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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쿠모의 하늘우산

2013. 12. 24. 13:35 | Posted by 용기있는 꼬마 눈사람

츠쿠모의 하늘우산


"으-음 역시 없나...."

책장에 늘어선 만화책 뒤표지를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린다.
거의 무의식으로 중얼거리는 혼잣말.
하지만 그 소리는 생각한 것보다 크게 울려. 가게 안에 퇴적된 조용함이 조금 흔들린다.

나는 당황해서 근처를 둘러본다.
가까이에 있는 동년배 정도의 여자아이와 눈이 확실하게 마주친다.
리본이 어울리는 귀여운 애다.
내가 순간적으로 상냥한 미소를 띠면 그녀는 시선을 돌려 다른 책장으로 걸어갔다.

방금, 별로 웃을 필요는 없었지......

쓸데없이 이상하게 보였을 거라고, 가슴 속으로 반성.

기분이 나빠져 나는 가게의 입구로 향한다.

여기는 역 앞 상점가의 어떤 작은 서점.
계산대 뒤로 어떤 시계가 5시 반을 가르키고 있다. 돌아가자.
이제 볼일은 끝났으니까.

아마도, 분명히.

나를 위한, 무척이나 애매한.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사실, 왜 서점에 왔는지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런고로 추측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엔 간단한 편이다.
내가 서점에 들어갈 이유는 많지 않다.
라고 할까 하나밖에 없다 말해도 좋다.


계속 찾고 있는 책이 있다. 어릴 적 좋아했던 만화.
가능하다면 또다시 읽고 싶어서, 서점에 들어가면 반드시 만화가 진열된 책장을 둘러본다.
하지만 아까처럼 발견하진 못한다.

이번에도 허사. 하지만 그렇게 유감인 것도 아냐.
이건 거의 반은 포기하고, 습관적으로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서점의 출입구에 선다.
투명한 유리문 밖으로는 비가 오는 모양.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커다란 빗소리에 둘러싸인다.

문 옆에 있는 스탠드엔 내 파란 우산이 걸려있다.
비를 피하려고 이곳으로 뛰어든 게 아니란 걸 알고, 한숨 놓았다.

우산을 손에 쥐고, 하늘을 향해 펼쳐 걸어간다.

오늘은 뭘 잊어버린 거지. 안개 낀 경치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나는 별로 몽유병자도, 심각하게 뭔갈 잘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잊어버리는 것이 특기일뿐.

싫은 것 잊어버리면 돼. 즐거운 것만을 기억해.

흔해 빠진 대사. 누가 처음으로 생각해낸 건지도 모르는 말.

그걸 처음으로 들은 게 언제인지.
아마, 무척 어렸을 때였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어린데도, 그런걸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세상은 두려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시험해봤다. 잊으려고 해봤다.
처음엔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잊어버리는 것이 특기가 되었다.

어느샌가, 굉장히 간단히 할 수있게 됐다.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 싫은 일 불쾌한 일......
어떤 기억이라도 머릿속의 "쓰레기 상자"에 휙 던져넣으면, 깨끗이 사라져 버린다.

전부, 전부 없었던 일이 된다.

그렇게 했더니, 무서운 것이 사라졌다.
즐거운 것만이 남았다.
나는 세상을 두려워 할 것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 삶의 방식을 나는 찾아냈다.

오늘도 분명 필요하니까 뭔가를 잊은 것이겠지.
내가 필요없는 추억을 버린 것이겠지.

나 자신이 한 일이니까,
당황할 것도 없다.
초조해할 것도 없다.

이렇게 몸이 젖지 않게 우산을 쓰는 것과 같은 것.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비구름에 덮인 석양의 마을은, 이미 어둠에 침식되기 시작했다.

우산 속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가로등의 불빛과 오가는 사람의 헤드라이트에 비쳐 반짝이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

빈틈이 생긴 마음에 아름다운 정경이 기분 좋게 물든다.
가슴속에 맑은 공기가 채워져 가는 듯한 감각. 무척 좋은 기분.

이런 기분이 드니까, 내 삶의 방식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겠지.

 

 

 

근거도 없이 막연히, 나는- 그렇게 믿었다.

 

 


제 1화 하늘빛 우산

 

 

"우린 인간이 아니야. 물건에 남은 마음이야. 본래- 인간이었던 너는 훨씬 전에 죽었어 "

 

 

"하,하지만 난...... 이렇게 살아있어?"

 

 

 

 

똑 똑 똑 똑-.

 

작은, 소리. 희미한 짧은소리.
몇번이고 몇번이고-  같은 간격으로 울리길 계속한다.
내 머리 위에서 울리길 계속한다.
소리가 들릴 때, 조그만 진동이 손에 전해 진다

-똑

흔들린다.

- 똑

튄다.

나는 소리의 정체가 신경 쓰여, 눈을 떴다.
이제까지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곳은 조금 어두운 방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다다미, 기울어진 테이블, 액정이 깨진 TV, 찢어진 문지방,
그것들로 구성된 좁은 공간. 낡았지만 알고 있다. 여긴 내 집.

 

-똑.

 

또다시 들렸다. 또 흔들렸다.

위로 시선을 옮기면 하늘색이 펼쳐져 있다.
하늘색의 우산이 내 머리 위를 덮고 있다.

방안인데 나는 우산을 펴둔 것 같다.
어째서지. 의문을 가지고 우산을 치우면 얼룩진 천장이 눈에 비친다.
그곳에서 물방울이 내 눈으로 떨어진다.

 


"히약!?"

 


이마까지 차가운 것이 튄다. 생각 이상 목소리를 높여버린다.

 

"-비가 새고 있어."

 


미묘한 수치심이 뒤섞여 나는 중얼거린다.
비가 새는 벽 때문에 우산을 원위치로 돌려놓는다.

이상하네, 이전에는 이런 적은 없었는데.

잘 보면 나는 구두를 신고 있다.

검은 단화로, 거친 다다미를 힘껏 밟는다.

내 옷도 확인해본다.
감색 블래이저에 체크 스커트.
내가 다니는 중학교 지정 교복.


즉 종합하자면 이렇다.


나는 교복을 입고, 흙발로 거실에서 우산을 펼쳐놓았다.
게다가 방은 심하게 부식된 상태.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의문을 입 밖으로 낸다.
하지만 대답해 줄 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어질러진 방에 있는 것은 나 하나.

일단 직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가 생각해본다.

"......어라?"

하지만 도달하지 못한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인가 어제가 무슨요일이었는가 내일 뭘 할 예정이었는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기억을 끄집어낸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난 후의 추억.
특별히 즐거울 것도 없이 괴롭지도 않은 나날,
그래서 누락은 없다.

재미없는 것은 늘어났지만,
싫은 게 줄었으니까 쓰레기 상자를 사용할 기회도 좀처럼 없었다.


그랬을 텐데-.


중얼거림,
그것만으로 상황이 설명돼지 않는다.
이 상태는 너무 이상하다.

 

- 똑.

 

또 우산에 물방울이 떨어져, 소리가 난다.
우산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에 진동이 전해진다.

아아, 비가 새는 거라면, 밖에는 비가 내리는 거겠지.

"멍하니 있어도...... 할 수 없네"

일단 밖으로 나가자. 어떠면 현상이 파악될지도 몰라.

게다가- 우산을 쓸 거라면, 여기보단 비구름 아래가 어울린다.

뒤로 돌아 문지방에 손을 댄다.
제대로 된 상황이 아니란 건 이해했지만, 별로 공포나 혼란은 없었다.

 

나에게 무서운 건 없다.

싫은 건 전부 잊어버리면 되니까.

언제라도 사라저 버리는 기억에 떨어야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썩은 나무 복도는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있다.
나는 바닥을 세계 밟으면 구멍이 뚫리는게 아닌지 조심조심 발을 움직인다.

"누구 없어?"

인기척은 없지만 불러봤다.

바닥과 똑같이 부식된 천장과 회반죽이 벗겨진 벽에서 돌아온 것은, 무거운 고요함 뿐,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없다.

아까 그 거실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낡았다.
내 기억으론 이 집은 지어진 지 20년 정도 됐다.
삐걱삐걱하고 비명을 지리는 복도도 예전에는 조용했다.

신발을 신은 채로 복도를 걷는 위화감도,
귀에 거슬리는 삐걱이는 소리도 참으면서,
나는 현관을 찾아간다.

 


솨아아아아아 -


현관에는 문이 반밖에 없었다.
가로로 열린 문은 한쪽이 빠져, 밖으로 쓰러져있다.
남아있는 문도 확실하게 찌그러져 있고,
비바람이 불어 들어와 덜컹덜컹하고 소리를 내고 있다.

경계를 잃어버린 현관에는 빗물이 흘러들어와 거대한 물웅덩이가 만들어져있다.
한쪽 구석에 굳어진 갈색 덩어리는 구두였던 걸까.

사각형으로 잘려나간 바깥 풍경은 비로 흐릿해져 있다.
강한 비다. 격돌하는 물방울이 물보라가 돼 지면을 안개처럼 덮고 있다.

한 가지 확신했다
여긴 이미 집이 아니야.
문도 없는 집은 이미 집이 아니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곳은 이미 집의 역할에서 해방돼있다.

 


"이런일.... 있을 리가 없지. 있을 리가 없으니까......이건 꿈?"

 

중얼거리면서 걸어간다.

첨벙.

나는 물웅덩에 신발을 담그고 빗속으로 걸어간다.

머리 위에서 난 커다란 소리. 우산에 무거운 충격.
비가 새서 떨어지는 물방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양의 강한 빗방울이 우산을 때린다.
나는 우산의 손잡이를 확실히 쥐고, 빗소리를 들었다.

신발은 앗 하는 사이에 질척질척.
지면에서 튀는 비의 물보라는 우산을 쓰고있어도 다리를 젖게 한다.

 


-차가워

 


감각은 무척 리얼하다.
꿈이라고 생각하지 못할정도로......

 


".....뭐, 상관없나"

 


어쨌든 조금 걸어보자. 고민하며 멈춰서 있어도 결론은 나오지 않아.
비는 싫지 않아. 그러니까 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도 싫지 않다.
애매한 풍경도 모든 방향에서 밀려오는 소리의 홍수도. 기분 좋다.

 

하늘색의 우산을 손에 들고 나는 비로 흐릿해진 마을로 다리를 옮겼다.

 


내가 나온 집과 똑같이 길가에 좌우로 늘어선 주택은 전부 다 완전히 썩어있었다.
누군가 살고 있다곤 생각할 수 없는 상태.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도 여기저기 균열이 가있고 잡초가 그 틈에서 생기를 띄우고 있다.
비는 세상의 윤곽을 애매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래도 구멍은 여기저기서 보였다.

 


"이런 걸 고스트 타운이라고 했던가......"

 


인간이 사라지고 폐허만이 남은 마을, 틀림없는 그대로의 광경.

학생이 없는 방과후의 학교와 닮은 불안함. 있을 리가 없는 위화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공포는 없어도, 흘러넘치는 의문이 당혹감을 낳는다.

 


일단 가설을 세워보자.

 


하나 이건 꿈

가장 유력한 가능성. 하지만 뺨을 내 손으로 꼬집어보면 평범하게 아프다.
물에 젖은 발은 무척 차갑다. 감각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꿈일지도 모른다. 아픔도 차가움도 느껴지는 꿈일지도 몰라.

 


둘 이건 현실

뭔가의 원인으로 마을에 사람이 사라져,
오랜 시간이 기나 건물의 상태가 나빠지고
어째선지 나 혼자 여기에 있다...... 제일 현실성 없는 생각.

 


어찌해도 이 지경이 이를 정도는 아니다.
가령 어느 날 세계가 멸망해 버린다 해도.......
나만 살아남을 리가 없겠지.
내 마을과 똑같은 폐허를 만들어서,
그곳에 나 하나를 던져넣었다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하지만 뭐...... 어느 쪽이냐 하면, 당연히 꿈이네"

 


나는 냉정한 소리로 중얼거린다.

무척 리얼한 꿈.
그것만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꿈이라면, 언젠간 깨어나겠지. 혹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때는 그때다. 나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
시간이 답을 알려준다. 
방침을 정하니 홀가분해졌다.
기왕이면 이 비가가 멈춤 때까지 빗소리를 들으며 걷자. 나는 그렇게 정했다.

 


참방 참방 물웅덩이를 튀기며 경쾌한 발소리를 새긴다.
어디까지고 폐허뿐인 마을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어 나뿐이야.
다른 사람이 없다는건 무척 즐겁다.
불안하단 마음보다, 해방감이 앞선다.
일부러 모르는 길을 택한다.
목적 없는 산책을 시작한다. 돌아가야 할 길 걱정은 하지 않았다.
분명 갑작스레 꿈이 끝나고, 나는 이불 속에서 눈을 뜬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리가 무겁다. 우산을 든 손도 나른하다.
집을 나서고, 얼마나 지난 걸까.
시간 감각이 애매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걸었다.
주위에 잇는 것은 변함없이 폐허.
가본 적도 없는 마을의 일각.
커다란 집이 늘어선 주택가.
이 근처는 비탈길이 많아 숨이 차오른다.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아.

 


아스팔트를 총알처럼 때리는 비는 점차 약해졌다.
빛과 소리를 차단하던 비가 멀어지고 우산을 치던 충격도 작아진다.

 

이윽고 하늘이 우는 것을 그치고 구름은 비에 흘러가
오렌지 색의 빛이 구름 사이에서 나를 비추었다.

 

나는 다리를 멈춘다. 비가 그쳤어도 꿈은 계속되고 있다.
이젠 저녁인 모양이야.

 

아까는 수 미터 앞까지 흐릿하게 보였던 경치가 지금은 먼 산까지 확실히 눈에 보인다,
태양은 산 끝자락에서 새빨갛게 빛나고 있다.
석양의 장관은 강하게 대조적으로 마음의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서 있던 곳은 마침 비탈길이었다.
여기서라면 마을이 잘 보인다.
우산을 놓지 않은 채로 나는 경치를 바라봤다.

 

그것은 마을이었다. 마을이었던 것이다.
건물은 전부 너덜너덜하고 덩굴로 뒤덮힌 집도 있다. 부서진 집도 있다.
도로를 달리는 차도 없고 엔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을의 서쪽- 태양이 진 방향은,
커다란 물웅덩이가 보인다.
마을의 수원이기도 한 유일의 관광자원 아시나 호수다.
호우의 건너편에도 마을이 있고 평소에는 연결선이 정기적으로 운행되고 있지만,
지금은 그 모습도 없었다.

 


"마을이... 텅 비었어"

 


나는 느낀 것을 그대로 내뱉는다.
명망을 어디까지고 펼쳐져 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문명의 껍데기였다.
인간의 영위가 사라진 세계였다.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 믿을 리가 없다.
하지만 꿈은 언제까지고 꿈은 끝나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꿈은- 현실이다.

 


"-어쩌지"

 


울상 짖고 중얼거린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이런저런 귀찮은걸 생각해야 한다.
나는 배에 손을 댄다. 제일 문제인 건 음식이다.

 

지금은 아직 공복이 느껴지지 않지만, 머지않아 싫어도 배는 소리를 내겠지.
마을이 정말로 멸망한 것이라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도 없다.

 

배가 아픈 건 싫다.

 

공복도 아사도 별로 무섭지 않지만 괴롭고 고통스러운걸 좋아할 리가 없다.
오히려 정말 싫다. 이것이야말로 지워버리고 싶다고 바랄 정도로.

 


"이대론 곤란하네......"

 


그러니까 싫은걸 피하려고 나는 걸어간다.
이번엔 목적을 가지고 걸어 비탈길을 내려갔다.
편의점이나 슈퍼를 찾아보자. 혹시 먹을 수 있는 게 남아 있을지도 몰라

 


석양이 눈부셔서 우산을 쓴 채로 양산으로 쓰자.
하지만 비탈길을 내려가는 것만으로 햇빛은 약해져 있었다.

 

해가 지면 안 되는 건 아니다.
안개가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뭔가 무척 차갑다.
안개는 점점 짙어져,
썩은 집이나 석양빛을 덮어 감춘다.
비탈길 아래는 새하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 이상 나가길 주저하고 다리를 멈춘다.

 


"돌아가는게... 좋을까"

 


이 안개는 이상하다.... 너무 차갑다.
게다가 이 시야로는 가게를 찾을 수도 없다.
몸이 떨린다. 어쨌든 추위에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발을 돌렸다
 


-다른 길을 찾아보자.

하지만 비탈길 위를 걸어가는 나를 갑자기 짙은 안개가 차단한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같이 안개가 불어나더니, 내 주변을 감싼다.

"뭐야... 이거?"

얼떨결에 나를 포위하는 안개를 바라본다.
안개는 점점 밀도를 더해, 애매한 윤곽에서 행태를 만든다.
사람의 팔.... 처럼 보여.
그저 내 키보다 큰 팔이다.

 


아아, 역시 꿈이야... 라고 한구석에서 생각한다.


그탓 인지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아.


안개의 팔은 다섯 손가락을 펼쳐 나에게 다가온다.

 

- 빛에 그늘이 졌다. 머리 위를 새햐얀 손바닥이 덮는다.


그제야 나는 겨우 이대론 위험하단 걸 깨달았다.

입이 달려있어


딱 딱 딱 딱.

들리는 것은, 이를 씹어대는 소리.


"- 윽!?"

오싹하고 등골에 오싹한 기운이 느껴진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초조함을 낳는다.
거의 반사적으로 지면을 박찼다.
비탈길을 전속력으로 달려 내려간다.

 


딱딱딱딱!

 


소리가 뒤쫓아온다. 가깝다.
도망가는 게 너무 늦었다. 곧 붙잡힌다.
냉정한 마음으로 그렇게 분석한다.
하지만 다리를 멈출 마음은 없었다.
 


이치가 아닌 직감이 말하고 있다.
저건 나를 먹으려 하고 있다고.

 

싫었다. 무서운 게 아니라, 그저 장안에 기분이 나빴다.
이것이 꿈이라고 해도, 저것에 먹히는 건 싫다.

 


딱딱딱딱딱딱딱!!

 


이빨 소리는 이미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펼쳐진 우산이 방해되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뒤를 향해 내던지려 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났다.
우산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아. 손가락은 떨어지는데 손바닥에 붙어있다.

 


"뭐......?"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우산이 바람을 받다 커다란 공기 저항을 낳는다.
나는 우산에 이끌려 밸런스을 잃는다.

 


뒤를 향해 넘어져 엉덩방아를 찍고 그대로 비탈길에서 조금 미끄러진다.
위를 향해 스러진 내 시야를 - 안개의 손바닥이 덮었다.

 

"아-"

 


6개의 입이 나에게 가까워져 온다.
검붉은 입에서 침이 떨어진다.

 

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

 

맞물리는 이빨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싫어!?"

 


순간적으로 우산을 방패로 삼는다.
이런 건 시간 끌기도 못한다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한 개의 탄환- 공격"

 

안개의 건너편에서 낮은 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탕하고 마른 파열음이 울린다.
그 순간 잇소리가 멈췄다. 우산 너머의 기척도 멀어진다.

 

"에?"

 

우산을 접고, 주변을 둘러본다.
안개 팔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 떠있다.
손바닥 정중앙에 구멍이 뚫려 전신의 윤곽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알아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면 전신이 새까만 남자- 인식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남자는 이쪽으로 똑바로 걸어오면,
문답 무용으로 나를 들쳐 엎고 달린다.

 


"헥!? 뭐, 뭐야?"

 


놀라서 발버둥친다.

 


"움직이지 마"

 


하지만 남자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명령받아 몸을 움츠렸다.
남자는 검은 머플러로 입을 가려서 표정이 보이지 않아.

나를 안은 채로 남자는 비탈길을 달려올라 간다.
이 일대는 안개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래도 비탈길의 위쪽에는 다소 안개가 흐릿한 모양이다.
일 절의 주저도 없이 안개의 벽으로 돌진하는 남자.

몸을 가를듯한 냉기에 휩싸인다.
폐까지 얼려버릴 듯한 냉기에 나는 숨을 멈췄다.
눈도 뜰 수 없다. 피부가 찌릿찌릿 아프다.

이런 건 결딜 수 없어-
그렇게 생각했지만,
냉기에 고문 받는 것은 금방 끝났다.
거짓말같이 갑자기 공기가 따스해지고 눈꺼풀 너머가 밝아진다.

눈을 뜨면 새빨간 석양이 보였다.
아무래도 안개의 벽을 넘은 것 같다.
멍하니 있던 잠깐 사이 나는 지면으로 던져졌다.
남자가 손을 놓은 것이다.

두 번째 엉덩방아를 찍은 나는,
석양의 눈부심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를 올려봤다.
마치 그림자가 서 있는듯한 검은색 일색의 모습.
검은 코트에 검은 머플러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엿보이는 검은 눈동자는
나를 비추고 있다.
눈초리는.... 심하게 험악하다.
눈을 아래로 깔고 눈 밑의 기미가 더욱 인상을 나쁘게 한다.

 

미심쩍다

 

그것이 남자를 빤히 바라봤을 때의 첫인상이였다.
밤길에서 만났으면 틀림없이 경찰에게 통보할 정도의 레벨이다.

 

"왜 안갯속에 들어갔어."

 


남자가 책망하는 듯한 어조로 묻는다.
머플러 너머로 입속으로 우물거리고 있지만 어린 목소리다.

 


"에? 뭐,뭐냐니......"

 


명확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서 말이 막힌다.
그저 음식이 남아있을 듯한 가게를 찾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설명하려다 그 도중에 좀 더 중요한걸 깨닫는다.
이 폐허가 된 마을에 나 이외의 인간이 있었던 것이다.
엉망진창에 미심쩍은 점은 있지만......
나를 그 괴물에게서 구해준 것을 생각하면,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그, 그게-"

 

일단은 예의를 표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빨리,
눈동자에 짜증 난 기색을 띄운 남자가 나에게 무디게 빛나는 날붙이 덩어리를 들이밀었다.


"에......"

 

그것이 무엇인지 수초 뒤에 이해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밖에 본적없는 무기- 권총.
사람은 상처입히고, 죽이는 병기.
어둠을 채우는 새카만 총구가 나에게 항하고 있다.

 

"네가 먹히면 곤란한 건 남은 녀석들이다. 죽고 싶다면- 내가 죽여주지."

 

남자의 시선에 머문 명확한 살의에 나는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걸 깨닫는다.
또다시 살아날 리는 없다. 이 남자는 보이는 대로 위험한 인간인 모양이야.
하지만 나는 위기감을 품는 것 보다, 그저 순수하게 놀랐다.

 


"그거 진짜?"

 


나는 총구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긴장은 했지만 몸을 떨리지 않는다.
권총은 아까 그 괴물보다 현실적인 위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싫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 당연하다"

 


약간의 틈을 두고 의아하게 대답하는 남자.

 


"당신은 나를 죽이는 거야??"

 


계속해서 묻는다.


"아아"

 


남자는 짧게 대답한다.

 


"그래......나,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처음으로 봤어."

 


솔직한 감상을 말한다.
사람은 타인을 상처입히고 박해하고 죽음으로 이끄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인간이라면 잔뜩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고 결과다.
죽이는 게 목적이 아냐.
그저, 어느샌가 그렇게 되버린 것뿐.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거야?"

 


나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사람을 죽이는 건 범죄로, 나쁜 일.
그건 당연한 것.
누구도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사람은 죽인다고 한다.
그게 무척 신기하다.

 


"사람......? 너, 아까부터 무슨-"

 

남자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섞인다.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 듯이 남자는 하던 말을 끊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남자는 총을 내리곤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갓 태어난 건가. 귀찮은......"

 


귀찮게 중얼거리는 남자.
총구가 빗나간 것으로 여유가 생겨, 나는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은 비탈길의 중간쯤으로 아래에선 뒤엉킨 새하얀 안개가 보였다.
옆에 있는 녹슨 문이 바람에 삐걱거리는 폐허.
도망친다면, 비탈길 위로 달릴 수밖에 없다.
총을 내려놓는 것을 보니 뭔가 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남자가 사람을 죽이는 위험인물이라는 것은 확정돼있다.
어ㅉ쨌든 조금 더 이야기해 보고 싶지만, 몸의 안전을 위해 도망치는 편이 좋겠지.
싫은 건 잊어버리면 되.


