이 새파랗게 변했다. 이어서 새빨개진다. 입이 크게 벌어지고 --- 거기서 방해가 들어왔다.
문이 난타 된 것이다.

"대표! 바로 지령실로 와 주십시오. 긴급 사태입니다. 녀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연산결과는 아직...! 내 입력이 잘못됐어....? 언니는 그런 실수가 없었는데...."

다시 마코토의 얼굴이 파래진다.
그녀는 빙글 하고 몸을 뒤집어 그대로 방을 달려나간다.

"...흐응? 지금 반응은 어떻게 된 거야?"

판은 크레이를 돌아보고 물었다.

"내가 알까"

크레이가 콧소릴 낸다.

"알고 싶으면 이 녀석들에게라도 물어보면 어때"

크레이가 턱을 치켜 올린 끝엔 경비원 둘이 있다.
 
"카쿠텐소쿠 대표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할 마음이 아니라면 우리가 심문할 수밖에 없네"

총을 두고 우드득하는 소리를 내며 다가 온다.
판은 싱글거리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포로의 학대는 금지 돼 있지 이 역사 선의 세상에서도"

"역사 선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포로의 학대는 허가되지 않았네. 단..."

"스파이는 예외? 우리 정말로 스파이가 아니니까. 민간인이니까"

"확실히 너희 같은 스파이는 없을 거고 그 머리가 썩을 정도로 단단한 반란 파엔 더욱 가담할 것 처럼 보이지 않아"

"어라 의외로 말이 통하네...."

"하지만 이다"

판의 말을 경비원들은 차가운 목소리로 잘랐다.

"여기선 카쿠텐소쿠 대표를 울리는 녀석은 모두 예외야"


4.


라고 말하고 그들이 크레이와 판을 부당하게 아픈 맛을 보여주진 않았다.
1대씩 때렸을 뿐이다. 긴장한 표정의 전령이 또 와서 경비원들도 바로 방을 뛰쳐나간 것이다.

"흐음. 뭐어 이 정도라면 불합리하다곤 말 못하네. 기본은 네 책임이고"

크레이가 조금 부글부글 끓으며 어금니를 악물고 말했다. 그들의 치유능력은 일반인에 비해 아득히 높다. 부러진 뼈도 잠시 쉬면 났는다.

"책임 같은 거 없다고 생각하는데에. 저기, 내 눈 근처 이상하지 않아?"

상처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치유 능력이 높은 만큼 멍드는 것도 빠르다.

".....정말이지. 정말로 이상하지 않아. 빨리 일 끝내고 숲으로 돌아가고 싶네. 아아, 네 그 얼굴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어떻게 된 거야 내 얼굴. 거울 없어, 거울"

판이 투덜거린 때 짤깍 하고 문이 열렸다.
방금전 사라진 마코토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다. 이야길 시작하려다 갑자기 켁 하고 목을 울렸다. 서둘러 왼손으로 입을 막는다.

"어이 괜찮아"

그렇게 말한 크레이에게 걱정 없다며 오른손을 흔들며 그녀는 크게 어깨로 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구역질을 억누르고 그녀는 등을 폈다.

"당신들은 우편국이라고 말하셨죠. 반역자가 아니라 언니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 그것을 믿어도 괜찮을까요"

그때 희미한 진동이 방까지 전해졌다.

"... 폭발이네"

진동 패턴으로 크레이는 판별된다. 멀리서 희미하게 느껴졌지만, 꽤 큰 폭발이다.
마코토는 순간 겁먹은 표정이 됐다.
하지만 바로 의연한 표정이 되어 일단 밖으로 사라졌다.
돌아왔다.

".... 저기 마코토씨 그 기계는?"

마코토가 들고 있는 커다란 버너를 보고 판이 쭈뼜쭈뼜 물었다.

"... 호쾌한 의문이네"

뻐끔 하고 크레이가 중얼거린다. 마코토는 손을 보고 손목을 털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당신들은 무해 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열쇠를 잃어버려서 이걸로 태웁니다. 나중에 알아서 도망쳐 주세요"

"아니 아니, 됐으니까 그건 그만둬"

수갑이 챙강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고 판이 일어섰다.
 
"밧줄 풀기라던가 수갑 푸는 건 자신 있다고"

"나는 부수는 게"

크레이의 손이 자유로워졌다. 쇠사슬을 자른 것이다.
그가 가진 은의 오른팔은 모든 것을 지우는 빛을 내뿜는다. 단, 사용하기 위해선 광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 캡슐은 평소 판이 보관한다. 조금 전 곰 인형을 지우는 데 썼지만, 아직 다 쓴 건 아니다.

"그, 그럼 두 분은 빨리 도망가세요. 저는 반란자들과 맞서 싸웁니다. 이 탑의 기증을 그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부하들은 자신의 목숨 따위 언니의 추억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응?"

뭔가 대사 후반이 불온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을 추궁할 틈은 없었다.
격한 총격이 복도 건너에서 덮쳐온 것이다. 그것과 함께 목소리가 들렷다.

"방금 건 위협이다. 즉시...."

"항복은 하지 않습니다!"

마코토가 목소리와 함께 버너를 복도로 내팽개쳤다.

"그만 쏴....!"

라는 명령은 조금 늦어 버너 연료 탱크에 명중해 폭발이 일었다. 주변이 불에 둘러싸인다. 마코토는 방안에서 굴렀다.

"도망치죠!"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려고 마코토는 푹하고 주저앉았다.
허리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네. 하지만 출구는 저기뿐이었지?"

판은 왼쪽 말 없는 크레이는 오른쪽. 마코토의 팔을 좌우에서 지지해준다. 복도로 뛰어든다.

"저기 전.. 소극적이라"

당황하는 사이에 불길을 뿜고 나타나는 군복 차림의 남자들.

"달려주세요!"

"달리고 있는데?"

빵! 매화를 자르는 총성.

"오오 좀 더 빨리 달려!"

"우리도 탄환엔 역시나 못 당해내니까"

탕! 탄환이 벽에 박히는 날카로운 소리.

"쏘지 말아 주세요! 제가 죽으면 이 인종 두뇌 탑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사라진다고요! 이 좌우에 있는 사람들은 스파이도 공작원도 아닌 일반인이라...."

"외국인이 있다고!"

"나라를 판 건가 저 말할 계집이!"

"스파이를 쏴 죽여!"

"역효과야!"

빠빠빵! 계속되는 총성.

"후왁"

마코토는 공중에 내팽개쳐지고 꽈악 팔 다리를 움츠렸다.
그 나름대로 높은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빙글빙글하고 몸의 방향이 변했다.
마코토가 허공에 있는 사이에 판은 예의 춤추는 스탭으로 크레이는 바닥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것 같이 미끄러지는 태세로 총격을 피했다.
진행방향과 다른 편을 보고 있던 마코토가 정면을 바라본 참에 크레이와 판이 좌우에서 캐치.

"뭐야 녀석들은! 가능할 리 없다고 저 움직임은!"

반란자 지휘관이 분노하는 소리가 마코토의 등 뒤에서 들리고 멀어져간다.
바로 눈앞에 갈림길.

"오른쪽으로! 그리고 바닥 아래!"

복도 바로 끝에 바닥에 정비용 구멍에 들어가기 위해 둥글게 만든 문이 있다. 정비용 구멍이라는 건 이 탑 안을 종횡무진으로 뻗어있는 증기전달 파이프와 병행하고 있는 인간이 수리나 신축하기 위한 통로다.

"좁네에. 어둡네에. 그럼 먼저 나부터. 정중앙에 마코토짱이야"

"나는 뒤를 본다"

크레이는 뒤돌아본 채로 걷는다.
잠시 동안 마코토가 지시하는 대로 나가아 도착한 다른 둥근 문에서 한 플로어 아랫방으로 내려 왔다.

"...이대로 계속 아래로 가면 두 분은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고에서 진정되지 않는 모습으로 마코토가 말했다.

"그게 그렇지도 못해. 우린 너에게 편지를 전하지 못하면 돌아가지 못해"

"일에 대한 의무감입니까? 그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만 죽어요"

마코토는 태연히 말했다. 농담하는 게 아니다.

"의무감이 아닌 많은 의미로 돌아가지 못해"

라고 크레이는 말했다. 편지를 전하지 못하면 빛나는 안개는 마중 오지 않는다. 세상의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도망가는 건 당신이겠지. 사정은 모르겠지만"

눈빛은 위험하고 어조는 무뚝뚝하다. 하지만 걱정은 전해져온다.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저 반란자들은 언니가 남긴 이 탑을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겨우 긴 전쟁이 끝났는데 또 싸움을...."

"이 나라는 동쪽 끝에 있어 지난번 전쟁에선 거의 방관자였으니까. 이래저래 생각할 게 있겠죠. 지금 위에 있는 사람들은 주변이 약해진 기회를 틈타 시간을 들여 능숙하게 해치우려고 하고 있지만, 참을성이 부족해 약해진 상대를 날려버리면 되잖아라고 졸속파의 사람도 있다고"

판이 해설을 보태면 마코토는 조금 걸리는 듯한 모습으로 끄덕였다.

"전쟁은 어찌 되든 좋습니다만 언니의 것은 언니의 것 제 것은 언니의 것. 무엇 하나 저런 패거리에게 넘겨줄 순 없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목숨을 건 부하들의 희생을 쓸데없이 할 순 없습니다"

"......어라? 뭔가 묘하게 말하는 게 이상한 듯한...."

"에에음... 어쨌든 우린 우리 일을 하자. 그래 그녀가 죽은 언니가 부탁한 자기 일을 하는 듯이"

크레이가 억지로 좋은 이야기처럼 정리한다.

"이 타이밍에 우리에게 배달하라고 불러냈다는 건 그 언니가 너에게 남긴 메세지가 해결에 도움이 될 거란 건데...."

확실 하진 않지만, 경험상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편지는 수취인이 빠져든 위험을 빠져나가기 위해 전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언니의 전언입니까"

마코토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죽은... 거지?"

판이 역시나 염려하는 진지한 목소리로 묻는다.

"언니가 죽은 건 3개월 전 일입니다. 뇌에 종양이 생겨, 버렸습니다"

도중에 조금 혀가 엉켰지만, 말은 확실히 끝냈다.

"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습니다. 후계자로서 저를 훈련했 것도 그 일환입니다. 이 탑의 모든 것을 저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래... 넘겨 준 것 입니다만..."

마코토의 주변에 뭔가 어두운 것이 떠오른다.

"언니는 천재였습니다. 이 도쿄 계차식 인공두뇌탑은 대부분 언니 혼자서 만든 것 같은 겁니다. 그 언니의... 마지막 연구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걸 찾아내는 거네. 이걸 마시고 진정되면 다시 뭔가 될만한 게 없는지 생각해 볼까"


마치 요술처럼 어디에서도 아닌 곳에서 온기를 띤 작은 컵이 판의 손에서 나타났다.

"증류 사과 술이 들어 간 홍차입니까... 잘 마시겠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마코토는 단숨에 마셔버렸다. 파랗게 질린 뺨에 붉은 기가 돈다.

"네 언니의 연구가... 연구실 같은덴 잔뜩 찾아봤겠지만 한 번 더 거시서 시작해 보는 건 어때?"

크레이가 말하자 마코토는 작게 끄덕였다.

"그렇네요... 언니가 죽은 방이기도 하고.... 뭐어 저도 계속 거기서 지내고 있어서 조금 부끄럽습니다만"

순간 크레이와 판은 엉망진창인 여자아이의 방을 상상했다.
물론 그들의 생각은 아직 물렀다.

 

5.


"이건... 굉장하네..."


크레이의 눈이 평소와 달리 크게 떠졌다. 덤으로 입도 반정도 열려있다.
그 방이 굉장한 기술과 예술이 융합 돼 있어서다.
도시가 재현 돼 있다.

"이 탑의 컨트롤로 다루는 범위를 완전히 재현한 건가...."

몇 개인가 눈에 띄는 건물이나 지형으로 크레이는 그렇게 이해했다.
직경 50미터 정도의 거의 원형의 방이다. 벽 주변을 둘러싼 복도가 나 있어 더욱 그물 같은 공간에 공중 통로가 둘어쳐있다. 통로 주변에 작업용인지 쿠션 좋은 의자가 놓여있다.
그 아래 2미터 정도 가라앉은 바닥 한 면에 도시 미니어쳐가 펼쳐져 있다.
미니어쳐 도시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 건축물이 있다. 높이는 1미터 반 정도로 직경도 80센티 가깝다.
실제 비율과는 다르겠지만 중요함이나 존재감이 합쳐지면 도쿄 중앙 미니어쳐 지도에서 이 정도의 면적은 차지하고 있어도 괜찮다. 이 게차식 인공두뇌 탑이다.

"언니는 이 의자에 앉아서 자는 듯이 죽어있었습니다"

두뇌 탑 미니어처 한가운데 설치된 의자. 그 주변에 더러워진 모포와 책과 잡지와 과자가 먹다 남은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방울방울 액체가 흘러있다. 여성용 속옷도 널브러져 있다.

"저는 언니의 의자를 이어받아 비슷하게 여기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건 이어받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언니가 죽었을 때 여긴 깨끗이 정리돼 있었습니다. 생전처럼 재연하는데 꽤 수고가 들었습니다"

"...들이지 않아도 괜찮았을 수고가 아니였을까"

"언니가 청소한 건 아마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해서 지쳐서 그대로... 평소의 연구가 완성됐을 때의 편안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즉 언니가 연구를 완성한 건 틀림없다는 거네. 마지막 연구는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는 곳에 숨겨둔다고 말했던가?"

여기로 이동하는 중에 마코토에게서 그 비슷한걸 들었다.

"정확히는 저 이외엔 손에 넣지 못할 장소라고 말했습니다만"

"자신의 머릿속이라는 게 제일 안전해 보이는데"

무관심하게 크레이가 말하면 마코토는 파랗게 질렸다.

"그런...! 언니는 화장해버렸습니다! 해부했어야 했던 겁니까!"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머릿속이란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니까?"

"아. 으으 그렇네요. 저도 언니도 육체의 기능과 정신을 분리해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만. 언니는 육체는 마음을 담기 위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말버릇이었습니다. 저를 여동생으로서 사랑한 건 육체의 피가 이어져서가 아닌 마음이 이어져 있어서다 라기 보다는. 둘이서 만든 이 탑은 우리의 인연입니다. 언니의 마음을 본받은 것이니까"

이야기하는 사이에 마코토의 얼굴에서 외로움이 사라졌다. 대신 녹을 것 같은 표정이 나타난다.

"과연 이 탑은 언니 그 자체네"

판은 눈 아래로 펼쳐지는 도시 미니어쳐를 바라봤다.

"하지만 굉장하네에. 열차나 버스 운행까지 재현하고 있어"

판이 관심을 가지고 중얼거리면 마코토는 기쁜 듯이 가볍게 가슴을 폈다.

"도쿄 중앙에서 실제 있는 장소에 배치했습니다. 당시 대응까지는 안 되므로 역에 붙어 움직입니다....만.... 어라?"

마코토는 열차의 움직임을 쫓는 사이 안색이 변했다. 복도를 달려서 벽 구석에 있는 책장으로 달려간다. 마코토가 꺼내 온건 시간표다.

"이상합니다. 열차의 움직임도 버스의 움직임도"

이 도시 공공교통기관에 운전 수는 일단 타고는 있지만 그건 만에 하나의 고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평소 이 인공 두뇌 탑이 중앙에서 제어하고 있다.

"재현이라고 하는 것 보다 여길 움직이면 진짜도 움직입니다만.... 예정과 완전히 다릅니다"

"라는 건 저것도 정말로 저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건가. 라는 건 여기서 움직이는 건가. 위험한 거 아냐"

그런 말을 듣고 뒤돌아 본 마코토가 본 건 열차나 버스에 눈도 주지 않고 포대 근처를 바라보는 크레이의 모습이었다. 그는 움직이는 지도의 한 점을 의문스레 바라보고 있다. 도쿄 항 일각에 방위용 포대가 놓여있는 건 정권이 막부로 교대한 때. 제도 방위 요새 계획으로 최장 사격 포가 놓인 건 대전 중에나 있는 일이다.
물론 그 포대도 모두 이 탑 제어하에 있다. 사실이라면 모든 앞바다를 겨누고 있을 터다. 그런데 지금은 빙글 돌아 포구는 내륙으로 향하고 있다.

"그런...! 조작을 빼앗겼습니다!"

마코토가 신음한 때 이 중앙 감시실의 모든 문이 난폭하게 열려 총을 든 제복 모습의 남자들이 난입해 왔다.
벽을 둘러싼 복도에 있던 마코토에게 5명이 공중 통로에 있던 크레이와 판에겐 4명이 밀려들어 저마다 총구를 들이밀고 포위한다.

"얌전히 있어라!"

마지막에 들어온 건 근육질인 커다란 몸집 커다란 턱이 3개 정도로 갈라진 듯한 사관이다.

"반란자 따위.. 언니의 탑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우린 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 애국 파라고 불러!"

마코토의 목소리를 찌리리하게 주변을 떨리게 하는 큰 목소리에 덮여 사라졌다.

"현 정치는 이 절대적인 힘을 쓸데없이 쓰고 있어!"

"쓸데없다니 실례네! 열차나 버스 가스등이나 상하수도 제어 같은 건 부업입니다! 태반은 언니가 설계를 끝내지 못한 수학 이론의 검증에 쓰입니다!"

"그게 무엇보다 쓸데없어! 무슨 도움이 되는 거야 그런 게!"

"도움이 되지 않게에야 말로 귀중한 것입니다! 바보는 모릅니다. 이 어리석은 자!"

5개의 총구를 들이밀어도 마코토는 주변을 에워싼 군사들을 멸시하는 눈으로 노려봤다. 군사 한 명이 마코토를 때리려고 총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계집이!"

"그만해!"

거인 사관이 고막을 찢을 듯한 큰 소리로 명령했다.

"그 계집의 머리는 귀중하다. 각하가 평가하실 정도의 기능을 진지한 가치판단도 하지 못하는 고기 주머니에 질줄은, 하늘도 빈정거려. 하지만 계집애 같은 사고 능력이 구비되는 일이 가능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탑에 숨겨진 성능을 빼돌려 우리나라가 세상의 어리석은 나라를 인도하기에는 본의가 아니지만, 이 계집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각하가 말씀하셨다"

"숨겨진 성능? 저기. 그건 무슨 말?"

판이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총을 겨눈 병사들에게 물었다.

"닥쳐 오랑캐가 죽고 싶은 건가"

군사는 7, 8년은 젊은 외국인에게 대한 모멸의 표현을 토해내고 판의 입에 가지고 있는 총을 들이대려고 했다.

"괜찮잖아. 질문 정도는"

판은 휙 하고 하반신을 돌려 총을 피했다.

"네놈!"

울컥한 군사가 더욱 판을 때리려고 총을 휘둘렀다. 마코토 때와 달리 지휘관도 멈추려 하지 않는다.
히죽히죽 웃으며 다른 군사도 판을 바라보고 있다.
크레이에게서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순간에 크레이는 스윽 몸을 숙였다.

"아?"

군사가 의아하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은으로 된 주먹이 아래서 차고 올라와 군사의 턱을 빼앗았다. 빼앗는 펀치라는 것이 상대의 의식을 잃게 만드는 데는 최적인 것이다.

"네...놈 !"

내려찍는 은으로 된 주먹을 관자놀이에 부딪쳐 다른 한명이 기절한다.
마코토를 애워싼 군사가 우편국 두명에게 총을 겨눈다. 물론 크레이와 판은 자신을 에워싼 군사가 방해 돼 쏘지 못하는 위치에 서 있다.
군사들이 당황하며 들어가려 하는 사이에 크레이가 백드롭으로 한명의 후두부를 밖에 혼절시킨다. 동시에 판은 어디에서도 아닌 곳에서 나온 수통에서 약품을 군사의 얼굴에 뿌려 재워버렸다.
크레이와  판이 군사의 총을 빼앗았다. 하지만 이미 커버는 없다. 마코토를 에워싼 군사들의 총구는 이미 크레이와 판에게 향해 있다. 총성이 울리려 한 그 순간.

"치워!"

지휘관이 소리 질렀다.
판의 총구가 마코토에게 향한 것을 알아차려서다.

"어이, 너!"

화난 건 크레이도 같다. 판이 킥킥거리며 대답한다.

"뭐어 뭐어. 진심이 아니니까. 물론 내가 마코토짱을 쏠 리가 없잖아? 믿어도 돼 나는 죽을거면 다 같이 죽자고 당신들의 세계 정복 방해를 하거나 안 한다고"

"그런 점에서 널 못믿는거야!"

크레이가 소리 질렀다. 정말로 믿지 않는다고 강하게 전해지는 어조다.
물론 급소에 쏠 리는 없지만, 상처 정도는 낸다고 크레이는 생각하고 있다. 군사들은 정체불명의 상대인 판이 마코토에게 총구를 향하는 이유를 애초에 모른다. 망설이며 사관을 봤다. 거인은 한 손으로 마코토를 누르고 또 한 손으로 그녀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눈다.

"네놈들! 어느 나라의 스파이냐. 이 계집과 뭘 꾸미는 거냐!"

"너랑 같은 거"

"역사나! 이 인공두뇌 탑 연산 능력에 의한 미래 예측으로 전쟁에 압승한다..!"

으으윽하고 신음하는 거인 사관 옆에서 마코토가 짜증 난 얼굴이 됐다.

"저기 몇 번이고 말하는 건데 그건 이론상일 뿐으로 실제론 전혀 도움되지 않으니까. 당신들이 여기에 있는 것으로 알겠죠. 아, 알았다!"

도중에 갑자기 마코토의 목소리가 튀었다.

"당신이 각하라고 말하는 건 그 목소리만 큰 수염 안경이네요. 제2 유신이라던가 세계최종 전쟁이라던가 의미 모를 제목을 제창했던"

"네, 네놈"

거인 사관이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각하의! 숭고한 이론을! 우리나라가 어리석은 세상을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빵. 판이 손 탄환이 사관의 입을 봉했다.
물론 명중은 시키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스쳤을 뿐이다. 하지만 확신한 때는 유쾌한 듯이 생각한 그는 이미 새파란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다.

"...저기 마코토짱"

판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 번이고 설명했지"

"네"

마코토는 끄덕였다.

"확실히 언니는 이 탑의 계산능력을 써서 인간의 행동을 예측 하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미래 예측 따윈 아직 무리입니다. 더욱 ... 이미 그것을 연구하던 언니는 없습니다"

도중에 마코토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서 언니가 쓴 탑에 대한 개발서를 어중간하게 이해한 사람들이 차례로 같은 걸 원해서...."

"과연. 그런 이제 오해를 푸는 건 무리네"

"그럴까요...."

안경 안에서 마코토의 커다란 눈이 슬픈 듯이 떨어졌다.
 
"하지만 모두 미래 예지 같은 게 존재해 줬으면 하는 걸. 하지만 실재하면 지신만의 것으로 하고 싶죠? 이치론 이해해주지 않아. 나라면 나만이 아는 곳에 숨겨. 그러니까 너희도 숨긴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

판의 말에 마코토는 가만히 생각한다.

"그래서 언니의 마지막 연구라는 것을 거기에 연관한 게 아니야?"

"...그렇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마코토가 거기까지 말한 때 또 한 명 남자의 목소리가 방에 울렸다.

"정말로 가능할지 어떻지는 어찌 돼든 좋아. 가능하다고 모두 믿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거야. 이 탑이 완벽한 미래를 예측했다. 그렇게 믿으면 같은 편은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적은 싸우기 전에 패배한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일본식 옷에 지팡이를 든 장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로 수염 안경이네"

라는 크레이의 감상은 거인 사관의 긴장한 목소리에 가려졌다.

"코우센 각하!"

그 녀석이 이 탑을 점령하려고 한 녀석들의 우두머리인 것 같다. 군사들이 반사적으로 경례했다. 물론 사관도다. 안색이 돌아왔다.
우두머리가 느릿한 움직임으로 경례한다.

"바보 아냐 너희?"

사관이 총구를 마코토의 머리에서 뗀 순간 용서 없이 판이 총을 쏜다.

"콱!?"

거인 사관이 쥔 권총을 정확히 튕겨냈다.
순간 마코토는 뛰쳐나왔다. 복도를 가로질러 난건 너머 도시 미니어처 위로 뛰어올랐다. 높이는 2미터 였지만 바닥은 푹신하고 부드럽게 그녀를 받아들였다.

"만에 하나 낙하 대책으로 생각했습니다. 언니는 천재니까!"

그렇게 말하며 마코토는 입체 지도 중심까지 달렸다. 경례를 푼 군사들이 당황해서 그녀의 뒤를 쫓지만, 각하라고 불린 남자가 손짓으로 제지했다. 거인 사관과의 관록도 품격도 다르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달리는 마코토를 쫓았다. 달린다고 할까, 거의 5미터 도중에 숨이 끊길 듯이 비틀거리고 있다.
어떻게든 계차식 인공 두뇌 탑 모형에 도착했을 때 마코토는 숨이 끊어질 듯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그녀는 딱 우두머리를 노려봤다. 그  때는 이미 더욱 수십 명의 군사들이 방안에 밀려 들어와 있다. 벽 근저 원형 복도에 주르륵 늘어서 총을 겨누고 있다.
 
"역시나 너무 많네에"

"그러네"

마코토의 바로 위에서 판과 크레이가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바로 피해 주세요"

라고 가늘게 들라지만 심기 굳은 목소리로 마코토는 말했다.

"언니는 저 이외에 이 탑이 사용되지 않게 자폭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그 열쇠가 있습니다"

마코토는 안경을 벗었다. 손으로 더듬어 안경다리를 끼워 넣은 구명을 찾아낸다. 안경은 실용품이지만 동시에 열쇠이기도 했다. 이 탑이 완성된 때 언니가 맡긴 것이다.
다리를 열쇠 구멍에 끼워 넣고 찰칵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돌렸다.
마코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기 전에 사살되면 전부 끝이다.

"나머진 이걸 때면 탑은 무너집니다. 저를 쏴도 늦어요"

그 장치를 구조도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언니가 말했으니까 틀림없겠지. 마코토는 무심코 상대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서둘러 계속 말했다.

"그리고 이대로 있어도 30분 후에는 답은 붕괴합니다. 열쇠의 안전한 제거 법을 아는 건 저뿐입니다"

"너는 가능한 건가"
 
각하라고 불리는 남자가 온화하게 묻는다.

"이 도쿄 중심부는 일찍이 없었던 혼란에 빠졌다고. 그러지 않아도 우리의 궐기로 밖이 소란스러워. 여기서 탑의 제어가 사라지면 인명에 어느 정도의 희생이 나올지"

"당신들에게 마을을 폭격당해 중요한 서적이 불타버립니다! 포구 하나가 신사 고서점 거리를 향하고 있잖아요! 용서 못합니다!"

"... 인명이 아니야 그거..."

판이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마코토에게  닿지 않았다.
적인 각하 쪽에도 이렇게 되받아 칠 거란 예상은 하지 못한 것 같다. 말에 담겨 있다. 하지만 군사들의 기대에 찬 시선을 느끼고 그는 헛기침을 하며 계속했다.

"과연. 그럼 신사는 표적에서 제외하지"

"그게 아니야 교섭이란 건!"

판이 입을 열면 군사들이 총을 겨눠 조용하게 만들었다. 각하가 말을 계속 한다.

"너는 언니의 흔적을 잇기 위해 힘낸 거지? 카쿠텐소쿠 아키라코씨는 틀림없는 천재였다. 아니 초 천재였다. 그 천재가 남긴 최대의 성과가 이 탑이 아닐까. 후계자인 네가 이것을 파괴할 수 있는 건가?"

움찔하고 마코토가 몸을 떨었다.

"듣기에는 카쿠텐소쿠 아키라코의 연구엔 아직 미완성인 것이 있다고 하니. 그것을 완성하는 것이 네 일이겠지. 물론 우리도 전면적으로 후원하겠어. 현 정치는 이대로 유지하는 것뿐인 예산밖에 없지? 나는 아니라고. 카쿠텐소구 아키라코가 목표한 것을 완성해라. 그러기엔 이 탑이 필요할 터다"

각하의 말이 이어지면 서서히 마코토의 머리가 숙여졌다.

"그럼"

판을 목을 비틀었다.

"... 그다지 좋은 설득이 떠오르지 않네에. 여긴 하나 배달 담당에게 맡기자"

"어이? 두되 노동 담당?"

"나 군사들의 견제에 바쁘니까 말이야"

갑자기 밀어붙여 크레이는 방금전 마코토처럼 아슬아슬하게 이를 갈았다.

"아, 에에음. 그러네. 아아, 당신"

"마코토짱. 이름 불러줘. 그녀는 마코토짱이고 카쿠텐소쿠의 여동생이 아니니까"

판이 말한다. 병사들의 일부가 말을 계속하게 해도 되는지 각하에게 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어설프게 판을 죽이면 마코토를 자극하게 된다고 생각한거겠지. 각하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마코토. 네 언니는 한 번 더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했지"

크레이가 어떻게든 가라앉은 목소리를 비틀었다.

"확실히... 다음 이야기 할 때는 마코토가 언니와 세상의 어느 쪽이 중요한 결정을 한 때라고. 생각했는데 아키라코라는 사람은 이런 일이 될 걸 예측한 게 아냐? 천재였지?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파괴 가능한 열쇠를 마코토에게 맡겼다.... 알잖아 그 의미를"

크레이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코토가 반짝반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래... 그렇네요. 언니와 세상 어느 쪽이 중요한 결정을 해야만  하는 때가 오니까 이 열쇠를 맡겨줬다. 이 탑은 언니가  남겨준 거지만... 언니 자신이 아닙니다"

마코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망설일 건 없어"

크레이가 끄덕이고 각하가 이렇게 되면 순간에 걸려고 군사에게 사격 신호를 보내는 한 손을 들었다.

"네... 우편국씨 감사합니다. 언니의 메세지 제대로 가슴에 닿았습니다"

마코토는 밝은 얼굴로 끄덕였다.

"세상이 전쟁에 빠질지 어떨지 알 바 아니네요! 저로선 언니가 물론 중요하니까! 이 탑은 부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연구도 찾지 못했으니까 좀 더 조사해야 합니다. 각하 잘 부탁드립니다"


"하아아아아아아!?"

크레이와 판의 외침 겹쳐졌다.

"아?"

각하와 사관과 군사의 턱이 턱하고 벌어졌다.

"아니 잠깐 기다려!? 어이!?"

크레이가 기대한 결론은 언니보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마코토가 죽은 언니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는 것이었 --- 는데.

"라는 이유로 국가 예산의 9할... 적어도 그 정도는 가져갈게요?"

제대로 마코토가 눈을 빛낸다.

"아...아아. 물론이다"

각하가 사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얼굴로 끄덕인다.

"야호! 사실 전부터 그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코토가 승리 포즈를 취했다.
단 안경을 쥔 채로.

"어이 그건! 빼면 안되는 거지"

각하가 낭패한 목소리로 지적한다.
마코토가 말똥말똥하게 자신의 손안에 있는 안경을 봤다.
삐걱삐걱하고 그녀가 스스로 조립한 자동인형 같은 움직임으로 각하를 봤다. 크레이와 판을 봤다. 그리고 탑 모형을 봤다.

"데헷?"

구구구하고 격한 흔들림이 탑을 덮쳤다.

"어떻게 멈출 수간은 없는 건가!"

각하가 소리 지른다. 군사들이 동요한다. 크레이와 판도 진지한 얼굴이다.
흔들림은 점점 심해져 탑이 붕괴를 시작하는 건가 하고 생각한 순간.
딱 하고 흔들림이 멈췄다.

"마코토! 겨우 불러줬네!"

"에? 언니!?"

마코토가 환희의 목소리를 질렀다. 다른 전원이 정말이지 상황에 따라가질 못한다.

"열쇠를 썼다는 건 탑을 붕괴시켜서라도 막고 싶은 사태였다는 거네. 놀랐어. 마코토가 나에게 자립해준 거네"

"에"

너무 기뻐 뿅뿅 뛰어다니던 마코토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그런 당신이니까 도와줄 가치가 있다는 거네. 후후후 놀랐죠. 내가 육체를 가지고 있을 적의 마지막 연구는 정신을 완전히 인공 두뇌 탑에 남기는 거였어. 인간의 마음은 복잡하니까 이 탑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량과 가능한 계산량은 실제로 쓰는 양의 10배의 여유를 뒀어. 그래도 이 이상의 능력확장을 하지 못할 무렵에는 아슬아슬 했어어. 그러니까 뭐, 답에는  이 이상의 능력 확장은 못 하지만 이 천재인 카쿠텐소쿠 아키라코의 정신이 보유됐으니까 좋다고 해야겠네"

천장에서 퍼지는 소리는 일방적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각하를 시작으로 애국 파인지 반란자인지는 끈질기게 계속 부르고 있지만 그것마저 무시하고 있다.

"뭔가 시끄러운 사람들이 있네. 마코토와 감동의 재회를 방해 하지마"

다음 순간 연안부 포구 모형이 회전해 거기서 빠빠빵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탄환이 발사됐다. 모두 명중해 각하도 사관도 군사도 즉각 쓰러졌다.

"후후 여차할 때 준비한 마비 탄이야. 괜찮아 진짜는 안 쐈으니까"

크레이와 판은 휴우 하고 가슴을 쓰다듬었다.

"자아 이 탑을 붕괴시켜야만 할 정도로 마코토를 몰아넣은 건 누구일까"

:에음... 그게 그.. 저기..."

"여동생이 자기 입으로 설명하긴 어려운 모양이라 우리가 설명합니다"

판이 끼어든다. 우편국은 구두 전언도 받아들이는 거다.

".. 라는 이유입니다"

"저기기기기기 언니 마코토는 말이야 어떻게든 언니가...!"

마코토가 눈을 빙빙 돌리며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 마코토 거기에 정좌. 항상 말했죠? 연구를 위해 희생해도 되는 건 몸뿐이라고"

"여기 직원 모두는 가족이라고 말해줬는걸! 그러니까 괜찮은걸!"

..언니 쪽의 논리관도 조금 문제 있지만, 여동생을 논하긴 하는 모양이다.

"저기 판. 이번 우리는 무슨 역이었던 거야?"

아연실색해 크레이가 중얼거렸다. 이미 설교에 가담할 생각은 없다.

"...글쎄 아마 카쿠덴소쿠 아키라코라는 천재가 되살아나는데 의미가 있었던 게 아냐. 그래도 이 탑의 연산기능을 아키라코씨의 성신 재생에 쓸데없이 썼다... 근본 낭패.... 가 아니라 소비하는데 의미가  있었다 던가"
그래도 카쿠텐소쿠 마코토라는 소녀를 자립시키지 못한 해 크레이와 판은 일에 실패한 걸지도 모른다.
그건 앞으로의 과정을 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적어도 자매에게 다가갈 필요는 없어 보인다.
어디에선가 솟아난 빛나는 안개가 크레이와 판을 감싸기 시작한다.

"돌아갈까"

"돌아가자"

묘하게 달성 감 없이 헛수고와 함께 우푠국은 세상 밖으로 돌아갔다.

 

 

제 2화 제도 연산 탑의 난 끝

 


제 3화  네 눈에는 뭐가 비춰

 

세상 밖에 있는 영원의 오수 숲과
세상의 틈새에 남겨진 폐허를
하얀 안개가 잇는다---.


1.


완전히 썩어버린 빌딩이 어디까지고 늘어서 있다.
창문은 깨지고 벽은 붕괴 되고 기둥은 꺾이고 움직이는 것의 모습은 아무것도 없다.
화사한 색은 없고 칙칙한 갈색과 죽은 자의 잿빛뿐.
거긴 이미 이름을 잃은 땅이자 다른 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이었다.
안개를 빠져나와 그곳에 도착한 직후.
황폐한 마을 풍경을 본 순간 크레이의 전신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무릎 꿇고 등을 웅크려 입을 막았다. 치밀어오르는 토기에 버틴 것은 정말 잠시뿐 그대로 크레이는 토했다.
겹쳐진 눈앞의 광경과 두려운 기억이라던가.
판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평소에도 흰 얼굴이 지금은 더 하얗다,
이윽고 크레이는 위 안에 있던 모든 것을 지면에 모조리 털어내고 질고 긴 한숨을 토했다.
움츠리고 있던 등이 천천히 펴진다.
판이 자신의 위치로 다가오지 않는 채로 말했다.
 
"... 미안해. 슬슬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판의 목소리에도 얼굴에도 표정은 없다.
그것을 들은 크레이가 뭔가를 뿌리치는 듯이 기세 좋게 일어났다.
뒤돌아서 판을 본 때 눈동자에 반짝이는 빛이 머물렀다. 하지만 그 의미를 판이 읽기 전에 크레이의 표정은 평소와 같을 정도로 무뚝뚝하게 돌아왔다.

"어이, 차"

크레이가 손을 뻗기도 전에 컵이 나와 있다. 쓰고 단 향기가 거칠어진 크레이의 신경을 누그러지게 한다.

"한번 입안을 헹구고 뱉어. 더 따라 준 걸 마셔"

그렇게 말한 판의 미소는 평소완 조금 달라서 걱정하는 기색이 섞여 있다.
크레이도 순순히 말한 대로 한다.
그들을 에워싼 것은 멸망한 대도시. 어디까지고 계속되는 멸망한 폐허다.
잿빛 도시에 석양의 피 같은 색으로 불든 하늘이 덮여있다.
하늘을 뚫을 정도의 높은 마천루라고 노래하던 빌딩은 반쯤 부러져서 대지에 쓰러져 있다. 하늘에 찔려 피를 내뿜은 후 비틀려 꺾인 듯이.
작은 빌딩은 벽이 모두 떨어져 철골의 구조를 보이고 포장된 도로는 금이 가 마을은 잿빛 기와 조각에 묻혀있다.
탄 흔적의 벽 부서진 기둥 깨진 동상. 바람에 달리는 먼지뿐.
죽은 듯한 정적이라는 형용사가 있지만, 이 폐허에서는 죽음마저 죽어있는 듯했다. 생물의 죽음은 다음 생명에 이어져 흘러가는 일환이다. 하지만 이 폐허에는 이미 시간마저 흐르지 않는다. 해는 기울어진 채로 언제까지고 가라앉지 않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언젠가 세상이 이어져 골짜기에 삼켜져 사라지는 광경이야"

판의 조용한 어조.
2번째 잔의 차를 마신 크레이는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문득 판에게 돌렸다. 판의 목소리에 들은 적 없는 슬픔을 느껴서다.
하지만 크레이의 눈에 비친 판의 얼굴은 역시 웃고 있다.

"저기 후배군. 슬슬 배고프지 않아? 저녁밥 어쩔래?"

"나중이야. 가게도 안보이고"

위 안은 확실히 비었지만 그렇다고 식사할 기분은 들지 않는다.
크레이는 폐허를 둘러봤다.
다시 토기가 치밀어오르지만 이제 토할 것은 없다.
육체에 이상할 정도의 두렵고 불길한 기억을 이 광경이 자극하는 것이다.
판은 정말 한순간 크레이에게 걱정되는 듯한 시선을 던졌지만 들키지 않게 바로 눈을 피해버렸다.

"그럼, 하지만 그래도... 정말로 여기에 편지를 전할 상대가 있는 거야?"

구태여 가벼운 어조로 판이 말한다. 그리고 그건 평소대로 크레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크레이도 다시 어떻게든 평소 어조로 돌아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수취인이 없을 리가 없잖아. 평범한 편지가 아냐"

"뭐, 그러네. 본국에서 온 통지니까 전할 상대로 보통이..."

판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드물게도 긴박한 빛이 눈동자에 머문다.
크레이도 그것을 놀리며 시간을 쓸데없이 만들지 않았다.
이 파트너가 긴장한 모습을 보인다---- 뭔가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의 위험이 있는가 터무니없는 장난을 생각하고 있는가 둘중 하나다.
후자라고 생각하고 판단하면 어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지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매번 걸리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그 경계가 역효과가 난 날이었다. 물론 쓸데 없었던 편이 좋았지만.
희미한 파괴음이 귀에 들렸다. 그리고 빌딩이 붕괴하는 굉음이. 더욱 공기를 뚫고 큰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뒤에서!"

판이 외치고 돌아보지도 않고 도약했다. 어쨌든 도망친다. 그런 움직임이다.
하지만 소리를 내며 머무는 것이 무엇인지 크레이는 그만 뒤를 확인해 버렸다. 그 타세 도망칠 타이밍이 늦어진다.
덮쳐온 것은 초승달 모양의 검이다. 그것은 필시 어떤 종의 에너지로 초고속으로 크레이와 판을 덮쳐온다.
아니 이미 도착했다.
판이 소리친 순간 즉각 크레이가 점프했으면 빛나는 충격파는 두 사람의 정 중앙을 지나갔겠지.
하지만 아주 조금 늦은 것이 소리로 다가올 정도의 속도로 밀어붙인 충격파를 피하기에는 치명적인 타임 미스였다.
아까 초승달에 이어서 수평 초승달. 인간에게 명중하면 몸통이 절단되는 위력을 갖춘 빛나는 충격파가 머문다. 처음 일격에 비틀거리는 크레이는 그것에서 도망치지 못한다. 도우려고 해도 판은 반대편으로 뛰어 버렸다.

"크레이!"

판에게 가능한 것은 그저 부르짖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부름이 얼얼하게 크레이의 의식을 붙잡았다.
크레이는 거의 무의식인 채로 크게 몸을 뒤로 젖혔다. 그렇게 피한 가슴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초승달 형태의 충격파가 지나갔다,
고양이 귀와 닮은 후드가 찢어져 크레이의 몸은 그대로 지면으로 쓰러졌다.
마침 통로 한가운데는 처음 날아온 수직 충격파로 갈라져 있다.
더욱 뒤따라 날아온 수평 충격파가 어떤 영향을 준거겠지. 중앙 찢어진 곳에서 도로는 무너져 대지 아래로 빠져들었다.
이 근처엔 지하도가 있는 모양이다. 붕괴가 시작되면 이미 열화 된 대지는 한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크레이의 몸도 그 지하로 끌려들어 간다.
판은 동료의 곁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자신도 함께 나락에 삼켜질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그때다. 떨어지는 것보단 났겠지.
하지만 그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 더 일격. 이번엔 지면에 45도 정도 기운 충격파가 날아온 것이다.
딱 크레이와 판의 사이를 자르는 듯한 각도로---.
찰나--- 판은 깨달았다.
충격파를 날린 게 누군지를. 그가 이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해어진 것도 이미 3년 이상이다. 자신을 잇는 자로서 단련시켜준 남자의 지금 이름을 판은 목이 찢어지도록 부르짖었다.

"재애애애애애애액!!!!"

그 외침에 응한 건 4개, 그리고 5개 이후로 계속 이어지는 충격파였다. 처음 3개에 비해선 무척 작다. 하지만 이번엔 틈을 두지 않고 계속 날아온다.
빌딩이 차례차례로 쓰러져 마천루의 벽돌이 판에게 덮쳐왔다. 몸을 피하는 것이라면 판은 크게 자신 있다.
평소엔 피한 후에 목표 상대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이 충격파는 너무 격해 근원으로 다가가기에는 그토록 대담한 판에게도 불가능하다.
파괴된 건물이 찢어진 도로로 기울어진다. 판은 어찌할 도리도 없이 그저 거기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벽돌이 도로 아래 허공을 채운 때, 태양도 지평선 너머로 떨어졌다.


2.


눈을 뜨면 진흙과 먼지로 더러워진 소녀가 크레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크레이는 눈이 부셔서 눈을 가늘게 떴다.
10대 정도일까. 미소녀지만 눈부실 정도는 아니다. 그저 그녀의 등 뒤에 대낮의 태양이 빛나고 있을 뿐이다.

"눈뜬 건가. 놀랐어"

소녀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막자라 게 둔 희미한 갈색 머리를 뒷목 근처에서 한번 밧줄로 난폭하게 묶었다. 크레이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짙은 갈색. 약간 광대뼈가 눈에 띄지만, 얼굴은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얼굴을 닦으면 피부도 희다. 입고 있는 건 구 멍난 자루다.

"너는 누구야"

크레이가 물었다. 입안이 말라 혀가 달라붙어 있다. 잘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 말이야? 나는 키보우다"

소녀는 희망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말한 모양이다.
많은 곳으로 나가야만 하는 크레이는 많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말을 아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말하는 말의 의미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 크레이는 무의식중에 상대가 쓰는 말을 쓴다. 모든 잇는자의 기본적인 능력이다.
그러니까 지금 소녀가 자신의 이름이라는 의미로 키보우라고 말한 것과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의미하는 내용에 대해 지식이 없다는 것 두 가지가 이해되었다.
그저 지금 크레이는 자신이 어째서 그것이 이해되었는진 모른다. 아니, 아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넌, 누군데?"

이번엔 소녀가 물었다.

"나는 크레이"

이름을 말하고 거기서 입을 닫았다.

"나는... 누구야?"

크레이는 아까부터 이마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손을 뻗어 만져 본다. 겨우 아픔을 의식했다. 머리 외측에도 그리고 내측에도.
손을 대보면 거의 말라 검게 굳은 피가 묻어난다.

"나는 누구야, 라는 건 무슨 의미?"

키보우는 변함없이 크레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 나는 기억을 잃는 모양이다"

크레이는 누운 채로 말했다.

"거길 비켜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하는데"

"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일어날려면 그래라"

크레이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관자놀이 근처가 아프다. 하지만 아픔은 바로 가라앉았다. 근거는 떠오르지 않지만 다소의 상처 정도는 자신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봤다. 하늘이 보이니까 당연하지만 야외다. 필 시 이전엔 공원이었겠지. 수백 미터 끝 서남 북에 고층 빌딩의 폐허가 늘어서 있지만, 여기까진 평탄한 들판이 늘어서 있다.
바로 옆에 고만고만한 호수가 있다. 흐르는 건 탁한 잿빛 물이다.

"저기 걸려있었다"

키보우가 호숫가 바로 옆이 꽤 침몰 돼 무너진 동상을 손가락질한다. 청동 모자상이었다.

"여긴 여기저기에서 이래저래 흘러온다. 그러니까 가끔 주워오는 거다"

키보우는 상류에서 하류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상류는 한 층 더 큰 빌딩이 이어져 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썩은 폐허밖에 없지만.
크레이는 폐허를 가만히 바라봤다.
관자놀이의 아픔이 머리 전체로 퍼져 가슴에 토기가 치밀어 오른다.

"니가 저기서 흘러왔다. 그것도 잊었나"

키보우의 말에 크레이는 조금 기분이 진정되는 걸 느꼈다.

"무너진 건물. 부서진 세상... 이 풍경은 기억해"

"그런 가"

키보우는 끄덕였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건 ....내..."

크레이가 중얼거린 때 키보우가 크레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디서 왔는가 어떻 좋다. 네가 어디로 갈까다"

키보우는 시원스레 말했다.

"흘러온 거. 도움 안되면 다시 흘린다. 흘러 갈꺼가? 머물 거가?"

소녀는 표정없는 눈동자로 크레이를 바라본다.

"즉 네가 도움이 되란 거다. 나를 하루 길게 살게 할 수 있나"

반사적으로 크레이는 끄덕였다.

"그런가"

키보우도 끄덕였다. 어딘가, 멍한 분위기였다. 크레이를 버리지 않고 주운 것에 안심한 게 아닐까 하고 그는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까지 키보우는 누워있는 크레이의 옆에 무릎 꿇고 있었지만, 이 대화 후에 일어나 무릎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녀가 변변찮은 수제 창을 손에 쥐었다.
키보우가 빙글하고 등을 돌려 걷는다. 크레이는 일어서려고 했다. 조금 휘청거렸지만, 그것뿐이다. 자신이 꽤 건장한 체질이라는 걸 확인한다.

"자라 했는데 일어난다 했다. 이제 곧 날이 진다. 먹을 거 충분히 없다. 먹을 거 알아서 어떻게든 해. 못하면 내 목숨이 줄어든다. 그럼 버린다"

"알았어"

크레이가 짧게 대답하면 소녀는 어딘가 불안한 듯한 눈을 향했다.
언듯보기엔 소녀는 꽤 무표정이지만 크레이도 그 점에 대해선 상당하다.
크레이는 걸으면서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폐허 빌딩 마을에 한 번 더 시선을 던졌다. 그 일각에 뭔가 어렴풋한 빛이 보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크레이는 방향을 바꿔 키보우를 따라갔다.
빛나는 안개는 솟아나는 데 필요한 시간의 흐름을 역회전시키는 듯이 점점 안으로 소실됐다.

"야아 후배군. 잘 있었어"

척 왼손을 얼굴 옆으로 든 건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숏트 보브컷으로 자른 여성이다. 꽤 장신으로 스마트한 프로포션이다. 허리가 잘록해서 힙 라인이 강조된다. 미인이라 말하기에는 눈도 입도 너무 클지 모른다. 어딜 봐도 샤프한 분위기의 여성이다.