하지만 그 권총- 문답 무용의 끝에는 대항책이 없다.

 

"......"

 

지면에 손을 대고 움직일 자세를 만든다.
그제야 알았는데 내 오른손에는 아직도 하늘색 우산을 움켜쥐고 있다.

 

이 우산......

 

내던지려고 해도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던걸 기억해낸다.
이건 도대체 뭐지. 생각에 잠긴 것은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근소한 차이 때문에 남자가 다음 행동을 시작해 버린다.

 

"일어서"


나에게 명령하는 남자

 


"으......"

 

 퍼뜩 정신이 든다.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 나는,
어색하게 일어섰다.

 

"-따라와. 안개가 퍼지고 있어"

 

남자는 시선을 비탈길 아래로 돌린다.
그의 말처럼, 안개는 점차 짙어지는 것 같았다.
마을의 모습이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거절하면 어쩔거야?"

 

여기서 떠날거란 것은 알고 있지만 일부러 묻는다.
그러면 남자는 다시 나에게 총구를 향했다

 

"따라와"

 


반복해서 명령 당한다.
아무래도 거부권은 없는 모양이다.
지금 도망가면 등을 쏴서 끝나겠지.

 

".....알았어"

 

할 수 없이 나는 끄덕인다.

 

남자는 내 대답을 듣고, 권총을 코트 안쪽에 넣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걸어간다.
나도 그 뒤를 이었다.
남자는 이쪽으로 돌아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까보단 도망가기 쉬운 상황
하지만 그것은 도망가면 용서 없다는 의사표시 같다고 느꼈다.

 

우산의 손잡이를 질질 끌면서 나는 남자의 등을 바라본다.
검은 코트는 굉장히 오래된 것인지 여기저기 해져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온 걸까. 그런 걸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알고 있는 건 2개의 사정뿐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인간.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만난 "악인"이었다.


터벅 터벅 터벅

 

규칙적인 두 사람의 발소리가 울린다.
금이 간 도로의 양측에 늘어선 것은 붉게 물든 폐허의 군락.

 

이미 20분 가까이 무언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태양은 산자락에 사라졌다. 하늘의 절반만이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다.

앞서 가는 남자에게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는 다리를 움직인다.
걸으면서 한동안은 "어디 가는 거야?"하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아 대화는 포기했다.

 

한가해서 대신 주변을 관찰한다.
이 주변은 집보다는 상점이 많다.
와본 적 없는 길이지만,
아마 마을의 북동쪽이겠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크게 3개의 구획으로 나뉜다.
주거나 학교가 있는 남부,
호수와 아웃도어 시설의 북서부
그리고 전차 역이나 상점가가 있는 북동부다.
내가 식재를 찾으려 향한 곳도 이쪽 방면.
상점에는 거의 셔터가 내려가 있다.
열려있는 가게도 있긴 하지만 가게 안은 거의 다 텅 비었다.

 

가게를 이전한 것처럼 상품은 전부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한산한 마을의 일각에서 남자는 다리를 멈췄다.
눈앞에는 4층 빌딩이 있다.
1층이 카페 같은 잡거 빌딩이다.
카페 입구에는 준비 중이라는 문패가 걸려있다.

 

"이쪽이다"

 

남자는 대충 반 정도만 문을 열고 빌딩의 옆에 있는 계단을 올라간다.
여기가 남자의 주거지인 걸까.

 

어슬렁 어슬렁 따라가면 밀실에 둘만 있는 상황이 되는건......

 

나는 폐가가 늘어선 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이 상태로 남의 눈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어딜 봐도 둘뿐인 모양이다.
게다가 밀실에 가두지 않더라도 총으로 위협하면 나를 제멋대로 할 수 있다.
좀처럼 상황은 변하지 않아.

 

- 죽이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곤 계단에 다리를 올린다.
설령 험한 꼴을 당하더라도 잊어버리면 된다.
그건 나에겐 간단한 것.

 

남자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 4층 층계참에서 다리를 멈췄다.
계단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라 계속해서 위로 이어져 있다.
아무래도 옥상으로 가진 않을 것 같다.

 

4층은 어떤 사무소로 사용된 것 같다.
철제문에는 "상담합니다"라는 벽보가 걸려있고.
사무소의 이름은 인쇄 면이 벗겨져 있어서 읽을 수 없다.
 


"들어가"

 

남자가 문을 열고 나를 재촉한다.
먼저 가라니 어떻게 된 거지.

 

"...... 실례합니다"

 

나는 어째선지 그렇게 인사하고 문 안으로 발을 방안으로 집어넣는다.
방안은 무척 살풍경하다. 사무소의 비품이라고 생각되는 소파나 책상은 있지만,
서류나 책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벽 쪽에 늘어선 책상 안도 텅 비었다.
창문은 4개 있지만 그중 하나가 깨져 덧문을 꼭 닫아뒀다.
안에 문에 또 하나 있는 걸 보면 방이 또 하나 있는 것 같다.

 

찰칵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남자도 안으로 들어왔다.
나를 앞질러 창문으로 걸어간 남자는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낸다.


심심했던 나도 옆 창문으로 가까이 가서 마을을 내려다본다.
4층의 높이가 있어서 과연 경치가 좋다.
마을 이곳저곳에 희미하게 새하얀 안개가 끼어있는 것이 보였다.

 

"안개가 이쪽까지 흘러왔어. 한동안은 밖으로 나가지 마"

 

"......에? 아,응"

 

나에게 하는 말이란 걸 바로 알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사고가 따라가면 의문이 솟구쳤다.

 

"저기...... 그건, 아까 같은 괴물에게 습격당하니까?"

 

아직도 믿기지 않는 광경을 생각해내고 나는 묻는다.

 

"그래"

 

남자의 대답은 변함없이 간결하고 짧다.

 


"여긴 안전해?"

 

"저 안개는 무거워. 그래서 낮은 곳에 모인다. 이 높이까진 오지 못해"

 

확실히 하얀 안개에 싸여있던 구역에서도 건물의 지붕이나 전봇대는 보였다.
아까, 나도 비탈길을 내려가서 안개에 삼켜졌다.
남자가 말하는 건 사실이겠지.

 

"요컨대 그 괴물은 안갯속에서 밖에 나오지 못한단 거야? 도대체 그건 뭐야? 으으응, 그 이전에 왜 마을이 이런 상태야?"

 

내가 다다다 질문하면 남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글쎄......"

 

적당히 대답하고 남자는 창문에서 떨어진다.
그대로 코트와 머플러를 책상 위에 벗어 놓고,
접대용으로 생각되는 소파에 드러누웠다.

남자가 코트 안에 입고 있었던 것은 하얀 셔츠와 청바지.
생각한 것보다 평범한 복장.
이렇게 보면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어리다.
아마도 20살 전후겠지.
검은색투성이였던 것이 사라진 것만으로 수상쩍은 것이 반감됐지만,
눈매가 더러운 것과 바지 벨트에 걸어둔 권총 때문에 위험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르쳐, 주지 않아?"

 


완전히 드러난 권총을 조금 기가 죽으면서도 묻는다,

 

"- 귀찮아. 안개가 개면 나보다 설명을 잘하는 녀석에게 데려다 주지. 그때까지 얌전히 있어"

 

무책임하게 남자가 말한다.
아무래도 이 사람 말고도 마을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창문 너머를 슬쩍 보고 입을 열었다.

 

"...... 안개는 언제 개는 거야?"

 

"몰라. 하지만 하늘 보면 내일도 보가 내릴 것 같다. 비가 내린 후에는 안개가 나오기 쉬워. 어쩌면 ...... 1주일 정도 걸릴지도"

 

남자는 졸린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눈을 감아버린다.

 

"일주일......"

 

오래 걸린다. 그동안 계속 답답하게 있는 건 피하고 싶었다.
나는 책상 사이 남자의 정면에 있는 소파에 걸터앉아 말을 건다.

 

"그렇겐 못 기다려. 적어도 마을의 상태만이라도 가르쳐줘"

 

"............"

 

하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빨리 잠들 리는 없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있는 거겠지.

 

"안 가르쳐주면 밖에-"

 

"쓸데없는 짓을 하면 죽인다."

 

시험 삼아 부추기는 듯한 말을 해보면 바로 날카로운 협박이 돌아왔다.

 

"...... 죽인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국 당신을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나는 그렇게 확인한다.

 

"............"

 

또, 입을 다문다. 나는 한숨을 쉰다.

 

"그럼, 제멋대로가 아닌 행동은 뭐야? 그걸 안 가르쳐주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해"

 

라고 물으면 남자는 눈도 뜨지 않고 귀찮게 대답했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건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 것. 그것뿐이다"

 

즉, 방안에서라면 자유롭게 있어도 되는 것 같다. 나는 방안을 빙글빙글 돌아본다.

 

"하지만 여기 이런저런거 ...... 없네. 배고프다던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쩌면 돼?"

 

나로서는 당연한 걸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뜻밖의 말을 들은 것처럼 코웃음을 친다.

 

"우리에게, 그런 건 필요 없어"

 

"에......? 무슨 뜻이야?"

 

나는 당황한다.

 

"금방 알아. 그러면 네가 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다"

 

남자는 입을 삐죽이며 말하고 있지만,
그대로 숨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정말로 졸렸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얕게 잠든 게 아닌 것 같다.

 

산더미 같은 의문을 풀어놓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뭐야, 이사람...."

조금 치를 떨었다.
이 틈에 내가 도망갈거라 생각하지 않는 걸까.
그게 아니면 내가 밖으로 나간다는 걸 절대로 알아챌 자신이 있는 걸까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았다.

 

뭐어 안갯속에 괴물이 있다는 걸 들은 이상
나는 지금 일부러 위험한 장소로 나갈 생각은 없다.

 

나를 해칠 생각은 없는 것 같고,
상태가 파악될 때까지는 여기에 머물러야 하겠지.

 

- 이건, 깨어나지 않는 꿈 같네.

 

현실이라곤 생각하지 않더라도 현실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어느새 저녁도 지나가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바깥의 어둠이 짙어질 즘에는 방안도 어두워진다.

그제야 나는 이방에 또 한 가지가 모자라 다는 걸 알아차린다.

 


"......"

 


나는 소파 위에서 일어서 입구 옆에 있는 형광등의 스위치를 눌렀다.

 

팟.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방안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솨아아아아-.
빗소리가 들린다.
가야 해, 가야 해, 가야 해!
내 마음이 소리 지르고 있다.
가다니, 어디로?

 

 

 

자문해 보지만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들리는 것은 빗소리뿐.
모든 잡음을 지우는 하늘의 울음소리뿐.
비에 이끌려 다리를 뻗는 순간 빛이 들어왔다.

 


"아......"

 


지저분한 천장과 금 간 형광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눈을 떴다는 것을 인식한다.

 


나, 잠들었었다.

 


즉, 아까 본 것은 꿈. 이것이 현실. 꿈같은 현실.

 

 

 

솨아아아아아-.

 

 


빗소리는 아직도 계속 울려온다.
내가 누워있는 것은 방안에 잇는 소파다.
어젯밤은 실내가 새까매져서, 그대로 잘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잤는데도 몸이 아프지 않다.
오른손은 여전히 하늘색 우산을 붙잡고 있다.

 

이 우산- 대체 뭐지.

 


잘 때는 솔직히 방해돼서 어떻게든 손에서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결국 놓지 못했다.
손바닥에 접착제를 붙여놓은 것도 아니다.
왼손으로 옮겨 쥐는 건 가능하지만...... 몸에서 떼어놓지는 못한다.
어디든지 몸 일부분에 닿아있어야만 하는 것 같아.
어째선지 RPG에서 나오는 저주받은 아이템을 연상한다.
중학생이 되어선 접할 기회가 사라졌지만,
옛날엔 게임이나 만화가 가까이 있었다. 내 것은 아니었지만, 자주 빌렸다.

 

나는 싫은 건 금방 잊어버리지만, 그 대신 즐거운 일은 마음에 새긴다.
그래서 어릴 적 추억을 끄집어내려고 하면 나오는 건 거의 다 놀았던 기억뿐.

 


"이 물건은 저주받았어."

 

괜히 그리워져서 우산을 천장으로 추켜올리고 작을 소리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바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여기에 있는 건 나 하나뿐이 아니란 걸 생각해 내고 급히 몸을 일으킨다.
방안은 어둡다. 창문 너머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건너편 소파에서는 아직 남자가 자고 있다.
아까 중얼거린 혼잣말은 듣지 못한 모양이라, 한숨 놓는다.

 

"............ 하아"

 


툭 하고 등받이에 체중을 걸었다.
당분간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보낸다.
하지만 정신이 멀쩡해서 점점 지루하단 자각이 싹튼다.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간다.
4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상점가는 비 때문에 흐릿해져 있다.
안개는 비가 내린 후에 나온다고 한다.
이 상태로면 오늘도 여기서 갇혀있겠지.

 


할 일이 없어서, 방안을 둘러본다.
라고 해도 물건이 좀처럼 없어서 재미없다.
사무용 책상과 의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이 먼지가 얇게 쌓여 있었다.
유일하게 흥미를 끄는 것은 방안에 있는 문. 남자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쭈뼛쭈뼛 손잡이를 돌려본다. 하지만 예상대로 잠겨있었다.

 


"...... 시시해"

 


탐색을 끝내고 나는 소파 앞으로 돌아온다.
벗어둔 검은 코트와 머플러가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멀쩡한 옷걸이가 있다.

 

한숨을 쉬고 나는 코트와 머플러를 손에 들었다.
코트는 생각한 것보다 무겁고. 그리고 조금 냄새가 난다.

 

"뭐해"

 

코트를 옷걸이에 걸려고 하면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일어난 것 같다.

 

"심심해서 옷을 걸고 있어. 제대로 걸어놓지 않으면 이상한 주름이 진다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나는 대답한다.

 

"...... 별로 나는 신경 안 써"

 

무뚝뚝한 목소리로 남자가 말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코트와 머플러를 옷걸이에 걸고 남자를 바라봤다.

 

"나도 어찌 돼 든 상관없어. 하지만 어찌 돼도 상관없는 걸
일부로 할 정도로 한가 했던 거야"

 

그렇게 말하고, 소파에 앉는다.
몸을 일으킨 남자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막 일어난 남자는 그다지 무섭지도 않고
눈매가 더러운 것도 어디서라도 있을 듯한 평범한 대학생으로 보였다.
허리춤의 권총이 심한 불균형이다.

 

".... 뭐야?"

 

빤히 시선을 향하는 나에게, 남자는 의아한 얼굴을 한다.

 

"어제 있었던 일의 계속. 내가 뭔지 곧 알게 된다는 건 무슨 의미?"

 

나는 계속 신경 쓰이던 것을 솔직히 물었다.

 

"아직도 모르겠다면 설명하는 것도 쓸데없어"

 


하지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머리를 돌린다.

 


"뭘 알아야 해?"


"............"

 


어깨를 으쓱이기만 할 뿐으로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저기"

 

"............"

 


"난 심심하고 온종일 질문할 거야?"

 

그 말에는 과연 남자도 괴로운 표정을 띄운다.
크게 한숨을 쉬고 어이없는 듯이 입을 열었다.

 

".... 너, 내가 어제 말한 걸 잊은 건가?"

 

"에?"

 

뭘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나는 당황한다.

 

"식재나 화장실은 필요 없다고 말했지. 그에 대해서 뭔가 생각은 없는 건가?"

 

"아......"

 

듣고서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아.
게다가 한 번도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몰과 동시에 잠들고,
일어났더니 아침이었으니까 그 후로 10시간 정도 지났을 거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긴장한 탓일까나........"

 

나는 배에다 손을 대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남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배가 고플 리는 없어.
그리고 밥을 먹지 않는 이상 배설도 필요 없어 "

 

"무슨...... 소리야?"

 

당혹감을 숨기고 나는 되묻는다.

 

"우리는 그런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요컨대 인간이 아니야."

 

"에?에......?"

 


농담하는 거라 생각하고 남자의 얼굴을 보지만 그 표정은 아주 진지하다.

 

"- 역시 아직 믿지 못하나. 하지만 2, 3일 지나면 싫어도 알아. 밥을 먹지도 않고 멀쩡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알면"

 

그걸로 말은 끝났다고 하는 것처럼 남자는 다시 소파에 누워버렸다.

 

"자, 잠깐, 끝까지 설명해주지 않는 거야?"

 

"...... 이 이상은 무슨 말을 해도 쓸데없겠지. 나는 설명하기 귀찮고, 어려워. 네가 실감하는 게 제일 빨라"

 

"그렇다곤 해도 인간이 아니면 뭔지 정도는 알려줘. 믿진 못하더라도- 신경 쓰이잖아"

 

내가 몸에다 올라타 물고 늘어지면 남자는 귀찮은 듯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츠쿠모카미(九十九神)"

 

*인간의 손이 닿은 물건이 100년이 지나면 인간의 념이 쌓여 요괴 또는 정령이 된다는 전승.
이 전승은 일본이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데
한국의 도깨비라거나 서양의 비스크돌 인형 괴담 등이 이것에 속한다.
츠쿠모카미(付喪神)라고도 하지만 츠쿠모카미(九十九神)로도 쓰고 읽을 수 있다.
말 그대로 99신이라는 의미로 물건이 99년이 지나 100년째에 신이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솔직히 성향으로 보자면 신령에 가깝지만 츠쿠모카미의 경우 요괴로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주로 물건에서 요괴화 한 것은 물건이 인간의 신체 부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역자왈 ㅋㅋㅋ)

 

"츠쿠모카미?"

 

나는 귀에 들린 말을 그대로 반복한다.

 

"들어 본 적은 있겠지? 오랜 시간에 걸쳐 영혼을 품은 물건이나 장난감을 말하는 거다"

 

확실히 처음으로 듣는 말은 아니다.
옛날에 읽은 만화 속에서도 나왔던 걸 기억한다. 하지만-.

 

"그게 우리.... 라는 거야?"

 

완전히 비현실적인 단어라서 놀리는 것일 거라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남자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아,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교만한 것도 아닌,
그저 지친듯한 말투로 남자는 말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말하는 듯한 무척 무거운 목소리였다.


츠쿠모카미.
구십구 신.
물건이나 장난감이 변화한 신.
 내가 읽은 만화에서는 요괴로 다루어졌었다.
그 이상의 지식은 없어.
하지만 자세히 모르더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어디까지나 가공의 존재다.
정말 내가 츠쿠모카미라니 이해할 리가 없다.

 

"왜 츠쿠모카미야?"

 

"............"

 

"증명, 할 수 있어?"

 

"............"

 

물어보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아.
아까 말한 것 처럼 내가 인간이 아니란 걸 "실감"할 때까지는,
이 이상 설명해도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뭐어 확실히, 그러네.

 

조금 냉정해진 나는 소파에 앉는다.

 

지금은 무슨 말을 들어도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몸을 봐도 인간이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고,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역시 긴장해서 그렇다고 생각해.

신비한 것은 잔뜩 있다.
어제 습격당한 괴물과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우산, 멸망한 마을.

범상치 않은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싫어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비현실적인 것을 믿을 리가 없다.
 비현실이 현실이라고 실감하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알았어...... 이제, 이 화제는 그만할게"

 

나에게 남자가 말한다.

 

"...... 그게 현명해"

 

남자는 작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말을 계속이었다.
사태파악을 뒤로 미루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또 하나 커다란 문제가 남아있다.

 

"응? 뭐냐?"


귀찮은 듯이 나를 보는 남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나 굉장히 심심해"

 

"하......?"

 

남자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지만, 나에게 있어선 중요한 사정이었다.
밖으론 나갈 수 없고 방안에선 심심풀이할 물건이 없다.
잠에서 막 깨어난 남자는 또 소파에 드러누워 잠잘 자세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하면 일주일 동안.... 심심해서 죽어버려.

 

"당신은 심심하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 돼서 남자에게 물어본다.

 

"......별로"

 

하품을 하면서 담백한 대답.
막 일어난 참인데 졸려 보인다.

 

"심심하다고, 그렇게 자기만 할 거야?"

 

"............ 뭐어 그렇지"

 

아까보다 조금 더 긴 침묵을 끼고, 대답이 돌아온다.
뭔가를 포함한 것인지, 그저 졸린 건지, 나로선 구별되지 않아.
하지만 이대로 잠드는 것도 곤란하다.
말상대가 사라지만 혼자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어.

 

"뭐든 좋으니까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당신에 대한 것....... 이라던가"

 

"...... 귀찮아"

 

조금 용기를 내 말 해보지만 무뚝뚝한 말로 일축된다.
정말 졸렸던 건지 눈을 감는 남자.

 

위험해 어떻게든 해야.

 

나는 남자기 흥미를 느낄만한 이야기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화제를 찾아야지, 남자와 만났을 때를 기억해내 본다.
인상적인 것은 안갯속에서 달려온 검은 모습.

 

그러고 보니, 그때 했던말......

 

다시 생각해낸 기억에 끌려온 것이 있다.
 나를 습격한 괴물을 공격한 것은 아마 남자의 권총이다.
울려 퍼지는 파열음은 두려운 총성.
그렇다면 남자는 총을 쏠 때 일부러 소리 질렀다는 게 된다.
마치, 기술이름처럼.

 

아, 그래, 그 말은-.

 

겨우 기억이 이어져, 나는 남자를 불렀다.
조금 소리를 올린다, 조금 흥분했다.

 

"............ 뭐야?"

 

눈을 뜨지 않은 채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자.
혹시 이 사람과 사이 좋아질지도 몰라.
그런 기대를 품으며 나는 묻는다.

 

"'한 개의 탄환, 공격'은 분명 '칠총사'의 기술명이지? 나 그 만화 정말 좋아해서-"

 

하지만, 나는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남자가 엄청난 눈빛을 쏘아댔기 때문이다.

 

"너....... 왜 그런 마이너한 만화를 알아?"

 

낮게 떨리는 목소리는 살기까지 들어가 있다.

 

"에? 음.... 옛날에 그 만화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빌려......."

 

횡설수설 대답하면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나를 노려본다.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아무에게도 라고 해도, 여긴 당신밖에 없는데.......?"

 

"앞으로 만날 녀석을 포함,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의미다"

 

남자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진지하다.

 

"당신이 만화에서 나온 기술명을 외친걸?"

 

"아아"

 

즉답하는 남자. 나는 그 기세에 앞도 돼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건 남자와 대화할 기회라는 걸 알아챈다.
그래서 일부러 끄덕이며, 이렇게 물었다.

 

".... 혹시, 부끄러워?"

 

흠칫 남자의 어깨가 떨렸다.

 

"몇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어"

 

남자는 태연히 얼버무리려고 대답하지만, 아마도 머지않아라는 느낌이다 .
뭐어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목숨이 걸린 전투도 아닌데
만화에서 나오는 기술명을 외치진 않겠지.
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대에게 발각당할 수도 있는 리스크를 지게 되니까.
뭔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부끄러운 부분도, 많은 거네?"

 

확인하듯이 묻는다.

 

"............"

 

남자는 입을 다문 채로 시선을 돌린다. 즉 그런 모양이다.

 

"- 알았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해"

 

이 이상 계속하면 조금 불쌍해져서, 나는 남자에게 말한다.

 

"정말, 이냐?"

 

남자는 의아한 눈빛을 향한다.

 

"응"

 

확실하게 끄덕이면 겨우 안심한 듯이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탈진해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는 남자.
그 상태로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너.... 그 만화, 좋아한다고 했지"

 

"그래. 내가 아직 기억하는 건, 그런 거"

 

다시 한번 말하자면, 서점에 들어가면 반드시 찾고 있다.
그 정도로 '칠총사'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팔고 있는 서점을 찾은 적이 없다.

 

"............?"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남자.

그 후로 남자는 당분간 뭔가를 궁리하는 것처럼 미간에 주름을 지었지만,
천천히 일어서 방구석으로 향한다.

 

"왜 그래?"

 

".... 거기서 기다려"

 

계속 말하려고 하면 남자에게 저지당해버린다.
나는 할 수 없이 소파로 돌아갔다.

바지 안에 있던 열쇠를 꺼낸 남자는 문을 연다.
안에 뭐가 있는지 신경 쓰였지만 내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아.