"잘 있었는지 어떤지는 보면 알겠죠"

큰 벽돌을 등에 지고 다리를 내팽개치고 판은 떨떠름한 얼굴이다.
애용하는 우편국 하얀 제복은 흙과 피로 더러워져 있다. 오른팔은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는다.
여성은 판의 그것에 닮은 제복을 입고 있다. 색은 옅은 파랑이 기본으로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다. 허벅지를 판에게 가까이 대면서 여성은 싱글벙글하게 웃는다. 판의 평소 미소와 닮아있다.

"왜 그래 왜 그래? 평소 미소가 흐트러져 있다고 후배군"

만에 하나 판은 점점 기분 나쁜 듯한 표정이 됐다. 크레이의 무뚝뚝한 표정이 감염된 얼굴이다.

"후배군은 뭔가요. 너는 그렇게 부르지 않겠죠"

붉은 머리 미인은 판의 습관을 빼앗는 듯이 싱글벙글한 미소를 띤다.

"하지만 넌 너 대신 조를 짠 크레이군을 그렇게 부르잖아. 그럼 서열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을 거라는 거야"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와아아아아아"

붉은 머리의 미녀가 축 늘어진 판의 오른팔을 갑자기 붙잡았다.

"흠. 이건 탈구한 것 뿐이네. 이 정도 스스로 끼워 넣을 정도는 돼"

"나는 두뇌 노동 담당이에요. 프라카씨 정도로 대충이 아닙니다"

판이 눈물로 입을 삐죽인다. 하지만 오른팔의 움직임은 회복했다.

"변함없이 실례네. 너는. 이 육체의 어디가 대충이라는 걸까"

블랑카라고 불린 붉은 머리 여성은 스르륵 뻗은 팔 다리를 과시했다.

"힙 라인과 바스트 사이즈가 ... 낮아아아아아아아아아!"
 
블랑카라고 불린 미녀는 어딘가에서 나온 의료도구로 판의 상처를 치료했지만 손놀림은 난폭하고 용서 없어 고문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치료가 일단락된 때 판은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상황으로 뻐끔 하고 말했다.

"... 죄송했습니다"

"무슨 소릴까나. 나는 내 조신한 가슴도 안산형 허리도 큰 키도 자랑이라고 생각해 콤플렉스 같은 거 없어"

라고 말하고 블랑카는 탁 판의 턱을 붙잡고 입을 벌려 어디에선가 나온 약을 입에 던져넣는다.

"자 아픔을 멈추는 겸 화농 멈추는 거. 감사는? 신경 써줬으니까 인사. 알지?"

"... 감사합니다"

보기에도 마지못해 하는 모습으로 판이 일어서 머리를 숙였다. 그저 그 움직임은 시원해 아픔은 사라진 모양이다. 블랑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건 응급 처치가 잘 됐는지 어떤지를 확인하려고 한 거겠지. 판이 머리를 숙이고 시선이 빗나간 사이 부드러운 비소를 띤다.
물론 판이 얼굴을 든 때는 장난치는 듯한 싱글벙글한 미소였지만.

"본국으로 이동해도 변함 없네요. 프라카씨"

"야아 오랜만에 불러주네, 동생이여"

"이렇게 안 부르면 계속 후배군으로 부를 거죠"

판은 입을 へ모양으로 구부리고 있다.

"후배군이라고 불리는 게 싫은 건 그때마다 크레이브군의 안부가 걱정돼 마음이 흐트러져 버려서일까나?"

"무슨 말입니까. 그 녀석은 건강만이 장점인 육체노동 담당이에요. 조금 벽돌에 부딪친 정도로 어떻게 되지도 않습니다"

판은 기분 나쁜 얼굴로 조금 어깨를 으쓱했다.

"슬슬 내 버릇을 흉내 내는걸 그만둬 주시겠습니까. 프라카 더 카피캣"

"하지만 지금은 흉내 낼 게 너밖에 없잖아"

블랑카는 완전히 똑같은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원한다면 어쩔 수 없네"

그리고 그는 분위기를 싹 바꿨다. 조금 익살맞고 짜증 나는 언니에서 걱정과 슬픔을 품은 성인 여성으로.

"그래서 뭘 우선할 거야 전 파트너. 네 현 파트너의 안부 확인인가. 본국에서 위탁한 편지 배달인가. 그게 아니면... 그 녀석을 죽이는 것인가"

"잭을... 죽일 수 있을 까요"

판이 중얼거리고 이제까지 크레이는 보여준 적 없는 어두운 얼굴이 됐다.


3.

썩어서 쓰러진 나무들이 겹쳐진 구획 끝에 크레이와 키보우는 그저 서 있다.
해는 꽤 기울어서 바람은 굉장히 차다.
크레이와 키보우의 조잡한 옷은 바람에 날아갈 듯하다.

"너 도움 되네"

키보우는 입가를 이상한 모양으로 실룩대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다행이다"

크레이는 지나치게 성실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는 말라빠진 쥐를 3마리 오른손에 매달고 있다. 맨손으로 뛰어서 잡았다. 낮은 자세로 미끄러지는 듯이 고속 이동하는 건 크레이의 특기다. 자신의 혈통 같은 기억을 잃어도 몸으로 기억하는 건 잊지 않는다.

"이 녀석들의 덕분에 내도 또 하루 살아남았다. 하지만 나만 있었으면 붙잡았을지 어쩔지 모른다"

그렇게 말하고 키보우는 시선을 크레이의 얼굴로 이동했다. 큰 눈이 가만히 크레이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는 더욱 큰 입가를 휘었다.
순간 당황한 후에 크레이는 그녀의 표정에 대한 의미를 알아차렸다.

".. 혹시 웃으려는 건가"

"하려는, 게 아이다. 웃고 있다. 착한 일 하면 웃어서 칭찬하는 거다. 그런 거지"

키보우는 빨리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입을 휘어 이상한 얼굴이 돼었다.

".... 그런 가. 고마워"

마음은 솔직히 받아두기로 했다.
거기에 웃은 것을 가르쳐 주는 건 크레이도 잘 못한다.

"이제 돌아가자. 먹잇감 놓침 안돼. 두 명한테 3마리는 많지만 ... 널 끌어올리는 데 힘도 썼고 너도 상처 낫는데 힘이 든다"

키보우의 팔 다리에 쓸데없는 지방은 일제 존재하지 않는다.

"알았어. 하지만 내 상처라면 대단할 건 없어"

크레이는 이미 상처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를 떠올리려 하면 두통이 오지만 공복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키보우가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그 등에 크레이는 물었다.

"집은 있어?"

크레이는 주변을 경계하며 간다. 경계는 본능적인 동작이다.

"없을 리가. 바로 저거다"

키보우는 공원을 빠져나가 폐허 하나에 들어간다.
그쯤엔 이미 해는 져 있다.
이전 집합 주택이었던 건물이 키보우의 집이었다. 벽 한 면이 거의 무너져 있지만, 그 이상 무너질 것 같진 않다. 몇 개인가의 방에 모닥불이 보인다.

"그 밖에도 사람이 있는 건가"

"없을 리가"

그렇게 키보우가 대답한 때 어둠 속에서 인영이 나타났다. 키보우가 멈춰 선다. 크레이는 즉각 자세를 취한다. 인영도 멈춰서 소곤소곤 말을 건다.

"어이 키보우. 그놈은 뭐야?"

남자였다. 머리도 수염도 막자란데다 심하게 말라 나이도 잘 모르겠다.
입으론 검문하고 있지만, 적대적인 행동을 취할 모습은 아니다.

"강에서 주웠다"

키보우가 대답하면 흐음 하고 신음하곤 빨리 등을 돌렸다. 남자도 뭔가 작은 동물을 허리에 달고 있다. 전혀 경계하지 않고 비틀비틀 사라진다.
키보우도 그것을 배웅하지도 않고 걸어갔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고 다리를 질질끄는 듯이 걷는다. 크레이는 움츠린 키보우의 등에 대고 물었다.

"나 같은 건 드물지 않은 건가?"

배제해라 환영해라, 조금 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이런 폐허에 살고 있어 사람은 아주 조금밖에 없을 텐데.
키보우의 대답은 조금 예상 밖이었다.

"가끔 있어. 모두 바로 죽어. 너도 어차피 바로 죽을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런... 건가"

키보우의 어조는 너무 산뜻해 인간의 생사라는 무게 있는 이야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크레이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집합주택 건물에 보이는 모닥불 수를 세보면 7개 였다. 아니 8개다. 또 하나 켜졌다. 방금 전 남자일까.
키보우가 사는 건 1층 각방이었다.
방이라고 해도 그 안의 두 벽면이 거의 무너져 있다.

"너무 허술하지 않아?"

크레이가 말해도 키보우는 머리를 갸웃할 뿐이다. 뭘 묻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는 불을 지핀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물을 퍼와 줘"

키보우는 손잡이가 부서진 나무 바구니를 내밀었다.
반대 손으로 바깥 일각을 가리킨다.
크레이의 눈은 다소 어두워도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 우물 같은 것을 찾아냈다. 펌프가 아닌 두레박으로 퍼올리는 모양이다.
이름 말고는 혈통을 잊어 많은 지식이 나오진 않지만, 생활에 필요한 최저한의 지식은 기억하고 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물 푸기를 끝냈다.
돌아가 보면 불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키보우는 쥐를 해체하고 있다.
솜씨 좋게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굽는다. 잠시 후 나는 냄새가 향기라고는 말하기 힘든 식욕을 돋우는 것도 아니었다.
크레이가 길어온 바구니 안의 물을 키보우는 솥으로 옮겼다. 솥이라고 해도 대용품이다. 원랜 뭔가 커다란 기계의 일부였겠지 숨속 볼. 까끌까끌한 구명을 열어 갈고리에 걸기 위한 끝이 달려있다.

"이제 먹어도 좋아"

키보우가 지시한 건 냄새가 그저 숯이 타고 있어서 였다.

"이걸 써도 좋아"

키보우는 하얀 덩어리를 넘겨줬다. 돌소금이다. 뿌려도 쓴맛과 짠맛이 마음을 써는 듯한 하모니를 연주할 뿐이었다. 끓인 국으로 흘려버리려고 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기름 냄새가나 마시기 힘들었다.
하지만 키보우는 태연하다. 맛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익숙해진 느낌이다.

"내일은 오랜만에 통조림을 찾으러 가자. 아직 남아 있으면 좋겠네"

다 먹은 후에 키보우가 말했다. 입가를 일그러트리고 있다. 웃으려고 하는 거다.
신경 써주고 있는 건 안다. 하지만 뭐라고 대답하면 좋은 거지.

"미안"

그렇게만 말했다.

"사과할 건 아무것도 없다"

키보우는 어리둥절해 한다. 그리고 너덜너덜한 모포를 꺼냈다.

"벌써 자는 건가?"

"안 자고 뭘 하란 거야?"

이 건물에는 달리 사는 사람이 있는데 모여서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사냥감의 정보를 교환한다 던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된다. 이런 황량한 곳에서 같은 건물에 살면서 그들은 대화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이야기하거나 불을 둘러싸고 노래하거나 그런 교류도 없이 같은 건물 안에서 뿔뿔이 시간을 허무하게 보낼 뿐.

"외롭지 않은 건가"

그렇게 묻고 크레이는 그것이 자신의 심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키보우는 무표정하게 크레이를 바라본다. 억지로 참는 것도 대답을 찾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 자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다, 인가?"

크레이가 말하면 키보우는 조금 하품했다.

"어두우면 자는 기다"

키보우는 모포를 한 장 지면에 폈다. 그리고 또 한 장을 덮고 누웠다.
누운 채로 크레이를 보고 말똥말똥하게 눈을 떴다.
천처히 일어나 눈썹을 찡그린다.

"니 몫이 없네"

"괜찮아"

크레이는 말했다. 허세가 아니다.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안된다. 밤이 깊어지면 춥다"

키보우는 조금 생각했다. 몸을 조금 치우고 크레이에게 손짓한다"

"같이 뒤집어써. 따뜻하니까"

크레이는 몇 번인가 눈을 깜빡이고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아.... 불도 있고"

"붙인 채론 장작이 아까워. 이제 나무는 자라지 않으니까, 절약이다"

키보우 자신은 아무 상관 없는 듯이 말했지만, 그 말은 크레이의 무의식을 자극했다.

"어째서? 왜 나무가 자라지 않아?"

그리고 크레이는 이어서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사라진 기억이 무의식 밑에서 충고한 것이다.

"어째서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거야?"

묻는 크레이를 키보우는 가만히 바라본다.

"나는... 그, 전부 잊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크레이를 키보우는 다시 손짓했다.

"아니, 하지만"

"내가 춥다"

까지 말해 마지 못해 키보우의 옆에 몸을 뉘었다. 키보우는 아무 생각 없이 크레이에게 달라붙어 모포를 덮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따뜻하게 할 뿐이라는 건 바로 안다. 감정 없는 동작이다.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내가 태어난 그 날 일이라고 들었다"

갑자기 담담하게 말해 크레이가 어리둥절해한다.
옆으로 누우면 위는 딱딱한 콘크리트가 드러난 천장이지만 조금 시선을 피하면 별 하늘이 보인다. 아름답다.

"세상을 멸망 시킨 건 병이야"

남 이야기하는 듯이 키보우가 이야길 계속한다. 태어났을 적의 일이다. 기억할 리가 없으니까 정말로 남일 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세상을 청결하게 하려고 했어. 세균을 먹는 세균을 만들어서 더러운 건 전부 사라지게 하려고 했어. 그랬더니 뭘 잘못한 건지 그 세균은 나쁜 세균과 함께 고양이 보다 큰 생물을 전부 죽였어"

그래서 나무도 썩었다, 라는건가. 하지만 여기에 남아 있는 생물이 있다.

"...인간은? 아직 있잖아"

"정말 조금. 세균을 죽이는 약이 만들어졌어. 그리고 아기는 조금만 커도 새로운 세균에 죽지 않았어. 살아남은 어른만으론 돌봐 줄 수 없어서 모르는 곳에서 잔뜩 죽었을 거야"

처참한 역사지만 키보우로선 들었을 뿐인 먼 어딘가 누군가의 곁에서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그랬던 건가"

크레이의 중얼거림에 키보우의 하품이 겹쳐졌다.

"떠오른 건가. 떠올랐으면 자라"

말끝이 애매해졌다. 자라가 즈으라라고 들릴 정도로.

"생각 났어... 내 세상은 다르게 멸망했어... 내 가족 탓에"

크레이의 목소리는 중얼거림이라기엔 컸지만 키보우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숨소리를 내고 있어서다.
타인과 달라붙어 자는 건 혹시 처음일지도 모르는데 키보우는 완전히 안심한 모양이다.
잠든 채로 끌어안는 그녀의 몸은 너무 차갑다.
어떻게든 따듯하게 해주고 싶다고 크레이는 생각했지만 어쩌면 가능한지는 전혀 몰랐다.

 

4.


다음 날 아침이 찾아왔다.
태양이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크레이는 눈을 떴다. 키보우도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아침 인사는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잘자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던 기분이 든다. 여기선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습관이 없는 것이다.
라고 거기까지 생각한 크레이는 그럼 자신은 어째서 좋은 아침이라는 말을 아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너 불 피울 수 있어"

키보우는 모포를 스르륵 빠져나와 크레이에게 물었다.

"... 몰라. 피우는 법은 생각나지 않아"

"그럼, 됐어. 당분간 기다려"

키보우가 불을 피우는 걸 크레이는 멍하니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불씨를 만들어 불을 지필 나무로 가져가 불을 피울 뿐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그 정도는 괜찮다. 키보우는 불을 크레이에게 맡기고 주거를 나갔다. 손에는 짧은 종을 가지고 있다. 지면을 파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깜빡깜빡하는 불이지만 겨우 물을 끓일 정도의 크기가 됐다. 불로 손을 데우고 있으면 아침의 냉기에 딱딱해진 몸이 풀리는 듯하다.
겨우 날이 개 아까부터 태양광을 받고 있지만, 전혀 몸이 따듯해지지 않는다. 여기선 태양마저 힘이 부족한 기분이 든다.

"아침밥이야. 큰 게 잡혔어"

키보우가 돌아왔다. 뭔가의 유충을 2마리 잡고 있다.
순간 크레이의 목이 켁 하고 묘한 소리를 냈다. 자신은 이것을 먹은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크레이가 생각했다. 하지만 키보우에게 불평할 마음은 없다.

"...미안하네. 너뿐만이라면 충분히 먹었을 텐데"

크레이가 그렇게 말하면 키보우는 무표정하게 크레이를 바라봤다.

"한 명뿐이라면 하나만 캐올 뿐이야"

벌레를 불로 굽기 시작한다. 크레이는 어찌 응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그런가"

라는 말 만을 했다.

"너무 많이 캐진 않아. 언젠간 벌레도 사라져. 필요한 만큼만이다"

"아아, 그런가. 하지만 한정된 것을 나 같은 게 받아도 괜찮은 건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구운 벌레를 키보우는 크레이의 입가에 들이댄다.
혐오감은 있지만 견디면서 크레이는 그것을 배어 문다 의외로 맛있다.
끄덕이는 크레이를 보고 키보우도 또 한 마리의 벌레를 입에 가져간다. 그것을 먹고 그녀는 다시 크레이를 본다.
계속 대부분 표정이 움직이지 않는 그녀지만 지금 그 얼굴에 뭔가가 떠올라 있다. 표정이 되기 전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은 것이다.

"이 벌레는 맛있다고"

"...아아"

키보우가 말하자 크레이가 끄덕였다.

"어제 쥐도 맛있었어. 그리고 퍼온 물도. 평소보다 맛있어. 너는 어느 것이고 처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르겠지만.... 겠지만"

키보우는 좀 더 다른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닌가 하고 크레이는 생각했다. 맛있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평소보다 라는 게 중요하다. 그녀는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알고 싶다 라는 마음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 너는 평소보다 맛있는 게 그게 이상한 건가?"

그렇게 질문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상해?"

말을 반복하고 키보우는 뭔가 그 울림을 혀로 맛보는 듯이 입을 우물우물 움직였다.

"그런가. 이 마음은 이상하다는 건가"

"그렇지도 몰라. 네 마음이니까 나는 몰라. 이상하다는 건 이우를 모르겠단 거다. 이유를 알고 싶다면... 네 마음은 호기심이다"

"호기....심?"

처음으로 들은 단어겠지. 그녀의 혀는 움직이기 힘들어 보였다.

"알고 싶어. 그러네. 맛있었어, 어째선지 알고 싶은데. 알겠어?"

"모르겠지"

크레이는 씁쓰레한 미소를 띤다.

"네 마음이나 느낌은 너밖에 몰라....."

말하는 도중에 키보우의 얼굴을 살짝 봤지만, 아직 새로운 감정에 빠진 것을 크레이는 깨달았다. 그것은 실망이라는 것이다.

"... 몰라. 하지만 알아내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좋아?"

"이야기한다 말을 쓰는 거야. 입을 다물고 있으면 정말로 계속 모르겠지만 전하려고 노력하면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몰라"

"기... 적?"

"그래.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마음을 이해하는 그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키보우는 크레이의 얼굴을 말똥말똥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네 말 모르겠는 것뿐이야"

그리고 일어서 근처 벽에 세워둔 창에 손을 댔다.

"모르는 걸 안다... 마음이 근질근질한 기분이 들어. 이게 호기심일까?"

크레이도 일어서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아마 재미있어, 다"

"재미 있어...? 재미 있어, 인 건가..."

목을 갸웃하면서 키보우가 걷는다.
크레이는 서둘러 뒤를 따른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키보우에게 뭔가 이야기하려고 했다. 말을 하도록 어드바이스 한 이상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뭘 말하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다. 머리가 욱신욱신 아프다. 이런 때는 누군가에게 맡겨버리면 좋았을 텐데 하고 사라진 기억이 속삭인다.

"왜 그래? 아픈 얼굴이야"

키보우가 걱정해 버렸다.

"아니 괜찮아. 아무것도 아냐"

그렇게 대답하면서 좀 더 걱정시켜서 표정을 흘러넘치게 하면 좋은 게 아닌가 하고 머릿속에서 속삭였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듯하다. 기억 구석에 금색의 머리가 떠올라 크레이는 얼굴을 찡그린다.

"역시 아파 보이는 얼굴이야. 쉰다"

키보우는 벽돌에 앉았다. 크레이에게 손짓해 탁 하고 자신의 옆을 쳤다.

"옆에 있고 싶으면 써도 좋아"

"아아, 아니. 괜찮아, 정말로. 통조림을 가지러 가고 싶은 거지? 빨리 가자"

"시간이라면 걸려도 좋아"

크레이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크레이를 키보우는 가만히 바라본다.

"엄마가 살아있었을 때 아픈 땐 이렇게 해줬어. 그러면 나았어. 잠깐 아파도 조심. 죽을지도 몰라. 엄마처럼"

소녀의 눈동자에 불안한 그림자가 스쳤다. 여기엔 의약품이 없다. 상처나 병이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무척 큰 것이다.
키보우는 다시 손짓해 팡팡하고 옆을 쳤다. 물러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크레이는 말 없이 포기하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키보우는 말없이 크레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팡 하고 무릎을 두드렸다.
마지못해 그녀가 말하는 대로 무릎베개를 한다.조금 후 키보우가 물었다.

".. 아픈 건 괜찮아 졌어"

"아아, 이제 괜찮아"

크레이는 간결하게 대답하고 일어났다.

"그런가... 이건 다리 쪽에는 듣지 않는 건가"

키보우가 조금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아차 하고 크레이는 그녀의 다리를 봤다. 무릎엔 아무것도 없다. 발목을 본다. 겉보기엔 확실히 모르겠지만 조금 부은 기분이 든다.
크레이는 살짝 한숨을 쉬고 물었다.

"가벼운 염좌네. 언제 부터야"

"...어제야. 너를 끌어올릴 때"

"미안. 그런 건 빨리 말해줘"

"말하면 어떻게든 된건가"

"됐어. 잠깐 움직이지 마"

크레이는 원래 찢어져 있던 자신의 옷을 찢어 응급 붕대를 만들어 그걸로 발목을 고정했다. 필요하면 이런 지식은 떠오르는 모양이다.

"이런, 어째서. 아픔이 조금 줄었어. 이건 이상해. 이건 재밌어"

일어선 키보우는 도도도 다리를 디디며 소리를 낸다.

"이봐 무리하지 마. 얌전히 있어. 잠시 영양 있는 걸 먹어서..."

라고 거기서 딱 말이 멈췄다. 식재를 얻는 방법은 지금처럼 잃어버린 기억이 바로 주지 않는다.

"크레이는 엄마 같은 소릴 해"

".. 뭐아 어쨌든 나가자"

먼저 일어서 걷기엔 크레이는 장소를 모른다. 키보우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뭔가 지루 하지만  대화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 좋은 날씨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물이 부족해져"

나직하게 묻고 뻐금 하고 대답해 대화는 끊겨버린다.
키보우가 다리를 멈췄다.

"왜 그래 심하게 아파졌어?"

"아니. 여기"

키보우가 무너진 빌딩을 가리켰다. 그리고 천천히 빌딩을 위에서 아래로 보고.

"부서져 있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전에는 달랐던 건가"

"달랐어"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가리키고.

"저기로 들어갔어"

라고 키보우가 말했다. 그 막혀버린 입구 근처에 멍하니 앉아있는 남자가 있다. 키보우와 같은 누더기를 걸치고 머리도 수염도 막 자라 있다. 그 풍모 덕에 나이는 확실하진 않지만, 아직 그렇게 늙진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앉아있는 자세와 생기 없는 모습은 절망한 노인의 것이다.

"어이, 저건 누구야?"

"브라더다"

대답했지만 키보우는 특히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자라면 원인을 밝혀내던가 현재를 타개한다는 발상이 나오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브라더라는 남자도 그런거 겠지. 식재로 이어지는 길이 막혔다면 그대로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파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 체력이 없는 건 아니다. 기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크레이는 다르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에 방해된다고 그대로 틀어박힐 생각은 없다.

"어이 당신 여기서 무슨 일 있었어"

크레이는 무너진 빌딩에 시선을 던졌다. 마치 거대한 날붙이로 비스듬하게 잘린듯하다. 윗부분이 떨어져 무너진 듯이 보인다. 그 절단면은 아직 새롭다.
크레이는 브라더라는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남자는 반응 하지 않는다. 텅 빈 인형처럼 흔들릴 뿐이다. 모습을 보고 있던 키보우가 뻐끔 하고 말했다.