남자는 바로 대량의 책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털썩하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전부 만화.
이런저런 작품이 뒤섞여있지만, 그 안에는 칠총사도 있다.

 

"앗....!"

 

생각 이상 소리 높여버린다.

 

"이 정도 있으면 심심하진 않겠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만화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소파에 앉는다.

 

"저기.... 이건-"

 

"내 취미다"

 

내 말을 자르고, 남자는 짧게 말한다.
아무래도 이게 이 사람의 심심풀이인 모양이다.

 

"- 고마워"

 

예의를 표하고 나는 조금 두근거리면서 칠총사 1권을 손에 든다.
종이는 그을려있고 표지는 거의 색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계속 찾고 있던 칠총사가 틀림없다.

나는 그리움을 느끼면서, 책을 펼친다.
역시 이 사람과는 사이가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

 

빗소리를 들으면서, 만화를 조용히 읽는다.
대화는 없다. 책을 넘기길 반복하는 소리만이 같은 간격으로 울리기만 할 뿐.
남자는 나보다 읽는 속도가 조금 빠른 것 같다.

딱 좋을 때 말을 걸었다고 생각하지만, 만화에 몰두한 사이에 잊어버린다.
추억을 덧그리듯이 칠총사를 읽어간다.
 '한 개의 탄환, 공격'이라고 등장인물이 소리칠 때는 남자의 모습을 조금 떠올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다.

 

방이 어두워지고, 만화를 읽기가 어렵다.
그때가 되어서야 해가 지고 있단 걸 알았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버려 석양빛이 들어오지 않아.

 

솨아아아아아아아아-.

 

빗소리가 아침보다 조금 부드럽다.
비는 약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탁하고 남자가 읽고 있던 만화책을 덮었다.
나도 이 이상 읽기를 그만두고 만화를 책상 위로 올려둔다.

 

남자와 시선이 맞았다.

 

".... 잘자"

 

나는 어색하게 인사한다.
이런저런 말을 찾아봤지만,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아"


나직하게 짧게 대답하고, 남자는 소파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나도 할 일이 사라져서 자기로 한다. 몸을 가로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어제는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온종일 여기서 보낸 탓인지 그다지 위화감이 없다.

 

이런 무슨 일 인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말이야......

 

나는 혼자서 고소한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모르는 남자와 단둘. 거의 연금당한 상태.
남자는 사람을 죽이는 악인. 처음 만났을 때는 총으로 위협당했다.
하지만 오늘은 만화를 빌려줬다. 그리고 아마 나를 도와주고 있다.

이 사람은.... 나쁜 일도 착한 일도 전부 다 하는 사람이겠지.
쌓아둔 만화책 건너에서 자는 남자를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그는 나를 인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츠쿠모카미라고 가르쳐줬다. 그 말을 아직 믿지 않아.

하지만--- 배는 아직도 고프지 않아.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남자도 오늘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계속 내 앞에서 만화를 읽고 있었다.
슬슬 상식이 와해한다. 남자가 말한 "실감"을 나는 느끼고 있다.

 

-내일 눈을 떴을 때도 배가 고프지 않다면...... 인정하자.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정하고 눈을 감는다.
의식적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질질 상식에 끌려가 버린다.
그래서, 아침까지. 오늘은 아직 나는 인간.

 

 

솨아아아아아아-.

 


조금씩 약해져 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오길 기다린다.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우산을 끌어안으며, 수마를 꾀어낸다.

 

 

솨아아아아아아-.

 

 

옆에서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의식이 애매해져 간다.

 

 

............ 가야 해, 가야 해.

 


그러면 또 오늘아 침에 꾼 것과 같은 꿈을 꾸었다.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나는 남 일처럼 생각한다.

 

 

.... 가야 해, 가야 해, 가야 해!

 

 

소리치고 있는 건 내 목소리.

 

 

솨아아아아아아아-.

 

 

울려 퍼지는 빗소리.

 


어디로- 라고 묻는다. 꿈을 향해 말을 건다.

 


--- 곳에.

 

 

나는 대답한다. 꿈속의 내가 대답한다.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솨아아아-.

 

 

빗소리가 약해질 정도로, 외치는 소리도 작아진다.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 간다.

------.

이윽고, 소리가 끊겼다.
비가 그친 것을 꿈속의 나는 알고 있다-.

눈꺼풀 건너로 빛을 느낀다. 무척 밝다.

 

 

"응...."

 

 

나는 작게 신음하며 눈을 뜬다. 실내는 무척 밝아져 있다.
창문에서 새하얀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방안을 떠다니는 작은 먼지가, 빛 속에서 떠올랐다.

밖은 맑게 갠 모양이다. 빗소리도 들리지 않아.
건너편 소파는 이미 텅 비어 있다.
남자의 모습은 창가에 있다. 오늘은 내가 늦게 일어난 모양이다.

눈을 비비고, 하품을 억지로 참으며 소파에서 일어선다.
남자의 옆으로 걸어가, 옆에서 창밖을 엿봤다.

 


"--- 좋은 날씨"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린다.

푸른 하늘 아래, 부식된 상점가가 펼쳐져있다.
아주 멀리 까지 잘 보인다. 흐릿하게 보이지도 않는 경치는 마을에 채워진 멸망을 나에게 들이대지만,
이제 와서 동요하진 않아. 조금, 으스스한 기분이 들뿐.

 


"근처에 안개가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창가에서 떨어져 옷걸이에 걸어둔 코트와 머플러를 손에 든다.

 


"밖에, 나가는 거야?"

 


"......아아, 상태를 보고 온다."

 


코트를 걸치고 머플러를 목에 두른 남자는 출구로 향한다.
그걸 본 나는 정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충동에 몸을 맡기고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이 갈래"

 


옆으로 뛰어가면, 남자는 시선으로 나를 억눌렀다.

 


"필요 없어. 한가하면 만화를 읽고 있어"

 


"-- 그것도 좋지만,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 안개가 나오지 않았다면 오늘은 안전한 거지?"

 


"그걸 확인하기 위해 간다. 안전한지 어떤지는 아직 몰라."

 


기막힌 듯한 어조로 남자가 말하지만, 나는 물고 늘어졌다.

 

"그렇다면 더 더욱 나를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해. 날 혼자 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반은 진심으로 말한다.
남자도 그건 전해진 모양이라 궁리하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띠었다.

 

"-- 멋대로 나간다는 것만은 진심인가"

 

불쾌한 어조로 중얼거리는 남자는 문을 연다.
그것은 승낙의 표지겠지.

 


"내 어리광을 받아줘서 고마워"

 

억지 부린 건 알고 있어서, 예의를 표한다.
그러면 남자는 어째선지 더욱더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널.... 잘 모르겠어"

 

접은 우산을 손에 쥐고 한숨을 쉬며 걸어가는 남자의 등을 나는 쫓아갔다.

 

낡아서 균열이 간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길은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겨있다.
셔터가 내려가고 창문이 깨진 상점이 늘어선 거리는 변함없이 한산하다.
남자는 우리 이외에도 사람이 있는 듯이 말했지만 정말일까.

 

-아, 인간이.... 아니네.

 

나는 어젯밤, 내가 정한 "구분"을 생각해낸다.
오늘도 배는 고프지 않아.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몸은 기운 넘친다.
그러니까.... 이제 인정하자.

 

한걸음 앞서 걷는 남자를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 옆에 선다.

 

"저기"

 

내가 부르면, 남자는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다.

 

"나.... 당신이 말한 거 믿을게. 내가 인간이 아닌 걸 실감했어."


"--- 그런가"

 

별로 표정의 변화도 없이, 맞장구치는 남자.

 

"하지만 츠쿠모카미 라는 건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워. 그런 어떻게 실감하면 되는 거야?"

 

어젠 대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이라면 대답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 예상은 맞았다.


잠깐의 침묵을 끼고, 남자는 입을 열었다.

 


"너 뭔가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물건이 있어?"

 


남자가 물으면 내 시선은 자연스레 오른손에 들고 있는 우산으로 향한다.

 

"역시, 그 우산인가"

 

남자는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듯이,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응, 이 우산.... 아무래도 떨어지질 않아. 손에 바꿔 쥘 수는 있는데-"


"당연해. 네 매개체가 손에서 떨어질 리가 없어"


"매개체?"

 


잘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본체로 받아들여도 좋아. 너는 그 우산에 머물러 있던 츠쿠모카미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그 우산이 너다."


"우산이, 나......?"

 

너무 당치도 않은 소리를 들어서 나는 어이없어진다.
하늘색 우산을 바라봐도 이제 나라곤 생각되지도 않아.

 

"우리는 인간이 아니야. 물건에 남은 "마음"이야. 원래- 인간이었던 너는 옛날에 죽었어"

 

물웅덩이가 없는 곳으로 피해 걸으면서 남자는 말한다.

 

"에-?"

 

놀라서, 발을 멈춘다. 남자는 그대로 걸어간다. 나는 당황해서 남자의 등을 쫓았다.

 

"주, 죽었다니.... 내가?"

 

남자를 쫓아가며 되묻는다. 남자는 멈춰 서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하, 하지만 난.... 이렇게 살아있어?"

 

가슴에 손을 올리고 호소한다.

 

"아아, 너는 츠쿠모카미로서 여기에 있어. 하지만 인간은 아니야 그런 거다."

 

"그런거라니 .... 어떤 거? 전혀 모르겠어"

 

나는 당황하여 말을 쏟아낸다.
 그런 나를 보고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 역시 나는 설명을 못 해. 그저 어지럽혔을 뿐인가......"

 

"에? 아......"

 

남자가 조금 우울한 듯이 보여서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죄송해요. 기껏 설명해 줬는데......"

 

"아니, 됐어. 내가 설명을 급하게 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나는 반 보 정도 떨어져 걸어간다.
다리를 움직이면서 생각한다.

 

- 이 사람은 제대로 내 질문에 대답해줬다. 혼란스러운 건 내가 이해하지 못한 탓.

 

그러니까, 남자의 마을 머리속에서 되새긴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이 우산이.... 나.

하늘색 우산을 내려다본다. 남자는 매개체라고 말했다.
이게 내 본체라는 것. 그 말을 믿는다면 나는 우산의 츠쿠모카미가 되는 거겠지.


우산에 남은 "마음"이 지금의 나. 인간인 나는 죽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 나는, 내가 아닌 거야?"

 

남자의 옆모습에 묻는다. 그는 이쪽을 향하지 않은 채로 수긍했다.

 

"아아, 너는 네가 아니야"

 

얼핏 보면 의미불명인 대화. 하지만 우리 사이에선 의미는 통했다.

 

"그런... 거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는 인간이 아니야. 그 말의 의미는,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인간이 아닌 시점에서 나는 다른 인간이다. 내가 아닌 거다. 왜냐면 진짜 나는 인간이니까.

츠쿠모카미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건 간단하지만, 나는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걸 인정했다.
그래서 난 내가 아니라는 것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다.

마치 서투른 언어유희. 내가 뭔지, 모르게 된다.

 

- 어려운데, 잊어버릴까나.

 

그런 기분이 들지만 그러면 설명해준 남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주의가 산만해진 탓에 균열이 생긴 아스팔트의 틈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 !?"

 

꼴사납게 굴러버린다.
심한 통증을 참으며 일어서면 무릎에 피가 스며있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피는 나는거야......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 괜찮은가?"

 

어느 순간 남자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내 상처를 보고 손을 내민다.

 

"잡아. 웬만한 상처는 한숨 자면 나아.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라"


"아, 그런 거 구나...."

 

남자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한 걸까,
기분이 가라앉는다.
역시 인간과는 다른 몸인 모양이다.

 

"저기, 난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 걸까?"

 

내밀어 준 손을 보면서 묻는다.
대답해줄 질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 매달려버린다.

 

하지만 뜻밖에도 남자는 즉답한다.

 

"너는, 우산이다"


"아.... 확실히 그러네"


나는 고소한다.
하늘색 우산이 내 매개체라면,
이것이 나.
용서 없지만, 확실한 대답

.

"츠쿠모카미는 거의 매개체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고 있어. 너도 카사(우산)이라고 칭하면 돼"

 

"카사....?"

 

나는 그 말을 되묻는다.

 

"아아, 싫다면 직접 생각해"

 

조금 망설인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되풀이해보면 나쁘진 않았다.

 

"......으으응 카사면 돼"

 

나는 머리를 흔들고 내밀어 준 손을 붙잡는다.
남자의 손바닥은 크고 조금 거칠었다.

아까보단 천천히 남자가 걷는다.
아마 부상당한 나에게 맞춰주는 거겠지.
무릎은 따끔따끔하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냐.

구불구불하고 가느다란 길을 빠져나와 다른 길로 나간다.
짐작은 간다. 마을에서 제일 번화한 역 앞의 상점가다. 나도 몇 번인가 온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떠들썩함도 없이 상점가의 천장이 떨어져 있다.
바닥에는 천장의 부서진 조각이 흩어져 있다.
허공에는 철골의 뼈대만이 남아있다.

상점가 전체가 마치 백골화된 거대한 생물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안을 걷고 있다.

자박자박......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천장의 조각이 더욱더 잘게 부서진다.
나는 우산 끝을 질질 끌고 있을 때가 많지만, 이번엔 땅에서 떼어 놓고 있다.
이것이 내 본체라고 말하면, 험하게 다룰 수는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옆에서 걷고 있는 남자를 곁눈질로 살핀다.

처음 만나고 나서 3일째인데 아직 듣지 못한 게 있다.
그건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맨 처음으로 묻는 것.
하지만 나는 평범하지 않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었으니까, 깜빡 잊었다.

 

"저기.... 당신의 매개체는 뭐야?"

 

작은 소리로 남자에게 묻는다,
남자는 나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코트 안에서 권총을 내밀었다.

 

"이거다"

 

짧게 답하는 남자. 놀라진 않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정말로 알고 싶었던 것은 또 다른 것.

 

"그럼, 당신의 이름은......츄우?"

 

조금은 긴장하고 묻는다.
타인의 이름을 묻는 것은 아마 처음.
아는 것은 기억하는 것.
잊어버리는 것은 정반대. 그래서 익숙하지 않다.
흥분한 채로 대답을 기다린다.

 

"아니, 달라"

 

이번엔 예상이 빗나가 부정의 말이 돌아왔다.
조금 좌절하지만 계속해서 질문한다.

 

"그럼 뭐야?"

"----시그"

 

낮은 소리로 남자는 말한다.

 

"시그?"

"아아"

 

시그, 인가......

마음속에서 되풀이하며 기억에 새긴다.
잊어버리지 않게, 깊숙히, 깊숙히.
 
이걸로 평생 기억할 자신이 있어서,
얼굴을 들어 남자에게- 시그에게 묻는다.

 

"왜 시그야? 츠쿠모카미는 매개체의 이름을 칭하는 거지?"

 

"총의 츠쿠모카미는, 나뿐만이 아니니까 다"

 

"에, 그런 거야?"

 

의외라고 생각했다. 종은 이 나라에서 흔한 건 아니야.
그런데도 또 다른 츠쿠모카미가 있는 건 이상하다.

 

"아아, 몇 명인가 있어. 그 중 하나가 총을 보고 나를 시그라고 부른 거다, 아마 이 총의 이름에서 딴 거겠지"

 

"......왜 그렇게 애매한 거야? 네 총인데"

 

내가 의문을 표하면 시그는 고소한다.

 

"이것은 아마 내 것이 아냐. 츠쿠모카미로 태어났을 때, 나는 총을 쏘는 법조차 몰랐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시그는 권총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 누구거야?"

 

"----글쎄. 확실한 건, 이 총에 내 "마음"이 들어가 있단 것뿐. 기억은 그다지 남아있지 않아. 기억하는 것은 있지만.... 거의 단편적이라 애매하다."

 

"그렇구나...."

 

나는 내심 놀란다. 기억이 애매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히 나는 내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저기, 시그"


조금 의식하고 이름을 부른다.

 

"왜 그래?"

"츠쿠모카미는 그런 거야?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은 그다지 없는 거야?"

"츠쿠모카미는 마음의 현신이다. 그리고 마음은 감정에 가까워. 그래서 기억이 남은 거겠지."

"마음......"

 

하늘색 우산을 바라본다.

"내 마음은 뭘까나...."

그것은 단순히, 생각한 것을 입으로 중얼거린 것 이였다.
하지만 시그는 믿지 못할 소리를 들어버린 것처럼 나를 봤다.

 

"너, 지금---"

 

나에게 뭔가 말하려는 시그. 하지만 그는 말을 도중에 잘랐다.

그 이유는 나도 금방 알았다.

 

"...... 추워"

 

나는 내 팔을 감싼다. 갑자기 주위 기온이 내려갔다.
상점가는 조금 있으면 끝나고 이대로 가면 역 앞이 나올 거다.
하지만 길 앞에는 새하얗게 흐리다, 보이지 않는다.

 

"안 되겠네, 여기론 갈 수 없어. 돌아간다"

 

시그는 그렇게 말하고 발을 돌린다.

 

"아, 알았어......"

 

괴물에게 습격 당했을 때를 기억해내고 나도 빠르게 시그의 뒤를 쫓아간다.

걸을수록 차가움은 누그러져,
원래 체온으로 돌아온다. 뒤돌아보면 이미 새하얀 안개는 보이지 않아.
나는 긴장이 풀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택가 쪽도 보고 싶은데.... 아직 걸을 수 있어?"

 

시그는 상처 난 내 다리를 보고 묻는다.

 

"괜찮아. 살짝 스친 거고"

"그런가"

 

시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내 발걸음에 맞춰 상점가를 역방향을 걷기 시작한다.

 

"....너, 아까 네 마음을 모른다고  했지"

 

잠시 걸은 후, 시그가 생각난 듯이 입을 연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째선지, 슬슬 물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아까 본 시그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그런 건 거의 없어"

"에......?"

 

하지만 갑자기 시그가 단언해서 나는 당황한다.

"기억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매개체에 남은 마음만큼은, 알아, 강한 마음이니까 우리가 태어난거다. 반대로 마음이 사라지면, 우리는 사라져.그런 존재다"

 

시그는 드물게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 정말로 모르는 거야?"

 

비난하는 듯이 느껴져서, 나는 움츠러든다.
시그는 그런 나에게 곤란한 표정을 띠었다.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네. 그럼, 어째서냐......?"

 

내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묻는 듯이, 시그는 지면에 시선을 떨어트린다.

 

"............저기"

 

하나 생각난 게 있어서 나는 작게 손을 든다.

 

"뭐야?"

"혹시...... 잊어버렸을지도"

"잊어버렸다?"

 

시그는 의아하게 나를 본다. 하지만, 나는 아마...... 그것이 가능하다.

 

"난 딱하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망설이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다,
내 행동에서 알아채는 경우는 있더라도.
일부러 설명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처음하는 일투성이네, 라고 마음 한구석에서 생각한다.


"......특별?"

"응, 나...... 잊어버리는 게 굉장히 익숙한 거야.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꾸깃꾸깃 뭉쳐서 머릿속의 쓰레기 상자에 휙 던져넣으면....깨끗하게 지워지는 거야"

"그런게......"

 

시그는 의심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정말이야? 나 이외의 인간에게 증명 할 수 는 없지만...... 그래도, 정말이야"

바로 믿어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조금 후회한다.
역시 말하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몰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건 싫다.

시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했지만, 이윽고 머리를 흔든다.

 

"...... 그러네, 네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나"

"에? 믿어주는거야?"

"아아, 대체로, 나는 츠쿠모카미다. 네 이야기보다 훨신더 비현실 적인 존재다"

"아하하하, 그러네"

 

나는 웃는다. 뭔가 무척 오래간만에 웃은듯했다.

 

"단 네가 그런 게 가능하다 해도, 마음을 잊어버렸다곤 생각할 수 없어. 아까도 말했지만, 마음이 사라지면 존재 할 수 가 없으니까.

"그런가......"

 

어깨를 늘어트린다.

 

"단순하게네가 자각하지 못한걸 지도 몰라. 아주 당연한 것이 "마음"인경우도 있어"

"응...... 알았어. 다시 한번 천천히 생각해볼게"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걸으면서 하늘색 우산을 바라본다.
이것은 내 우산이다.
비오는 날 밖으로 나갈 때 들고가는 원터치식 우산.
일부러 떠올려봐도, 추억이 있는 것도 아냐.
아무리 바라봐도- 여기에 있는 마음을 모르겠다.

시그가 고른 상점가에서 주택지로 가는 길은 내가 물건을 사러 갈 때 쓰는 루트였다.
익숙한 만큼 그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기억에선 신축이었던 집도 문이 녹슬고, 벽에서 마당까지 뻗은 덩굴에 덮여있다.
현관 앞에 있는 개집은 텅 비었다. 강아지용 밥그릇에는 물이 담겨있고, 이끼가 자라고 있다.

이제 곧.... 내 집이네.

시그에게 가르쳐주려고 생각했지만, 그만두자.
입을 다문 채로 문이 사라진 내 집을 곁눈질 하며- 그대로 지나간다.
더럽혀진 문패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이름은 이미 내 이름이 아니야.
처음부터.... 내 이름이 아냐. 그래서 그다지 미련은 없었다.

이 길은 중학교로 가는 통학로.
늘 보아오던 풍경이 완전히 변해버린 모습이 한동안 계속된다.
하지만 풍경의 차이보다,
이 길을 시그와 나란히 걷고 있는 상황의 위화감이 더 크다.

 

 

뭔가 신기해......

 


- 사아아아아.

 

 


감상에 빠져있으면, 귀울림 같은 희미한 빗소리가 들렸다.

 


"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은 드문드문 있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쬔다, 맑다. 하지만....

 


-사아아아아아.

 


빗소리가 들린다. 계속 걸어갈수록 커진다.
오른쪽에 담뱃집이였던 폐허가 보인다.
여기서 꺾는 게 내 일상. 몇백 번이고 지났던 길.
이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중학교가 있다.

 


"시그"

 


나는 옆에다 말을 건다.

 


"응?"

"빗소리 들리지 않아?"

"....? 무슨 소리야?"

 


시그는 눈을 맞추고 대답한다.
이 소리는, 나한테만 들리는 모양이야.
그전에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빗소리가 들릴 리 없다.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내가 잘못 들은 거다.

 

 

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들린다. 점점 커진다.
격렬한 빗소리가 울려 퍼진다.
담뱃가게 앞에서 멈춰 선다.
시그는 그대로 똑바로 걸어간다.
빗소리는 방향을 돌리기 전부터 들려온 모양이었다.

 

- 가야 해

 


그런 마음이 들어서,
시그와는 다른 방양으로 다리를 내디딘다.
비가...... 나를 부르고 있다.

 


"어이"

"--!?"

 


뒤에서 손목을 강하게 붙잡혀서, 정신이 번쩍 든다.

 


".... 시그?"

 


뒤돌아보면 무서운 얼굴을 한 시그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멋대로 어디가"

"아......"

나는 멍해진다.
왜 시그한테서 떨어져 방향을 꺾고 싶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 길은 위험해. 날씨완 상관없이 안개가 때때로 발생하는 장소가 있어. 이 앞도 그 중 하나다."

"그렇구나.... 미안, 여기 내 통학로였으니까....무의식적으로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고 생각해."

 

그 이상 생각나는 가능성은 없어서, 나는 그런 식으로 변명한다.
시그는 내 변명을 듣고 조금 시선을 누그러트렸다.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여긴 이미 네가 아는 마을이 아니야. 나도 이제부턴 위험한 장소를 가르쳐주지. 기억하고, 주의해"

"알았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시그는 내 팔을 놓고, 원래 가던 길로 돌아간다.
나도 옆에 붙어 따라간다. 방향을 돌리기 전에 한번 더 뒤돌아보지만,
이미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 햇살이 오렌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완만한 비탈길인 주택지를 걸어, 우리는 전방이 좋은 장소에 도착했다.
아마 나와 시그가 처음 만난 장소와 가깝겠지.
길은 다르지만, 비탈길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이틀 전을 기억나게 한다.

그리고 그때와 똑같이, 비탈길 아래에는 새하얀 안개가 차있다. 
멀리 있는 호수도 흐릿해서, 마을의 경계가 보이지 않아.