".... 그것을 알고 싶은 것도 호기심인가? 너무 재밌지 않은 기분이 드는데"

"재밌다는 것관 달라. 이유를 파헤치지 않으면 또 같은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파해지다니 어쩔 수 없잖아"

반응한 건 멱살 잡힌 남자 브라더였다.

"또 일어나면 먹을게 사라질 뿐이야. 어차피 우린 느릿하게 죽어가"

브라더라는 남자의 눈에는 체념과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다.
크레이는 놀라 남자를 잡고 있던 손을 뗐다.
돌아본다. 거기에 키보우가 있다.
그러고 보니 만났을 때 부터 이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
소녀의 눈을 바라본다.
거긴 공허했다.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소녀가 텅 빈 것은 이 남자와는 지금 크레이의 발밑에서 무기력하게 움츠리고 있단 남자와는 다르다.
남자는 절망의 벽에서 전부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키보우의 텅 빔은 이제부터 그곳을 채울 뭔가를 기다리는 텅 빔이다. 굶주린 눈이다.

"...크레이의 눈은 ... 이상하네. 뭘까. 가슴이 웅성거리는 것 같아. 보고 있으면 뭔가를... 생각해버릴 것 같아. 이것도 .. 호기심 일까?"

키보우도 크레이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그에게서 뭔가를 끌어내려고 한다.
크레이의 뇌리에서 먼 기억이 떠올랐다.
황량한 풍경. 그것은 그들을 지금 에워싼 현실과 닮았지만 다른 곳도 있다. 마음의 뚜껑을 열고 크레이의 뇌리를 기어오르는 세상은 비슷하게 황량했지만 멸망은 이 세상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종횡무진하는 괴물 같은 증기기관차에 사람들이 붙잡혀 끌려가 그리고 나오지 않는다. 그 증기 기관차의 연료는 인간을 가공한 큐브다.
하지만 그것이 달리는 지옥으로 향하는 레일은 선의로 만들어졌다.
자신의 이상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정상으로 돌린다는 의도로 개발한 인간수정장치. 이상함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정당하다고 느끼게 되기까지 수정하는 자동자율기계. 하지만 정해진 정상의 범주에 완벽에 만족하는 인간 따위 어디에도 없었다. 수정장치는 이윽고 세상 모든 것을 수정대상으로서 서로 들이마셔 검은 증기를 흩뿌리며 세상을 가루로 만들었다.
정말 희미한 파편과 함께 크레이는 빛나는 안개로 인도 돼 누덕누덕 이어진 세상의 안과 밖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정하게 되었다. 세상의 안에 있고 싶으면 가혹한 명망의 기억을 버리고 살아갈 수 있다. 거기에 가지고 있는 것은 새로운 일상이다. 시간은 흘러 그것이 얼마의 파편을 하나의 세상으로 모은다. 새로이 태어난 지구에서 나이를 먹어 땅으로 돌아가 그리고 자손은 새로운 지구에서 미래를 자아가겠지.
하지만 이 누덕누덕 기워 만든 세상은 아직 약하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세상 밖에 남은 자들의 역할이다. 통상의 시간 흐름에서 떨어져 각자의 적성에 맞는 역할을 다한다. 세상의 밖에서 육체는 나이를 먹지 않고 세상과는 임무를 위해 일하는 순간밖에 스칠 수 없다. 빛나는 안개의 의사에 응해 세상이 이어지게 돕는다.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현명하게 살아간다는 사명을 다 할지 시간의 흐름을 빠져나와 사람들을 돕는 방패가 될 것인가.
크레이는 망설이지 않고 세상의 밖으로 나오는 것을 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수정장치 개발 맴버의 한 명이었다. 제일 먼저 연구 대상이 되어 결과가 어찌 됐는진 크레이는 모른다.
아버지가 멸망의 원인을 만들었다고 해서 크레이가 원한 건 속죄가 아니다.
아버지는 원한 일을 한 것뿐이다. 물론 죄의식이 전무한 건 아니다.
설령 멸망한 기억 없이 박해받을 일이 없다고 해도 살아남은 자들과 사는 것은 어색했다. 하지만 밖에 있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죄의식에서 도피한 게 아니다.
그 이유를 지금 크레이는 떠올린다.
소녀와 눈동자를 마주한 것으로.
그녀의 안에서 그 이유를 찾아냈으니까.

『...... 내가 하려고 생각한 건.....』

하지만 그때 모든 것을 자르는 충격파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크레이를 덮쳤다.

 

5.


"... 떠올랐어!"

그렇게 말하고 크레이는 키보우와 그리고 브라더를 안고 뛰었다.
크레이의 바로 옆을 수직 충격파가 지나간다. 지면을 가르는 충격파가 흙먼지를 일으킨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멋대로 도망가줘"

크레이는 브라더를 내팽개쳤다. 아무리 무기력해도 자신의 온몸이 찢어질지도 모르리 그도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 키보우는 다시 등에 업는다. 그렇다고 해도 가볍다. 오른팔 하나를 등에 올린 겅도다.

"...크레이?"

"너는 나에게 달라붙어 있어"

어리둥절한 키보우에게 말하고 크레이는 뛰었다. 충격파가 다시 덮쳐 온다.

"... 크레이 이거 뭐야?"

키보우의 어조는 이제까지와 변함없는 듯이 느껴졌다. 하지만 크레이의 목에 돌린 그녀의 팔에는 꽤 힘이 담겨 있다. 떨고 있는 것이다.

"습격당한 거야. 아아, 날 말하는 거야. 너는 휘말려 든 것뿐이다"

".... 그런 건가. 습격 당한다 ... 들은 적은 있어... 이게 그런 건가...."

이 황폐하고 무기력한 세상에선 이미 남아있는 식재를 서로 빼앗지도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에게... 죽고 싶지 않다는 .... 거"

키보우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는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런가. 그렇게 느낀 건가 희망(키보우)!"

크레이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똑바른 발음으로 그 이름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크레이는 다시 충격파를 피하며 뛰었다. 소녀가 바람에 달아오는 벽돌에 무심코 다치지 않게 휙 돌려 등에 업고 있던 자세에서 양팔로 끌어안는 자세로.
크레이는 키보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소녀는 크레이와 눈을 맞춘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이상의 감정표현은 없다. 감정은 살아있다. 어찌 표현하면 좋을지 그녀는 아직 모른다. 그것을 몸에 익히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너는 죽지 않아. 나에게 맡겨. 그게 내 일이다"

지금 크레이는 기억을 되찾고 있다.
자신이 우편국인 것도 평소엔 전하지 못한 편지를 위해 빛나는 안개가 세상의 안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자신의 권능도 알고 있다. 크레이는 편지를 전하는 상대를 보면 그것을 안다. 이 아이다. 자신이 우편국 본국에서 맡긴 편지를 넘겨야 할 상대.
수취인을 지키는 것은 우편국의 일하는 범위다. 설령 그것을 위한 힘이 있던 없던. 적은 무엇을 노리고 있던. 적도 또한 시간의 흐름에서 일탈한 존재 찢는 자다. 이런 충격파는 처음 본다.

"알겠어. 어설프게 움직이지... 마!"

크레이는 키보우를 허공에 높이 던지고 자신은 깊게 몸을 숙였다. 둘을 가로막는 공간을 눈에 띄게 커다란 수평 충격파가 뛰어들어 크레이의 등 뒤에서 다시 또 하나의 빌딩이 무너졌다. 탁하고 땅을 차고 크레이는 허공에서 키보우의 몸을 받아냈다.

"방금건... 꽤 무서웠어"

키보우가 떨고 있다.

"미안. 하지만 또 몇 번인가 할 거야. 참아줘 ... 나를 믿어"

"믿어... 라는 의미는 몰라. 해야만 한다면 하면 돼. 크레이에게 어제 묻고 대담한 것처럼"

이번엔 작은 충격파가 3연속.

"어제...? 이런 입 다물어. 혀 깨물어!"

이번엔 조금 뛰어 피했다. 어떻게든 스테미너는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은 잇는 자는 일반인을 아득히 능가하는 치유력을 가진다.---- 라고 할까, 육체의 시간이 반은 고정돼 있어 손상도 돌아가는 것이다.
크레이의 육체는 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품 안에 있는 여윈 소녀는 미래가 있다.
순간 끓어오른 감개는 이어서 날아온 충격파가 찢는다.
나부낀 키보우의 머리가 잘린다.

"미안!"

"괜찮아"

키보우의 떨림이 멎었다.

"크레이는 주웠을 때 말했어. 나를 하루 길게 살게 한다. 말헀으니까 할 수 있어"

너무나 무기력한 너무나 절망으로 채워진 세상에서 그녀는 남들에게 속은 적도 없는 것이다. 아니 다르다 속는다는 개념을 알지 못하고 자라 속아도 그것을 모르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녀가 크레이를 믿고있는 것은 틀림 없어---.

"하루가 아냐!"

크레이는 고함쳤다.

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
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

대지와 수평에 혹은 수직에 그리고 경사에. 모든 것을 찢는 충격파가 크레이와 키보우를 덮친다.

"... 조금만 더 몰아넣어 줄까...."

크레이는 쉴새 없이 움직이면서 충격파의 궤적을 쫓아 서서히 그 그원으로 다가갔다. 이 충격파는 원거리 공격용이다. 옆으로 파고들면 이 은팔로 친다.
키보우를 안고 크레이가 달린다. 적이 있는 위치는 대충 안다. 판만 있으면 오른팔의 파워로 단숨에 날려버리는 것도 가능한데.

"정말이지 두뇌 노동 담당은 중요한 때..."

"뭐야?"

무심코 흘려버린 푸념에 키보우가 반응한다. 의아한 얼굴이라는 거다. 그녀가 『표정
』을 배우기 시작한 것에 크레이의 입가가 벌어진다.

"내 파트너야"

"...파트너? 뭐야?"

"친구, 동료 ... 앞으로 너에게도 잔뜩 생길 거야!"

크레이는 그 말과 함께 마지막 20미터를 단숨에 달려나갔다. 무너진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그 건너에 있는 충격파를 내보내고 있는 인영과 서로 노려본다.
크레이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청년으로 보였다.
연령은 20대 전반일까, 튀어나온 턱에 코는 크다. 피부는 어딘가 새파래서 건강하지 못한 색이다. 실크 햇 아래로 검은 머리가 올백이 되어있다.
입고 있는 건 오래된 듯한 디자인의 프록코트. 손에 쥐고 있는 건 수술용 메스다. 그것이야말로 충격파를 발생시킨 디바이스겠지.
프록코트 청년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크레이에게 향했다. 그는 울고 있다.
슬픈 눈물? 아니 다르다. 크레이는 그의 눈동자를 봤다. 공허라고 말라있다.

"네 눈물은 판의 미소와 같네"

진심을 감추기 위한 가면.

"잘도 알았네. 이렇게 울지 않으면 말이야 전부다. 너무 미워서 잘게 썰어 버... 린단 말이야"
 
프록코트 청년은 도중에 코를 비볐다. 제법 미형인데 망가져 있다.
청년은 눈물을 한번 닦고 가만히 크레이를 바라 봤다.

"...아아 그거야 알겠네. 너도 분노의 가면을 쓰고 있어. 가면으로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거네"

동정에 찬 목소리. 그것이 크레이의 불쾌감을 일으켰다.

"나를 동정 하지 마 라던가 진부한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너에게 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라는 건가"

"이름을 말해 줄까. 대 선배를 너라고 부르는 건 좋지 않아"

어색한 동작으로 크록 코트 청년이 인사하려 한다.

"네가 내 흔적을 이은 새로운 우편국이네. 나는 잭이다. 잘부탁 해"

몸을 굽힌 그 동작을 크레이는 틈이라고 판단 했다.
높이 높이 키보우를 던져 올린다. 그 순간에 모든 것을 건다. 몸을 아주 낮게 숙이고 미끄러지는 듯이 다가가 바로 아래에서 어퍼컷. 이제까지 빗나간적 없는 공격이다.

"그리고 안녕"

잭이 말했다.
그의 메스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충격파가 나왔다. 좌우에서 합쳐 2개.
너무 빠르다. 잭에게 틈은 없었다. 인사한 건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크레이는 함정에 걸린 것이다. 전투 경험은 크레이와 잭의 차이가 너무 크다.
크레이의 양팔이 충격파에 치여 허공에 날리....
그런 환영이 보일 정도의 일격.

"......!"

하지만 높이 높이 날아갔지만, 크레이는 무사했다.
바로 옆에서 날아온 2개의 충격파가 잭의 충격파에 부딪쳐. 상쇄한 것이다. 작은 폭발이 일었다. 그것에 의해 크레이는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

"큭!"

크레이는 지면에 부딪쳤다. 겨우 낙법을 취해 데미지는 최소한으로 받았지만 사실 그대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다. 크레이의 의식을 붙잡은 것은 책임감이다. 자신이 받지 못하면 그녀는 어찌 될지---.

"키보우!"

크레이는 그렇게 외치며 튀어 올랐다. 아직 머리가 어질어질해 시야가 어둡다.

"헤에 이 애. 그런 이름이야? 신경 써줘야지"
  
평소의 미소를 머금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심했다. 키보우는 괜찮다.

"... 됐으니까 빨리 그걸 넘겨"

돌아보지도 않고 판을 향해 크레이는 왼손을 내밀었다.

"은 팔 없이야"

엄한 목소리로 판이 말했다. 크레이의 예상외의 어조도 대답이 돌아왔다.

"잭은 아직 놀고 있어. 저 사람에게 진심을 낼 리가 수는 없어"

"무슨... 말이야...!?"

크레이는 눈을 비볐다. 겨우 시야가 밝아진다.

".... 교관!?"

크레이가 본건 장신에 붉은 머리의 여성이었다. 크레이를 멸망한 세상에서 주워온 잇 는자 팀의 한 명. 본국에서 우편국으로서 일을 주입한 여성. 프라카라하 마크닐. 다른 이름은 프라카 더 카피 캣.
잭이 충격파를 내보내는 것과 완전히 같은 동작으로 그녀도 충격파를 내보낸다. 상쇄한다.

"미안했네, 아슬아슬할 때까지 기다려서. 충분히 카피를 모을 때까지 경솔하게 나올 수 없어서 말이야"

쾅! 충격파가 부딪친다.

"이런이런 프라카는 무모하게 모여도 신중하네. 조금 만 더 있었으면 그는 죽었어? 그런 큰 상처를 입게 하곤 반성도 안 하네"

탕! 지면의 돌이 튄다.

"믿으니까 말이야 치명상은 입지 않는다고"

캉! 말과 충격파가 동시에 부딪친다.

"흐음. 기대의 샛별이라는 거네"

콰광! 프라카가 도발적으로 미소 짓는다.

"이 다음 언젠가 당신을 아픈 꼴을 당하 게 하는 건 그니까 말이야. 아슬아슬하게 경험을 쌓아두지 않으면. 프로 일은 아픈 꼴을 당하면서 배우는 거야"

슈우우웅! 한층 더 큰 충격파. 프라카는 완전히 똑같은 위력을 돌려줬다. 잭의 눈물이 더욱 늘어난다.

"괴롭네. 네가 오늘 일격을 가할 수 없네"

콰과과과과과과!

무수한 충격파가 부딪쳐 그중 하나가 사라지지 않고 빠져나온다.

"... 나로선 무리일까. 어차피 카피니까. 수에 한계도 있어"

탁하고 프라카의 오른팔이 지면에 떨어졌다. 능가한건 잭의 충격파다.

"교관!"

"지금은 먼저 우리 일을 다 하는 거야 크레이!"

이제까지 들은 적 없는 판의 어조에 달려가려던 크레이의 다리가 멈췄다.

"너는 배달 담당이야. 그렇지. 네가 이걸 이 아가씨에게 건네는 거야"

크레이는 겨우 돌아봤다. 키보우는 지면에 누워있다. 정신을 잃은 모양이지만 상처 같은 건 없다.

"하지만, 너...."

"서둘러! 프라카를 도우려면 그것밖에 없어"

판이 외치고 옆에서 빠져나온 편지를 크레이에게 내밀었다. 거길 노리고 잭이 5개의 충격파를 연속으로 내보낸다. 프라카는 그중 3개를 상쇄했다.
그녀는 눈으로 본 상대의 능력을 복사할 수 있다. 단 그것은 본 횟수만이다. 이걸로 아까까지 크레이가 습격당해 피하는 것을 보고 복사한 횟수는 다했다.

"정말이지 이제 드디어 아껴둔 건가!"

판의 손에서 무수한 천 조각이 날렸다. 마술사가 무한의 손수건으로 무대를 덮는 그런 최고의 기예처럼. 천 조각은 소용돌이쳐 벽처럼 판과 크레이 키보우의 모습을 숨긴다. 하지만 그건 정말 한순간 뿐이다. 조각조각 찢겨져 덧없는 눈처럼 흩날려 사라진다.
하지만 그 작은 시간에 크레이는 키보우에게 편지를 건넸다. 지면에 무릎을 꿇고 그녀를 일으켜 세워 그 손에 우편을 쥐어준다. 키보우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아까 높이 높이 던져진 후 자신이 어떻게 된 건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판은 미소를 입가에 걸고 말했다.

"... 변함없이 그 룰은 지키는 거야 잭?"

지금 판이 띤 미소는 평소의 짓는 것과는 다르다. 따스한 진짜 미소다.

"너와 헤어진 때 한 단 하나의 약속이니까, 판"

잭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멈췄다. 대신 증오의 빛이 서린다.

"그거야... 고마워"

판이 축 무릎 꿇었다. 갈기갈기 찢어진건 천뿐만이 아니다. 그 자신도였다. 카피를 다한 프라카도 지면에 앉아있다. 떨어진 팔의 피는 멈춰있지만 이제 움직일 수 없겠지.

"어이...!"

"아직이야!"

판이 피투성이 얼굴로 크레이를 제지했다.

"그 녀석은 약속했어. 우리가 제대로 편지를 전한다면 그는 공격을 멈춰. 하지만 그 후 수취인에게 하나의 질문을 해. 그 답에 따라 그는 돌아가. 하지만 대답에 따라선... 네가 그녀를 지켜야 해. 우린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그녀만을 생각해"

"알았어... 하지만 하나만 확인하자"

크레이는 드물게 정말 잠시지만 주저하고 질문했다.

"이 녀석은 ... 내 전임자인 건가?"

크레이의 물음에 판은 끄덕였다.

"이 녀석은 절망한 너야. 세상의 미래를 믿지 못하게 된 너야. 다양한 세상이 다양하다던 걸 알아가는 것을 포기한 너야"

그것이 크레이가 세상 밖에 있는 이유였다. 세상의 멸망은 불관용이란 잘못 된 길을 걸어서란 걸 확인하기 위해 세상엔 단 하나의 정의를 밀어붙일 필요가 있는 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그 다음 잭이 말한 질문도 같은 생각에서 한 걸까.

"그럼 물을게... 저기, 너. 그 편지를 받고 그곳에 희망이 보였니?"

키보우에게 건넨 것. 그것은 지도였다.
이 황량한 세상의 조각을 빠져나가는 길을 기록한 지도. 단, 빠져나온 끝에 뭐가 있을지는 모른다. 넘긴 자는 이 좁은 폐쇄된 세상과 미지의 세상을 잇는 것을 스스로 결단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해선 기력이 호기심이 꿈이 미래를 믿고 동료를 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크레이는 정말이지 아무런 불안도 품지 않았다. 그의 눈에 희망이 비친다.
그리고 키보우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이야? 그런 거 왜 묻는 거야?"

키보우는 그리고  희망에 가득 찬 미소를 띤다.

"내가 희망이라고? 희망은 이미 나와 함께 있어"

키보우의 눈동자에 강한 빛이 담긴다.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크레이는 한 번 더 일어섰다.
잭은 입을 웃는 형태로 일그러트렸다. 번쩍이며 그 눈에 증오가 불타오른다.

"잘 말했어. 그런 너야말로 다시한번 절망시킬 가치가 있어. 지금은 물러가지"

눈물을 흐리는 채로 잭이 마른 미소를 띠고 그대로 말밑에서 어둠의 증기를 분출하며 모습을 지운다.
하얀 빛나는 안개가 영원의 오후 숲에서 간호사를 불러모은 것은 잠시 후였다---.

 

제3화 네 눈에는 뭐가 비춰 끝

 

 


 

 


제 4화 야자나무 술꾼 여신

 

 


세상의 밖에 있는 영원의 오후 숲과
세상의 선에 있는 신화의 숲을
하얀 안개가 잇는다---.

 


1.


"술이 많은 정글?"

뱃사공은 괴상한 얼굴이 됐다.
극 남대륙 중앙 연안 지대라고 불리는 지역에 잇는 항구 마을의 활기찬 술집이다. 다른 지구라면 아프리카 대륙 중앙부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그래그래. 이 근처에 그런 전설이 있다고 들었는데?"

되묻자 보충한 건 금발 소년이다.
찌는 듯이 더운 이 토지에서는 누구나 피부를 드러내지만, 이 소년은 뭔가의 제복 같은 의복을 제대로 입고 있다. 그 주제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판이다.

"솟아나는 술 나무에 열리는 과일도 술이 잔뜩. 그런 정글이 있다고"

"이 근처 녀석들의 바보 같은 소리야 내가 알 리가 없잖아. 여기 사는 녀석한테 물어"

뱃사공은 기분 나쁜 듯이 술을 들이켰다.

"미안미안 아저씨자 제일 취한 것 같아서"

"뭐라고 인마!"

뱃사공은 손에 든 잔을 테이블로 쳤다.

"네놈 그럼 아내에게 부탁받아 내가 술 마시는데 불평하러 온 거네? 그래서 정글 같은 바보 같은 소릴 해대는 건가!"

"그건 오해. 그런 쓸데없는 일 내가 할 리가 없어. 당신의 아내가 금구 부탁을 편지로 써준다면 당신에게 전해줄 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걸 부디"

마침 웨이스트리트 아가씨가 와서 금속 잔을 훌쩍 잡아 마시게 했다.
뱃사공은 딸꾹질을 한번 하고 그대로 테이블에 엎드려 잠들어 버렸다.

"라는 이유로 다시 한잔 더"

"헤이 이번엔 조용히 마셔"

윤이 나는 흑단 같은 피부는 이 고장 미인의 증거다. 극 남부 지방의 화려한 말투다. 수영복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노출도다. 웨이스트리트 아가씨는 카운터로 돌아갔다.

"캐물으려면 좀 더 진지하게 해"

판의 옆에 있던 흑발의 청년 --- 크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거기에 웨이스트리트 아가씨가 돌아온다.

"네 이게 고장 사람이 제일 많이 마시는 술. 소가니아님께서 주신 거"

야자나무 열매를 도려낸 컵을 내민다.

"그게 소가니아님이 사는 숲이 손님이 말한 술이 많은 정글이야"

"어라 들었어. 그럼 네 몫도 한잔 살게"

빙글 웃은 판이 주머니에서 몇 개인가의 코인을 꺼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게 한다. 하나가 2개 2개가 3개 3개가 5개가 되어 또 하나...

"네, 감사"

.....로 돌아오는 도중에 휙 2개를 집에 든다.

"내 마음을 끌고 싶다면 조금 더 별나 마술을 해야"

자신의 굴을 가지러 돌아간 그녀를 보내며 판은 빙글하고 크레이를 돌아봤다.

"나는 마침 달리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녀는 부탁해"

"에? 무슨 말이야 어이?"

탐문은 판의 일이라고 마음 편히 있던 크레이가 크게 당황한다.

"이야기할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 있어. 후후 정보 제공자가 두 사람이나 나타날 줄은 기대 이상이네 나로선"

판의 발언은 방금은 취한 사람과 일부러 엮어 시선을 끌어 한 번에 정보를 원한다는 것을 전원에게 어필하는 계산이었다, 는 의미일까.

"정말이야? 대부분 계산한 거야? 적당히 해보고 절된것 뿐이지?"

크레이의 츳코미는 고장 사람 같은 노인에게 흔들흔들 가버린 판에게 닿지 않는다.

"어라, 아까 손님은?"

웨이스트리트 아가씨가 돌아왔다.

"아니, 그, 뭐야. 에에음... 그것보다, 술 정글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래. 나는 거기에 흥미 있어. 탐험가야"

웨이스트리트 아가씨는 잠시 크레이를 바라봤다.

"뭐, 좋아"

갑자기 스르륵 얼굴을 가져다 댄다. 가슴이 팔꿈치에 닿는다. 웨이스트리트 아가씨는 살짝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죽은 히이 조모가 말했어. 붉은 호수 건너 무지개가 떨어지는 골짜기 너머 정글의 여주인인 소가니야님이라는 여신이 살고 있다고. 인간에게 술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것은 여신으로 살고 있는 정글에는 항상 술이 자~~~안~~~뜩 있다고"

"옛날이야기로선 그다지 어린 아이용이 아니네"

"으으응 옛날이야기라고 하기엔 조금 다를까. 나는 어쨌든 히이 조모는 정말로 있다고 믿었고. 어느 쪽인가 하면 신화일까"

"어떻게 다른 거야?"

야자 술을 핥고 크레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들어가면 입이 동그래져"

웨이스트리트 아가씨는 흑당을 하나 잡아 자신의 야자 술잔에 넣었다. 크레이도 흉내 낸다.
한입 마시면 웨이스트리트 아가씨는 방금 질문에 대답했다.

"옛날이야기를 진짜라고 생각하는 놈은 없어. 하지만 신화라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것을 먹고 어떤 집에 살아도 역시 같은 혈육의 라세타 것 같은 게 있어"

라세타라는 건 이 주위에서 예로부터 살고 있는 민족이 자신을 칭하는 이름이다.

"... 그런 건가... 뭐어 좋아. 그래서 이 소가니야이라는 여신은 어쩐 신이고 아까 말한 붉은 호수라는 건 어디에 있어?"

크레이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음을 재촉했다.

"여신님은 ... 미인 같네. 가슴이 크다고 들었지만 말이야. 그래서 붉은 호수는..."

웨이스트리트 아가씨는 의미 있는 듯이 크레이를 바라봤다.

"한잔 더 주문하는 게 좋은 건가?"
 
진지한 어조로 크레이가 말했다.

"아하. 그런 게 아냐. 가끔 있어. 로망이나 탐험이란 이유로 나가는 사람이. 그래서 갔다가 민폐 끼치는데 손님은 뭔가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매는 나쁘지만 눈빛이 다정한걸"

무해한 괴짜라고 판단한 것 같다.

"히이 조모가 태어난 마을 근처에 있어 커다란 호수야. 갈색에 가까운 탁한 색이지만. 옛날엔 어쨌든 지금은 열차로 몇 시간이면 도착해. 마을에서 다시 물음 돼"

"그런가...  고마워"

거기서 웨이스트리트 아가씨는 다른 테이블로 불려갔다. 크레이는 판을 찾았다. 그는 카운터 자리에서 고장 노인과 이야기하고 있다. 가까이 가면 이런 말이 들린다.

"그래서 그 병대씨는 죽은 거야?"

판의 오른손에는 이 땅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들고 있다. 그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한 장이 3장이 되고 3장이 1장으로 돌아가고 다음은 4장이 되어 전부 손가락 사이를 채운다. 노인은 눈으로 화폐를 쫓으며 소곤소곤 말했다.

"아아 죽었어. 무너진 화물에 어린아이를 감싸다가. 하얀 피부의 병대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검은 피부의 아이를 구하다니 처음 있는 일이야. 바보 같은 짓을 한다고 남편이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었어"

말하는 도중에 노인의 눈은 화폐를 쫓는 것을 그만두고 손에 든 잔을 바라봤다.

"이상한 건 죽은 그 순간 굉장히 나이를 먹은 거야. 살아있었던 때는 젊고 건강했는데 죽은 순간 시든 거야"

이상할 정도의 전치사지만 노인의 어조는 담담하다.

"결국, 그 사람은 신분을 모르게 됐어. 병대 옷은 입고 있지만, 전쟁이 끝나 그 나라의 군인은 모두 이미 돌아갔으니까. 이름을 알 수 있을 만한 건 가지고 있지 않았어"

거기서 말을 자르고 노인은 술로 입을 축였다.

" 이 항구마을에선 흔히 있는 일이야 고향과 인연을 끊고 배에 타 여기까지 오는 흰 피부 남자는 산만큼 있어. 또 하나 이름도 없는 남자가 여기서 잠들었다는 것뿐이야"

흔히 있다고 말하면서 이번엔 노인의 어조가 슬퍼진다.

"북의 바깥 공동묘지에 묻혀 그대로 있어. 그 사람이 주문한 이 녀석의 인수 방법도 없어"

노인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반지를 꺼냈다. 은반지에 흑진주가 박혀 있다. 심플 하지만 잘 만들었다. 노인은 세공사였다.

"가지고 다니는 거야?"

판이 물으면 노인은 작게 끄덕였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 사람을 찾으러 오면 넘겨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 도움받은 건 내 손자야. 그러니까 세공비 지불은 끝났어"

판의 손안에서 화폐가 전부 사라졌다.

"저기 할아버지. 우린 우편국이야"

판은 웃고 있다. 평소의 싱글싱글한 미소가 아닌 다정하고 조용한 미소다.

"전하지 못한 면지 사라져 버린 편지 보내지 못한 편지를 전하는 게 나와 파트너의 일이야"

시선을 던지자 크레이는 어깨에 멘 가방에 손을 댔다. 그리고 봉투를 꺼냈다. 제대로 된 종이로 만든 최상질의 봉투다.

"우린 그 반지를 본래 주인의 곁으로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한 판의 눈동자를 노인은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노인은 봉투를 크레이에게서 받아들여 그 안에 반지를 떨어트렸다. 크레이는 봉투를 손에 들고 가방에서 꺼낸 밀랍으로 봉했다.
노인은 혼화한 목소리로 판에게 말했다.
 
"우푯값은 얼마인고"

"첫 이용에는 이용 요금을 서비스해드리고 있습니다. 손님"

그렇게 말한 판의 미소는 평소처럼 생글생글한 미소였다.


2.


"뭐야 어이 이 술 냄새"

기차에 들어가자 마자 크레이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문제는 술 냄새가 아닌 것 같은데"

드물게 판도 괴로운 얼굴.
항구 마을에서 3시간. 터널을 빠져나와 거긴 밀림이었다.

"이 마을은 증기 문명 제국이 들어왔었으니까 굉장히 열려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적어도 시야는 열려있지 않네"

"오우 후배군이 그럴듯한 소릴 하는 거 처음일지도"

크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역 주변은 짙다 무척 짙다 농후함 그 자체인 푸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역 홈까지 푸른 나무와 갖가지 색 꽃으로 덮혀 있다.
판은 근처 꽃을 꺾어 향기를 맡았다.
알코올 향기가 난다.

"네 조사론 이 근처는 해안 진주나 내륙부 지하자원 같은 걸 둘러싸고 전쟁 같은 것도 일어났다고 했지. 즉 전쟁으로 마을이 사라지고 정글이 된 게 아냐?"

"설마. 아무리 더워도 식물의 성장이 빠르다고 해도 여기까지 있을 리 없죠. 싸움의 참화라고 할까, 문명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잇힛힛히, 어서 오세요 도련님들! 표를 부탁드립니다"

그 목소리와 동시에 기적이 울리고 열차는 아무 일도 없이 발차했다.

"어라... 역원일까?"

어안이 벙벙해서 판이 말했다. 크레이는 순간 대답이 막혔다.

"제복을 입고 있고 역원이겠지... 설령 원숭이더라도"

"잇힛히 잘 말했어. 형님은 꽤 대단하네. 대단하네. 군병이라면 대좌가 대리로 맡길 정도로"

역원 제복을 입은 원숭이가 말했다. 말하고 다시 웃었다. 몸 크기는 5살 정도의 어린아이. 체모는 금발로 팔이 길고 꼬리도 길다. 본적도 없는 종류의 원숭이다.
 
"자아, 표야 표. 표를 넘겨"

"네네. 이거야"

판이 내밀면 원숭이는 표를 빼앗아 입에 던져넣고 껌처럼 질겅질겅 씹었다.

"맛있어. 역시 표는 맛있어"

"만약을 위해 묻는데 역원씨 이 근처에 무지개 계곡으로 통하는 붉은 호수가 있을까?"

"하아, 어떨까나아"

얼빠진 대답을 하고 원숭이는 긴 팔을 뻗어 개찰구 박스 바닥에서 커다란 병을 들어 올렸다. 꿀꺽꿀꺽하고 내용물을 마신다. 줄줄 흐른다. 흐른 입가를 손으로 닦고 그 손을 크레이에게 내밀었다.

"어이 그쪽 표. 빨리"

"적당히 해!"

크레이가 갑자기 역원 원숭이에게 화냈다. 화내면서 성실하게 표는 내밀고 있지만, 그답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영원이라면 근처 지리 정도는 파악해! 그리고! 근무 중에 술 마시지 마!"

"술이 아냐, 이건 물이야. 조금은 취기가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해서"

조금 혀를 꼬며 원숭이가 말했다. 크레이의 표를 입에 던져 넣고 병 안의 액체를 얼굴에 붇는다. 마신다기보다 뒤집어쓰는 느낌이다.

"그럼 대체 이 냄새는 뭐야? 이 근처엔 우물을 파면 술이 솟아나는 건가?"

크레이의 얼굴이 붉은 건 화나서가 아니다. 화났을 땐 어떠냐 하면 얼굴이 햐예진다. 그리고 『거야』는 『그야』로 들렸다.

"나온다고. 꽃도 술 냄새가 배여 있고"

원숭이 대신 판이 말했다.

"우힛힛히 당신들 재밌네에 형임. 그 말대로야 소가니야님이 술을 마시면. 그 덕분에 전부 물은 술이 되고 물은 술이 된다고 세상 대로야"

키킥하고 원숭이가 목소릴 올려 역원 원숭이는 개찰구를 뛰어 나갔다. 근처 나무에 미끄러지듯 올라가 거기에 열려있는 열매를 던진다. 앗 하고 크레이는 그것을 붙잡는다.
바나나였다.

"뭘 혀대 네놈"

크레이가 얼굴을 붉히고 화낸다. 이미 혀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그건 선물이야. 먹어봐 맛있다고"

"적당한 소릴 하지 마 발밑에 던져서 날 구르게 하려고 한 거지"

말이 『구류으게 하려고 한그지』가 된다.

"그렇게 될까. 먹어보면 이제 미끄러질 일은 없어"

"아니 잠깐 멈춰 크레이군. 너 굉장히 이상..."

판이 멈출 틈도 없이 크레이는 마치 마시는 듯이 바나나를 먹어버려---.

"히끅"

딸꾹질을 한번 하고 그대로 탕하고 쓰러져버린다.

"햐아아아아! 재밌는 형님이네. 그럼 또 만나자고"

원숭이는 그대로 정글 안으로 사라졌다.

"... 뭐가 어떻게 된걸까나아"

판은 아연실색해 숨소리를 내기 시작한 판의 옆에 앉았다. 잠시 생각하고 크레이의 코를 붙잡는다.


"... 음냐"

크레이의 입이 열린다. 거기서 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방금 전 원숭이와 닮아있다. 판은 크레이의 입도 막아버렸다. 10초 20초 1분 2분....

"후와왁!"

크레이가 튀어 일어나 판의 손을 쳐냈다. 눈을 희번덕인다.

"지, 지금, 너, 뭘"

콜록이는 크레이의 턱을 붙잡고 판은 어디에서도 아닌 작은 수통을 꺼낸다. 강제로 풋내나는 액체를 크레이의 입에 흘린다.

"...읍! ....으아"

"뱉으면 안 돼. 꿀꺽 마셔. 취기가 가라앉을 테니까"

크레이의 입을 다시 누르고 판도 한 모금 마셨다.

"...후핫"

판이 손을 떼면 크레이는 욕심내는 듯이 공기를 들이마신다.

"... 죽일 생각이냐 너"

원망스러운 눈으로 판을 바라본다.

"그런 거보다 이거 꽤 위험해"

판의 눈은 푸른 정글에 향해 있다. 진지한 눈이다.
근처에서 보이는 건 온갖 열대 나무다. 선명한 색의 꽃이 만발해 이상야릇한 소리를 내는 극채색 새가 날고 있다.
근대적인 건축물이라던가 활동적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증기 자동차라던가 예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잘 보면 나무 사이로 녹슨 철 덩어리가 있다. 그건 증기 자동차가 아닐까. 머리에 세가 앉아있는 채로 나무 기둥을 베개 삼아 자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크레이와 판 이외에도 내린 손님은 있었다. 둘러보면 그들은 이미 잠들어 푸른 잎사귀에 싸여 있다. 크레이가 냉정함을 되찾았다.

"... 확실히 위험한 느낌이 드네. 어떤 의미로 위험한 거야?"

"하느님은 실재하는 거야"

판은 정글을 막연하게 말헀다. 평소의 생글생글한 미소는 사라졌다.

"그거야 알아. 하지만 왜 자고... 자지 않는 건가 여긴?"

크레이의 안색이 변한다.
여기 같은 누덕누덕 기워 만든 지구는 익숙해지기 쉬운 비슷한 세상을 잇는다. 커다란 기본이 되는 건 기술이나 문명 레벨이다. 하지만 같은 세상이라고 해도 전부 통일되는 건 아니다. 기술에서 나아가 나라의 도시나 사람들 태고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떨어진 지역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건 평범한 일이다.
그리고 이어진 조각에는 보기 드문 다른 동떨어진 세상이 섞이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이 정글은 마법으로 채워져 있어. 이 지구에 다소의 마법은 있지만 그건 모두 연금술이라던가 그 나름의 이론에 기초하고 있어. 여긴 아냐. 신화의 세상이야. 즉 마법에 이치는 없어. 진짜 마법이야"

"...진짜 마법인가"

크레이는 자신의 은 팔에 눈을 떨어트렸다. 정말 약간이지만 반짝임이 강해진 것 같다.
판은 조금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대체론 세상의 이음매 틈에 숨겨져 있지만, 뭔가의 이유로 자중할 수 없게 돼 신화 세상이 들어와 버리는 일이 있어. 아주 위험 하네"

"무슨 뜻이야?"

미간을 찡그리고 크레이가 묻는다.

"밀림 안에 여신님이 자고 있을 뿐이라면 사람들은 몰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이 저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거긴 세상에서 떠올라. 문자 그대로 떠오르는 거야. 세상이 찢어져. 다른 곳까지 터진 게 벌어질지도 몰라"

"... 찟는자의 짓인가?"

얼마 전 그 중 한명에게 아큰 꼴을 당한 참인 크레이는 눈동자에 두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감정의 기복이 격하다. 다시 제법 취한 걸지도 모른다.

"글쎄 어쨌든 우리 일은 편지를 전하는 것. 그것을 생각하면 돼. 먼저 여신님에게 가자"

라고 말하고 판은 정글 안으로 들어가 몇 걸음 걷고 다리를 멈췄다.

".... 여신님 어디에 있을까?"

"알까 보냐. 여기에 와서 마을 녀석들에게 붉은 호수가 어디에 있는지 물으려고 했어. 지도대로 걸어다닐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크레이가 말한 때다. 정글이 움직였다. 마치 크레이와 판을 인도하는 듯이 나무들이 길을 비워줬다.

"어떻게 된 거야?"

크레이는 은으로 된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고 그 손목을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경계하는 것이다. 무리도 아니다.

"과연 그런 건가"

판은 혼자서 독단으로 점점 정글 안으로 들어간다.

"여긴 신화의 세상이란 거네. 뭔가 정해진 대사를 하면 주변도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거야. 적합성이라던가 고민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그런 적당한 설명으로 나를 이해시키려는 게 아니겠지. 뭔가의 함정인 편이 이해가. 두뇌 노동 담당이니까 네게 제대로 생각해"

"생각하고 있어. 생각해서 괜찮다고 말한 것뿐"

이미 판의 모습은 푸른 나뭇잎 사이로 숨으려고 하고 있다. 크레이는 전혀 이해가지 않는 얼굴이지만 주변을 방심하지 않고 둘러보면서 서둘러 판을 따라갔다.

"아파! 알아차리라고!"

갑자기 발밑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면 꼬리가 막 잘린 작은 도마뱀이 크레이를 바라보고 있다. 눈이 묘하게 인간 같지만, 그 이외엔 선명한 홍색이 눈에 띌 뿐인 그저 도마뱀이다.

"어이, 뭐든 말하란겨 인간. 사과 안 할 끄면 네 딸을 아내로 넘겨"

순간 놀랐지만, 크레이도 폼으로 패치 워크 어스를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게 아니다.

"어이 신화적이라던가 하면 뭐든 있다던가 얕보는 게 아니라고"

그냥 있어도 나쁘다고 말하는 눈매에 기합을 넣으면 도마뱀이 겁먹는다.

"아니 그. 별로 얕보는 게 아니라고? 랄까 오히려 말이야, 신화에 의해선 나는 인간에게 지혜를 준다고"

"시끄러워. 어차피 속아서 인간 아내가 도망치는 결말이겠지"

노려보자 도마뱀은 묘하게 인간 같은 움직임으로 작은 앞발로 머리를 긁적였다.

"뭐어 좋아. 말할 수 있다면 형편 좋아"

형편이 좋다로 끝나 어쩐지 도마뱀은 풀죽어 보고 있다.

"붉은 호우와 무지개 골짜기라는 건 어디에 있어"

크레이가 물으면 도마뱀은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기차로 온 거야?"

"그게 어쨌는데"

묻는 도마뱀에게 크레이는 짜증난 듯이 대답했다.

"그럼 호숫가를 지나. 골짜기를 넘어오지 않았어?"

듣고 보면 갈색의 탁한 연못 옆을 지나 꽃이 만발한 골짜기를 철교로 지나온 듯한 기분이 든다.

"신화의 광경 따위 실제로 와 보면 그런 거 라고"

도마뱀이 낭패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도마뱀의 표정을 알 리가 없지만 알아버렸다.

"혹시 난 도련님의 환각일지도 모른다고? .... 에헤헤헤"

부끄러운 듯이 웃는 소리를 남기고 도마뱀은 쪼르르 나무 틈으로 도망쳐 버렸다.
아무리 그대도 알코올 의존증이 진행 돼 금단증상으로 환각을 보는 건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잠깐 후배군. 쳐지지 마. 길 일어도 마중 안가"

앞에서 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크레이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가 아픈 건 틀림없지만 자욱한 술 냄새에 취하기 시작하는지 자신이 놓인 상왕 탓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어이 후배군"

다시 앞에서 판이 부른다.

"알아. 바로 따라가!"

크레이는 무뚝뚝한 어조로 소리쳤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있는데 여신님"

"벌써 찾은 거냐! 어떻게 된 거야 신화의 숲. 보통은 시련이라던가 뛰어넘어야 하잖아? 아닌가?"

두통은 상황 탓인 것 같다. 중얼거리면서 전진한다. 눈앞의 가지를 밀면 거기에 모여있던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것도 술 냄새가 난다.
사납게 분노가 솟아올라---.
그것은 하지만 바로 사라졌다. 정글 한가운데 있는 기묘한 광장이 나와서다.


3.


"과연 정글의 여신이니까 궁궐도 야외라는 건가. 아, 안녕하세요. 타지에서 온 우편국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판이 인사하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사자가 흘끗 그를 노려봤다. 그 밖에도 코뿔소와 코끼리와 악어와 --- 많은 동물이 광장을 채우고 있어 그 녀석들도 노려본다.
그런 생물이 모여 광장 한가운데에는 새하얀 암소가 자고 있다.
코끼리와 비교해도 한층 더 큰 암소다. 암소의 유방은 축 지면에 늘어져 있다.
그리고 유방 위에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성인 여성이 있다.
피부는 잘 다듬은 흑요석 같은 색, 풍만한 혹은 풍성하다는 말을 입체로 만든 듯한 몸매. 피부를 드러내고 중요한 곳을 작은 면적의 천이 숨기고 있을 뿐이다.
부풀어 오른 푸른 머리는 어디까지고 뻗어 정글과 일체화해있다. 얼굴은 모성과 천진함이 무리 없이 함께하고 있다.
여신 소가니야다.
이 정도의 신화에 흔히 있을 듯한 이형이 아닌,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최상인지 어떤지는 취미도 있지만, 누구나 월등히 아름답다고 인정할 것은 틀림없다.

크레이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소엔 빨리 배달할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판은 수상한 표정을 순간 띠었다. 그리고 파트너를 대신해 앞으로 나갔다.
동물들은 바라보는 것 외에 위협도 환형도 하지 않는다. 모여서 잠자고 있다.

"... 뭐랄까 하기 힘드네"

공기를 무시하는 스킬로 정평 난 판이 그렇게 중얼거릴 정도로 그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오라를 풍기고 있다. 판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큰 목소리로 안사했다.

"다시 한 번. 처음뵙겠습니다, 여신님"

"시끄러 닥쳐 조용히 해. 머리 울려"

황금 사자가 늙은 남성의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는 듯이 말했다. 코끼리도 코뿔소도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죽인다는 눈으로 판을 노려본다.

"우린 모두 ... 이틀 째 취해있어. 일 있으면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해, 조용한 목소리로"

"아, 네. 죄송합니다"

그토록 대담한 판이 순순히 사과한다. 의외, 대처 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저기 말이예요 우린 우편국입니다. 오늘은 말이에요"

"안 받으니까"

소가니야가 말 도중에 잘랐다.

"에, 그..."

"그 녀석의 편지지? 어차피 헤어지잔 이야기야. 이러니까 인간은 ... 우엑푸"

술의 여긴 소가니야는 도중에 입가를 손으로 덮었다. 한 마리의 원숭이가 뛰쳐나와 나뭇잎으로 엮은 봉투를 건넨다. 썩어도 여신이란 건지 부패와 발효는 현상으로서 같다는 건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향기로운 냄새를 내뿜었다.

"...저기이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판의 의문에 대답해 준건 소가니야가 앉아 있는 거대한 암소였다.
늙고 다정한 여성의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그게 말이야. 이 아가씨가 좋아하는 인간이 벌써 3개월이나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 사이 이 아가씨가 술을 한 번도 마시지 않아"

"할머니! 할머니는 입 다물고.. 우에에에"

소리치고 소가니야는 다시 심한 토기에 덮쳐진 것 같다. 주위에 자욱 한 건 최상급 명주에 필적하는 향기다.

"마시지 않아?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심하게 취한듯이 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에 대해선 사자가 대답해 줬다.

"소가니야님은 술의 여신으로 나타난 거야. 스스로 그곳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주변은 술이 돼버려. 그 술을 스스로 다시 마시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야. 그러지 않으시는 것이야말로 주변에 술이 흘러 넘쳐. 그리고 소가니야님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취해버린다는 거야"

"까다롭네"

사라의 긴 설명이 끝날 즘에는 소가니야도 조금 진정된 듯했다. 조금 글썽거리는 눈으로 판을 노려본다. 여신의 위엄은 어디에도 없다.

"...귀여워"

누군가가 판의 등을 보고 뻐끔 하고 말했다.

"에...?"

등 뒤에 있는 건 한 명 뿐이다. 하지만 방금 그건 그 사람의 목소리였을까?
판이 절규하는 사이에 암소는 소가니야를 달랜다.

"소가니야 넌 취한 상태로 안되니까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에 안 좋아. 맨정신으로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 좋을 거리고 아냐?"

"아줌마는 입 다물어줘! 이건 소첩의 문제니까"

여신님의 일인칭이 소첩이 된 후엔 상스런 말투가 됐다.

"우리 여신 아름다운 분이여"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판의 등뒤 에서 들렸다.
틀림없다. 이건 파트너의 목소리다. 단, 평소 상태가 아니다. 있을 리 없다.

"우리가 함께 온 것은 당신이 사랑스러운 것이 당연하고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그것을 알리기 위한 편지입니다"

"그럼! 더욱 받기 싫어!"

"아니요, 받아주십시오. 당신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나는 목숨을 걸죠!"

강한 말이었다. 여신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흘러넘친다. 그것은 이미 전신이 간지러워질 정도로. 판은 이윽고 견디지 못하고 등 뒤를 돌아봤다.

"... 크레이군 너 취했어?"

"바보 같은 말 마 난 안 취했어"

크레이는 기세 좋게 머릴 좌우로 흔들었다. 눈이 움직이지 않는다. 틀림없이 취했다.

"이 정도로 기분이 고양된 것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 건도 아냐! 신체 능력 사고 능력과 함께 문제없어. 어디도 안 취했어"

크레이는 무술을 연기하며 같은 의미의 단어를 10개국어로 말하고 지면에 써 있는 고등 수학 방정식 해결법을 설명했다.

"어때 난 안 취했어"

진지한 얼굴로 크레이는 말했다. 전신이 푹 졌었다. 어딘가에서 젖은 거겠지.

"나는 안 취했어. 그러니까 여신님에게 편지를 전해야 하는 거다"

"뭐라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맥락이 없잖아. 취한 거네?"