 

"여기도 갈 수 없네. 해도 졌고..... 슬슬 돌아갈까"

 

시그는 왔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도 반 보 떨어져서 발걸음을 돌린다.
오늘의 수색은 이걸로 끝인 모양이다.
시그가 체크한 장소로 추측해보면 아무래도 마을의 북서부로 통하는 길을 찾는 것 같아.
이제까지의 이야기로 생각해보면 거기에 시그 보다 설명을 잘하는 츠쿠모카미가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 와서 다른 사람한테 맡겨도 말이야....

 

가슴 속으로 중얼거린다. 솔직히, 설명이 능숙하든 어설프든 상관없다.
이야기를 들을지 말지는 상대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다.
나로서는 인간의 됨됨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시그 쪽이 안심된다.
나는 슬쩍 등 뒤를 보고 저지대에 서린 새하얀 안개를 봤다.

 

"시그, 물어봐도 돼?"

 

조금 망설이면서 묻는다. 시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저 안개랑-- 나를 습격한 괴물은, 뭐야? 귀찮지 않다면 가르쳐줬으면 좋겠는데"

"............ 그러네. 안개의 위험성은 확실히 이해시켜두는 게 좋나"

 

저번에는 애매하게 풀어놓더니, 이번엔 적극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아까 내가 멋대로 위험지대로 가려고 했던걸 생각해낸걸 지도 몰라.

 

"커다란 의미 묶으면 그건 우리와 동류다 "

 

시그는 앞을 바라보면서 짧게 말한다.

 

"그건.... 안개를 말하는 거야? 괴물을 말하는 거야?"

 


생리적 혐오감이 느껴지는 괴물의 모습을 생각해내면서 나는 묻는다.

 

"양쪽 다다. 라고는 해도, 둘 다 같은 거야. 안개가 일시적으로 응축되면 네가 부르는 괴물 같은 모습이되"

"안개 전체가 괴물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쓸데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상점가에서는 안개의 차가움을 느꼈지만,
그것은 괴물이 몸을 쓰다듬은 것이나 마찬가지.
그래도 그것을 시그는 동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싫다고 생각하면서 묻는다.
하지만 괴로운 듯이 시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츠쿠모카미는 아니야. 우리는 카타나시(형태없습)라고 부르고 있어"

"카타나시?"

"형태가 없으니까, 카타나시. 카타나시도 우리와 같이 마음에서 태어난 존재다. 하지만 머무른 물건이 없어, 안개로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어"

 

나는 손에든 하늘색 우산을 바라본다.

 

"카타나시는 매개체가 없단거....?"

"아아, 그래서 불안정하고 애매한거야. 애매한 복수의 마음이 섞여들어 간 것도 많아, 그때는 네가 본 것 같은 흉악한 괴물이되. 하지만.... 불안정해서 웬만한 카타나시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해. 말하자면 자연현상 같은 거다."

"비나 눈 같은 느낌?"

"아니.... 태풍이나 번개와 비슷한 거야. 우리에겐 재앙이다. 카타나시는 형태와 안정을 원해서 츠쿠모카미를 습격해. 너처럼"

 

딱 딱 딱 하고 울려 퍼지는 이빨 소리를 생각해내고 나는 팔을 감싼다.

 

"역시 그거.... 나를 먹으려고 했어"

 

내 중얼거림을 듣고 시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츠쿠모카미의 매개체를 빼앗은 카타나시는 우리와 같은 모습을 얻어. 불안정한 안개의 몸이 아닌 거야. 그렇게 되면 재앙은 천적으로 변해버려"

"그래서 시그는 그때 굉장히 화냈던 거네...."

 

총을 나에게 향하고 죽고 싶다면 내가 죽여준다고 시그는 말했다. 거기엔 이런 사정이 있었던 거겠지.

안개 말고도 다른 괴물이 나온다면 안심하고 잠들 수도 없다.

 

"그래. 자살로서는 최악의 방법이니까. 끝내고 싶다면- 나한테 말해"

"시그......?"

 

나를 죽이려고 말했을 때의 대사완 조금 뉘앙스가 다른 것 같아서,
시그를 바라본다. 하지만 시그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귀로에 올랐다.

잡거 빌딩에 도착 했을 땐 태양이 산기슭에서 가까이 붉게 빛나고 있다.
태양이 완전히 질 때까지, 우리는 또 만화를 읽으며 시간을 때운다.

 

"시그-- 이 만화는 어디서 난 거야?"

 

지금 읽는 만화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라 적당히 페이지를 넘기면서 시그에게 말을 건다.

 

"발굴해서, 모았어"

 

만화를 읽으면서, 시그는 대답한다.

 

"발굴?"

"폐가를 돌면서 보존상태가 좋은 책을 모았다"

"그건 도둑질 아냐?"

 

나는 생각한 것을 입으로 냈지만 시그는 코웃음 친다.

 

"도둑질? 피해자가 전혀 없는데도? 이 마을엔 인간이 없어. 법도 없어. 이를테면 전시대의 유적. 나는 사라져가는 문명을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말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뭔가 고고학자의 가죽을 뒤집어쓴 도굴꾼같아"

 

논리가 미심쩍어서 나는 대답한다. 그러면 시그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너, 점점 부담이 사라지는 거 아냐?"

"시그도 처음보다 말수가 늘었네"

 

서로 시선은 만화를 향한 채 말한다.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붉은 빛이 약해지고 방도 완전히 어둠이 퍼졌다.

 

"......잘까"

 

시그가 만화를 덮고 나에게 말한다.

 

"그러네"

 

나도 만화를 책상에 올려놓고, 소파에 눕는다.
아직 완전히 태양이 진 게 아니라서, 천장은 붉은 그늘이 졌다.
점차 색이 사라져가는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은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나는, 내가 아니라는걸 알았다.

나는, 우산이었다.

다친 무릎을 만져보면, 이미 피가 굳어있단 걸 알았다.
시그는 자면 낫는다고 말했지만 정말일까.
게다가 잊는게 특기라고 시그에게 말해버렸다.
그 후로 별다른 추궁은 없었지만,
사실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조금 신경 쓰인다.
그리고, 카타나시도 가르쳐줬다.
안개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해했다.
통학로를 그대로 걸어갔다고 생각하면 닭살이 돋는다.


그러고 보니 그때 시그는......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누운 채로 시그에게 묻는다.

 

"저기, 시그 계속 안계가 나오는 위험한 지역 가르쳐줬지"

"... 그게 어쨌단 거지?"

 

건너편 소파에서 낮은 소리가 돌아왔다.

 

"안개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거 아니야?"

"....보통은. 하지만 마음이 비정상적으로 강하고 다른 마음을 거부하는 성질 일때는 예외다. 안개의 상태도 안정적이고, 자연소멸은 하지 않아. 뭐어.... 장소를 아는 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카타나시보단 안전해. 가까지 가지만 않으면 끝나는 이야기니까"

 

함축성 있는 어조로 시그는 설명한다. 그 외에도 다짐을 해두는 거겠지.

 

"응, 조심할게. 고마워, 조금 그게 신경쓰여서...."

 

나는 예의를 표하고, 눈을 감았다.

 

"-- 나도 신경쓰이는게 있어"

 

하지만 뜻밖에도 시그가 말을 걸었다.

 

"뭐야?"

"네 마음에 대해서다. 짐작 가는 건 있었어?"

".... 으으응, 역시 모르겠어"

 

나는 우산의 손잡이를 쥐면서, 대답한다.

 

"그런가......"


시그의 목소리에 낙담은 없다. 단순히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기, 역시.... 마음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없어?"

"아아. 마음이 없으면 우리의 존재는 없어.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대전제다. 뭔가는 있을거야.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더라도, 강한 감정이나 충동이......"

 


충동--.

 

 

그 말에 점심에 일어났던 일이 뇌리를 스친다.
그때, 나는 빗소리를 듣고,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혹시 그게....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런일이 있으면 안 돼.

 


"시그는 내가 거짓말한다고 생각해?"

 

감정이 조금 고조된 탓에, 책망하는 듯한 말을 해버린다.
하지만 시그는 신경 쓰지도 않고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니 네 말은 의심하지 않아. 좋을 대로 기억을 잊어버린다.... 너는 그게 가능한 거겠지. 하지만 하나 신경 쓰였다. 네가 잊는 기억은-- 안전히 사라지는 건가?"

"에......?"'

 

생각지도 않게 눈을 뜨고 시그를 바라본다. 시그도 소파에 누운 사제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한번 생겨난 것은 사라지지 않아. 설령 지워버렸다고 생각해도, 흔적은 남아있어...... 우리처럼"

 

츠쿠모카미는 인간의 잔재라고 시그의 눈동자는 말하고 있다.

 

"기억도 아마 같아. 잊어버렸다고 생각해도, 어딘가 분명히 남아있어. 네가 잘하는 것 잊어버리는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것은 내가 정말 조금 생각한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부정한 생각이었다.

 

"아니야.... 나는, 내 기억은.... 사라져.... 사라져야만, 싫어"

 

내 몸을 끌어안고, 목소리를 짜낸다.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지지 않았다니 어찌 할수도없이 기분 나쁘다.
뭐든 사라지니까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그걸 못한다면 모든 게 무서워진다.

시그는 몸을 떠는 나를 보고 시선을 돌렸다.

 


"---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걸로 상관 없어"

"....?"

 

시원스레 시그가 물러나서, 나는 당황한다.

 

"나는 별로 네 마음을 알아내고 싶은 게 아니야.이지에 맞지 않는 상황에 진정되지 않았으니까, 무리하게 이치에 맞는 가능성을 찾았을 뿐이다. 내 생각을 너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어"
 
"...... 그래"

 

휴 하고 한숨을 쉰다. 조금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밖에서 강한 바람이 불었던 건지, 창문이 삐걱삐걱 흔들린다.

 

"거기에, 혹시--- 잊어버리는 편이 좋을지도"

 

이젠 잠들어버렸을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시그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왜?"

나는 작은 목소리고 이유를 물었다.

 

"-- 츠쿠모카미는 '마음'에서 태어나. 그래서 '마음'에 묶여있어. '마음'대로 살아가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냐"

 

방에는 이미 새까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시그의 표정도 몰라.

 

"시그는, 힘들어?"

".... 글쎄"

 

긍정도 부정도 포함한듯한 어조.

 

"혹시, 잊을 수 있다면.... 잊고 싶어?"

 

내 물음에 시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1분 정도, 그 이상의 침묵을 끼고,
드디어 그는 자신의 결론을 말했다.

 

"아니---- 나는 잊지 않아"

 

그건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시그의 말은 귀에 깊숙이 남았다.

나는 우산을 끌어안고 꽉 눈을 감는다.
무언가 무척 가슴이 아팠다.

그날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바람이 강해진 건지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건너편 소파에선 시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아까 대화를 구겨서 잊어버리면 나도 기분 좋게 잘 수 있겠지.
이제까지라면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망설여졌다.

 

 

달각달각 달각달각

 


톡, 톡톡--.

 

 

창문 소리에 섞여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 같다.
내일은 또 온종일 방에서 나가지 못할지도 몰라.

 

 

솨아아아아아아아-.

 

 

빗소리는, 연이어 겹쳐지며 마을을 채운다.

 

 

 

.... 가야 해.

 

 

 

또 그 목소리가 들렸다. 빗발이 강해질수록 목소리도 커진다.

 

 


가야 해, 가야 해!

 

 


나를 재촉하는, 강한 마음. 격렬한 충동.

이미 얼버무릴 필요는 없었다.
 꿈이라고 눈을 피하고 귀를 막을 순 없었다.

이것이 분명 내 마음.

 


하지만...... 굉장히, 굉장히 괴로워.

 

 

가야 해,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후회와 죄악감으로 물들어있다.
힘든 것도 괴로운 것도 고통스러운 것도 싫다.
바로 지워 버리고 싶다.
그래서--- 나는 잊어버린 것이겠지.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겠지.

시그가 말한 대로야.
나는 생각하지 않는 게 특기였던 것 뿐이다.
나를 츠쿠모카미로 만들 정도의 강한 마음만큼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쓰레기 상자에 버려버린 기억에서 비에 젖은 마음이 배여나온다.

 

 


가야 해, 가야 해, 가야 해!

 

 


아마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기며 더러워진 기억의 쓰레기상자를 끄집어내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겠지.
우산에 남은 마음의 정체를 알수있겠지.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한번 더 쓰레기 상자의 뚜껑을 열 생각은 없었다.
빗소리는 좋아하는데, 오늘은 무척 얄밉다.


빨리 비가 그치길 빌면서, 나는 조금씩 잠에 빠져들었다.

 

 

 


솨아아아아아아-.

 

 


눈을 떠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어젯밤보다 강하게,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가슴 속에서 지껄이는 목소리는 시끄러울 정도.

아마 사라지지 않은 기억이 있단 걸 자각한 것이겠지.
의식이 확실히 깨어있어도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에 묶이면, 확실히 즐겁지 않아.
무척 괴로워. 시그가 말한 걸 실감했다.
그 시그로 말하자면, 이미 잠에서 깨어나 만화를 읽고 있다.
내가 몸을 일으키자 한번 시선을 이쪽으로 향했지만,
바로 다시 책 읽기로 돌아가 버린다.
벌써 4일째니까 인사정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좋은 아침"

 

울리는 목서리에 두통을 느끼면서도 시그에게 말을 건다.

 

"......아아"

 

시그는 만화를 읽으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도 만화를 집어들지만, 속에서 소리 지르는 목소리가 시끄러워서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만화를 읽는 걸 그만두고, 시그를 바라본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내 무릎을 쓰다듬는다.
그곳엔 이미 딱지조차 없다. 정말로 하룻밤 자고나니 상처는 나아있다.

 

"저기 말이야......"

 

가벼운 목소리로 부른다.

 

"............?"

 

시그는 만화에서 얼굴을 떼고 시선을 나에게로 돌린다.

 

"-- 시그의 마음은 뭐야?"

 

물어도 괜찮은 건지는 모르지만, 마음껏 물어본다.
시그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으니까.

 

"...... 죽고 싶지 않아"

 

낮게, 마치 신음하는 듯이 시그는 중얼거린다.

 

"에?"

 

내가 엉겹결에 다시 물어버리면,
시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반목했다.

 

"죽고 싶지 않아. 그게 이 총에 남은 내 마음이다"

 

"그렇, 구나..."

 

시그가 손에든 권총을 바라보면서, 나는 맞장구친다.

 

"--- 죽고 싶지 않으니까, 살아왔어. 계속....말이야"

 

"그건 괴로워?"


"............"

 

내 물음에 시그는 대답하지 않아.
복잡한 얼굴로 침묵을 지킨다. 아마 저에 마음을 잊어버리고 싶냐고 물었을 때도,
지금 같은 표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괴로워"


".......? 무슨 의미야?"

"기억난거야.... 내 마음. 시그가 말한 대로였어. 지워버리고 싶었어. 지금도 나를 굉장히 재촉하고 있어"

 

솔직히 지금 상태를 생각해보면, 시그는 역시 놀란 표정이다.

 

"하지만 이 마음..... 무척 괴롭고 고통스러워. 아마, 생각해내면 좀 더 힘들 거야 그래서 생각해 내려고 하는 나를 잊어버리고 싶어"

"그러면, 왜 잊어버리지 않은 거야?"

"......아마, 시그를 같이 잊어버릴 테니까. 그건 조금 싫다고 생각했어"

 

나는 고소한다.

 

"물론 전부는 아니야? 하지만 잔뜩 없어져. 그러면 말이야, 내가 본 시그도, 시그가 본 나도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뭐어, 그런 거 익숙해졌지만.... 이번엔 뭔가, 아까운 기분이 들었어"

"조금, 잘 모르겠는데....."

 

시그는 드물게 곤란한듯한 표정을 띠었다.

 

"요컨대, 시그 때문에- 나는 지금 힘들어"

".... 그건, 미안하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시그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사과한다.
조금 미안해져서 나는 뺨을 긁었다.

 

"미안, 아까는 농담. 조금 짓궂은 소릴 해서 부탁을 들어주게 하려고 했어, 시그 탓이 아니야"

"부탁?"

"응...... 나, 밖에 나가고 싶어"

"이 빗속을 말인가?"

"그래. 내가 찾고 싶은 건 빗속에서 밖에 찾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 말로 지는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짐작한 모양이다. 만화를 책상에 올려놓고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비는 카타나시의 안개를 불러. 내가 허가할 거라고 생각해?"

"안 할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가야 돼. 잊고 싶지 않다면--- 가야 하는 거야"

 

이 마음에는 반대하지 않아. 비가 내리는 한, 마음은 배여 나온다.
유일하게 도망치는 방법이 있다면, 잊어버리는 것.
생각날 때마다 잊어버리는 것. 하지만 그건 처음으로 내가 기억한 이름을 지워버리는 선택.
괴롭고, 싫은 건 잊어버리고 싶어.
하지만--- 정말 조금 즐거웠다고 생각한 건 계속 기억하고 싶어.

물러서지 않고 부탁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답은 정해져 있다.
괴로운 것보다, 즐거운 게 중요한 건 누구나 당연한 것.
나는 각오를 하고 일어선다.
그러면 시그는 망설임 없이, 권총을 나에게 향했다.

 


"네가 카타나시에게 먹힐만한 행동을 하면 내가 죽인다. 몇 번이고 말했을 거야?"

"응, 몇 번이고 들었어. 하지만 나는 먹히러 가는 게 아니야. 시그는 내가 죽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한 쏘지 않을 거야"

근거는 없지만 단언하고, 나는 총구를 무시하고 방문으로 향한다.

"멈춰라"

 

 

저지하는 소리가 울린다. 그것은 차갑고 날카로워, 사람을 죽이는 악인의 목소리였다. 손잡이로 손을 뻗었으면 손끝이 굳었다. 하지만 그대로 마음껏 문을 열었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커다란 빗소리가 방안으로 흘러들어온다.

총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대신 발소리가 들린다. 검은 코트와 머플러를 몸에 걸친 시그가, 내 옆에 선다.

 

"---이번뿐이다"

 

시그는 거기에 더해 챙이 넓은 검은 모자를 뒤집어쓰고 불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응.... 고마워, 시그"

 


나는 미소로 예의를 표하고, 하늘색 우산을 손에 쥐고 비 내리는 하늘 아래로 걸어갔다.

무수한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나는 그것을 하늘색 우산으로 받아낸다.

 

 

타다다다다다-.

 

 

물방울 튀는 소리를 우산 아래서 듣는다.
나는 옆이 신경 쓰여서 눈을 돌린다.
전신이 새카만 시그는, 우산도 없이 조용히 걷고 있다.

 


"-- 우산, 안 써도 괜찮아?"

 

화났을 거라고 생각돼서 말걸기가 그랬지만, 조금 걱정돼서 묻는다.

 


"아아, 내가 숙여야 하니까 네 우산은 필요 없어"

 


확실히 나와 시그의 키는 차이가 엄청나서 조금 무리가 있다.
우산은 내 매개체라 시그에게 빌려줄 수도 없다.

 


"하지만....."

".... 상하긴 했지만, 이 모자랑 코트는 일단 방수다. 젖어도 츠쿠모카미는 감기에 걸리지 않아"

 


그걸 듣고 안심한다.

 


"시그의 옷은 발굴품?"

"코트하고 머플러 모자만. 남은 건 전무 츠쿠모카미의 부속품이다"

"부속품......?"

"츠쿠모카미로서 태어났을 대부터 입고 있던 옷이란 의미다. 너에겐 그 옷이 되겠지"

 


지적당해, 내는 중학교 교복을 내려다봤다.

 

"이 옷, 내 몸의 일부 같은 거야? 혹시 못 벗어?"

"아니, 몸의 일부분이란 인식은 잘못된 게 아니지만, 매개체와는 달라서 몸에선 떨어져. 하지만 벗거나 찢어지더라도, 상처와 똑같이 하룻밤 자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와 있다. 우리에게 수면은 몸을 기본적으로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

"헤에......"

 

뭔가 깨알 지식 같다고 생각하면서, 맞장구친다.

 

"--- 생각보다. 여유 있는 모양이네"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시그가 말한다.

 

"에, 뭐가?"

"너는 네 마음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 는듯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보이네"

"......그런거 아니야. 이것 봐"

 

나는 팔을 뻗어서 시그의 손에 살짝 올린다.

 

"............"

 

그러면 시그는 순간 위험한 표정으로 변한다.
내 차가워진 손의 떨림이 전해진 거겠지.

 

"그렇지?"

"-- 무섭다면, 무리하게 말하지 않아도 돼"

 

미묘하게 화난듯한 어조로 시그가 말했다.

 

"반대야. 무서우니까, 즐거운 걸 말하고 싶은 거야"

"즐거워...? 잡담이, 말인가?"

"응. 보통 사람과 대화하는 건 즐거워. 계속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별로 과장할 생각은 없었지만 시그는 복잡한 얼굴을 한다.

 

"너는...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야?"

 

나는 가까이에 있는 물웅덩이를 찰방하고 밟으면서, 시그를 뒤돌아본다.

 

"글쎄? 거의 잊어버렸어"

 

고소하면서, 솔직히 대답했다.

 

"...그런가"

시그는 물웅덩이를 한걸음에 뛰어넘어서,
내 옆에 선다. 거기서 조금 대화가 끊긴다.
그러면 신경 써준 것인지 이번엔 시그가 말을 걸어온다.

 

"길은 이쪽이면 괜찮은 건가?"

"응 장소는 어떻게는 알아"

 

거긴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빗소리가 들렸던 장소.
중학교 통학로. 담뱃가게가 있는 골목.
한번 더. 거기로 가면 뭔가 알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방금 전 자택 앞을 지나간다.

 

"내가 전에, 츠쿠모카미는 마음에 묶여있다고 했었지"

"-- 기억하고 있어. 나, 실감하고 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시그는 말을 계속했다.

 

"마음이 츠쿠모카미에게 주는 리스크는 그 밖에도 많아"

"에?"

"소화할 수 있는 종류에서 태어난 츠쿠모카미는 곧 사라져."

"무슨 뜻이야?"

"이를테면 츠쿠모카미의 핵이 되는 마음이, 석양을 보고 싶다는 실현하기 쉬운것이였을경우...... 그 츠쿠모카미는 석양을 본 순간 마음에서 풀려나, 사라져버려

"-- 뭔가, 성불하는 듯한 느낌이네"

 


내 감상을 듣고 시그는 수긍한다.

 

"그러네. 우린 영령과 그다지 차이가 없어"

 

고소하는 시그에게 나는 불안한 기분에 둘러싸인다.

 

"나도... 혹시 사라질지도 몰라?"

"가능성은 있어. 그걸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가......"

 

나는 비를 튀기는 하늘색 우산을 올려다본다. 다리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가면서-.

 

"뭐어, 어느 쪽이 행복할지는.... 모르겠지만"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는 시그.

 

"그런 거야?"

"죽고 싶지 않아.... 그런 지속적인 마음이라면 괜찮지만, 실현 불가능한 마음의 경우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영원히 품게 되. 그건 그다지 행복하다곤 말할 수 없겠지"

"......그러네"

 

겨우 담뱃가게 앞에 도착한다. 나는 갈림길에서 다리를 멈춘다. 시그가 놀란 얼굴로 나를 본다.

 

"어이, 이 길은--"

"알고있어. 하지만 이쪽이야. 이 앞으로....가야만해"

 

안개가 항상 나오는 위험한 지역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에 스미는 충동이 이쪽으로 가라고 부르짖고 있다.

 

"... 진심인가?"

"부탁이야, 이제---- 멈출 수 없어. 여기로 되돌아가면 나는 잊어버릴 수 없어. 이제 두번 다시 용기를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시그가 함께인 지금이니까 앞으로 나가는거야"

 

코트 자락을 붙잡고 호소한다.

이 앞에 있는 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잠든 장소.
카타나시가 나오는 위험한 지역.
혼자선 가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럴 용기도 힘도 없다.

 


"너는.... 잊고 싶지 않은 거지?"

"응"

"-- 정말이지, 정말로 귀찮은걸 주웠어"

 

시그는 작게 독설을 퍼붓고는 다리를 뻗어--- 갈림길을 돌았다.

 

"......시그"

기뻐서 눈물이 나왔지만 울고있는건 아냐.
나는 눈가를 훔치곤 시그를 뒤쫓아갔다.

 

"나보다 앞으로 나가지 마. 한 걸음 떨어져서 따라와"

 

코트 안쪽에 손을 넣고 주변을 경계하며 시그는 말한다.

 

"알았어"

시기의 넓은 등 뒤에서 한걸음 정도의 거리를 띄우고 길을 따라 걷는다.
빗발이 약해졌는지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약해진다.

 


타다다다다다다닥-.

 

비 튀기는 소리가 가볍다.

 


솨아아아아아아아-.

 


마을을 둘러싼 빗소리는 부드럽다.

길의 양측에 늘어선 페허가, 갑자기 한순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생각해내기 시작한 기분이 들었다. 쓰레기 상자에 밀어 넣은 기억이 흘러 넘치고 있다.
빗물을 빨아들이고 불어나서 쓰레기 상자에 들어가질 못하고 있다.

 

매일 아침 눈에 넣은 풍경의 본상을 본다. 친구끼리 둘러싸여 걸어가는 같은 학교 학생.
쓰레기를 내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줌마. 역으로 향하는 샐러리맨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아저씨.
부모님의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가는 아이-----------.


당연한 듯이 되풀이하면서 봤던 정경.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상. 그것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교과서가 들어간 가방을 가지고, 우산을 쓴 채 걸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학교로 향하고 있다.
주면 사람들도 모두 우산을 쓰고 있어서,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찾아내 버린다.

 

 

그것을--- 찾아내 버린다.

 


"--- 아얏!"

 


얼굴에 뭔가 부딪쳐, 내 회상은 끊겼다.
콧등을 누르고 앞을 보면 거기엔 새까맛고 커다란 등.
아무래도 시그가 멈춰선 것 같다.

".... 왜그래?"

 


몸을 기울여서 전방의 상태를 확인...... 숨을 들이마셨다.

비단 실 같은 부드러운 비가 내리는 속에서 민가의 담장 옆에 새하얀 안개가 서려 있다.

 


"저건...... 카타나시?"

"아아"

 


긴장을 품은 목소리로 시그는 대답한다.

 


"거짓말.... 전혀, 차갑다던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안개의 영역엔 들어가지 않았다. 저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차가움은 설사 다른 생각에 빠져있더라도 절대로 안다.

 

"아마도 비에 섞여버릴 정도의 안개였던 거겠지. 꽤나 소규모인 카타나시지만...... 그 탓에 눈치채는 게 늦었다"

 

시그는 코트 안에 손을 넣은 채로, 괴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잔뜩 긴장하고 말한다.
공간에 가득 찬 살기 탓으로, 숨쉬기가 힘들다. 포화된 빗소리 속에서 우리는 카타나시의 행동을 주시한다.
안개는 이윽고 형성된 새하얗고 애매한 윤곽이--- 흔들렸다.

 


"------!"

 

시그가 코트 안에서 권총을 뽑아든다, 하지만 총구를 향했을 땐 이미, 카타나시는 그곳에 없다.
엄청난 속도로 도로를 달려와 마로 눈앞까지 다가왔다. 새하얀 꼬리를 끌며 달리는 모습은 마치 네발짐승.

 

"윽!?"

 

요격할 틈도 없이 시그는 몸을 비틀어, 바로 뒤에 있던 나를 안고 지면에 엎드린다.

 

"왁!?"

 

등 뒤의 충격. 날카로운 아픔과 차가운 감촉. 하늘을 바라본 내 시야를 새하얀 짐승이 가로지른다.

바로 몸을 일으킨  시그가 새하얀 짐승을 뒤쫓듯이 총구를 향한다.

 


"1개의 탄환- 공격!"

 


날카로운 소리와 겹쳐치는 듯이, 마른 파열음이 울린다. 그것은 처음에 나를 도와줬던 때와 같은 말. 만화에서 나오는 기술명.

 

 

 

타아아앙-.

 

 


울려 퍼지는 파열음. 머리를 든 나는, 지름 1미터정도에 걸쳐 함몰된 거리를 본다.
이런 건 총의 위력이 아냐. 마지 거대한 망치를 내려친 듯한 파괴된 흔적.
이래서 일부러 기술명을 외치는 걸까.

하지만 카타나시에겐 명중하지 않은 모양, 조금 떨어진 블록담 위에서 유유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모습이 점점 커지면서 연상되는 것은 호랑이나 표범. 하얀 안개가 형성한 짐승은  새빨간 입에서 어금니를 드러낸다.

저번에 덮쳐진 카타나시에게도 입만큼은 있었다. 지금은 그 이유도 안다. 츠쿠모카미를 먹기 위해, 입만큼은 꼭 필요한 것이 겠지.

 

 

 

-냐아아아아아오.

 

 

 

짐승 소리가 울린다. 예상에 반해, 호랑이나 표범의 포효는 아냐.

 

 


"...... 고양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내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강력한 기시감에 덮쳐진다.
주변을 둘러싼 빗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중단된 기억의 복원이 재개된다.
쓰레기 상자에서 추억이 단숨에 흘러나온다.

 

 

"---고양이?"

 

 


그것은 내 목소리. 지금의 내가 아닌, 나의 중얼거림.

중학교로 통하는 길. 평소와 다름없는 통학로. 빗속,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나는, 어느 집 처마 밑에 버려진 고양이를 찾아냈다--.

 

 


냐-, 냐아-.냐아아-.

 

 


아직, 새끼였다. 3마리나 있다. 사랑스러운 소리로 울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새끼 고양이를 곁눈질하고, 멈춰 서지도 않고 계속 걸어간다.

별로 어떻게 해 줄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나 사람의 눈에 띄는 장소에서 울고 있으면 언젠가 착하고 예쁜 사람이 주워가겠지.

나보다, 행복한 일생을 지내겠지.

 

 


그래, 나보다 더-.

 

 


싫은 걸 잊어버리고 척척 지나가 버린-- 나. 객관적으로 본다면, 아마 불행한 나. 그런 나보단 아마 나을 거다.

그러니까 부러워해도, 슬프진 않았다. 학교에 도착했을 즈금엔 이미 새끼 고양이는 머리 구석에 쳐박아놓았다.

 

 


하지만- 방과 후. 같은 길을 지나던 나는, 알게 된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차갑고 잔혹한 것이었다. 착한 사람도 예쁜 사람도 그렇게 많이 없다는 걸 이해했다.

고양이는 1마리가 돼 있었다. 저녁이 돼서 강해진 비 때문에 처마 밑까지 비가 흘러들어왔다. 고양이는 전신이 젖어서 떨고 있다.

나는 두 마리가 어떻게 됐는지는 몰라. 누가 데려간 건가, 그게 아니면 여길 떠난 것 뿐인가......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남은 1마리 새끼 고양이가 절망적인 상태 인건 확실했다.

가늘게 울고는 있지만, 나보다 불행 하단건 알았다. 부러움도, 없었다.

하지만 눈을 돌리고 빠른 걸음으로 새끼고양이의 앞을 가로질렀다.

저 고양이를 신경써봤자 힘들어질것이라는게 눈에 보였으니까.

나 하나 돌보지 못하는 나인데, 다른 동물을 도와줄 여유 따윈 없었으니까.

아마, 잊어버리는 게 늘어날 뿐이니까.

 

 


.... 그 다음 날도, 비가 왔다.

 

 

하늘색 우산을 쓰고, 같은 길을 나는 걸어간다.
새끼고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그 앞을 그냥 지나갔다.

방과 후에는 비가 그쳤다.

새끼고양이가 버려져 있던 곳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사람이나, 보건소에서 처리했겠지.

나는 전부 씻겨나간 도로에서, 처음으로 멈춰섰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나는--.

 

 

 

 

 

 


"엎드려!"

 

 


시그의 외침에 정신 차린다. 눈앞에 하얀 어금니와 빨간 입이 보였다.

머리를 숙이고 물웅덩이 위로 쓰러진다. 우산을 가지고 있어서 손으로 감싸지도 못하고 이마와 코를 박아버린다.

코가 찡하게 아파. 피 냄새. 흙탕물을 닦고, 나는 얼굴을 든다.

시그는 반대쪽 담장에 올라타 있는 카타나시에게 총을 쏘고 있다.

 

 

"2개의 총알-파도(破刀)!"

 

 

총소리. 힘껏 당기는 방아쇠.
카타나시는 착지한 직후라 이번엔 피할 시간이 없다.

 


"-- 잠깐!!"

 

 

나는 순간적으로 시그의 팔에 매달린다.

 


"!?"

 

 

총의 조준을 잘못해, 카타나시가 서 있던 벽이 부서졌다.
콘크리트 파편이 비에 섞여 주변에 세차게 떨어진다. 마치 폭탄이 작렬한 것 같은 위력.

서 있을 곳을 잃은 카타나시는 허공에서 빙글하고 한번 돌아, 아름답게 도로에 착지했다.
그 동작은 마치 고양이 그 자체.

 

 

".... 어쩔 셈이야?"

 


시선과 총구는 카타나시를 향한 채로, 낮은 목소리로 시그가 묻는다.

 

 

"미안.... 아지만 나 생각난 거야. 그랬더니, 알아버린 거야"

"너, 뭘---"

 

 

당황하는 시그의 앞으로 나는 걸어간다.
등 뒤에 숨지도 않고 카타나시와 대치한다.
전신이 폭삭 젖었는데도,
그래도 하늘색 우산을 흐린 하늘에 치켜 올린다.

 

 

"나, 아마... 이 애를 알아"

 


카타나시는 츠쿠모카미와 같은 마음의 잔재.
하지만 누구나 그냥 지나가 버리기만 할뿐인 이런 도로에 강한마음이 남을 일은 드물다고 생각해.

하지만 하나 딱 마음에 걸리는 게, 맞을 가능성이 높아.

여기에 고양이의 모습을 한 카타나시가 있는 건 분명-- 우연이 아니야.

 

 


샤아아아아악!

 

 

위협하는 소리를 내는 카타나시가, 지면을 박찬다. 나에게 가까까이 덮쳐온다

 

 

"피해!"

 

 

시그가 내 어깨를 붙잡고, 뒤로 끌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거부했다. 다리로 버텨, 거기서 버텼다.

 

 

"큭-----......"

 

 

급소를 감싼 팔에 카타나시의 어금니가 찔러 들어온다.
격통이 팔을 달려 뇌수를 흔든다. 아픔이라고 부르는 미지근한 열기가 몸을 안에서부터 태워버린다.

또 동시에 안개의 차가움이 상처로 침입해, 전신이 떨린다.

 

 

".....으윽-----!"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는다. 뜨겁고, 뜨겁고.... 어쩔 수 도 없이 차가워.

어금니가 파고든 부분에서 피가 흘러넘친다. 카타나시는 내 팔을 먹어버리려고 턱에 힘을 준다. 딱 하고 뼈가 삐걱이는 소리가 울린다.

 

 

"젠장!!"

 

 

그 목소리와 표정에 초조함이 번져 시그가 카타나시의 이마에 총을 가져다 댄다.

 

 

"3의 탄환---"

"안돼!!"

 


하지만 나는 팔을 물어뜯는 카타나시의 머리를 끌어안고, 총구를 감싼다.

 


"치워! 먹힌다고!!"

 

 

분노와 짜증을 숨기지 않고, 시그가 명령한다. 내가 몸으로 억누를 수 있을 만한 형태가 된 카타나시도 몸 아래에서 날뛰고 있다. 발톱으로 내 피부를 찢고, 어금니를 더욱 깊게 밖에 넣는다. 하지만, 시그의 말은 따르지 않아.

 

 

"-- 괜찮아. 나를 지키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아마, 조금있으면 사라질 테니까 "

"무...."

 

 

내 말에 시그는 말이 막혀버린다.

 

 

"있지... 여기는 말이야. 버려져 있던 새끼 고양이가 있었어. 3마리였는데 어느새 한 마리만 남아서.... 그대로, 여기서 죽었어"

 

 

아픔을 참으며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팔을 물어뜯으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카타나시에게 시선을 떨어트린다.

 

 

"그게 아마---- 이 애. 분명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것에 굉장히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카타나시가 돼버렸다고 생각해. 그래도 이 애가 있어서--- 나는 내 마음을 이룰 수 있어"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자유로운 손으로 우산을 들어올린다.

 


"네... 마음?"

"---응, 이 우산에 남은 내 마음은.... 후회"

 


우산으로 비를 막아서 비에 젖지 않는 장소를 만들어낸다.

 

 

"나는 이 애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어. 비를 피하게 해주고 싶었어 도와 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도와주지 않았어. 그냥.... 그렇게 생각했어"

 

 

카타나시를 우산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랬더니 나를 물어뜯던 행동을 거짓말 같이 그만둔다,
후회나 죄악감은 사라지지 않아. 이 행동은 자기 만족 밖에 안돼. 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채워진 것을 느꼈다.

기절해버릴 듯한 아픔이 사라지고. 전신의 감각이 무뎌진다. 나는 내몸이 투명해지기 시작한 것을 알아챈다.

 


"헤에--- 이렇게 사라지는 거구나...."

 


신비한 관경. 난 남일 같이 느껴진다.

 


"카사...."

 


시그가 총을 내리고, 작게 중얼거린다.

 

 

"아, 시그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줬다"

"--그랬던가?"

 


슬픈듯한, 그래도 부러운듯한... 그런 표정으로 시그는 대답한다.

 

 

"응, 계속 '너'였다고? 카사라고 칭하면 돼 라고 말한건 시그인데,너무하네"

"그건... 미안해"

 


고소를 띠곤 시그가 사과한다.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하나 부탁을 들어줬으면 하는데"

"뭐야?"

"내가 사라지면, 이 애를 죽이지 말고 여기서 도망가. 시그라면 가능하지?"

 

 

시그와 시선을 맞추고 부탁한다.

카타나시는 츠쿠모카미를 덮치지만, 가까이 가지만 않으면 해는 없다.
특히 움직있 수 있는 곳이 한정된 다면 더욱더 다. 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으으응.... 좀 더 단순하게, 그게 죽이지 말아줬으면 하는것 뿐.

 


시그는 잠시 침묵했지만,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이쪽으로 보내는 시그.

 

 

"왜 그래?"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대답하면, 시그는 내가 몸으로 누르고 있는 고양이 카타나시를 가리켰다.

 


"그 녀석... 이렇게나 작았던가?"

"에?"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아챈다.
처음엔 호랑이나 표범이라고 생각했던 거구가.
지금은 중형 개 정도의 크기가 되 있다.
고양이치곤 큰 편이지만, 처음보다 반 이상 작아졌다.

 


잘 생각해 보면, 호랑이 정도로 크면, 내가 몸으로 누르지도 못했다.
팔을 물려 갈기갈기 찢겨졌을 것이다.

 

언제 부턴지... 어디서 부턴지, 카타나시는 줄어들기시작한것 같아.
게다가 처음엔 그렇게 날뛰었는데, 어째선지 지금은 얌전히 있다.

 


"어째서......"

 

 

놀라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도, 점점 카타나시는 작아져--- 평범한 고양이와 다름없는 크기가 되었다.

팔을 물고 있던 이빨을 빼서 출혈이 심해진다. 아픔은 거의 없지만, 시야가 흐릿하다.

의식이 끊어질 것 같아서 머리를 흔든다. 기울어진 우산을 고쳐쥐고, 가슴에 품은 카타나시를 바라봤다.

 

 


그르르르르르!

 

 

줄어든 카타나시는 어금니를 들어내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발버둥치는 힘은 약하다. 발톱을 세우는걸 주저하는 것 처럼, 앞발로 내 팔을 때린다.

그 몸은 차갑다. 하지만 차가움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을 느낀다. 카타나시의 표정에서 체온에서 마음이 전해진다.

 


- 적이, 아니야?

 

 

이 카타나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적의나 악의가 아닌 모양이다.
츠쿠모카미의 매개체를 원하는 식욕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아픈 팔을 움직여서, 머리를 쓰다듬어본다. 안개인 몸은 솜 같은 감촉으로 조금 설렁했다.

카타나시가 으르렁 거리는 것을 그만두고, 입을 연다.

하늘색의 우산 아래에서 나는 카타나시와 마주본다.
카타나시도 나를 올려다 본다. 그 얼굴에 눈이나 코는 없다. 하지만 시선이 느껴진다.

한번 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조금 강하게 끌어안는다.

어째선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쓰다듬어 줄때,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차가움은 약해져간다. 다음번엔--- 따듯해진다.

 

 

---어이-.

 

 

카타나시가 어리광부리듯이 울며, 내 손가락을 핥짝 핥는다. 그 까슬까슬한 혀는 따듯했다.

 


"아......"

 


카타나시의 감촉이 갑자기 사라진다. 안개로 형성되 있던 카타나시의 몸이 풀려서 실체가 사라진다.

안개로 돌아간 카타나시는 체온도 여전히 따스하다.

확산된 안개는 내 우산과 상처에 흘러 들 어가---- 보이지 않게 됐다.

 


"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나는 당황한다.

전신의 아픔이 사라졌다. 반투명해진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어.
비에 젖어 차가워진 몸은 어째선지 따끈따끈해졌다.

 


"니야-"

 


울음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발밑을 보면, 그곳엔 새하얀 고양이가 앉아있다. 안개로 만들어진 애매한 윤곽이 아니라, 실체로 여기에 있다.

 


"카타나시...인 거야?"

 


쭈뼛쭈뼛 손을 뻗으면 새끼 고양이는 내 손가락에 이마를 대고 골골거리며 어리광부린다.

 


"....너, 아까 그 애?"

 


물어보면서 안아 올린다. 그러면 새끼 고양이는 내 뺨을 핥고 니야-하고 울었다.

마치"그래"라고 대답하는 것 같아. 뭐가 어떻게 된거지.

상황을 파악 못하고 혼란하고 있으면 머리 위에서 감탄하는듯한 소리가 들린다.

 


"...... 설마, 공생하는 건가?"

 


시선을 올리면, 시그가 믿을수없는 본것같은듯한 표정을 띄우고있다.

 


"공생?"

 


팔 안에서 고양이를 어르면서 나는 묻는다.

 


"...... 1개의 매개체에 2개 이상의 마음이 담겨 공생하는 거다. 전례가 없는건 아니지만.... 거의 없어. 왠 만큼 마음이 맞물리지 않은 한은"

 


시그의 목소리는 당황한 기색이 퍼졌다.

 


"마음이.... 맞물려?"

 


잘 의미를 모르겠어서 머리를 갸웃했다.

그러면 시그는 내가 안아 올린 고양이를 가리켰다.

 

 

"이 녀석의 핵이 되는 마음은, 원한 같은게 아니라.... 좀 더 단순 했던 게 아닌가?"

"좀 더.... 단순---"

 

 

나는 새끼고양이를 내려다본다. 확실히 직접 닿았 을때 전해진 마음은 악의가 아니었다.
이 애는 증오를 품은 게 아니였다. 그것 만큼은 단언할 수 있어.

"전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생물이 필요한 것은, 도움을 주는 무언가다.
원한을 품을 여유는 없어. 그 녀석이 버려진 고양이 라면, 오로지 도움을 구하고 있었을 거다"

상상한다. 내가 새끼 고양이였다면, 어떻게할까 하고.

죽고 싶지 않다면, 살아가기 위한 수단을 찾겠지.
그것이 누군가의 정을 움직여,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되겠지.
살아남기 위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도와줄 누군가를 원하겠지.

 

 

"그게... 이 애의 마음"

"틀림없이, 그저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런가......"

 

 

나는 눈처럼 새하얀 새끼고양이를 끌어안는다.

덮쳐졌을 때는 아마 떨고 있었을 테니까. 몸이 작아진 것은 내가 안아줘서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했으니까---.

정말로 이 애를 구해주었단걸 나는 알았다.

 

 

"---그래서 어쩔 셈이야"

"어쩌다니?"

"너, 사라지는걸 잊어버린 게 아닌가?"

"아"

 

 

나는 당황해서 내 투명해진 몸을 내려다본다.

 

 

"어쩌지, 이대로는--"

"아아, 그 녀석은 다시 혼자가 돼버려. 혹시 제어되지 않는 츠쿠모카미가 된다면, 내가 손을 쓸 수 밖에 없게 되겠지"

 

 

시그는 어깨를 움츠리고 가벼운 어조로 말한다.

 

 

"그런! 도와줄 순 없어?"

"...... 무리다. 도와줄 수 있는 건, 너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한번 도움받아 만족하고 사라지는가, 그게 아니면 앞으로 계속 도와주길 계속하는가 -- 어느 쪽이야"

"아......"

 

 

나는 시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겨우 이해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도, 시그는 예상하고 있겠지 하고 고소한다.

 

 

"시그.... 그런거, 당연하잖아"

 

 

몸에 비쳐 보이던 경치가, 보이지 않게 된다. 내 마음에 힘이 머문다.
만족하고 사라지기 직전이였던 소원이.... 끝나지 않을 소원으로 변한다.

 


"나, 이 애를 계속 도울거야. 계속, 계속..... 언제까지고"

"-- 그런가, 뭐, 열심히 노력해"

 

 

시그는 탁하고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 웃었다.

처음으로 보는 평범한 미소. 안에 괴로운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미소.

 

 

"응"

 


뭔가 굉장히 안심돼서 눈물이 맺혔다.

 


"니야-?"

 


새끼 고양이가 맺힌 눈물을 핥고 조금 머리를 든다.

 


"아하하하 걱정끼처 버렸네"

 


나는 눈물을 닦고 웃는다.

 

 

"---- 돌아간다, 카사"

 

 

 


시그가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걸어간다.

나는 새끼고양이를 품고, 그 뒤를 쫓아간다.

부드러운 비를 하늘색 우산으로 받아내면서-.

 

 

 

 

 

 


막간


오늘도 변함없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이대로 계속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
정체된 세계에서, 나는 같은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어야 했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난다. 맑은 날에는 폐허를 탐색하고, 비가 오는 날엔 여기저기서 모은 만화를 읽는다.

그리고 손님이 왔을 땐 일을---, 아니 임무를 받는다.

그것이 내 일상.

하지만 이 며칠, 몇 년이고 변하지 않았던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아하,아하하하하하하- 잠깐 간지럽다고!"

 

 

시끄러운 소리에 만화에서 눈을 떼고 얼굴을 든다. 건너 소파에선 교복차림의 소녀가 새끼고양이와 장난치고 있다.

소녀는 외견으로는 14, 15살. 허리 중앙까지 뻗은 검은 머리카락과 치마는 새끼 고양이 때문에 어질러저 있다.

이상한 오해를 사고 싶진 않아서, 나는 바로 시선을 돌린다.

그녀는 카사. 이름대로, 우산의 츠쿠모카미.
새끼고양이는 그녀의 매개체에 공생하는 고양이 카타나시.
아니...... 실체를 얻은 지금은, 새끼고양이도 이제는 츠쿠모카미다.

 

 

탁 탁 탁-.

 

 

가벼운 발소리.

 

 

"저기, 시그"

 

 

부르는 목소리.

나는 금세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얼굴은 든다. 소파 옆에 고양이를 안은 카사가 서 있다.

 


"저기, 이 애한테 이름을 붙여 주려고 해"

 

 

새하얀 고양이를 나에게 들이밀며 카사가 말한다.

 


"니야-"

 


동의하는 것처럼 고양이가 운다.
얼마간 뚫어지게 바라보고 알았지만,
새끼고양이의 눈동자는 탁한 파란색이다.
카사가 손에 들고 있는 우산과 같은 색. 희귀한 품종의 피가 섞여 있는 걸지도 몰라.

 

 

"... 괜찮은 거 아냐.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고 말이야"

 


일단 동의해 둔다. 별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 그럼 어떤 이름으로 할까?"

"왜... 나한테 물어"

 


카사를 반쯤 노려본다.

 


"에? 물으면 안 돼?"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소녀를 상대하고 있으면 상태가 이상해진다.
이 마을에 있는 내 입장을 모르더라도, 너무 허물없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났을 때 총을 겨누고 협박하고 있을 때도 어느샌가 이상하게 잘 따랐다.

 


"그럼, 같이 생각해 줬으면 하는데. 역시 고양이 카타나시라면 네코(고양이)라는 이름이 최고지?"