"안 취했어. 아니 여신님의 가련함에 취했을지도 몰라"

"아니 아니 아니. 저 사람은 아름답지만 가련하다곤 말 못하잖아"

척척 나오는 있을 리 없는 크레이를 판은 팔을 껴안고 멈췄다.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니까 소첩은 안 받을 거야!"

소가니야의 말에 주변 동물들도 반응하고 있다. 코끼리는 어금니를 향하고 악어는 입을 벌렸다. 편지를 받으면 소가니야가 술의 재생을 자제할 수 있게 되어 이 이틀간의 취기에서 해방될지도 모른다.... 라는걸 알아도 여신에 대한 충의는 버릴 수 없는 거겠지. 그녀의 의지에 따라 크레이를 다가오지 못하게 위협한다.

"자? 여러분 민폐야 크레이군? 먼저 여신님의 승낙을 얻어야지"

"그 사람을 위해서니까 나는 진실을 관철한다면. 놔! 목숨을 걸어도 나는 맡은 편지를 건네"

바르작 바르작 날뛰어서 방금전 취기에 좋은 약을 마시게도 하지 못한다.

"저기 소가니야? 저정도로 말씀해주시니까"

"아줌마는 입 다물어! 싫다면 싫어!"

암소가 다시 달랜다. 이제 의욕이 없는 모양이다. 거기에 겨우 구조선을 보내준 건 황금 사자다. 집사인지 중신인지 그런 역할 이겠지.

"어떤가요 소가니야님. 이 녀석은 목숨을 건다고 말했습니다. 3개의 시련을 주는 건 어떨지"

".... 아아, 그건가. 술을 만드는 법을 훔쳐낸 인간에게 하면 용서해 준다고"

소가니야는 끄덕였다. 딴에는 격하게 움직인 탓에 아직 기분이 나쁜 것 같다. 원숭이가 공손하게 나뭇잎으로 엮은 봉지를 내밀었다.
거기에 최고급 모든 술을 토하며 여신은 손으로 괜찮다는 행동을 해 다음은 너에게 맡긴다는 행동을 하고 마지막으로 뭔가를 내쫓는 듯한 행동을 했다.

"흐음 이 신바 놈이 대신 시련을 주는 것으로"

황금 사자가 큰 가게 지배인 같은 어조로 말하고 깊이 머리를 숙였다.

"알겠나! 목숨을 걸어도 잃지 않기를. 추가로 편지를 받아간다"

술이 더욱 돈 것인지 새빨간 얼굴로 흔들흔들거리며 크레이가 단언했다.

"경솔하게 목숨이 어떻다던가 말하는 거 아닙니다! 에에음 잘 부탁드립니다"

여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판도 머리를 숙였다.

"왜 내가 엄마역을 해야 하는 거야"

인사하는 채로 낸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4.


"저 사람은 누나와 닮았어"

크레이는 완전히 취한 표정으로 말했다.

(... 술 깨면 자기가 한 말을 돌아보고 죽을 정도로 후회하겠네)

라고 생각하며 판은 전혀 흥미 없는 어조로 맞장구쳤다.

"아아 그래. 너에게 누나가 있다는 건 처음 듣네"

"무슨 소리야! 나한테 누나 같은 건 없어!"

크레이가 새빨간 얼굴을 더욱 붉게 하고 말했다.

(...아, 이건 후회라고 할까,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패턴이다)

라고 판은 생각했다. 흘려들을지 그게 아니면 츳코미를 해야 할까.

"누나는 없지만 다른 집에는 있어. 나는 그때 어렸어. 3살이야"

"좋아, 이제 닥쳐 취했어"

본능적으로 츳코미를 넣었다.
물론 취했단 말을 흘려버리고 자기 할 말을 계속한다.

"나는 그 녀석이 부러웠어. 누나가 가지고 싶어서. 어떤 누나가 있으면 좋을지 이래저래 상상했어, 다정한 누나 엄한 누나 다정한 누나 엄한 누나..."

"너 그다지 창작력 없네?"

상대가 들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그만 츳코미를 넣어버리는 판이다.

"유치원 시절 내 옆엔 항상 누나가 있었어"

"없다고 말했잖아!"

"물론 공상의 누나야"

"아아, 과연 이해했어. 흔히 말하는 그림자 친구라는 거네"

유소기에 흔히 있는 사실은 없는 공상의 친구다. 냉정이라기보단 던지는 듯한 어조의 판에게 크레이의 어조는 점점 정열적이 된다.

"누나는 항상 곁에 있어서 날 돌봐줬어. 그런데 내가 초등학생이 될 때엔 완전히 잊어버린 거야! 하지만 지금 저기서 떠올렸어. 망각을 사죄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저 사람이 행복해 줬으면 하는 거야!"

주먹을 쥐고 크레이가 역설한다.

"알겠어. 나는...."

크게 손을 펴고 등 뒤에 있던 바위레 올라가 연설하려고 한다.
다리가 미끄러져 그대로 등 뒤의 강으로 떨어진다.

 

"내가? 거기까지 꼴사납게 취했어? 설마!"

새파란 얼굴로 으득으득 이를 갈며 크레이가 말했다. 자신을 끌어안는 듯이 북북 긁으며 몸을 데우고 있다. 크레이가 파랗게 질린 건 차가운 물에 빠져서 인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자 그대로. 죽음의 구렁텅이를 살짝 엿본 것이다.

"나도 역시나 미끄러지진 않아. 심바씨라면 모를까"

"나는 안 그래"

이 열대 한가운데서 폭포는 얼음처럼 차갑고 평범한 인간이면 심장이 멈췄을지도 모른다. 안에선 소용돌이가 복잡하게 뒤 얽혀있어 수영의 달인이라고 해도 떠오르는데 많은 노력을 필요 한다.
크레이가 생환한 것은 그가 평범한 사람을 웃도는 신체능력을 갖추고 있던 덕분이고 또한 은 팔이 그 손가락을 바위에 파고들어 가게 해 흐름에 저항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네 누나에게 대한 이야기가 멈춰서 놀랐어"

"누나? 무슨 소리야. 나는 누나따위 .... 따위.... 없다... 고"

도중에 크레이의 표정이 굳었다. 추위완 다른 의미로 얼어붙는다.
떠올린 모양이다.

"하하... 설마. 내가 너에게 상상의 누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 건가"

크레이는 점점 눈을 크게 떴다. 이미 취기는 그 덕분에 완전히 깼다.

"어이, 농담이지? 농담이라고 말해. 화 안 내니까"

크레이는 매달리는듯한 시선을 판에게 던졌다. 그에 대한 판은 동정과 자애의 눈동자로 크레이를 따듯하게 바라봤다.

"... 그런... 건가. 나는 정말로... 말한 건가, 그걸"

크레가 털썩 무릎 꿇는다. 마치 새하얗게 불탄듯한 모습이다.

"아, 에헴. 슬슬 첫 번째 시련에 대해 설명해도 될까"

"자자 크레이군. 일해야지"

가여운듯한 표정을 띤 판이 말하자 크레이는 느릿느릿 일어섰다.
생기 없는 눈으로 심바를 본다.

"알겠어. 첫번 째 시련은 물의 시련. 잠금 이 구렁텅이 아래 여신님은 흑진주 귀걸이를 떨어트려 버린 거야 이 귀걸이는..."

"유래는 흥미 없으니까. 주워오면 되는 거죠? 하지만 너무한 이야기네"

판이 설명하는 도중에 말을 자르고 끝에 너무하단 소릴 외친다. 심바는 무뚝뚝하게 판을 노려봤다.

"뭐가 어찌 너무해"

"하지만 후배군이 또 한 번 더 여기에 잠수하라는 거죠?"

"아니 네가 잠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심바의 지적은 무시하고 판은 동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큰일인것 같지만 한번더 갈 수 있을까나, 육테 노동 담당?"

"....그거 말인데"

묘하게 당황한 목소리로 크레이는 말했다. 방금 전 동요는 이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아까 물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이런 걸 주워서 말이야. 그으, 정말로 우연이라고 그걸로도 괜찮은 건가 하는데"

크레이가 그렇게 말하고 내민 것은 5센치 정도 직경의 칠흑의 보석이었다.

"....에?"

심바의 턱이 떡 벌어진다.

"구렁텅이에 떨어트리고 다시 한 번 주워오는 편이 좋은 건가?"

뭔가 아쉬운 듯이 크레이가 말했다. 판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신경 안 써도 괜찮은거 아냐? 이런 거 내가 태어난 세상에선 말이야 『6개의 조로가 흔들렸다』고 말해서 말이야. 우연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 포기하는 거야, 응"

크레이가 심바로 시선을 옮기고 판은 그 등을 탁하고 쳤다. 스위치라도 누르는 듯이 떡 심바의 입이 열린다.

"참고로 만전의 준비를 했는데 안된 때에는 「1개의 조로에 흔들렸다』고 말하는데"

".... 뭐야, 그 말돌리는 거"

심바는 무뚝뚝한 태도로 말했다"

"그런 다이스 게임이 있어서 말이야. 주사위를 흔들어 전부 6이 나오면 그 녀석의  승리야. 반대로 1이면..."

이전에 살고 있던 세상에선 게임이 취미였던 판은 희희낙락하게 말한다.

"설명하라고 한 게 아냐"

황금 사자는 휙 돌아 두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다음으로 가자고, 다음으로"

"네네. 빨리 해버리죠"

판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간다. 크레이는 몇 번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뒤를 이었다.
그리고 정글을 잠시 걸어 작은 산기슭이 나왔다.

"두 번째는 암흑의 시련이야"

걸어가는 사이에 기분을 고친거겠지. 심바의 목소리를 낭랑하다.

"이 동굴 안에 여신님이 목걸이를 떨어트렸다"

"이래저래 떨어트리는 사람이네"

판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말하면 심바는 어금니를 드러내고 그를 노려본다.

"......"

판이 자신의 입을 막는 제스쳐를 해서 심바는 다시 말을 잇는다.

"보는 대로 이 동굴은 새까매. 게다가 여기엔 밤의 신에 의한 저주가 걸려있어 횃불을 들고 들어간 자는 불에 의해 자신이 타버린다"

"가연성 가스가 차있는 건가?"

크레이가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빠지면 심바가 으르렁거렸다.

"저주라고 했잖아! 여긴 신화의 나라라고. 그런 합리적인 해설은 필요 없어"

"아, 아아. 그런가, 미안"

떠는 모습도 없이 노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크레이가 사죄한다.

"... 알면 됐다"

심바는 으득으득라고 발톱으로 지면을 갈았다.

"에에음 어디까지 이야기 했었나?"

"안이 암흑이고 빛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 까지다"

크레이가 성실하게 가르쳐준다.

"그랬네. 미안. 그럼 암흑 속이라고 해도 찾아내는 데 수고는 없어. 똑바로 안으로 들어가 부딪친 움푹 패인 곳에서 손을 내밀면 돼. 하지만 조심해. 움푹 패인 곳은 2개 있어. 잘못하면 두려운 독뱀이 숨어 있다고"

"......뭐어 내 이거라면 괜찮겠지"

크레이가 오른손을 쳐들었다. 은색의 의수다.

"후하하하 공교롭게도 독뱀은 네 목에 달려드는 습성인 거야. 바람보다도 빠르게 함슥 속에서 피하는 건 불가능!"

 심바가 점점 우쭐해 한다.

"즉 이것은 영웅에 걸맞은 운을 갖추었는가 어쩐가의 시련...!"

일꼬, 하고 심바가 멋있는 척 으르렁거리는 참에.

"후배군 들어갈 거면 이걸 가지고 가. 불이 아니니까 안 타고"

판이 어디에서도 아닌 옅은 푸른색의 빛은 내는 유리구슬을 꺼냈다.

"......에?"

심바의 턱이 턱하고 벌어진다.
판이 꺼낸 것은 상혼 화학 반응으로 빛을 내는 무연 랜턴이다.

"괜찮겠지, 써도. 불타는걸 알고 있다면 빛나는 걸 가지고 들어가도 괜찮죠? 크레이군이 난연성이라면 그대로 횃불을 들고 가도 되는 데"

"나는 대장장이 아저씨가 아니라고"

크레이는 영원의 오후 숲에 사는 대지 요정 족의 장비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곤 쓰게 웃으며 판에게서 무연 랜턴을 받아들었다.
심바에게 안타까운 눈빛을 향하지만 결국 그것을 쓰는데 주저는 하지 않았다. 먼저 던져넣어 보고 확인한다. 횃불을 쓰면 불타오르는 원인이 정말로 저주인지 그게 아니면 크레이가 추측한 듯이 가스였는지는 어쨌든 그 힘이 이 무연 랜턴에 통하지 않는 건 틀림 없었다.
크레이는 일상적인 발걸음으로 동굴에 들어가, 얌전히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신화적 독뱀엔 가까이도 가지도 않고 목걸이를 주워왔다.
심바는 외로운 듯한 눈동자로 그 호박 목걸이를 바라봤다.

"...에에음 미안, 하지만 제2 시련은 없는 걸로 할 수 없을까"

크레이가 진심으로 미안한 듯이 말하면 심바는 마지못해 끄덕였다.

"그럼 제3의 시련, 가볼까!"

미묘한 공기가 흐르는 크레이와 심바에 비해 판은 실로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다.

"으, 음. 그럼 땅의 시련을..."

라고 심바가 말한 때다.

"할아범! 그 녀석은 우리가 대신 한다고오오오오오!"

귀에 거슬리는 새된 목소리가 굉장히 높은 곳에서 들렸다.

"그 목소리는 장난꾸러기 원숭이 모글 아냐. 네놈 또 무슨 질 나쁜 짓을"

이라고 반응한 심바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그곳에서 보인 건 거대한 악어와 닮은 머리였다. 심바마저 압도 할 듯한 사이즈다.

"......에?"

심바의 턱이 턱하고 벌어진다.
물론 머리뿐만이 아니다. 십수 미터는 있는 목이 움직여 집 한체 정도로 큰 동체로 이어져 있다. 그것을 지지하는 4개의 다리는 수령이 천 년인 거대한 나무보다 두껍다.
그 실루엣은 뇌룡이라 불리는 공룡과 닮았다. 단, 그 표피는 울퉁불퉁한 바위와 흙으로 덮여있다. 더욱더 여기저기에 석순 같은 가시가 나와 있다.
뇌암룡이라고 불러야 할 모습이다.
흑요석 어금니를 가진 악어와 닮은 머리가 포효하며 긴 꼬리가 좌우로 흔들린다.

"모, 모케레 무벤베 .... 이렇게 클 리가 없어..."

거대한 몸을 보고 심바가 신음했다. 본래라면 코뿔소가 겨우 코끼리 정도의 바위로 만들어진 생물과 싸우는 정도의 시련이었다. 그 괴물의 이름이 모케레 무벤베.
하지만 이 녀석은 코끼리의 수백 배다. 심바의 신음 소리에 답해 뇌암룡의 머리에서 턱 하니 앉아있는 작은 그림자가, 귀가 아플 정도의 소리로 웃었다.

"우햐햐햐! 이런 일이 있을까 하고, 아니 말하는 건 알아? 소가니야가 눈 떴던 때부터 조금씩 신력을 모아 여기까지 키웠어! 그 작은 인간 따위, 밟아 뭉개주겠다고!"

"이런 역원 아냐"

판이 말하는 대로 거기에 있는 건 열차 역에서 둘을 마중한 그 원숭이다.

"과연 너는 트릭스터라는 거네"

신화에 의하면 질서를 뒤흔들고 혼돈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짊어진 존재다. 창조와 깊은 연관이 있고 많은 경우의 세상에 변혁을 가져다 준다.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하다. 하지만 솔직히 직접 연관되는 자에겐 자칫하면 민폐인 존재다.

"그만해! 지난번 억지 부린 건 정통 시련이 되지 않아!"

심바는 확실히 질서의 편으로 이제까지도 장앙꾸러기 원숭이에게 잔뜩 휘둘렸겠지. 이 기회에 물어 죽여도 모른다는 기세가 만만하다.

"시련이라던가 말할 때가 아니잖아, 할아범!"

하지만 원숭이는 거친 말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제 재밌어하는 모습은 아니다.

"이 녀석들이 시련을 이겨내고 소가니야에게 건네줄 것을 건네준다고 그러면 또 그 녀석이 자려고 하면 어쩔래! 우리도 지혜를 잃고 그저 원숭이 그저 늙다리 사자야! 그런 거 참을까 보냐"

원숭이가 그렇게 말하면 심바는 놀라서 몸을 떨었다.

"그건... 확실히 그렇지도 모르지만 ... 그게 어떻..."

"시끄러. 소가니야는 이대로 신력을 방류하는 거야!"

원숭이가 그 목덜미를 내려치면 뇌암용은 커다란 입을 벌렸다. 거기서 어둠의 증기와 함께 무수한 증기가 분출됐다.
역시나 처음부터 직격은 노리지 않고 인간의 머니 정도의 바위 덩어리가 고열의 증기와 함께 쏟아져 정글 일각이 참담한 꼴이 됐다.

"너, 그 사람의 힘을 훔친 것뿐만이 아니네. 다른 힘을 빌린 거지!"

암흑의 증기를 보고 크레이가 소리쳤다. 점은 증기는 영겁의 종언을 맞이하는 골짜기의 찟는 자만이 쓰는 암흑의 에너지 원이다. 녀석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행동하는 상대에게 이것을 주는 일이 있다.

"빌릴까 보냐! 훔친 거다! 가지고 있던 녀석은 술에 취해서 곤드레만드레야"

뇌암용이 뒷다리만으로 일어서 크레이와 판에게 위협한다.

"어때 쫄았으면 빨리 돌아가"

"그, 그만둬. 아무리 너라도 정글을 이렇게 만드는 건 너무한 거야"

황금 사자도 암석과 증기의 파괴 숨결에는 역시나 허리가 빠진다.
하지만 판은 태연히 있다.

"과연 역시나 트릭스터. 찟는 자에게 선수 칠 줄이야. 하지만 역시 녀석들의 소유물을 이용한다면 이쪽도 용서 없어"

판의 손안에 에너지 캡슐이 나타났다. 손목 스냅만으로 크레이에게 던진다. 그것을 크레이가 공중에서 받는다.

"의미 모를 소릴 하지 마 이번엔 맞춘다고!"

초조해하는 기미에 원숭이가 이를 드러내고 말했다.
판은 아득한 머리 위에서 크게 벌어진 뇌암용의 턱을 테연히 바라봤다.

"네 패인은 말이야 역원군. 기지 공략과 조크를 무기로 해야 할 트릭스터가 정면으로 폭력 같은 거에 의지해서야"

"이 숲의 ... 아니 이 세상 밖에는 많은 편리한 도구가 있는거...야!"

두 사감이 저마다 말을 끝낸 때 크레이의 오른팔에서 은색의 빛이 격류가 솟구쳐 뇌암룡의 머리를 일격으로 없애 버렸다.

"어라?"

깨끗하게 꼬리 아래 바위 덩어리가 사라져 원숭이는 허공에 떠 있다.

"어래? 어라? 으응? 잠깐 잠깐 잠깐!"

알아차린 순간 원숭이는 공기 중을 해엄첬다. 역시나 신화 세계.

"어~~~~~~~~~~~라~~~~~~~~~~~~"

원숭이는 떨어졌다.

"죽진 않을까, 어라?"

"괜찮겠죠, 신화 세계니까"

조그만 죄악감을 느끼는 크레이의 얼굴에 판은 천연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조금 신화의 세상과 이야기 속을 혼동하는 게 아니냐고 크레이는 생각했다.

 

5.


"뭐랄까 본의 아니지만. 이해해주지 않겠나"

"전치사가 길어"

소가니야가 딱잘라 말하자 심바는 잠시 입을 뻐끔뻐끔거렸다.
그리고 겨우 다물고 헛기침을 하면 마지못해 계속 말했다.

"그들은 시련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거 몰라"

소가니야가 흥하고 얼굴을 피했다. 겉보기엔 어쨌든 행동거지는 어린애 같다.

"풍만한 아내이자 어미, 분방한 아가씨 여성의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 여신,,,"

크레이가 다시 정말이지 평소 그답지 않은 소릴 했다. 판이 흘끗 보면 귀까지 붉어져 있다. 또 취했다. 그냥 술에 취한 게 아니라 여신의 신력에 빠졌다, 주정하는 기미를 집중적으로 뒤집어쓰고 있다고 판은 판단했다. 과연 평소 인격이 변해버렸다.
본래라면 모두 끝났으니까 취해도 문제는 없다.... 였다.
하지만 실제론 여신의 태도는 이것이다.

"시련에 도전한 건 그쪽이 제멋대로. 소첩은 받아들인다고 말 안 했는 걸"

웅성웅성 주변을 에워싼 동물들이 수런거린다. 심바의 등에서 녹초가 돼 누워있던 원숭이도 몸을 일으킨다.

"엑? 그럼 왜 내가 그런 고생을 한 거야. 빨리 말해, 빨리"

원숭이가 싫어 싫어하며 몸을 흔든다.

"뭐야 너. 기운 났으면 나한테 타지마!"

심바에게 일갈 당해 당황해서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연기로 돌아간다.

"하지만 말이야 역시 그건 아냐 내가 이렇게 다 죽어가면서까지 박해하려고 했다고"

역시나 트릭스터. 본래 자신의 목적인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는데 열의를 담는 듯하다.
하지만 여신도 굳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떠든다.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그런 거 당신이 멋대로 한 거야. 소첩은 받아들이지 않아...... 인정 못 하니까! 소첩이 인식했다간 그게 진짜가 되니까"

"당신의 연인이 죽은 것이 사실이 돼?"

"그........!?"

빨리 입을 막은 판에게 무심코 대답해버릴 뻔 해 여신은 재빨리 자신의 머리를 야자나무 열매로 변화시켰다. 취해도 여신님이다. 아니 취해있기에야말로 인가.
그럼 자신도 두뇌 담당으로서, 그 전력을 다해 보인다고 판은 정했다.

"거의 인정한 거라고 봅니다만?"

판이 말하자 여신은 야자나무 열매를 즉 자신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완고하네"

판이 생글생글 있는 힘껏 나쁜 사람인 것 같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마치 마신 같은 미소다. 동물들이 --- 여신의 침대 대신인 창조의 암소마저 허리가 빠질 정도의 악당 얼굴이었다.

"인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네요. 충고 올리자면 당신의 바람은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설령 얼마나 당신이 신으로서 창조의 힘을 폭주시켜 주변을 술로 채운다고 해도 이 정글이 점점 짙은 술로 채워지는 것만으로 그가 본래 속해있던 세상까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덕누덕 기워 만든 세상의 숙명이다. 잔잔하게 서로의 사이로 걸어가는 건 가능하지만, 상대를 완전히 자신과 같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윽고 하나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세상이라서다. 그것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세상 일부에서 떨어져 나갈 뿐.

"무엇보다 증거가 우리가 시련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첫 번째 우연은 아니라 치고"

크레이가 싫은 얼굴을 한다.

"다음 동굴에서 우연 랜턴이 쓸 수 있다거나 은 팔이 모케레 무벤베를 날려버린 건 본래라면 이상한 일이에요"

판은 큭큭큭하고 악역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물들이 몸을 떨고 여신은 야자나무 열매로 변한 머리를 붕붕 좌우로 흔들었다.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판은 말을 이었다.
이 설득이야말로 두뇌 노동 담당으로서 그의 커다란 일이다.

"알겠습니까. 당신이 정말로 이 정글을 신화의 세상으로 돌려놓는다면 그 법칙에 어울리지 않는 도구는 애초에 움직이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썼다. 즉, 당신은 이미 여신의로서 힘이 부족해. 아무리 힘내도... 명계 아래서 죽은 연인을 되돌린다는 그런 일이 가능한 신화의 세상에 돌아가는 건 불가능한 거예요. 당신은 이 작은 정글의 여신에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연인의 유품을 받아들고 얌전히 정글 안에 틀어박혀 잊혀져..."

판의 얼굴에 강렬한 펀치가 박힌다. 금발의 소년은 날아가 지면에 구른다. 은색의 주먹 펀치다. 크레이였다.
그 얼굴은 희다. 분노로 취기가 가라앉은 거겠지.
판을 입 다물게 하고 크레이는 성큼성큼 여신에게 다가간다.
동물들은 누구도 그것을 멈추지 않는다. 무심코 말하지 않게 자신의 머리를 야자나무 열매로 바꾼 소가니야는 물론 제지하는 마을 할 수 없다.
크레이는 여신의 바로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면 여신은 큰 몸이다. 보통 인간 보다 한층 더 크다.

"역시 여신님이야. 박력 있어"

크레이는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리고 우편 가방에서 한 통의 봉투를 꺼냈다.