"--- 그런 조금 미묘한데......"

 

 

고양이를 보고 네코(고양이)라고 부르는 건 무척 바보 같은 관경이라 생각한다.

 


"시로라던가 타마라던가, 그런 것이 좋은 게 아닌가?"

 


부정하기만 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나는 적당히 의견을 내놓는다.

 


"우와, 굉장히 평범"

"돌려 말할 필요는 없겠지"

"으-음, 하지만 말이야.....아, 그래. 시로이 타마(하얀 알) 시라타마는 어때?"

 


얼굴을 빛내며, 카사는 내 의견을 구한다.

 

 

"....뭔가 맛있어 보이는 이름이네"

 


첫 번째 인상을 전한다. 그러면 카사는 고양이를 품에 안았다.

 


"---못 먹는 다고?"

"안심해 츠쿠모카미는 배가 고프지 않아"

 


어깨를 으쓱하고 나는 말한다. 카사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다행이네, 시라타마. 잡혀먹히지 않아서"

".......... 시라타마로 결정인가"

 


별로 찬성할 생각은 없었지만, 카사는 시라타마로 결정한 것 같다.

 

 

"응. 왜 시그가 먹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이름 같고"

"어이"

 

 

생각지도 않고 츳코미를 걸면 카사는 몸을 돌려 건너 소파로 달려간다.

 


"아하하 농담이야"

 

 

탁하고 앉으면 카사는 새끼 고양이와 장난질을 재개한다. 시라타마 시라타마 하고 부르고 있다.

자주 웃게 됐다라 생각한다. 카사와 새끼 고양이- 
시라타마는, 서로 같은 이유로 존재하게 되어 안정됐다.
이제 마음으로 괴로워 할 일도 소멸할 위험도 없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 생각이라면, 지금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은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시선을 창문으로 돌렸다.
밖은 쾌청. 벌써 9일째 비가 내리지 않아.
이대로 날이 맑으면 내일은 안개가 개이겠지.

뭐어..... 앞으로 2, 3일이면 되나.

시끄러운 카사와 새끼 고양이를 보는 사이에, 그런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잊고 있었다.

얼마나 내가 선정했다 해도 손님은 건너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똑똑.

 

 

 

그날 밤-- 조심스러운 노크소리에 눈을 뜬다.
방은 어둡지만,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달빛으로 방안은 잘 보인다.
건너 소파에선 새끼 고양이와 카사가 함께 숨소리를 내고 있다.
방금 노크소리로 일어나지 않아 나는 안도하고, 소리를 죽이고 문으로 향했다.

밸트에 채워놓은 총에 손을 댄다.

잠깐의 소란스런 나날이 끝을 알리고, 앞으로의 일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
제2화 은색의 총

"-- 누군가는 짊어져야 하는 역할이야"

"마음을 계속 품기는... 괴로우니까"

 

 

 

 

 

 

 

----...........!

멀리서, 꿈의 건너편에서, 희미한 잔향이 귀에 닿는다. 그것은 몇 번인가 들어본 적 있는 파열음과 닮았다. 가슴을 소란스럽게 하는 내 의식을 깊은 잠속에서 밀어 올린다.

잠기운에 반항하면서 나는 살짝 눈을 떴다.

달과 별빛이 비치는 방안은 뜻밖에도 밝다. 맑은 날의 밤하늘은 이렇게나 눈부시구나 하고, 나는 놀란다.

내 바로 옆에는 시라타마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자고 있다. 마치 새햐얀 경단 같다. 시라타마라는 이름에 딱 맞는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시라타마를 바라보는 사이에 다시 잠에 빠져버릴 것 같지만.... 문득 건너 소파에 시그가 없단 걸 알아차린다.


어라....?

이상하다고 생각해, 몸을 일으킬 때- 밖에서 신발 소리가 들렸다.

- 탁 탁 탁.

발소리는 문앞에서 멈춰 선다. 나는 일어나지 않고, 누운 채로 귀를 새웠다. 찰칵하고 손잡이가 돌아가고, 발소리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 소리는 아까보다도 작다. 아무래도 방안에선 발소리를 줄이는 모양이다. 살짝 눈을 떠 상황을 살핀다.

아마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시그다. 총을 손들고 왠지 지친듯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는다. 방 안의 공기가 약간 움직여, 확라고 화약냄새가 순간 코를 쓰다듬는다.

...... 어디 갔다 온 거지.

자는 척을 하지 말고 물어볼까 했지만, 시그는 바로 소파에 누워버린다 .위를 향해 누워 팔로 눈 주변을 덮는다.

어째선지 그 옆모습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하지만 시그의 뺨에 눈물은 묻어나 있지 않아.

기분 탓...... 인가. 뭐, 뭘 했는지 묻는 건 내일 하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나는 수마의 유혹을 뿌리치치 못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어젯밤 일을 물을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잠에서 깨어나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검은 코트와 머플러를 몸에 걸치고 문앞에 서 있는 시그의 모습.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의 각도를 봐선, 이미 정오에 가깝다. 오늘은 제법 자 버린 것 같다. 어젯밤, 늦게 잠에서 깨어나 버려서 그런 걸까.

"-겨우 일어났나. 간다, 카사"

인사도 없이, 갑자기 그런 말을 시그에게서 듣는다.

 

"헤.....? 어디에?"

아직 반정도 밤에서 덜 깨 있는 나는 멍하니 물었다.


".....니야?"

나와 동시에 일어난 시라타마도 머리를 갸웃한다. 아마 내 흉내를 내는 것이겠지.

"전에 말했을 거다. 안개가 개이면 나보다 설명을 잘하는 츠쿠모카미에게 데려다 준다고"

"아, 응.... 그러고 보니, 그랬네. 하지만 츠쿠모카미나 카타나시에 대해선 시그한테서 들었고, 이젠 별로...."

서두를 건 없다고 말하지만, 시그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 마을에서 살 거라면, 얼굴은 봐야 한다. 게다가- 네가 모르는 게 아직 많아."

그렇게 말하고 시그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정말"

할 수 없이 시라타마를 가슴에 품고, 뒤쫓는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시그는 내가 나온 걸 확인하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뭔가 서두른다. 어딘가 초조해 하는 것 같이도 보인다.


내가 모르는 건.....가.

확실히 여러 가지 있다. 나는 아직 나에 대한 것만 알뿐. 이 상황-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 며칠이고 지낸 빌딩마저, 거의 파악하고 있지 않다.

"시그, 그런데 빌딩 2,3층은 어떻게 돼 있어?"

각층에 있는 문이 신경 쓰여서 나는 한번 물어봤다. 1층이 카페인건 기억하지만, 2층이랑 2층은 안을 엿보지도 못해서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어째선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지만 시그는 3층 복도에서 다리를 멈춘다.


"- 그런가, 보여주는 편이 나은 가. 그 편이 나중에 이해하기 쉽고...."

작은 중얼거림, 내가 내려오는 걸 기다리는 시그.

"들어가도 돼?"

시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려고 시선을 재촉한다. 손잡이는 녹슬어 있어서, 살짝 밀면 삐걱하고 문이 움직였다.

그다지 들어가지 않는 것인지, 안은 먼지가 가득한 공기가 충만해 있다. 4층과 구조는 같지만, 안방을 구분하는 벽이 없다. 그만큼, 방이 굉장히 넓다고 느껴진다.

방에는 이런저런 것이 잡다하게 놓여 있다. 가구나 생황 용품, 거기에 더해 악기나, 의류, 공구, 전화제품까지 있다. 물건의 종류에 통일성은 없지만, 하나 공통점이 있다.


- 전부 다 부서져 있다.

나는 방을 한 바퀴 돌고 확신한다. 역시, 모든 물건에 결함이 있다. 두동 각 나거나. 금이 가거나, 파괴된 것도 있다.

그리고 부서진 물건 몇개에는 탄흔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여긴... 창고?"

방 입구에 서 있는 시그에게 말을 건다.

"아니, 여긴-- 묘지다"

"묘지?"

의미를 모르고 나는 되묻는다.

"의미는 곧 알아. 이 관경과 내 말을.... 기억해 둬"

"알았어......"

시그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무거워서, 나는 기가 죽는다.

"-- 이제 간다"

시그에게 재촉받으며 방을 나갔다. 그대로 시그는 계단을 내려간다.

"저기...... 2층은?"

"2층엔 아무것도 없어"

복도에서 다리를 멈추고 안을 들여다본다. 확실히 텅 비었다. 책장이나 책상마저 없는 완벽한 빈방이다.
하지만 바닥이나 벽에 많은 자잘한 구멍이 뚫려 있는 걸 알아차린다.

"여기서 총 쏘는 연습 같은걸 하는 거야?"

"............"

물어보지만 지금은 대답해주지 않아. 살짝 본 옆모습이 조금 무서워서, 나는 그 이상 추궁하는 걸 그만뒀다.

"나-"

공기를 읽지 않고 시라타마가 운다.

그 덕에 조금 긴장이 풀린다.

"시라타마~"

감사를 담아 손가락으로 머리를 문질러준다. 시라타마는 기분 좋은 듯이 눈을 가늘게 뜬다. 시그는 그런 나를 보고, 조금 발검걸음을 늦춰준다,

조금은 평소의 공기가 돌아와, 우리는 빌딩을 나와 나란히 걸어간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음.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와 거리를 빠져나간다.

뭔가 오늘은- 이런저런 일이 일어날 듯한 예감이 들었다.

 


천장이 떨어진 상점가를 빠져나와, 역 앞의 교차점으로 향한다.
저번엔 안개가 껴서 보지 못했던 경치를 지금은 햇빛 덕분에 부서진 모습이 확실히 보인다.
타이어 없이 틀만 있는 자동차. 점등 부분이 부서진 신호등. 열화 돼서 뿌리까지 꺾인 전신주. 지면에 흩어진 커다란 전선. 역앞 광장 분수대에선 탁한 물웅덩이가 생겼고 분수 중앙에 있던 석상은 부서졌다. 고가지에있던 전차 역도, 녹슬어 더러움이 눈에 두드러진다. 완전히 변해버린 마을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눈을 끄는 것이 역 앞에 있다.

".....에?"

생각지도 않게 목소리를 낸다. 빌딩 구석에, 무한궤도에 걸친 위엄 있어 보이는 철뭉치가 들어가 있다.

"전차?"

나는 그것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장갑판은 패였고 포신은 구부러지고 여기저기 녹슬어있지만........ 틀림없는 전차다. 나에겐 총과 같을 정도의 비현실적인 것. 죽이기 위한 무기.

"왜 전차 같은게......"

시그는 내 목소리가 들린 것인지, 전차에 시선을 향한다.

"나 같은 츠쿠모카미도있다. 멸망하기 직전 이 마을은 상당히 끔찍한 상태였겠지. 뭐, 추측이지만"

"멸망한 이유도 몰라?"

그대로 의문점을 중얼거리지만 시그는 머리를 가로젓는다.

"그 당시의 기억을 간직한 츠쿠모카미는 없다. 인간이였을 적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누구 하나 모르는 거다. 너도 그렇겠지?"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기억하는 건 중학교 3학년이 되고 몇 주간 정도. 그 이후는 애매해서 어디서 끊어진 건지도 몰라.

"츠쿠모카미 안에 확실히 남는 것은, 저마다의 마음뿐. 그리고 기껏해야 일상생활의 단편 정도야. 너는 아마 기억이 거의 남지 않은 편이겠지"

"내가 기억하는 건, 잊어버리는 거고 말이야"

고소하고, 다리 밑의 작은 돌멩이를 걷어찬다. 날아간 돌은 지면에 부딛치고, 전차가 있는 곳으로 굴러간다.

전차를 눈으로 좇으면서, 옆으로 지나간다. 가까이서 보면 전차의 외관은 흠집투성이. 거기에 싸움의 흔적을 느끼고, 나는 숨을 들이마신다.

당분간 걸으면 전차가 보이지 않게 된다. 한눈판 탓에 시그에게서 멀어져 빨리 쫓아가 옆에 선다. 시그는 역시 마을의 북서부로 향할 생각이다.

"앞으로. 얼마나?"

"15분 정도다"

"그래"

짧은 대화 후, 대화는 중단된다. 하지만 별로 따분하진 않았다. 나는 시라타마를 귀여워하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조금 걷게 하기도 하고, 굉장히 즐겁다.
나- 나- 하는 시라타마의 울음소리와 내 웃음소리 그리고 시그의 단단한 구두 소리가 멸망한 마을에 울린다.

"--- 카사.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한가지 확인시켜두고 싶다."

하지만 오 분 정도 지났을 즈음에 시그가 괜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야?"

시라타마를 품에 안고, 나는 자세를 갖춘다. 중요한 이야기일까.

"나와의 약속은..... 기억하고 있나?"

"에.........? 나, 뭔가 시그하고 약속했던가?"

멍하니 되물으면, 시그는 무서운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전에 약속했겠지. 내... 기술에 대해서다"

"아--- 그러보니.... 미안. 생각났어. 시그가 총을 쏠 때 만화 기술 외친 거, 비밀로 하란 거지?"

내가 확인하면, 시그는 불안한 시선을 향한다.

"아아 ,그래. 부탁이니까, 확실히 해줘"

"응, 알았어. 절대 아무한테도 말 안 해"

시그와 눈을 맞추고 확실히 책임진다. 그러면 시그는 말하기 괴로운듯하면서도 더욱더 주문했다.

"그리고..... 내가 만화를 모으는 것도, 말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별로 상관없는데--- 왜? 역시 부끄러우니까?"

나는 머리를 갸웃한다. 확실히 시그가 안방에서 만화를 가져왔을 땐 놀랐지만, 별로 숨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 내 캐릭터가 아니니까 다"

불쾌한 목소리로 시그는 대답한다.

"그런 거야?"

"아아"

"그럼, 시그는 어떤 캐릭터?"

"......뭐어, 흔히 말하는 하드보일드라는 느낌일까"

"하드보일드.......?"

위화감있는 단어를, 나는 의문을 품고 되묻는다. 확실히 만낫을 땐 그런 분위기도 있었지만, 매일 소파에 누워서 만화 읽는 모습을 보면..... 와닿지 않는다.

"요컨대, 그런 표정 짓게 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게다가 내 인물상이 붕괴가 오면, 이런저런 지장이 와"

시그는 내 얼굴을 지적한다, 아무래도 내면이 표정을 나온 모양이다.

"그런가 아하하하- 뭔가 시그는 숨겨진 오타쿠같네"

생각한 대로 말해버린 대사였지만, 시그는 지친 듯이 어깨를 떨궜다.

"... 부정은 안 해"

"헤에-..... 그럼 시그는 정말로 오타쿠인거야. 그런 인간이였을 때의 취미? 그게 아니면 츠쿠모카미가 되고 나서부터?"

시그에게 들을 기회가 없었단 걸 느끼고 나는 묻는다.

".... 인간이였을 때 부터다. 단편적으로 밖에 기억하지 않지만, 나는 오타쿠로... 게다가 히키코모리였다"

(* 히키코모리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사람. 다른말로 자택 경비원)

"에, 그랬어? 그건 그거대로 굉장히 위화감 있는데....."

시그를 둘러싼 분위기나 총을 쓰며 싸우는 모습은 히키코모리라는 이미지와는 멀다.

"-- 내가 츠쿠모카미로 태어난 건 10년 정도 전이다. 그 때 마을은 츠쿠모카미의 매개체를 뺏은 '형태 있는 카타나시'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런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몇 년이고 싸우길 계속하면.... 오타쿠에다 히키코모리라도 조금은 하드보일드해지는 거야"

자조하듯이 시그는 말한다.

"이 마을은, 그런 상태였어...."

놀라서 중얼거린다. 인간이 멸말하고나서, 츠추모카미들이 쌓아올린 역사를 나는 몰랐다.

"아아, 이렇게 평범하게 걸을 수 있게 된 게 2년 전 정도니까. 안개만 주의하면 위험은 없어"

시그는 그렇게 말하고, 길의 양측에 늘어선 폐허를 바라본다. 확실히.... 혹시 나를 처음으로 덮친듯한 카타나시가 주변을 서성인다면 이렇게 당당하게 걷고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그렇게 화낸 거야"

".....응?"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시그는 엄청나게 화냈지? 그건, 고생해서 손에 넣은 평화를 내가 어지럽히려고 해서였네?"

물어보면 시그는 모호한 표정으로 입가를 일그러트린다.

"그런 정의 편 같은 흉내를 낼 생각은 없어. 그저.... 나는 살아남은 책임이 있어. 그래서 시대를 거스르려는 녀석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즉- 살아남은 츠쿠모카미가 많은거 겠지. 나는 시그의 말 안에 든 것을 느낀다.

"시그가 정의의 편이 아닌 건 알아. 왜 시그는 나쁜 사람. 나를 죽이려고 했던 인간인걸"

"... 굉장히 정확하게 말하네. 뭐, 그대로지만."

고소를 띄우는 시그.

"하지만 나쁜 사람이니까 나는 시그를 믿는 거야"

"무슨 의미야?"

어깨를 가까이 대고 시그가 묻는다. 나에겐 단순한 이유지만, 시그에겐 전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조금 알기 쉽게 설명한다.

"나쁜 사람은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나쁜 짓을 할지 않을지 자신이 정해. 시그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나쁜 녀석보단 좋은 녀석 쪽이 신용이 가겠지? "

아마 칭찬하고 있는 건지 흉보는 것인지 모르는거겠지. 시그는 복잡한 표정을 띄우고 묻고 있다.

하지만 나는 확실하게 고개를 젓는다.

"으으응- 착한 사람은 말이야, 뭐가 나쁜지 모르니까 착한 사람이야.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 따윈 없었어"

한 사람 한 사람 잘 기억하진 못하지만 내가 접한 사람은 모두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그건 기억이 아닌 인식. 나에겐 상식.

"..... 말하고 싶은 건 알겠어"

시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맞장구친다

"그래? 다행이다"

"하지만-"

길은 완만한 비탈길이다. 2차선 도로가 똑바로 뻗어 있다. 100미터 앞의 교차점에서 내리막길은 끝난다. 거기서부터 갑자기 오르막길이다.

시그는 그 비탈길 위로 시선을 향하고, 말을 잇는다.

"- 믿는 건 역시 악인보단 선인으로 해둬"

시선의 끝에는 주변의 건물과 조금 분위기가 다른 아파트였다. 뭔가, 붕떠있다.

어째선지 풍경에 섞이질 않아.

위화감의 이유는 가까이 가자 분명해졌다.

그 아파트는 다른 집에 비해, 확실히 새것이다. 신설이라는 의미는 아니야. 몇 십년 단위의 노화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새롭다.

나는 눈을 의심한다.

눈에 비치는 파란 건물. 그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머리카락. 손에는 검게 칠해진 칼집에 들어간 칼. 무척 아름다운 여성

그녀는 붉은, 비색의 눈으로- 가까워져 오는 우리는 바라보고 있다.

"-- 그쪽에서 오다니 신기하네, 시그"

우리가 아파트 앞에 토착할 즘에, 백발의 여성은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멀리서 볼 때는 친해지기 어려운 인상이었는데 표정을 띄운 순간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여성은 시그와 나에게 시선을 옮기고 작게 웃었다.

"용건은, 그 앤가"

"아아, 얼마전에 마을에서 주웠다"

시그는 짧게 답한다. 그 표정은 어딘가 딱떡해서 나도 몸이 굳는다.
검을 가진 여성의 탓이 아니다. 그녀의 등 뒤- 아파트 부지에서 얼마의 시선을 느껴서다.

부지에 심어진 남우 그늘, 현관의 어두운 곳, 손님용 방 커튼의 틈... 그래, 이쪽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복수의 시선이 꽂힌다.

이 공기를 나는 알고 있다. 항상 나를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이해한다.

이것은-- 무언의 거절이다.

시라타마가 털을 세우고 낮게 으르렁거린다.

".... 그다지 오래 있지 않는 게 좋아 보이네"

시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 내 등을 밀었다.

"카타나 이 녀석을 부탁한다"

검은 가진 여성은 카타나라는 이름인 것 같다. 즉 검의 츠쿠모카미인거겠지. 강하게 미는 듯이 나를, 여성- 카타나가 받는다.

"알았어. 맡겨줘"

내 몸을 지탱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카타나. 하지만 나는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지 못하고, 당황해서 시그를 바라본다.

"에.... 무슨 소리?"

"카사, 너는 오늘부터 여기서 사는 거다"

묻는 나에게 시그는 일방적으로 알린다.

"무ㅡ 무슨 소리--"

나는 더 더욱 혼란해서 시그에게 말하려고 하지만 카타나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그만둬, 그 녀석의 말에 거스르지 마"

진지한 말과 눈짓으로 나를 막는 카타나. 그 사이에 시그는 이쪽으로 등을 돌려버린다.

"기다려! 여긴 그냥 말을 들으러 온건데... 왜 그런 이야기가 되는 거야?"

나는 카타나의 저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그에게 묻는다.

"그녀-- 카타나가 나보다 설명에 능숙한 츠쿠모카미다. 카타나에게 이 마을의 상식을 배워. 그러면 이젠 나에게 가까이 올 생각도 사라져"

그건 아파트에서 쏟아지는 거절의 시선과 뭔가 관계 있는 것일까. 의문스럽게 생각했지만 그런 말로 이해할 리가 없다.

"--- 의미를 모르겠어. 멋대로 정하지 마!"

하지만 시그는 말에 절대적인 폭력으로 응수한다.

"딩연한 거다, 카사"

검은 코트가 뒤집히고 들이미는 총구. 그 깊은 어둠을 들여다보는 건 이걸로 4번째. 다리가 떨린여 움직이질 않는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 총구가 아닌 시선. 나를 바라보는 시그의 눈이 무척 차가워서 동요했다. 시그를 잘 모르게 돼버려서, 갑자기 불안해졌다.

"시그.... 어째서"

"이제 괜찮겠지. 신입을 그렇게 겁먹게 하지 마"

카타나가 나와 시그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시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돼버려, 주박에서 해방된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다.

그리고 --- 카타나의 등을 넘어서 들려오는 발소리. 멀어져가는 구두 소리.

바로 일어저질 못한다. 따라갈 수 없다.

"이야기를 다 들으면- 절대로 돌아갈 테니까"

그래서 쉰 목소리로 시그에게 전한다.

"그 빌딩은 돌아갈 곳이 아니야 끝나는 장소다"

발소리와 함께 들려온 소리는, 무척 공허하고--- 차가웠다.

 

내 다리가 움직이게 됐을 때는 이미 시그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우산으로 짚고 일어나 비탈길을 내려다본다. 새카만 등은--- 어디에도 없다.

내 마음을 표연하는 것 같이 그렇게나 맑았던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시그....."

내 중얼거림이 들렸는지, 하얀 머리를 나부끼며 카타나가 나를 돌아본다.

"의외네. 그 녀석이 츠쿠모카미를 주워온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별을 아쉬워한 건 네가 처음이야"

정말 신기한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카타나.

".... 나는, 이야기를 들으러온 것 뿐, 헤어질 생각은 없어, 카타나씨"

카타나의 붉은 눈을 마주 보며 말한다.

"벌써 이름을 기억해 줬나"

"응, 나 잘 잊어버리니까 기억력은 좋아"

"그거, 어떤 의미야? 이상한 녀석이네... 분명-- 카사, 였나?"

고소를 띄우며 카타나가 물어온다.

"응. 나는 카사. 우산의 츠쿠모카미. 이 애는 공생하는 시라타마"

나는 품고 있던 새끼고양이를 가리킨다. 그러면 카타나는 흥미있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공생..... 그것도 고양이인가. 이거 신기하네"

얼굴을 들이민 카타나를 향해 사라타마가'냐-'하고 운다.

"그런 것 같네. 시그도 놀랐어. 츠쿠모카미랑 카타나시, 게다가 공생은 시그가 거의 설명해줬으니까 그 이야기는 됐어"

"- 빨리 이야기를 듣고 후딱 돌아가고 싶은 얼굴이네"

"하지만 여기서 살 생각은 없으니까"

"그런가... 하지만 이야기는 길어. 어쩌든 오늘은 여기서 묵고 다른 츠쿠모카미와 얼굴을 익힐 필요가 있어. 모두, 네가 흥미진진한 모양이고"

그렇게 말하고 카타나는 아파트 쪽을 바라봤다. 그때 알았다. 아가까지 있었던 무언의 거절이 사라졌다. 시선은 변함없이 느껴지지만 싫지는 않다.

즉- 거절당하고 있었던 건 시그였겠지.

시선의 주인보다, 그게 더 신경 쓰인다.

"저기, 시그는 미움받고 있어?"

카타나에게 묻는다.

"-아니, 그런 건 아냐. 단순히 두려워하는 거야"

어딘가 외로운 듯이 포기한 듯이 카타나는 답한다.

"두려워?"

"이유는, 뭐... 곳 있으면 알아. 어쨌든, 이쪽이다"

아파트 부지로 이끄는 카타나. 나는 조금 주저하면서도, 그 경계로 들어갔다. 그러면 공기가 변한다.

당황한 나를 보고, 카타나가 웃는다.

"신기해? 여긴 특별해. 카사는 지금 그녀의 영역에 들어온 거야"

"그녀라니?"

"그녀는 그녀야"

카타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아파트 현관으로 향한다.

그러면 그 어두운 곳에서 싸리비를 가진 여성이 걸어나왔다. 물색의 롱스커트와 밤색의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그녀는 우리 앞으로 온다. 츠쿠모카미에게 나이는 상관없는 걸까, 외견은 20대 후반 같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어서 오세요 츠쿠모관에. 당신도 부디 제 주민이되 주세요!"

"....에?"

무슨 말을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낸다.

카타나는 멍해진 나에게 고소해 보이며 설명했다.

"그녀는 오오야시키(커다란집). 우리는 친애를 담아 오오야씨라고 부르고 있어. 아파트 부지 전체를 매개체로 하는 츠쿠모카미다"

"여기.... 전부가 매개체?"

나는 놀라서 주변을 둘러본다.

본래는 주차공간이라고 생각되는 부지는 20미터 정도일까. 아파트 본체는 튼튼한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3층 건물로. 창문 수로 판단하면 방은 6개 정도 있을 것 같다. 이 전부가 매개체라니 내 우산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그런 츠쿠모카미도 있다는 거야. 그녀는, 상당히 예외적이지만"

카타나씨는 나에게 설명하고, 오오야씨의 어깨를 두드린다.

"오오야씨 권유는 나중에 해줘 지금은 이야기를 해야 해"

"아,아아,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잠깐 신이 나버렸습니다."

나에게 꽂힌 오오야씨는 내 손을 놓고 머리 숙인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미 소개했지만, 제 이름은 오오야시키입니다. 여긴 대가족이라, 오오야씨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잘 부탁해요"

"저는 카사입니다. 잘부탁...."

떠밀려서 나는 대답했다. 잘 보면 오오야씨는 허리에 열쇠 뭉치를 차고있다. 아마 아파트 방 열쇠겠지.

"카사씨, 인가요. 참고로 묻고 싶습니다만, 1층 2층 3층... 살 곳은 어느 층이 좋은가요?"

탁하고 카타나씨가 검집으로 오오야씨의 머리를 두드린다.

".....우우, 죄송합니다."

머리를 누르고 울상 짖는 오오야씨는 풀이 죽어 물러났다.

"오오야씨는, 모두와 항상 저 준비를 해둬. 이야기가 일단락되면 그 사이가"

"네에에....."

싸리비를 집고 오오야씨가 아파트 안으로 사라 진다.

"... 소란스러웠네. 그럼 내 방에서 이야기하자"

한숨을 쉬고 카나타는 현관으로 향한다. 나도 카타나의 뒤를 따른다. 오오야씨가 츠쿠모관이라고 부른 건물은 다소 오래됐지만 더럽진 않았다.

내가 눈뜬 집과는 다르다. 사람이 살고 관리한 흔적이 있다.
벽에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연락사항이 쓰린 종이가 붙어있었다. 잘 모르겠는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도 있다. 마루는 깨끗하게 쓸어놔서 먼지나 쓰레기는 거의 없다. 오오야씨가 매일 저 싸리비로 청소하는 걸까.

"나는 높은 곳이 좋아서 말이야 3층에서 살고 있어"

카타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파트 안 깊숙히 있는 계단을 올라간다. 나는 방별 달려 있는 우편함을 보면서 계단으로 다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츠쿠모관 중심에 계단이 있고, 좌우로 3개의 방이 늘어선 구조인 것 같다.

계단은 3층까지. 시그가 사는 빌딩 처럼 옥상으로 가는 계단은 없다.

그러고보니 한번도 빌딩 옥상에는 올라가지 않았네...... 시그에게 돌아가면 딱히 이유는 없지만, 옥상에 올라가자. 가슴속으로 그렇게 정한다.

카타나는 3층 복도 끝까지가 301호라는 팻말이 붙은 방앞에서 다리를 멈췄다.

"거기가 카타나의 방?"

내가 물으면, 카타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연다. 골풀 냄새가 났다. 먼저 방에 들어온 카타나는 현관에서 쪼리를 벗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구두를 벗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마루가 나오고, 주방이 있다. 화장실이랑 욕실 같은 문이 바로 앞에 늘어서 있다.

(쪼리- 일본식 슬리퍼 혹은 샌들)

바닥은 다다미 6장으로, 벽 끝에는 베란다로 이어지고 창문이 있다. 창문에서 아파트 부지가 정면으로 보인다. 방안은 꽤 살풍경. 일본식 방 중앙에 작은 밥상과 방석이 있을 뿐. 카타나는 칼을 허리띠에 차고 다다미 위에 앉는다. 그리고 나는 방석에 앉게 한다.

"에, 실례합니다......"

앉는다. 방석은 납작해서, 조금 딱딱하다.

"나-?"

모르는 장소에 흥미를 보이고, 시라타마가 두리번두리번 방 주변을 둘러본다. 다다미 위에다 내려놓으면, 방안을 어슬렁 어슬렁 돌아본다. 내 우산에 공생하고 있는 시라타마지만, 어느 정도는 이렇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뭐, 이 방안 정도는 괜찮겠지.

"보통은 차를 내와야 하지만, 보이는 데로 아무것도 없어. 참아줘"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은 카타나가 입을 연다. 밥상 다리에 몸을 문지르는 시라타마를 바라보고 있던 나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 난, 츠쿠모카미고"

"그런가. 이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결론을 내린 모양이네. 그럼 필요없는 설명은 생략하고 먼저 츠쿠모관에 대해 설명하지"

카타나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그곳엔 둥근 형광등이 매달려있다.

"카사 저걸 당겨봐"

형광등에 매달려 잇는 스위치용 실을 시선으로 가리키는 카타나. 앉은 채로 잡을 정도로 길다.

"에, 이거?"

나는 들은 대로 실을 당긴다. 그러면 팟하는 소리가 나고, 형광등이 빛났다. 방안이 한층 밝아진다.

"켜졌다......? 전기, 들어와?"

놀라서 중얼거린다. 시그가 있던 빌딩은 스위치를 눌러도 불이들어오지 않았다. 마을 상태로 상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것. 발전소가 움직이고 있을 리도 없고, 전선도 잘려있다. 그런데 어째서---.

"전기가 들어오는 게 아니야. 덧붙여서 가스도 수도도 쓸 수 있어. 뭐..... 초현실적 현상 같은 걸로 생각해줘"

"잠깐, 초현실적 현상이라니......"

농담하는 줄 알고 카타나를 보니, 그 얼굴은 웃고 있지 않다.

"츠쿠모카미로 태어났을 때, 구현되는건 마음뿐만이 아니야. 그 매개체도 옛날 모습으로 돌아와. 즉 이 아파트는 '전기. 가스. 수도가 당연한 듯이 쓸수 있을 적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는 거다"

"...... 굉장히 편리하네"

반쯤 멍해져서 나는 중얼거린다. 내 매개체인 우산에 눈을 돌린다. 이 우산도 별로 낡은 건 아니다. 내가 사용하던 그대로다. 아무래도 츠쿠모카미라는 건 정말로, '물건이 둔갑한'존재 같다.

"아아, 무척 편리해. 이런 곳 거의 없어. 이 마을엔 유일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야"

인간답게---- 라는 부분을, 카타나는 강조해서 말했다.

"하지만 우린 츠쿠모카미지?"

"그러네. 하지만 원랜 인간이었던 자다. 그래서 인간의 흉내를 내고, 인간 같이 살기를 원한다. 이 장소는 그 소원을 만족하게 해줘. 어때? 여기에 살고 싶지 않은가?"

능글맞게 웃는 카타나는 내 얼굴을 본다.

"뭐야...... 결국 카타나도 권유하는 거잖아"

나는 한숨을 쉰다.

"뭐, 시그가 너를 부탁했으니까. 행복하게 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해."

"--쾌적하다고, 행복하다고 정하는 거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하지는 거야?"

물어봐서, 생각한다. 무척 어려운 질문.

얼마 전까지는 싫은 것만 없다면 충분했다. 그 이상을 바랄 입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란 것보다 '있는'것을 바라고 있다.

"잘 말하진 못하겟지만...... 시라타마에게 의지하고, 나도 시라타마를 지키고...... 그리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러면 행복할거 같아"

나는 시라타마를 바라보고, 시그를 생각하면서 내 행복을 말한다. 그러면 카타나는 고소했다.

"하하- 나는 믿을 수 없는 건가"

"그러네, 카타나는 시그와 분위기가 닮았지만..... 좋은사람 같고"

솔직히 긍정하고 이유를 말한다.

"뭐야. 착한 사람은 안 되는 건가?"

"응, 나한테는"

"....너, 별나네"

어깨를 으쓱하고, 어이없는 듯이 카타나는 중얼거린다. 나는 애매한 미소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와 시그가 다르다고 생각한 거야?"

단순히 그게 의문이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카타나.

"어쩐지-- 카타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으니까"

생각한 대로 말하면 카타나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이런 걸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보이는 건가?"

카타나는 자긴의 매개체인 검은 칼집 안에 들어있는 검을 내보인다.

"보여"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저, 카타는 시그 정도로 "평범한 인간"이니까 빗나가지 않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분명 나를 죽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카사의 눈은-- 무섭네. 다른 츠쿠모카미가 보면, 나와 시그는 별다른 차이가 없을 텐데"

자조하는 것 같은 미소를 띠면서 카타나가 중얼거린다.

"무슨 뜻?"

"무기를 매개로 하는 츠쿠모 카미는 다른 츠쿠모카미와 명백히 선을 그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츠쿠모카미나 카타나시를 죽일 수가 있다는 거야"

"평범한 츠쿠모카미는.... 무리야?"

"무리는 아니지만, 엄청난 리스크가 따라. 카사는, 이 몸은 부상당해도 그다지 의미 없는 건 알고 있는가?"
 
카타나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온다.

"아,응.... 전에 상처 났을 때, 하룻밤 자고 났더니 나았어"

"그래. 우리 몸은 어디까지나 매개체. 그래서 츠쿠모카미를 죽이려면 매개체를 부술 필요가 있어. 하지만 매개체는 평범하게 부서지지 않아. 이 아파트처럼 일정상태로 유지돼"

방안으로 시선을 향하는 카타나. 확실히 시간의 노화마저도 거부하는 아파트는, 파괴라는 간섭도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부수는 거야?"

"답은 간단. 같은 걸로 부수면 돼. 즉 매개체는 다른 매개체에 간섭이 가능한 거야. 부서지기 쉬운 매개체라면 서로 부서질 수도 있지만, 하나가 무기라면 일방적으로 파괴가 가능해. 그래서 무기의 츠쿠모카미는 특별한 거다."

나는 자신의 우산과 카타나의 칼을 비교한다. 이 두 개가 부딪치면 부서지는 건 우산이겠지. 아무래도 츠쿠모카미 사이에는 확실한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일시적으로 응고된 카타나시에게 통하는 것도 매개체에 의한 공격뿐. 즉 무기의 츠쿠모카미 만이 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단 걸 알아줘"


카타나의 말을 듣고 떠오르는 것은 총을 매개로 하는 시그의 싸우는 모습.

"......그럼, 시그도 특별한 거네"

"그 녀석은-- 총의 츠쿠모카미 더욱더 특별해. 무기도, 마음도, 나보다 훨씬 강해"

카타나는 그렇게 말하고 비꼬는 듯이 입술을 일그러트린다.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멀리서 발포 가능한 권총이 칼보다 강해, 공격에 리스크가 따르지만 카타나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카타나는 자기가 약하다고 생각해?"

"----- 아니, 그렇게 소극적이면 이곳의 경호원을 할 수 없어. 이제까지 이제까지 셀 수 없을 정도의 카타나시를 배었어. 하지만..... 배지 못한 것도 많아. 그게 나와 시그의 차이다."

마치 그게 나쁜 것 처럼, 죄악감이 묻어나는 어조로 카타나는 말했다. 아마도 배지 못한 것 이란건 츠쿠모카미를 말하는 거겠지. 말에서 그런 뉘앙스가 느껴진다.

"카타나는 경호원인거네. 뭔가 시대극 같아"

그 이상 파고드는 건 그만두고, 나는 밝은 말투로 말한다. 카타나는 조금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작게 웃었다.

"츠쿠모관은 고지에 있지만, 가끔 안개가 흘러들어오는 경우가 있어.그 때 모두를 지키는 것이 내 역할이다"

"역할... 그럼, 시그도 뭔가 역할이 있어?"

아마 싸우는 츠쿠모카미는 중요하겠지. 그럼 왜 시그는 여기서 같이 경호원을 하지않는건지....... 그게 신경 쓰였다.

"그런....."

카타나가 조금으로 말을 흐린다. 그때, 똑똑하고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카타나씨-.준비가 다 돼서 언제와도 괜찮아요-."

오오야씨의 목소리가 울린다.

"알았다. 고마워"

카타나가 대답하고, 나를 본다.

"일단 이야기는 여기까지하자. 일단 휴식이다."

카타나는 도망치는 듯이 대화를 자르고 일어선다.

"하지만....."

"시그에 대해서는.... 앞으로 싫어도 알아. 많이 쇼크받지 않게 말이야"

현관으로 향하면서, 카타나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파트 앞에서 느낀 무언의 거절. 그것을 내뿜은 것은 아파트의 주인이다. 확실히 앞으로 그들과 대면한다면, 카타나에게 묻는 것보다 빠르다. 내가 제일 알고 싶은 것은 이 아파트나 다른 츠쿠모카마가 아닌--- 시그에 대해서.

"니야-"

가까이에 있던 시라타마를 안아 올리고, 나도 일어선다.
앞으로 싫은 일이 있어도, 그것을 잊어버리진 않아.
시그에 대해선 전부 기억한다. 처음으로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정했다.

 

밖으로 나오면 구름에 덮안 하늘을 눈동자에 옮긴다. 전기의 밝음에 눈이 익숙해져서, 굉장히 어둡게 느껴진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걸지도 몰라.

카타나는 나를 선도하며 아파트 1층 끝까지 데려간다. 마침 카타나 방 2층 밑에 해당하는 1층 패널은 101호가 아니다. 구조도 3층과는 달라서, 1층에는 방이 5개밖에 없는 모양이다. 보이는 대로, 눈앞의 방이 다른 2방을 구분하는 공간이 있다.

"관리인실....?"

나는 패널어 쓰여있는 문자를 읽는다.

"아아, 여긴 오오야씨의 방이다"

그렇게 말하고 카타나는 문 손잡이에 손을 댄다. 문 건너편에서는 이미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찰칵하고 손잡이가 돌아간 순간, 딱하고 소리가 멈춘다.

문이 열린다. 카타나의 어깨너머로 나는 방안을 엿본다.

방의 기본구조는 같은 것 같이 바로 앞에 바닥이 있는 일본식 방이다. 하지만 넓이는 2층으로 방에는 많은 사람이 긴 테이블에 둘러싸고있다. 틀림없이 10명 이상 있다.

"주빈이 도착했네요! 자아, 부디 이쪽으로-"

오오야씨가 이쪽으로 달려와, 내 손을 끌어당긴다.

"에? 왁!"

그대로 방안으로 끌려가는 나. 방안에 있는 전원 시선이 집중된 느낌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다. 남녀노소, 하나의 공통점도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카사씨, 이쪽에 앉아주세요"

오오야씨에게 재촉받아 상석에 앉는다. 호기심과 기대에 충만한 시선을 정면에서 받으며 나는 "아, 아하하...."러고 애매한 미소를 띄웠다.

카타나는 제일 먼 말석에 앉고, 오오야씨는 내 옆에 앉는다.

"그럼 재개해서, 항례 신입씨 환영회를 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항례구나......


커다란 목소리로 선언하는 오오야씨를 곁눈질하면서 생각한다. 항상 하는 그거라는 건 이걸 말하는 거겠지.

"저기, 환영이라니..... 전 아파트에서 살 생각이---"

작게 오오야씨에게 묻는다.

"아뇨 아뇨, 이건 당신이 츠쿠모카미의 동료가 됐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이에요. 물론 여기에서 살아준다면 최고겠지만요"

오오야씨는 나에게 미소를 보이며,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먼저는 모두와 피로연입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네,네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앞을 향해 전원의 시선을 받아들인다. 아니--- 잘 보면 전원은 아니다. 깊숙이 앉은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여자애만큼은 언짢은 듯이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조금 신경 쓰이지만, 일단 자기소개를 하기로 한다.

"에, 카사입니다. 이 애는 시라타마. 잘부탁립니다......"

시선을 의식해버려 마지막에는 소리가 작아져 버린다. 하지만 꾸벅 머리를 숙이면 커다란 박수가 돌아왔다. 아까 그 여자애 빼고는 모두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다. 아마래도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럼 계속해서, 모두를 소개하죠. 쵸우씨부터 시계방향으로 부탁합니다."

"오우, 나부턴가"

남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해맑게 웃었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 일까 하얀 요리사 옷을 입고 있다.

"나는 부엌칼의 츠쿠모카미로 쵸우라고 불리고 있어. 잘 부탁해 아가씨"

그렇게 말한 남성--- 쵸우씨는 천을 싼 식칼을 보여줬다. 복장으로 봐서는 아마 인간이었을 땐 요리사였겠지.

다음으로 쵸우씨 옆에 있던 노부인이 나에게 온유한 미소를 보여준다.

"나는 피시예요. 매개체는 말이예요, 이거"

무릎 위에 감아뒀다고 생각되는 노트북을 노부인-- 피시는 올려다보인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배합.

피시의 건너편에 있는 초등학생 정도의 남자애가 몸을 일으켜, 손을 뻗었다.

"누나, 나는 호우시야. 잘 부탁해!"

씩씩한 남자애--- 호우시가 인사한다. 매개체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름대로 모자가 본체겠지. 그는 프로야구팀의 로고가 들어간 모자를 쓰고 있다.

그리고 다음이, 계속 고개 숙이고 있던 소녀의 차례다. 색소 옅은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있는 소녀는, 머리를 들지 않은 채 시선만을 이쪽으로 슬쩍 향했다.

"......아야노"

그리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그게 그녀의 이름일까.

나는 의문의 눈초리를 향하지만, 그녀는 바로 눈을 돌려버린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계속 재촉하는 시선을 보내는 걸 그녀도 알고, 짜증 나는 표정을 띄우고 일어선다.

"이름은 말했고, 충분하지? 나, 이제 방으로 돌아갈 테니까"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척척 출구로 향하는 소녀. 역시 아야노라는 게 소녀의 이름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 이름만으로 소녀의 매개체는 몰라.

"아, 저 저기, 적어도 조금만---"

오오야씨가 멈추려 하지만, 소녀-- 아야노는 언짢은 듯이 얼굴을 찡그린다.

"... 자기소개면 된다고 말했잖아? 뭔가 문제 있어?"

"아뇨, 그건......"

"그럼, 상관없네"

말을 더듬는 오오야씨에게 등을 돌리고, 그대로 방을 나가는 소녀. 탁하고 난폭하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방안에 울린다. 답답한 침묵이 퍼진다.

"에, 음, 죄송해요....카사씨.아야노짱은 조금 까다로운 애라....."

오오야씨는 급히 자리를 얼버무리며 나에게 사과한다.

"신경 안 써 괜찮아"

"정말? 카사씨 친절하네요"

"별로 그런건......"

멋대로 친절한 사람 취급당해서 당황한다. 나는 말 그대로, 그녀-- 아야노의 언동을 전혀 신경 쓰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걸 그대로 전했을 뿐.
확실히 아아노는 짜증부렸지만 그건 나를 향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녀는 기분 나빠 보였다.아마,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었겠지.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 마음은 공감한다.

이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과도한 선의를 받으면 진정되질 않는다. 이 착한 사람 뿐인 공간에서, 빨리 도망가고 싶었다.

착한 사람은--- 믿을 수 없어. 언제 "나쁜쪽"으로 돌아설지 알 수 없으니까.


아야노란 애도...... 나랑 같을까?

그런 걸 생각한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 따윈 이 세상 어디도 없다는 건 알고있다. 하지만, 정말 조금은 닮은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렇다면.... 뭐지?

자신의 의사에 의문을 표한다. 마음의 소리는 계속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그럼, 가다듬고 자기소개를 계속하죠"

오오야씨가 손뼉을 치며 주위를 끈다. 자기소개가 재개된다. 하지만 내 의식은 내면으로 향해버려, 그들의 말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하니 있는 사이에 순서가 한바퀴 돌아버린다.

"왜 그러세요? 모두의 얼굴과 이름, 기억하셨어요?"

"---헤? 아, 음......"

오오야씨가 말을 걸어 제 정신이 들었다. 솔직히 후반에 소개한 사람들은 기억나지않았다.

하지만 내 모습을 보고 오오야씨는 호의적으로 미소 짓는다.

"뭐어, 이렇게나 많으니 무리네요. 앞으로도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조금씩 익혀가죠"

어딘가 선생님 같은 어조로 말하는 오오야씨.

"네,네에......"

거북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끄덕인다.

"그러면 딱딱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앞으론 평소처럼."

모두를 향해 오오야씨가 알린다. 그러면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상 아래에서 접시와 컵을 꺼냈다.

"에......?"

상위에 늘어놓은 그릇을 보고 놀란다. 담긴 건-- 샐러드나 튀김 같은 것, 야채를 사용한 요리.

"어때, 아가씨. 이거 전부, 내가 만든거 라고?"

부억칼의 츠쿠모카미인 쵸우씨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편다.

"왜......? 츠쿠모카미는 먹는 건 필요없는 게---"

"필요 없더라도, 식사는 살아가는 즐거움 중 하나지? 그래서 내가 가끔 요리를 하는거야. 뭐, 취미 같은 거지"
확실히 배가 고프진 않지만, 먹는 건 가능하다. 폐허가된 마을에서 동물을 본 적은 없지만, 덩굴로 덮인 집 같은 건 잔뜩 있다. 식물은 이런 환경에서도 자라, 식재로서도 이용 가능한 거겠지.

"이 채소는?"

"밭을 가꾸는 게 취미인 녀석도 있어서 말이야. 그 녀석에게 받고 있어. 덧붙여, 이런 것도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쵸우씨가 꺼낸 것은 술병.

"혹시...... 술?"

"아아, 시행착오를 거듭해 완성한 물건이다. 아가씨는 마시는편이니?"

"저, 저는 미성년자고....."

앗핫핫하, 츠쿠모카미에게 나이 따윈 관계 없어. 뭐 주스도 있어. 좋을 대로 마셔줘"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쵸우씨는 웃는다. 그렇게 얼렁뚱땅 술잔치가 시작됐다. 보우시라고 말했던 소년 츠쿠모카미와 나, 거기에 피시 할머니는 황록색의 수수께끼의 주스를 손에 들고, 건배한다.

그 후, 나는 바로 술이 들어가 텐션이 올라간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츠쿠모카미라도 술에는 취하는구나 하고, 나는 홀짝홀짝 주스를 마시면서 생각한다. 무슨 과일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스는 무척 달다.시라타마는 졸린 건지, 무릎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하품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너도 재난이였네....."

아직 이름을 외우지 못한 샐러리맨 같은 남성이 친한 척 말을 건다.

"재난이라니?"