"여신님이 읽을 마음이 없으니까 내가 대신 읽어준다"

야자나무 열매는 격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소가니야가 본래라면 귀가 있는 자리에 막는 듯이 손을 댄다. 크레이는 그것을 무시라고 봉투 안에서 반지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반지 안에 조각된 메세지를 읽는다.

"... 영원히 너를 사랑해"

눈을 가늘게 뜨고 크레이는 무척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여신님 당신은 계속 이 반지를 보낸 사람에게 사랑받았어. 당신은 여신이야. 영원히 이 사람을 기억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세상이 당신을 기억해야 돼"

여신의 손이 천천히 귀를 누르던 자세에서 자신의 가슴을 끌어 안는 자세로 변한다.

"숲 밖에 사는 당신의 백성은 모두 지금도 당신을 믿고 있어. 그 녀석들이 당신을 기억하는 사이엔 당신도 이 반지의 사람을 기억할 수 있어"

크레이는 더욱 한 걸음 나가아 여신의 옆으로 다가갔다. 암소의 유방 위로 오른다. 거긴 희미하게 따스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신을 다정하게 감싸는 가족의 온기다.

"숲이 이 세상에서 떨어져도 이 반지의 사람에겐 갈 수 없어...... 정말로 바라는 건 그게 아니지? 힘들어서 사라져 버리고 싶어. 하지만 ... 안돼. 그건 안돼.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외로워해. 그 중 몇 명은 이 반지의 사람도 기억해. 모두 당신이 이 반지를 손에 들고 미소 지을 거라고 믿고 있어.... 나도야. 당신이 미소 지을 거라고 믿고 전하러 왔어"

크레이는 여신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는다.
소가니야는 주먹을 쥐었지만, 그 손에는 힘이 담기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벌리기 전에 크레이는 빙글 주변을 둘러봤다.

"당신들도 여신씨의 심중(동반자살)에 어울리는 것보다 그녀를 지지해줘"

동물들에게 알리고 크레이는 소가니야의 손을 폈다. 흑진주 반지를 떨어트린다.
여신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이건 영원, 인 거야? 사랑은 영원한 거야?"

크레이에게 그에 대한 대답은 없다. 그에겐 영원을 믿을 일이 없어서다.
하지만 소가니야는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그녀는 웃었다. 여신이라서다. 자신은 주는 것을 약속한 여신이라는 것을 떠올려서다.
여신은 웃었다.
그리고 여신은 동시에 울었다. 방대한 양의 눈물이 흘러넘친다. 그것은 모두 술이다.
그윽한 고농도의 향기 최상급의 술.
술의 홍수에 삼켜져 크레이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어딘가로 옮겨졌다.
문득 눈이 뜨이면 옆에는 파트너가 있다.
크레이와 판은 역 안의 의자에 앉아 있다. 덮개 없는 비교적 검소한 홈이지만 주변은 제법 근대적인 건물이 늘어서 있다.
그, 열차의 역이었다.

"... 돌아 온 건가"

크레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주변이 술로 채워져 있던 정글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마법은 사라졌다. 기분도 상쾌하다. 이틀은 취한 기미는 어디에도 없다.

"신화는 이야기로 돌아갔어"

판의 중얼거림이 크레이의 귀에 닿았다. 그는 웃지 않는다. 똑바로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어딘가 외로운 듯한 얼굴이었다.

"...미안했어"

크레이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헤? 뭐니 갑자기. 때린 거? 그거 진심이었지. 사과하는 것 정도론. 술 한 통 정도는 사줘....."

"아니"

크레이는 확실히 말을 잘랐다.

"때린 건 사과 안 해. 그런 일이 있으면 몇 번이고 때려. 하지만 너는 내가 그렇게 하게 만들려고 그런 소릴 한 거지"

힘든 현실을 관철하는 것. 그리고 다정한 희망을 전하는 것.

"배달은 내 일인데 반은 밀어붙였네. 미안"

크레이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판을 바라봤다.
그리고 판은 조금 어깨를 으쓱하고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응했다.

"일 분담은 임기응변. 하지만 그건 두뇌 노동 중 하나야"

그때 희게 빛나는 안개를 두르고 열차가 홈으로 들어왔다.

 

제 4화 야자 나무 술꾼 여신 끝

 


제5화 깊은 구렁텅이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세상 밖에 있는 영원의 오후 숲과
세상 안에 있는 음악으로 채워진 바다를
하얀 안개가 잇는다.
그리고 세상에 마음이 채워진다.

 


1.


해상은 깊은 안개로 덮여있다.
크레이와 판을 인도한 빛나는 안개가 아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안개다.
여긴 신구 대륙을 잇는 대양이지만. 다른 지구에서 이것은 북대서양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자연 안개에 싸인 대양에 한 척의 보트가 떠 있다. 빛나는 안개를 두르고 나타난 금발과 흑발의 콤비. 판과 크레이가 탄 보트다.
대륙이나 섬 연안이면 어쨌든 주변 수백 킬로는 대륙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에선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아주 작은 보트다.

"이제 슬슬 가수가 말해"

판이 보트 가장자리에서 바다로 뻗은 손을 빼냈다.
아무렇지도 않은 동작으로 판은 손가락 끝을 입에 머금는다.

"...흐음 밍밍한 맛"

"바닷물의 차이가 있는 건가?"

크레이가 그렇게 말하면 판은 곤란하네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뭐야 그 얼굴은"

"설탕과 소금도 구분못하는 혀의 주인은 바닷물은 어느 것이고 똑같이 느껴지는 거네에"

판이 말하면 크레이의 얼굴에 조금 붉어졌다. 밤눈이 밝은 둘이기에야말로 달빛만으로도 얼굴색의 변화를 안다.

"사소한 미스겠지! 불만 있으면 네가 요리해. 어지간히 잘하는 주제에"

"그렇기에야 말로야 후배군. 내 요리는 맛있어. 즉 늘 먹을게 아냐 특별한 때 해야하는 거야"

"오우 그런가. 하지만 말이야 무슨 소릴 해도 네가 땡땡이를 잘 치는 건 못 얼버무린다고. 그리고 슬슬 후배취급 그만해"

"무슨 소릴까나아. 아니? 고전 예술 세계 같은 데선 하루라도 입문 일이 다르면 일생...."

"우린 우편국이야"

크레이가 판을 흘끗 바라봤다.

"그건 그렇지만 ...응? 잠깐 기다려. 뭔가 가수완 다른 음악 같은 게.... 허공...? 후배군 저거!"

"그러니까 슬슬 후배라고 부르지 말라고"

입으로 항의 하면서 크레이는 순순히 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봤다.
판의 얼굴이 진지해서다. 거기에 청각은 판이 더 예민한 건 알고 있다. 그가 들었다면 들은 것이다.
안개 건너로 반짝반짝한 빛이 보인다. 확실히 희미하게 음악도 들린다.
작은 산 같은 거대란 배가 힘차게 다가온다. 갑판 위에 많은 빛이 켜져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음악도 들린다. 댄스곡이겠지. 파티인지 뭔지가 열리고 있다. 뱃전에 늘어선 둥근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셀 수 없을 정도다.
화려한 객선이 해상을 여행하고 있다.

"위험하네. 여길 모르는거 아냐?"

그건 그렇겠지. 이쪽은 너무 작은데다가 이 안개다. 부딪친다고 해도 건너는 상처하나 입지 않겠지만, 이쪽은 순식간에 박살 난다.

"침착하고 있을 때야! 비켜!"

크레이가 소리 지른 때 힘껏 보트가 가속했다.
아무래도 해면 아래서 가수가 도와준 모양이다.

"야아 이건 미안하네에"

"길 안내 겸 호위인 우리가 수고를 끼치면 어쩌 잔거야. 됐으니까 너도 비켜"

쑥 노를 내밀지 떨떠름하게 판도 손에 잡았다.
힘낸 보람은 있어서 큰 배는 빗나가 이쪽에 충돌하는 일 없이 지나갔다.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였지만 이마에 땀이 스민다. 그것을 닦으며 크레이는 배를 배웅한다. 겨우 배 이름을 볼 여유가 생겼다.
크레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무슨 일이야... 저건 ... 그 배인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역사가 있다는 건가..."

"왜 그래?"

자신이 안전하다는 걸 깨닫자마자 노를 던져버리고 엎어져 있던 판이 느릿느릿 일어났다. 하품을 물어 죽이면서 배 이름을 본다. 하지만 이미 안개에 가려 배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흥미를 바로 잃을 것 같았던 판이 몇 번인가 눈을 깜빡이고 배 이름이 사라진 방향을 가만히 바라 본다.

".... 곤란하네"

작게 중얼거린다.

"아아 정말이야. 너는 우리 역할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크레이의 목소리는 고뇌로 가득 찬 울림을 띠고 있다.
하지만 돌아온 판의 답은 평소와 다른 진지한 목소리다.

"무슨 소리야. 우리 이외 누구의 일이란 거야 저게"

보트 위에 일어선 판은 안개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화려한 객선으로 쑥 몸을 내민다.

"어이 위험하잖아. 진정해. 설마 네가 임무 외 인간을 돕다니 그런..."

"인명 구조? 누가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저기에 회수해야 하는 편지가 있어. 게다가 대량으로. 어떻게 된 거야 정말. 묻고 싶어"

판이 드물게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크레이는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것도 포함해서 여기에 출구가 열려있었던 게 아냐?"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렇다면 미리 고지하겠죠. 생각할 수 있는건 ..."

판은 목을 갸웃하고 한층 더 괴로운 얼굴이 됐다.

".... 우연? 있을 리 없을 정도로 낮은 확률의 우연이지만"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은 언젠가 일어난다고 네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크레이가 침착한 어조인 것은 드물다.

"아아아 정말. 그런 일은 어찌 되든 좋다니까. 중요한 건 우린 가수의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여기에 온 거라고"

"우린 두 명이야. 분담하면 돼는 게 아닌가?"

크레이의 냉정한 대답에 판은 조금 생각했다.

"내가 저 객선에 회수하러 가서 네가 전해? ... 나쁘진 않지만 너는 어느 것이 회수해야 할 편지인지 몰라. 그리고 너는 가수와 대화할 수 없어. 어느 쪽이고 두뇌 담당인 내 일이야"

판이 말하면 크레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확실히 이쪽 일은 나로선 무리야. 하지만 객선 쪽이라면 달라. 저쪽이라면 배달만으로 끝날 테니까"

그렇게 말한 크레이의 얼굴을 판은 눈을 천천히 크게 뜨고 바라봤다.

"저기 후배군..."

"저 배 이름을 넌 보지 못했지"

판이 말을 도중에 자르고 크레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저건 타이타닉이다"

역시나 판은 크게 눈을 떴다. 그 배 이름은 누덕누덕 기워진 어느 역사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역사상 많은 희생자를 낸 해난사고의 주역으로서.

"그 얼굴이라면 저건 네 역사에도 침몰한 모양이네"

크레이가 말하면 판이 조금  끄덕였다.

"...네 역사에서도?"

"아아"

크레이는 쓴맛을 얼굴에 잔뜩 펼치고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타이타닉이 여기에서도 침몰할 가능성은 높아. 라고 할까 거의 확정이야. 그리고 침몰하면 대량으로 전하지 못하는 편지가 나와"

그렇기에야말로 판은 이제곳 사라질 편지가 대량으로 저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편국의 직감을 쓴거 겠지.

"네가 말하고 싶은 건 알았어. 아까 맞물리지 않는 대화 이유도 말이야"

판이 험악한 표정이 된다.

"저 배를 가라앉지 못하게 하면 된다는 거죠. 그러면 편지는 사라지지 않고 전해져"

"그래. 무리라고 생각해?"

"생각해"

판은 즉각 긍정했다.

"생각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죠"

크레이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오른다.

"그렇게나 놀랄 거 없죠. 나는 별로 남이 죽는 것을 지나치고 싶은 게 아냐. 그저 뭐어 그... 품는 양에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야 우리도. 거기서 흘러넘친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게 아닐까 하는 거야, 너는 미숙하니까"

그렇게 말하고 판은 다른 곳을 바라봤다.

"뭐 무리는 하지 않도록"

"아아"

크레이는 냉담하게 끄덕일 뿐이다. 하지만 그도 판이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빛나는 안개가 어딘가에서 다가왔다.
아무래도 숲이 크레이의 제안을 승인한 것 같다. 안개는 크레이의 몸을 감싸고 또 하나의 세상 안에서 안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2.


크레이는 배 안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배의 어디쯤인지는 정확히는 모른다. 통로는 좁고 천장을 향한 파이프가 뻗어있다. 어디에선가 희미한 기계음도 들려온다. 엔진이 아닌 에어컨 설비인가 뭔가다. 필 시 여긴 배의 꽤 아래층이겠지. 승객에게 보일 것을 생각한 내장은 아니다.

"잠입하는 것뿐이라면 간단하니까"

어떻게 사고를 피할지에 대한 막연한 아이디어는 있다. 하지만 먼저 배 안의 지리를 파악하지 않으면 어떻게 움직이지도 못한다. 이 배는 승부원 승객 합쳐 2천 명 이상을 태우고 화려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작은 마을 규모다.

"일단 움직일까..."

크레이는 적당히 걷기 시작했다. 잠시 통로를 똑바로 나아가면 십자로에 부딪쳤다. 정면은 문 오른쪽은 내려가는 계단 왼쪽은 올라가는 계단이다.

"흐음..."

크레이는 어느 쪽으로 갈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하지 전에 그건 건너에서 정했다.
덜컹하는 소리가 났다. 왼쪽 계단을 내려온 누군가가 다리를 헛디딘 소리다.

"꺄아악!"

목소리와 함께 보이 제복을 입은 작은 몸이 계단에서 떨어진다. 손에 든 물건도 허공에 날린다.

"이런"

빨리 뛰어든 크레이는 그 몸을 받아냈다. 가벼워서 오른손만으로도 충분하다.
힘을 빼고 이쪽 목덜미에 달라붙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크레이는 비어있는 왼팔로 물건을 붙잡았다. 대충 원형 케이스다.

"괜찮아?"

크레이는 상대를 내려주고 얼굴을 바라본다. 눈썹이 두껍고 조금 늘어져 있지만 그 이외엔 귀여운 얼굴이다. 연한 색 머리를 짧게 자르고 오른쪽 눈초리에 큰 애교 점이 있다. 잠시 멍하니 크레이를 바라봤다.

"괜찮냐고 물었는데?"

"......? 앗, 네. 우왁, 가까워?"

겨우 사태를 파악한 것 같다. 크레이를 들이박는 듯이 거리를 취했다.

"죄송합니다! 감사했습니다!"

서둘러 깊이 고래를 숙이고 허둥지둥 사라지려고 한다.

"잊은 거라고?"

"....엑? ...악"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고 텅 빈 것을 겨우 알아차린 것 모양이다.

"돌려주세요. 소중한 것 입니다아.."

반쯤 울며 돌아왔다.

"잊어버린 건 그쪽이지"

쓰게 웃으며 케이스를 건네주려다 문득 크레이의 표정이 변했다.

"미안한데 잠깐 기다려줘"

"네?"

딱 멈추자 슬픈 듯한 얼굴이 된다.

"저 죄송합니다. 휴식 시간 짧습니다. 연습할 수 있는 거 지금뿐입니다. 그러니까 장난치지 마시고 돌려주세요"

큭하고 콧소리를 내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저 기다리라고 말한 위치에서 성실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남 듣기 나쁜 소리 하지 마. 여자애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어"

"에? ...에?"

다시 멍해진 얼굴이 돼 한 박자 늦게 무서워하는 얼굴이 된다.

"에, 에음. 어째서 아는... 아, 아냐. 어디에 여자애가 있습니까? 저는 존입니다. 죠안이 아니라 남자애예요?"

"일일이 한 템포 늦는 녀석이네, 너"

크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초대면인 사람에게까지 지적당했어!? 아직 곡도 들려주지 않았는데!?"

"어이 정신 차려"

갑자기 주저앉으려는 것을 재빨리 지지하면서 크레이의 얼굴에 실패한 건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하지만 뭐 이 녀석 밖에 없나"

크레이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기이, 그으으...."

떨고 있다. 자칭 존에게 자신으로선 다정하게 보일 생각인 미소를 띤다.

"존이던 조안이던 좋아하는 쪽으로 불러 줄 테니까. 조금 부탁하게 해줘"

자칭 존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가 보기엔 크레이의 표정은 상어가 웃는 듯이 보이겠지.

"무엇이든! 무엇이든 하는 말을 들을 테니까 죽이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비밀도 입다물어 주세요. 나쁜 짓만 아니라면 들을 테니까. 돈은 조금밖에 없지만 전부 드리겠습니다"

"... 아니, 정말로 남 듣기 나쁘니까 그만해 줄래...... 이것도 돌려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갑자기 탁하고 튀어오는 듯이 날아와 존은 케이스를 돌려받았다.

"뭐야 이거? 연습이라고 말했는데..."

케이스를 소중한 듯이 쓰다듬는 존에게 크레이가 묻는다.

"트럼펫입니다. 친절한 아저씨가 사줬습니다"

방실방실웃고있다.

"...... 그런 이여기 실제로 있구나...."

조금 놀란 목소리로 크레이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기쁜 듯이 말하고 죤이 등을 돌린다.

"이봐! 잊지 마. 내 부탁을 들어준다고 했잖아"

크레이는 손을 뻗어 존의 어깨를 붙잡았다. 얇은 어깨다.

"히이잇! 그만두세요. 목숨과 정조 만큼은 용서해줘!"

비명을 질러버렸다.

"그러니까 남 듣기 나쁜 소리 하지 말라고"

여기서 누군가가 들어버리면 그냥 있어도 악화 된 상대가 더욱 귀찮아질 것 같다. 역시 이 아가씨는 포기하고 달리 부탁할만한 상대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끌어당긴 이상 이제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일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죄송합니다! 밴드 분들 이외에 제가 여자라는 게 들키면 곤란합니다. 밴드분들에게 민폐를 끼칩니다! 부디 비밀로 해주세요. 뭐든 합니다. 아, 하지만 , 그 ...야, 야한 짓 만은..."

"할까 보냐! 내 취향은 좀 더.... 아니 그게 아냐. 그게 아니라고"

뭐랄까 굉장히 에너지를 빨린 얼굴로 크레이는 푹 어깨를 떨어트렸다.

"부탁이란 건 메세지를 전하는 거야. 나는 크레이브 소릿슈. 크레이면 돼. 직업은 우편국이야"

그렇게 말한 크레이의 얼굴을 존 혹은 조안이 멍한 얼굴로 입을 열어 올려다본다.
...... 역시 이 녀석에게 부탁하지 않는게 좋을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지만 건너에서 갑자기 물었다.

"우편국씨! 그건 두 번째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크레이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트럼펫 케이스는 떨어트리지 않게 팔꿈치에 끼워 넣었다.

"아, 그, 그런가"

"네! 사실 이걸 사주신 것은 마을 우편국장 고든씨입니다. 고든씨는 무척 멋있는 분이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신 것도 고든씨고 신대륙이라면 여자라도 밴드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우편국씨라면 언제라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오빠는 고든씨와 닮았네요 친척입니까!"

도중에 전혀 숨이 끊기지 않고 정말 빠른 속도로 말해 무슨 말을 하는지 크레이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알겠는 건 그녀의 폐활량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너는 좋은 트럼펫을 불 거라고 생각해"

라는 말만 했다.

"......하지만 그 항상 한 패턴 늦는다고, 스승님들은 늦었다가 빨랐다가"

그건 성격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스승들?"

"네! 이 배의 악단인 사람들입니다! 잡역부 남자아이를 모집하고 있어. 조금 일하고 바로 옆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신대륙에도 가서 굉장하다고 생각했지만 남자애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지만 바로 들켰지만 저에 대해 알아도 입을 다물어주는 좋은 사람들입니다"

남장하고 고용됐지만 바로 들켰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그거야 들키겠지. 남장이라고 해도 남자 옷을 입고 있을 뿐이다. 아까 안았을 때 푹신푹신한 것이 만져졌는데 가슴을 전혀 감추고 있지 않다. 평평한 사이즈가 아닌 것이다.
 정말로 그밖에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건 의문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이미 뒤로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별난 소녀를 쓸 수밖에 없다.

"조안은 함장에게 메세지를 전해줬으면 해"

그리고 말해야 할지 어쩔지 망설였지만 역시 가르쳐주기로 했다.

"전하지 못하면 이 배가 가라앉아"


3.


"구조신호?"

에드워드 J 스미스 함장이 바라보자 조안은 머릴 숙였다.
애초에 함장에게 전해달라고 한 건 정말이지 예상 밖이었다.
흰 수염을 풍성히 기른 베테랑 방장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안을 위에서 바라보았다.

"너는? 무선실 소속으로 보이지 않는데?"

"앗, 에 음. 악단 보이인 존..... 스미스입니다"

조안이 그렇게 이름을 대면 함장은 한숨을 쉬고 조금 신음했다.

"내 미들 네임인 J는 존이야. 알고 있니?"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노골적으로 쇼크 받은 얼굴이 돼 버린다. 존이라는 가짜 이름은 조안이라는 이름에서 따온거 지만 스미스라는 건 함장에게서 따온 것이다. 평범하니까 이거면 되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 탓에 동성 동명이 된 것은 조안 자신은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함장은 조안이 거기까지 동요하는 이유를 모른다.

"그런가. 네가 소문의 악단 보이인가. 그래서 일부러 나에게 보낸 건가.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함장은 수염을 훑었다.
그리고 조안의 보이 제복에서 전혀 감추지 않는 가슴도 흘끗 보고 바로 눈을 피했다. 조안은 시선의 의미를 모른다.

"저기이... 제가 소문났습니까. 뭔가 민폐를 끼쳤습니까? 호 혹시, 트럼펫 연습이 시끄럽다고 손님의 불만 같은 게....!"

"그런 건 아냐. 일하는 데 열심이고 노력가인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야"

함장은 큰 손으로 조안의 머리를 탁 쳤다.

빙글 주변을 둘러본다. 선교에서 당직하고 있는 것은 1등 항해사 윌리엄 머독과 6등 항해사 제임스 무디다. 머독은 떫은 얼굴이지만 무디는 싱글싱글 웃고 있다. 함장이 바라보자 서둘러 긴장하지만 결국 함장은 그 6등 항해사에게 살짝 윙크를 보냈다.
하지만 가지고 온 전언은 그런 온화한 공기에 이야기할만한 내용이 아니다.
함장도 표정을 굳혔다. 조안의 머리에 얻어져 있던 손을 떼고 헛기침한다.

"그래서 악단인 네가 무선실에서 이런 중대한 전언을 가지고 왔다고"

조안은 서둘러 얼굴을 들었다.

"앗, 네. 그렇습니다. 중대입니다. 바로 진로를 변경해 주세요"

"그건 내가 정할 일이다! 네게 지적할 일이 아냐"

다정한 함장이, 직무에 관련되는 것에 부외자의 말참견을 허가할 만한 인물은 아니다.

"6등 항해사 무선실에 전화. 이 같은 중요 사항에 대해 어째서 전화할 틈도 없었는지 그것을 묻는다. 그리고 어째서 밴드 보이에게 부탁한 건지도"

밴드 맴버는 무슨 일이 있는 경우에 대비해 고급 승무원에게 지도를 받게 돼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선원은 아니다. 계약에 따른 것이다. 입장 적으론 승객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이제까지도 조안은 이래저래 선원들의 잡무를 떠맡고 있다. 함장도 그걸 모를 리는 없다.

"함장! 무선실 분들은 바쁜 모양이라. 뭔가 손님이 이것에 치인다고 치인다는 모양이라! 그래서라고 생각합니다. 에 음, 뭐더라... 그래. 저는 손님에게 부탁받아서 마침 무선실에 가고 있어서"

조안의 작은 손이 함장의 두꺼운 팔을 붙잡았다.
도중에 뭐더라하고 말한 참에 함장이 띤 미소가 애매해졌다.

"네가 나를 속인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함장은 부드럽게 조안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네가 속았을 가능성은 있어. 우리 손님은 장난을 정말 좋아해. 중급 선원 제복을 팔거나 무선 용지를 훔치는 정도는 당하니까"

세계 최대 최고급 객선은 세상 유수의 부호들이 타고 있다. 한가함을 버티지 못하는 권력자 정도, 오락을 원한 끝에 끝없는 상대도 없는 것이다.

"이 계절에 이 위도에서 빙산 따위 역시나 믿기 어려워"

그러게 말하고 함장은 동정적인 눈으로 조안을 봤다.

"속은 게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슬아슬하게 크레이에 대한 것을 삼키고 조안은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으로 함장을 바라봤다. 함장이 불편한 얼굴이 됐다.

"아아... 응. 네가 성실하고 착한 아이인 건 미스터 하토리에게도 들었다. 장래성이 있는 아이라고도 했고"

"밴드 마스터가...?"

조안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함장! 무선실이 나왔습니다"

"오오, 그런가"

조안의 손에서 힘 빠진 순간에 함장은 함내 전화로 향했다.

"음? 음. 음"

하고 급히 전화를 귀에서 떼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쪽도 큰일인 것 같네. 알겠다. 힘내라"

전화를 끊고 함장은 굳은 얼굴로 1등 항해사에게 명령했다.

"침로 변경. 이 지점에 최단 항로를 도출해라. 기관실에 최대출력 준비를"

그리고 시원하게 명령이 계속됐다. 비번 선원들에게도 명령이 떨어진다.

"공화국적 객선에서 빙산과 격돌해 침몰했다는 구원요청이다. 접근을 간과하면 우리도 같은 꼴을 당할지도 몰라, 전 승무원을 파수로 새워"

타이타닉은 여기서 수십 킬로미터 끝에서 발신된 조난신호에 응해 가라앉은 구대륙 섬나라 왕국선적 객선을 구원하러 가기로 했다.

"모처럼 교대시간이었는데. 잠시 쉴 수는 없겠네요. 함장"

"그러니까 조타는 너에게 맞긴다고 빌"

그렇게 말하고 겨우 함장은 조안을 돌아봤다.
그녀는 계속 선교 구석에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무선실은 확실히 네가 말하는 대로 큰일인 것 같다. 나중에 이쪽이 먼저 중요하단 심한 말로 파슨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함장은 온화한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수신을 보증했으니까 장난이 아닌 건 확실하다. 라는 건 일각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사람을 구하는 건 중요하지만 우린 먼저 손님의 안전에 책임을 가져야 해"

"그러니까 이 배가 상하거나 하면 ... 안되는 거네요?"

"물론"

조안이 거듭 물으면 함장은 순간 의아한 듯했지만 바로 강하게 끄덕였다.

"자아 이제 가도 좋다고. 그게 아니면 잠시 선교를 견학할래?"

손자를 보는 할아버지 않는 눈을 향했다.
그것은 고마웠지만, 여기에 남을 순 없다.

"그 밖에도 일이 있어서"

"트럼펫 연습도 하지 않고?"

함장은 길고 흰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윙크를 하고 보내줬다.
그다지 잘하진 못했다.

 

선교를 내려온 조안은 B덱 구명 보드 앞에서 3번째 녀석을 목표했다.
크레이와는 거기서 만나기로 했다.
서둘러 가면 크레이가 트럼펫 케이스를 가지고 신호했다.
오른쪽 눈 주변에 검은 멍이 들어 있다.

"......괜찮아?"

"박진감 넘치는 연기가 필요하다고 그 누나가"

"아아 로빈씨 같아. 아파요?"

"아무렇지도 않아"

크레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푸트렐씨도 맡아준 거네요"

"좀 더 까다로운 트릭을 제안했는데 귀찮았으니까. 좋은 타이밍에 무전계를 끌어냈어"

조안이 소개한 두 사람의 협력자는 훌륭히 목적을 끝냈다. 소설가 푸트렐에게 장문의 무전을 부탁하고 거기에 분방하다고 알려진 브라질 제국 공주님이 끼어든다.
둘을 가르려고 힘내는 사이에 그들 중 어느 쪽인가를 시중드는 척 대기하고 있던 크레이가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조안에게 전한 거짓 전문을 진짜라고 보증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조금 타이밍이 빗나가면 전부 다 안됐고. 두근두근했습니다"

"그럴까, 나도 조금 불안했어. 하지만 어딘가에서 괜찮다고 믿었어..."

함 내에서 제일 사람들에게 귀여움받고 있는 조안의 덕분에 거짓 전문을 믿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크레이가 생각한 것은 어쨌든 진로를 변경시키는 것이다. 이 앞에 빙산이 있다. 위험하다. 같은 걸 무턱대고 말하는 것으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입장을 바꾸면 크레이도 믿지 않겠지. 거기서 나를 믿어줘라고 반복하는 건 너무 생각이 모자란다.
해야 할 일은 충돌을 피하는 것으로 미래에 사고가 일어난다고 믿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믿기 힘든 것을 전할 필요는 없다. 믿기 쉬운 것으로 상대의 마음을 변화시키면 그거면 된다.
바다 남자라면 무시하지 못하는 조난신호를 조작하는 것으로 타이타닉의 진로를 본래 사고현장에서 변경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나는 운이 좋아. 그건 조안과 만난 걸로 증명 됐고"

"에에음 저도 남의 운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이런 틈이 많은 성격으로 자라버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내 뒤에 있는 누군가는 그걸 읽어내고 조안과 만나는 곳에 보내준 걸지도 모르겠네"

므레이는 수평선 건너를 멍하니 바라봤다. 거기에 달빛을 반사래 희게 빛나는 안개가 나온다.

"뒤에 있어? 우편국 국장씨 말인가요?"

"그것보다는 조금 더 대단한"

대답하고 크레이는 깊은 생각에 빠신 얼굴이 됐다.
그들 잇는 자를 모아 안개에 의해 여기저기로 보내는 것이 대체 무슨 자인지. 크레이는 실제로 그것을 모른다. 판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아는 자와 만난 적은 없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장소에 필요해진 누군가를 보내는 안개. 그것이 자연 현상일 리는 없고 컨트롤 하고 있는 지성의 존개를 느낀 적은 몇 번인가 있다. 아마 잇는 자마저 뛰어넘은 존재 겠지. 신, 이라는 것에 가까운 뭔가다.
그것이 자신의 목적에 따르는 한 크레이는 무리하게 밝혀내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러세요?"

조안이 묻자 크레이가 정신을 차렸다.

"아니. 파트너의 배달은 잘 됐나 하고 "

얼버무릴 생각으로 말한 크레이였지만 판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어 말하자 신경 쓰인다. 조안에게도 그건 표정으로 전해졌다. 계속 무뚝뚝하고 눈매는 나쁜데 그런 건 표정에 잘 나오는 남자다.

"어래저래 큰일이네요......"

조안은 크레이가 바라보는 곳을 쫓았다. 하얀 안개와 함께 어두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조안은 한 번 더 그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왜 트럼펫을 일부러 나에게 맡겼어?"

어딘가에 둘 수도 있었는데 조안은 나중에 돌려달라고 크레이에게 부탁했다.

"에에음... 나는 크레이씨를 믿지만 크레이씨가 제가 믿는다는 걸 믿게 해서 안심하고 모두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닌가 하고"

거기서 말을 도중에 자르고 조안은 크레이를 올려다봤다. 또 버려진 강아지 같은 얼굴이다.

"지금 무슨 의미인지 알았어요?"

"아아, 알겠어"

크레이는 조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짧게 잘랐지만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라 만지는 기분이 좋다. 쓰다듬어진 조안은 간지러웠지만 도망치진 않았다.

"다른 누구 보다 너 같은 녀석이 꿈을 빼앗기지 않아서 잘됐어"

크레이는 어딘가 채워진 표정이다.

"꿈?"

"나에겐 없는  거니까......"

"하지만 크레이씨. 우편국이라고 말한 때 굉장히 자랑스러운 얼굴하고 있었어요. 그 얼굴을 보고 나는 그러면 우편국씨도 되고 싶었었네 하고 떠올렸는걸. 뭔가 지난번 들었어요, 트럼펫을 부는 때의 난 굉장히 어설픈 주제에 자신이 세계 제일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그렇게 되고 싶다고 바랬는데. 크레이씨의 그런 얼굴을 보고 나도 그런 얼굴이 아니었나 하고... 어라?"

"내가... 자랑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어?"

크레이가 뭔가 동요하고 있는 표정이 돼서 조안은 당황해서 화제를 바꿨다.

"저기저기. 이걸로 이 배가 빙산과 부딪칠 일은 없는 거네요?"

크레이가 아차 하고 정신을 차린다.

"빙산과는. 그쪽은 괜찮을거라고 생각하는데...."

크레이의 답이 뭔가를 품어버리는 이유는 조안도 바로 알아버렸다.

"어라... 뭔가 있었을까"

배 여기저기서 떠들썩해진다.
아무래도 갑판 반대 측에서 뭔가 일어난 모양이다.

"너는 이제 됐어. 어딘가 안전한 곳에 있어!"

그렇게 말하고 크레이가 달려간다. 하지만 물론 조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4.


진행방침 우전방.
밤의 어두운 해면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하얀 물보라가 달빛을 반사한다,
거기서 밤하늘로 튀어 오른 거대한 것을 보고 타이타닉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른다. 베터랑 선원들도 주저앉아있다.

".... 바다뱀이다"

확실히 그것은 머리를 쳐든 뱀과 닮았다. 단 타이타닉의 굴뚝을 한입으로 찢을 정도의 커다란 턱을 가진 뱀이다. 전설의 바다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긴 동체 --- 로 보인 것이 물결친 때, 배부분에 무수한 빨판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라고 저건 크라켄이다"

*크라켄 -노르웨이 바다에 나타난다는 전설적 괴물

다른 누군가가 소리쳤다. 승객일지도 모른다. 발음으로 보면 구대륙 북방 출신이겠지.
크라켄은 이 근처 뱃사람들의 전설에서 등장하는 두렵고 거대한 괴물이다. 작은 섬 정도인 오징어나 문어라고 전해진다.
어느 것이던 그 초 거대한 촉수는 구불거리며 똑바로 하늘을 향해 뻗었다고 생각하면 다음 순간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대로는 선체가 두 동각나---.
촉수 반이 탁하고 사리진건 그 때였다.
은색의 빛이 타이타닉호의 뱃머리에서 용솟음쳤다. 그것에 닿은 부분이 날아갔다고 하기보다 분해 당해 사라져버린 것이다.
물론 크레이의 짓이다.
그는 멍하니 잇는 조안을 돌아봤다. 이번에야말로 무서워하는 건가 하고 생각한 다음 순간 그녀는 짝짝하고 작은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아직 칭찬하기엔 일러"

한발에 모든 에너지를 다 쓴 캡슐을 오른팔에서 빼내고 예비로 건네받은 다음 캡슐을 장전한다.
타이타닉을 침몰시긴 빙산을 지워버리기엔 이 은으로 된 팔을 가지고도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뭔가 필요한 사태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라는 것으로 판에게 품에서 빼앗아 가듯이 받아온 에너지 탄은 3발. 전부 쓰면 지국 예산은 다 떨어져 내년까지 빵과 물만으로 지내게 되라고 말했다.
그 2발째를 크레이는 바로 쓰게 됐다.
이번엔 정면으로 다른 총수가 튀어 올랐다. 이 크라켄 같은 것은 오징어 계열일까. 끝이 조금 부푼, 포완 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른 것과 비교해도 더욱 긴 다리다.

포완- 오징어의 다 리중에서 제일 긴 한 쌍의 다리.

그것이 이번엔 옆으로 휘두른다. 해면과 거의 수평 높이는 평온한 파도의 끝에서 수십 미터. 타이타닉에서 보면 오른쪽 스윙.
방금전 촉수의 출현으로 타이타닉은 회피하려고 왼쪽으로 키를 꺾었다. 이대론 카운터 당한다.
크레이는 망설이지 않고 최대 출력으로 은 팔의 파워를 해방했다.
열이나 폭풍이 아닌 물질의 결합력 그 자체에 간섭하는 것이 이 팔의 힘이다. 포완이 도중에 잘렸다. 끝 부분이 해면에 떨어진다. 아직 관성은 있다. 그대로 해면 아래를 나아간다.

- 부딪쳤다.

배가 크게 흔들렸다. 거기에 더욱 검푸른 액체를 바다에 흩뿌리며 끊어진 포완이 뱃머리를 스쳤다. 타이타닉 정도의 큰 배가 아니면 이미 그것만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아니, 일격으로 침몰을 피했을 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틀림없다.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어난다.

"크레이씨 이건!?"

"또 온다고. 너는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라고 말하고, 크레이는 알아차렸다. 어디에도 안전한 곳 따윈 없다.

"크레이씨 저쪽!"

조안이 해면 일각을 가리켰다. 타이타닉이 다시 왼쪽으로 선회하고 있어 아까 속수가 뻗어 올라온 해역은 완전히 우측이 되어있다.
거기에 타이타닉보다 한층 작은 정도의 고둥 같은 것이 떠올랐다. 조개 입구에서 몇 개의 촉수 포완이 나와 있는 것을 안다. 크라겐의 정체는 초거대 암모나이트였다. 그리고 촉수가 붙어있는 곳에 있는 바보처럼 큰 눈이 악의를 품고 이쪽을 보고 있다. 확실히 그 녀석은 지성이 있다.
몇 개의 촉수가 솟아올라 짧은 관 것은 기관이 보였다. 거기서 암흑의 증기가 훌러 나온다. 고온의 증기가 선체를 핥는다. 몇 개인가 불길이 생겼다.

".... 저 녀석도 찢는 자인 건가!"

크레이는 신음했다. 이 배가 가라앉는 것은 그들에게 형편 좋은 것이겠지.

"......그럼 점점 망설이지 않고 끝날 일이라고"

크레이는 자신에게 기합을 넣었다.
이 배는 이제까지 수많은 역사에서 가라앉았다. 그것이 본래 있어야 할 모습이라면 다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할 것인가 라는 고뇌에 괴로워해야 하는 참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찢는 녀석들이 이 배를 가라앉히려고 한다면 그 고민은 관계없다.
크레이의 정신이 고앙 된다. 문제는 망설임을 뿌리치고 흥분한 참에 단 한발의 에너지론 저 녀석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크, 크레이씨.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일! 없습니까!"

한순간 크레이를 지지한 체념은 조안의 그 물음으로 떨쳤다.
그녀는 저런 거대한 괴물에 자신이 이길리 없다는 것을 백이고 숙지했겠지.
그래도 조안은 크레이에게 물었다.
그럼 그녀보다 힘 있는 자신이 포기 해서 어쩌려고.
물론 자신만으론 어찌 되지도 않는다. 되지 않지만......

"있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트럼펫을 불어줘"

크레이의 말에 조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면회곡이 어떨까요. 그, 그거라면 밴드분들을 불러와서...."

"아니야! 그럴 틈 없어. 저 녀석은 팔을 2개 잃어서 경계하고 있어. 하지만 바로 덮쳐오겠지"

지금 크라켄은 타이타닉과 평행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니까 도와줄 사람을 부른다. 이 근처에 내 파트너가 있어"

크레이는 조안을 똑바로 바라봤다.

"다시 도와줘"

"네"

조안은 확실하게 끄덕이고 트럼펫을 꺼냈다.

"통통통, 츠츠츠, 통통통이다. 리듬만이면 돼"

조안은 의문을 얼굴에 힘껏 띠면서 대답도 하지 않고 트럼펫을 입에 댔다.

"구조 신호야. 이거라면 쓸 수 있어. SOS다. 내 파트너는 귀가 좋아......"

크레이의 설명이 끝나지도 않은 사이에 조안이 있는 힘껏 트럼펫을 불었다.

처음으로 불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불었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 번째로 불었다. 선원들이 알아차린 모양이다. 멀리서 달려오는 갑판원이 있다.
조안은 거기서 크레이를 봤다.

"아직이야. 불어줘. 그 녀석이 올때 까지"

끄덕이고 조안은 트럽펫을 한 번 더 불었다.

"너, 이런 때 뭐하는 거야!"

갑판원이 분노하며 다가온다. 몸을 숙인 크레이는 발돋움하는 듯한 어퍼컷으로 그 선원을 기절시켰다.

"....미안하네"

지금 방해받을 순 없다.
그리고 6번째가 울려 퍼진 때 움직인 것은 같은 편이 아닌 적이었다.
크라켄은 트럼펫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라는 것은 이쪽 전투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도 크라켄은 신중했다. 수면 아래서 몇 개의 촉수를 동시에 뻗어온다. 바닷속에서 타이타닉의 선체를 잡아맬 생각이겠지.

"젠장... 멀어"

남은 건 한발. 뻗어오는 촉수를 하나만 시말해도 의미 없다. 적의 본체를 직격하지 않으면 막을 방도가 없다.
하지만 은 팔의 파워는 그다지 멀리까지 닿지 않는 것이다.
하나만이라도 멈출 것인지---.

(아니, 안돼. 저건 도발 같은 거야. 전체를 확인해. 확실히 저 눈을 맞추지 못하면 의미 없어)
 
크레이는 왼손에 꽉 힘을 담아 자신의 오른팔을 눌렀다.
다음 순간 몇 개의 촉수가 타이타닉에 닿았다.
무시무시한 충격이 배를 덮친다. 무엇이고 전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꺄아"

비명을 지르고 조안이 굴렀다. 그대로 허공으로 내팽개쳐진다. 서 있던 장소가 배 가장자리로 가까워진다. 그대로 바다로 내팽개쳐 진다.

"조안!!"

크레이는 기울어진 갑판을 달렸다. 하지만 그의 손은 닿지 않는다. 조안의 몸이 뱃전을 넘어 그 건너편으로.

"뭘 하고 있어 판! 빨리 오라고오오오오오오오!"

크레이의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

"정말이지 어쩔 수 없네, 우리 파트너는.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한다니까"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영차 하는 소리를 내고 난간을 넘어 오는 인영이 하나. 달빛에 비치는 맑은 금빛의 부드러운 머리. 그 손에 붙들려 있는 건 조안의 트럼펫이다.

"그녀라면 걱정 없어. 가수가 구해줄 거야. 여자아이는 홀딱 젖어도 아름답지만 악기가 젖으면 큰일 일 것 같아서"

그런 판을 무시하고 크레이는 뱃전으로 달려갔다.
계속 올 거라고 생각한 충격은 방금 한 번 뿐이다.

".... 전한 건가 메세지"

해면을 바라보고 크레이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조안은 해면에서 떠들고 있다. 졌었는가 했는데 돌고래에게 도움받았다. 텐션이 올라서 어쩔 수 없겠지.
돌고래야말로 크레이와 판의 동료. 잇는 자의 일원인 가수다.
그 이름은 비올라. 수중에 사는 지성 있는 생물들을 돕기 위한 잇는 자이다.

"비올라씨 저 아가씨가 연주하는 곡에는 영혼이 담겨있어서.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야?"

이번 비올라와 판은 이 바다 밑에서 고래와 범고래 부족이 벌이고 있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 왔다. 그들은 노래를 중히 여긴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울리는 노래를 연주할 수 있다면 종족을 넘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거기에 고래와 범고래들의 싸우게 하려고 계속 죽이는 건 저 괴물 암나이트 같으니까. 나머진 맡기면 되는 거 아냐?"

향고래 무리와 범고래 무리가 차례차례 크라켄의 촉수에 덮쳐든다. 크라켄은 이미 타이타닉에 간섭할 여유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적은 전설의 괴물이다. 고래와 범고래에게도 피해는 나온다.

"빨리 정리할 수밖에 없겠지.... 이번 연도에 남는 건 빵과 물뿐이겠지만"

떫은 얼굴로 크레이가 말했다.

"에에음 설마 이 보드 근처에서 은 팔로 마무리 짓는다던가 생각하고 있어?"

판의 물음에 크레이는 잠시 파트너의 얼굴을 바라보고 담담하게 머리를 숙였다.

"부탁해... 나 만으론 무리야"

판은 잠시 크레이의 검은 머리로 덮인 머리를 바라봤다.

"이런이런 겨우 자신의 역량을 확인한 건가"

흐으하고 한숨을 쉬고 판이 평소 미소를 띠었다.

"그럼 갈까 파트너군. 말해두는데 말이야 내년 예산이 들어와도 3개월 동안 너만 빵이랑 물이니까. 나는 그 나머지 청탁 시킬테니까 말이야"

"농담 아냐! 왜 나만이야. 이건 네, 연대책임이겠지!"

크레이가 으르렁거린다.
이미 평소 어조다.
판이 크레이를 후배군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 크레이 자신이 알아차리는 것은 조금 후다.
라곤 해도 타이타닉에 실려있던 대량의 사라질 편지는 무사히 전해지게 된다.
그 편지가 자아내는 이야기를 크레이와 판이 알 리 없다.
그들은 다시 다른 편지를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 화 심연에서 울리는 노래 끝

 

에필로그


타이타닉은 할구로 돌아왔다.
많은 마중이 그곳에 기다리고 있다.
그런 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소녀는 의외의 만남에 놀랐다.

"조안 암스트롱씨죠"

붉은 머리의 키 큰 여성이 불러 멈춘 것이다. 존 스미스라는 위명이 아닌 본명으로.

"친구가 당신에게 이것을 이라고"

건네준 편지를 열어보는 사리에 그 붉은 여성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발송인의 이름은 없지만 거친 문자에 그것이 누구의 손에 의한 것인지는 상상이 간다.

".... 고마워 크레이군"

그것은 일과 그리고 사는 집을 소개해주는 편지였다. 타이타닉은 다시 대양을 건너 원래 나라로 돌아간다. 하지만 조안은 이 신대륙에서 프럼펫터로서 성공하기까지 이제 고향 땅을 밟을 생각은 없었다.
신세지게 된 직장은 극 남에서 술을 수입하는 상회 아래서 일하는 것이었다. 소문의 금주법은 결국 어디선가 닿은 진정 편지로 폐안이 돼서 일단 안심하고 일을 단숨에 확대한다고 한다.
집은 작은 아파트였다.
집주인에 의하면 북의 나라에서 망명한 가족을 맞이할 생각이었지만 그 나라의 혁명 소란도 이야기하며 끝났다는 모양으로 결국 넘겨주지 못한 모양이다.
그저 작은 방이라곤 해도 조안이 혼자서 집세를 내기에 조금 엄한 금액이다.
딱 좋을 때 역시 방을 찾는 같은 연령대 아가씨가 있다고 한다. 조안은 룸 쉐어 신청을 했다.

"에에음, 조안 암스트롱입니다. 잘 부탁해"

긴 머리의 룸 메이트는 조안을 맞이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내 이름은 키보우다"

두 명의 소녀는 확실히 손을 잡았다.
그녀들에겐 무한의 미래가 있다---.

 

 


후기

 

우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혹은 다시 손에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모노 쇼우입니다.
변함없이 아날로그 게임을 만들거나 놀거나 하면서 소설을 쓰는 나날입니다.
이 책은 주역 (이야기에 따라 미친 말 하는 역)인 크레이군과 판군이, 세상 속 여기저기에 출몰하는 이야기가 5개 들어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연작 단편이라는 형식이네요. 독립된 이야기이므로 아무것이든 읽어도 좋지만, 시간 흐름은 이야기가 늘어선 순서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것은 즐거워 정말 좋아합니다.
특이 이 크레이와 판은 5개 저마다의 에피소드가 다른 무대에서 진행되므로 저마다 다른 설정을 생각하는데 즐거워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4화의 소가니야님이 나오는 신화 계라던가. 1화의 아나스타샤짱의 학교생활 에피소드라던가. 3화라면 어째서 대형 생물이 사라진 것만으로 거기까지 폐허화가 진행되는가에 대한 이유라던가. 이야기에는 등장시키지 않거나 애초에 필요 없었거나 하는 곳까지 일일이 생각해버리네요.
 무대만이 아닌, 캐릭터를 생각하는 것도 정말 좋아해서 머릿속에서 떠오른 캐러와 대화하면서 (인터뷰하는 마음으로) 그들 그녀들의 설정을 정하거나 합니다. 이 책은 5인 (혹은 그 이상)의 히로인을 생각해도 좋아서 그게 즐거워서.
무엇보다 생각하면 그 히로인들이 스오우씨의 일러스트가 되는 건가!
이번에도 훌륭한 히로인들 감사합니다.
크레이와 판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 밖에도 크레이와 판의 꿈꾸는 편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만, 그쪽에서도 무대를 생각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이 책과 같은 독립된 5개의 단편으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차례로 어느 쪽이던 읽어도 괜찮습니다. 이쪽에서도 또 언급되는 전쟁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전쟁 경위에도 이래저래 생각하거나 했습니다. 쓰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많은 무대와 히로인을 생각해가겠습니다. 다시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과 책을 통해 만나기를.


2014년 1월 하순
토모노 "제 5화를 썼더니 타이타닉을 다룬 노력형 보드게임이 나왔어요" 쇼우

[토리코마]지키는 것 지켜지는 것

2014. 2. 20. 16:18 | Posted by 용기있는 꼬마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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