"그거야 물론, 그 사신에게 발견된 거 말이야. 아니, 사실은 나도 그 녀석에게 발견되서 말이야... 갑자기 총을 겨누고, 여기까지 강제연행. 정말이지,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고"

시그는 옛날부터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남성에게는 다소의 동정이 느껴지지만, 그것보다 신경쓰이는 단어가 있다.

"저기.... 사신은, 시그를 말하는거지?"

물어보면 남성은 깜짝놀란 얼굴은 한다.

"당연하잖아? 그 녀석 말고 누가있어. 나는 아직 츠쿠모카미가 된지 1년 정도지만, 그 사이 많은 츠쿠모카미가 그 녀석에게 살해당했어. 그 녀석은 틀림없이 우리에게 있어선 사신이야."

그 말에 새하얀 수염을 기른 키가 큰 노인이 끄덕인다. 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 그 녀석은 피도 눈물도 없어. 해방전선 때도---"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니까"

".... 알아둬"

노인은 혀를 차면서, 잔에 있던 술을 다 마셔버린다. 대화를 전혀 따라갈 수 없었던 나는 샐러리맨에게 묻는다.

"왜..... 시그는 츠쿠모카미를 죽인 거야?"

시그가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시그는, 그 악을 자신의 의지로 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유가 있을 거다. 그것 때문에 시그는 나를 멀리한 것 같다. 그렇다면, 시그가 역겨워하는 이유를--- 츠쿠모카미를 죽이는 이유를 모른다면 그 빌딩으로 돌아갈 수 없다.

"왜냐니... 혹시, 아직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는 건가?"

"응"

"-- 그 녀석은 말이야, 츠쿠모카미가 죽음에 이르는 일을 하는거야.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우리 츠쿠모카미에게 죽음 따윈 필요 없어......"

말 끝은 거의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리는 남성. 뭔가가 생각 난건지, 위험한 얼굴로 잔을 꽉 쥔다.

그때 보우시가 끼어든다.

"어라, 하지만 카타나 누나는 필요한 역할이라고 말했어? 끝나고 싶을 때는, 그 녀석에게 말하라고"

"시끄러워! 끝날 수 있으니까 끝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썩을...왜 끝 같은게, 있는 거야......"

이미 술에 취해버린 건지, 남성은 언성을 높이고 머리를 감싼다. 보우시는 화난 소리를 들어 깜짝 놀란 건지 멀리 도망갔다.

이 이상 그에게 묻기가 그래서, 나는 시선이 방황한다. 그러면 방구석에서 잔을 기울이는 카타나와 눈이 맞았다. 이 대화가 들렸겠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출구로 시선을 돌린다, 하고 싶은 말은 밖에서, 하는 의미겠지.

나는 요리를 손에 쥐고, 타이밍을 잰다. 술에 취한 어른들이 말을 걸어서 바로 움직일 수가 없다. 지금 당장 잊어버리고 싶은 싫은 말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저기ㅡ 조금 지쳐서...... 슬슬--"

결국 참을 수 없어서, 나는 억지로 대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까이에 있던 오오야씨는 아쉬운 듯이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카사씨, 괜찮아요? 쉬고 싶다면 빈방으로 안내할게요"

오오야씨가 일어서려고 하지만, 그 타이밍에 카타나가 가까이 왔다.

"그렇다면 내가 데려다 줄게. 302호실이라도 괜찮아?"

"아,네. 어느 방이라도 바로 쓸 수 있게 해놨으니까, 괜찮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카사씨,이거... 방 열쇠입니다."

오오야씨에게 현관까지 배웅받고 열쇄를 건네받는다. 술잔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저마다 들떠있다. 몇 사람이 손을 흔들어줘서, 가볍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온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쓰다듬는다. 밖은 이미 옅은 어둠에 덮여 흐린 하늘에서 내리는 가는 비에 경치가 스며있다. 정황상으로도 오늘은 여기에서 묵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갑자기 변한 기운에 놀란 건지 안고 있던 시라타마가 눈을 깜빡거린다.

"-- 미안해. 역시 사전에 가르쳐줘야 했는데"

카타나가 작게 말을 흘리며, 복도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시그가.... 사신이라고 불리는 거?"

"아아"

"... 그건 무슨 의미야? 츠쿠모카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게 일이라고 말해도, 잘 모르겠어."

걸어가는 카타나의 등에다 대고 묻는다. 술에 취한 남성의 말은 추상적이라, 구체적이지 않다.

".... 확실히 말하자면, 시그가 하는 일은 츠쿠모카미를 죽이는 거다"

복도를 돌아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한 카타나는 낮은 소리로 답한다.

"시그는....청부업자라는거?"

"아니-- 우리는 부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어"

"부수는 사람? 뭘 부수는 거야?"

되물으면, 카타나는 걸음을 느릿하게 하고 나에게 답한다.

"--- 매개체다"

매개체가 부서지만, 츠쿠모카미는 죽는다. 그게 카타나가 가르쳐준 거였다. 부르는 법이 다를뿐으로 청부업자도 부수는 사람도 의미는 같다.

"왜..... 시그는 부수는 사람을 하는 거야?"

츠쿠모카미는 먹을게 필요 없다. 그러면 아무런 소비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역할이었어. 츠쿠모카미에겐 끝이 필요했어"

"끝...."

"그래 삶의 마지막이야. 츠쿠모카미에게는 수명이 없어. 마음이 사라지던가, 매개체가 부서지지 않는 한--- 존재는 이어져. 그건 경우에 따라선 영원한 고통이야"

계단에서 뒤돌아선 카타나는 나를 보고 슬픈 듯이 말한다.

비슷한 말은 시그와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카타나가 말하고 싶은게 예상간다.

"마음은 품고 살아가는게.... 힘든거네"

끝내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츠쿠모카미는 절대로 사라지지도 않고 채워지지 않을 마음에 목말라하며 괴롭게 살아간다. 그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고, 시그가 말했다.

"--그래. 그 고통에서 도망치기 위해, 끝을 바라는 츠쿠모카미는 많아.카사에게 푸념했던 그는 아직 어리니까, 그게 아직 실감 나지 않는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시그를 나쁘게 말했다고?"

"할 수.... 없어. 끝나고 싶다고 바라는 당사자는 이해하고 있지만, 남은 녀석들에게는 동료를 빼앗은 거야. 어떻든 간에 감정이 시그에게 향해"

계단이 끝나고, 302호실 앞에 도착한다. 다리를 멈추고, 뒤돌아본 카타나에게 나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부딪친다.

"끝나고 싶은 사람은, 자신가 책임지고 끝나면 된다고 생각해. 왜 시그가---"

그 말에 카타나는 아픔을 견디는 듯한 표정을 띄운다.

"매개체는 자기가 직접 부술 수 없어. 그래서 무기의 츠쿠모카미에게 부숴달라고 부탁할 수 밖에 없어. 이 근방에 있는 무기의 츠쿠모카미는 시그와.... 나 뿐이야"

"그건....."

나는 빤히 카타나를 바라본다. 비가 내리는 하늘에 스민 빛에 빛나는 은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 불안을 지신 붉은 눈. 다시 봐도 무척 예쁘다. 그녀는 아마 사람을-- 츠쿠모카미를 죽인 적이 없다.

분명, 죽이지 않아.

"아아... 시그는 나 대신에, 내 몫까지, 일을 받아줬어. 책임져야 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야."

죄악감이 스민, 허무하게 웃는 카타나를 보고 생각한다. 시그는 이 사람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하고.

"그 녀석은 강하니까.... 그만, 의지해버려, 나도 그 녀석 정도로 강해지면 좋겠지만......"

자신을 비웃는 듯이 중얼거리는 카타나. 난 그걸 듣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먹을 쥐었다.

"저기, 카타나는 시그의 취미를 알아?"

감정이 나타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묻는다.

"아니... 모르지만. 그녀석, 뭔가 취미가 있는 건가?"

갑자기 화제가 변해 카타나는 멍해진 얼굴로 답한다.

비는 점점 강해져, 빗소리가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그럼, 시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어떻냐니... 강하고, 항상 냉정하고, 나 같은 거에 비하지 못할 정도의 아수라장을 겪은--"

"알았어. 이제 됐어"

장한 어조로 말을 자른다. 충분히, 이해했다. 카타나가 시그에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카사?"

머리를 갸우뚱하는 카타나를, 나는 노려본다.

"저기, 시그는--"

아마,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입 밖으로 내려고 했던 그 말을 직전에 삼킨다. 시그는 분명 카타나가 상상하는 듯한 사람으로 있으려고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취미에 대해서 입막음 한 거겠지.

"--- 으으응.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오늘은 쉴래. 이방... 써도 돼는 거지?"

무리해서 미소를 만들고, 카타나에게 묻는다.

"아,아아.... 좋을 대로 써줘. 이불은 있을거야"

카타나는 조금 당황하면서, 친절히 알려준다.

"알았어, 고마워"

예의를 표하고 나는 302호실 문을 열고 다리를 집어넣는다.

"그럼, 잘자"

인사하고, 대답을 듣기 전에 문을 닫는다. 달칵하는 소리와 빗소리가 함께 멀어져갔다. 문에 기대듯이 그 자리에 앉아버린다. 시라타마가 품에서 바닥으로 내려와, 나를 걱정하는 듯이 올려다본다.

문 너머로 옆방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시라타마-- 모두, 좋은사람뿐이네"

나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의 새끼 고양이에게 비꼬는듯한 어조로 말을 건다.

착한 사람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악을 만들어낸다. 나쁜 사람이 있으니까, 착한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 있을수있다.

이 마을에 있어서 악은--- 시그. 시그가 있으니까 카타나는 착한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시그를 나쁜 사람 취급하고, 규탄하는 것으로 정의의 편에 있는 듯한 기분을 가진다. 그것은 시그 자신이 바란 걸지도 몰라. 하지만---.

"이런 구도, 이제 지긋지긋해"

이유 따윈 옛날에 잊어버렸지만, 나도 나쁜 사람이었니까. 나 말고는 전부 착한 사람이니까... 이런 세상을 계속 보고 있으면 기분 나쁘다.

시라타마가 스커트를 잡아끌면서 운다.

"하하.... 시라타마는, 어느 쪽도 아닌가"

턱밑을 쓰다듬으면 시라타마는 기분좋은 듯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래, 시라타마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아. 환영회에서 서둘러 나간 아야노라는 소녀에 가까운 것을 느꼈지만, 그녀도 아마 중간. 내가 아는, 나 말고 나쁜 사람은 1명뿐.

"시그, 뭐 하고 있을까나...."

살짝 어두운 방을 바라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린다.

평소처럼 소파에 앉아서 만화를 읽고 있을까. 그게 아니면 뭔가 내가 모르는 걸 하고 있을까.

--- 그러고 보니, 이 방......

시그가 보여준 3층 플로어를 생각해낸다. 그곳에 늘어서 있던 부서진 무수한 도구들...... 그것을 보고 시그는 묘지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 의미를 안다. 그곳에 있던 것은 시그가 부순 츠쿠모카미의 매개체였겠지.

어제 들은 파열음도 총성이었을지 몰라. 방에 돌아온 시그가 풍겼던 초연 냄새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후--- 소파에 누웠을 때의 옆모습도.

"...........아아 정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서서, 옆에 있던 스위치를 누른다. 현관에 밝은 불이 옅은 어둠을 창문 밖으로 밀어낸다.

구두를 벗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시라타마도 딸랑딸랑 뒤를 따라온다. 방안의 전기를 키고, 창문 너머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빨리, 그치지 않을까나"

나는 그런 말을 흘린다. 비만 내리지 않으면, 바로 시그에게 가고 싶었다. 이 츠쿠모관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모든 것을 알고도, 나는 그 빌딩에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창문 옆에 앉아,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비는 더 세지고 하늘은 어두워진다. 이제 해가 져버리면 어쩌지.

어둠에 싸인 경치를 바라보며, 마음도 어두운 그늘이 진다.

"내가 돌아가도 시그는 기뻐하지 않을지도......"

시라타마의 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뇌리에 총과 함께 그때 띄운 시선이 지나간다. 그때 시그는 정말로 나를 거부했다. 그걸 알아서,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쩐지.... 내가 빌딩에 돌아가도, 쫓아낼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어떻게 되든 좋은거지"

어두운 하늘과 밝은 천장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백문 한다.

하지만 답은 어디에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똑똑, 똑똑.
똑똑, 똑똑.

이어지는 노크 소리에 나는 눈을 뜬다. 전기로 밝아진 다다미가 눈에 비친다. 방구석에서는 시라타마가 자기 꼬리로 장난치고 있다.

어느샌가---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창 밖은 별마저 없는 암흑. 빗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하늘은 흐릿한 것 같다.

똑똑!

이번엔 강한 노크소리. 그 소리에 반응해서, 시라타마가 깜짝 놀라 머리를 든다. 내가 손에 들고 일어서 현관에 가까이 갔다.

"......누구?"

문 건너에서 불러본다.

"열어, 잠깐 할 말이 있어"

돌아온 것은 여자애의 목소리. 내 질문에 대답하고 용건만을 알린다.

의심스럽게 생각했지만, 별로 위험할 것도 없겠지 하고 손잡이를 잡는다. 옆방에는 카타나가있고, 그전에 나는 방을 잠그지도 않았다. 들어오려면, 언제라도 멋대로 들어올 수 있었다.

문을 열면, 그곳에는 나와 같은 나이로 보이는 소녀가 서 있다. 색소 옅은 머리를 리본으로 묶고 하얀 파카와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다. 그녀는 본적 있다. 날카롭게 째려보는 그녀에게, 내가 말을 건다.
 
"아야노... 였지?"

"이름만 부르지 마. 친하지도 않으니까"

그녀- 아야노는 얼굴을 찡그린다.

"그럼, 아야노짱?"

"왜 '짱'인거야"

"하지만 아야노씨라는 느낌은 아니고"

"...어린애 같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츠쿠모카미 선배에게 실례네"

허리에 손을 올리고, 언짢은 듯이 말하는 아야노.

"아냐노는,  츠쿠모카미가 된지 얼마나 됐어?"

보기엔 동년배 같지만, 실제론 배 이상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묻는다.

"윽, 아직도 이름으로 부르고. 내가 츠쿠모카미가 된건............ 반년 전이야"

말이 뒤로 갈수록 작아진다.

"아, 결국 최근이네"

"시, 시끄러워. 선배는 선배지? 됐으니까 빨리 안으로 들어가게 해줘. 이런 거 다른 녀석 눈에 띄긴 싫으니까"

"그래? 자아, 부디"

나는 아야노를 방안으로 부른다. 그녀는 복도를 둘러본 뒤. 빨리 현관으로 들어온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쉬고, 구두를 벗는 아야노.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 온 걸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니야-"

시라타마가 방안에 들어온 야야노를 맞이하는 듯이 운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마치 가주에게 인사하는 듯이, 진지한 눈으로 아야노는 머릴 숙인다. 그리고 앗차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당분간 말없이 바라본다.

"가... 같은 츠쿠모카미로서 인사한 거니까!"

나에게 삿대질하면서 당당히 변명하는 아냐노.

"나는 인사 안 했는데?"

"너한텐 그런 거 필요 없어. 인간 따위--- 예의를 표할 필요 없어"

"같은 츠쿠모카미 야냐"

"츠쿠모카미도 인간은 인간이야"

잘 모르겠는 논리를 말하면서 아야노는 바닥에 앉는다. 주장에 일관성은 없지만 어쩐지 말하고 싶은 건 전해진다.

"아냐노는 인간이 싫은 거네"

"...그래. 그런데 또 이름으로 부르고... 이제 됐어. 좋을대로 해"

내가 물으면 그녀는 불쾌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럼, 그런 싫어하는 사람한테 왜 야나노가 온거야?"

아냐노의 정면에 내가 앉고 묻는다. 시라타마가 폴짝 내 무릎에 올라온다. 그걸 조금 부러운 듯이 바라보면서 아야노가 말한다.

"묻고 싶은 게.... 있어"

"묻고 싶은 거?"

"에에--- 너, 사신에게 주워졌지?"

아냐노는 이 마을에 있어 악을 상징하는 단어를 말한다.

".... 사신이 아니야, 시그야"

작은 소리로 나는 말한다.

"어느 쪽이든 좋아, 그런 거. 그래서----"

"어느 쪽이든 좋지 않아. 시그는, 시그"

이번엔 강한 어조로 정정한다. 아야노는 조금 놀란 얼굴이지만, 바로 고쳐잡고 말을 잇는다.

"모두 사신이라고 부르니까, 이름을 몰랐어, 그--- 시그였던가? 난 그 녀석이 정말로 츠쿠모카미를 끝나게 해주는지 알고 싶어"

진지한 어조와 눈초리로 아냐노가 알린다.

"왜, 나한테 묻는 거야?"

츠쿠모관의 주인, 이를테면 카타나가 주변사정에 밝겠지. 아무리 시그가 데려다 줬다고 해도, 신입인 나에게 묻는 이유를 모른다. 게다가 샐러리맨 같은 남성도 시그에게 주워졌다고 말했다. 적임자는 잔뜩 있다.

".... 이제까지 계속 무시해왔는데 들었을 리가 없잖아"

시선을 돌리고 아야노가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인간이 싫은 그녀는 츠쿠모관의 주민을 멀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확실히, 이제 와서 자기가 가까이 가지 않겠지. 시그에 대해서도, 소문 정도 밖에 모르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문제는 그것을 알고 싶은 이유다. 나는 일을 예감을 느낀다.

"왜, 알고 싶은 거야?"

긴장하고 물었다.

"확실한 건아냐. 나-- 이제. 끝나고 싶은 거야"

오기 부리는 아야노의 표정과 목소리에, 축적된 피로가 스민다. 눈동자에 마지막으로 도움을 구하는듯한 눈빛이 빛난다.

그것은 내가 제일 듣고 싶지 않았던 대답. 시그의 임무가, 그 역할이, 츠쿠모카미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대사였다-.


"끝나고 싶다니, 왜?"

10초 정도의 침묵을 끼고, 나는 묻는다.

"이..... 아까부터 꼬치꼬치 캐묻고, 적당히 해. 나는 인생상담을 하러 온 게 아니야. 먼저 이쪽의 질문에 대답해."

짜증난 듯한 모습으로 아야노는 나를 째려본다. 이 이상 내가 아는 걸 가르쳐주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되질 않아. 망설이면서도, 나는 입을 연다.

"- 시그는 부수는 사람이라고 카타나가 말했어"

"부수는 사람?"

"매개체를 부숴서 츠쿠모카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것이 시그의 임무로.... 역할이라고"

다시 말해도, 우울하다.

시그는 모두에게 소외당하고, 증오받는 일을 하고 있다. 혼자서 악의 편에 서 있다. 이곳에 온 것 만으로 나마저 착한사람이 되버린다.

시그의 역할이 필요한 한은, 아마 그는 그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겠지. 분명 아무에게도 넘겨주지 않고, 내가 다가가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그는 취미마저 입막음하고, 사신으로서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총을 겨누고, 나를 거부한다. 그 행동은, 그가 상태유지를 바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설득하는 정도로, 그 의사를 바꿀 수 있다곤 생각되지 않아.

"그래, 정말 가능한 거네. 부서지는 게 매개체라면 아프지도 않겠고, 잘됐네"

나와 반대로 아야노의 표정이 밝아 진다.

"......그렇게, 기뻐?"

"물론이야. 여기에 있어도 즐겁지 않고, 마음은 괴롭기만 하고.... 이런 일상이 영원히 이어지다니 참을 수 없어"

"아야노의 마음은 뭐야?"

아마 끝나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묻는다.

"그런 거 너한테 말할 필요 없잖아? 그럼 용건 끝났고, 쉬어"

일어서서 이쪽에서 등을 돌리는 아야노. 현관으로 향하는 그녀를, 나는 앉은 채로 배웅한다. 그녀는 앞으로 시그에게 가는 거겠지. 시그는 그녀의 매개체를 권총으로 쏘는것 이겠지. 그리고-- 어제 같은 표정을 띄우겠지.

그것을 상상하면 가슴이 삐걱거린다.

"저기--"

일어서서, 순간적으로 불러버린다. 하지만 내가 말하기 전에 아야노는 다리를 멈췄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아야노.

"그래서.... 시그라는 사람, 어디서 사는 거야?"

뺨을 붉히며 아야노가 묻는다.

"풋"

예상외의 대사에 참지 못하고 웃어버린다.

"잠깐, 웃지 마! 돼, 됐으니까 빨리 가르쳐줘!"

"-- 알고 싶다면, 먼저 내 질문에 대답해"

웃으면서, 되돌려준다. 아까 아야노의 흉내다.

"뭐, 뭐 말이야. 마음?"

"응"

나는 끄덕인다. 웃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 탓인가. 하나 집히는 게 있다.

그것은 내가 시그의 편에 서는 방법. 그 빌딩에 돌아갈 가능성.

그러니까 호기심이나 시간벌기가 아닌,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아야노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 기억하지 못해"

불쾌한 표정으로 아야노다 답한다. 내가 의문스러운 눈을 향하면, 그녀는 당황한 듯이 손을 젓는다.

"거, 거짓말 하는 게 아니야. 기억하고 있을 거라 말하겠지만, 내 안에 있는 마음은 감정뿐이야. 마음에-- 기억이 없는 거야"

"무슨 의미?"

"내 핵이 되는 건 가지고 싶다는 마음. 하지만 뭐가 가지고 싶은 건지 왜 가지고 싶은 건지 그걸 모르는 거야"

아야노는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움츠린다.

"기억나지 않아?"

나와 닮은듯한 상황이다. 충동은 있는데, 그 정체를 모른다. 쓰레기 상자에 기억을 밀어 넣은 탓으로, 많은 걸 잊어버렸다.

"무리야. 나는 인간이었을 때를 그다지 기억하지 못해서. 실마리조차 없어. 마음 말고 확실히 남은 건 내 이름과 타인에 대한-- 혐오뿐이야"

내뱉는 듯이 아야노가 말한다.

그걸로 나와 아야노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깨닫는다.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의식적으로 잊어버렸을 뿐. 하지만 아야노는 기억 그 자체가 남지 않았다. 없는 건 되찾을 수 없어. 그건 확실히 마음을 끝낼, 가지고 싶은 것을 손에 넣을수없어 괴로울 뿐이겠지.

"하지만.... 기억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손에 넣으면 알겠지?"

"에? 그런 아마-- 마음이 채워 질테니까, 알 거라고 생각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표정으로 아야노가 나를 본다.

이미 내 마음은 정해져 있다. 해야 할 것을 보고 있다.
무모할지도 모르지만, 할 수 밖에 없어. 시그와 같은 곳에 서려면 같은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아야노가 가지고 싶어 하는 뭔가를 찾아낼게"

확실하게 선언한다.

"하.....? 무슨말이야?"

놀람을 뛰어넘어, 어이없어진 모습으로 이야노가 말한다.

"츠쿠모카미가 사라지기 위한 조건은 2개 있어. 하나는 매개체가 부서지는 것. 그리도 또 하나가, 마음이 채워지는 것. 어차피 끝날 거라면, 만족하고 사라지는 게 좋지?"

나는 시그처럼 매개체를 부술만한 힘은 없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도 츠쿠모카미를 끝나게 할 수 있다.

"그, 그건 그렇지만...... 가지고 싶은 걸 모르는데 어떻게 찾는단 거야"

"이를테면 아야노가 기억하는 장소라던가.... 기억이 없어도 짚이는 곳은 있다고 생각해. 일단, 시그에게 가는 건 조금 기다려. 일단은 나한테 맡겨줬으면 해"

아야노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녀는 당황한 듯 시선이 방황하고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린다.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하고 싶어 하는 거야. 너도 다른 녀석이랑 똑같이 착한 사람이라 참견하는 거야?"

"아니야. 나는 나쁜 사람. 전부 나를 위해서. 아냐노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니까 안심해"

능글맞게 웃으며 답하면, 아야노는 이마에 손을 대고 머리를 흔든다.

"정말, 넌, 이유를 모르겠어. 뭐, 나는 손해도 없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을 대로 해"

"정말!"

생각지도 않게 몸을 내밀지만 아야노는 내 눈앞에 손가락을 내민다.

"단, 기한부야"

"기한?"

"에에, 왜 그렇게 길게 기다릴 순 없어. 그러니까--3일. 3일이 지나면 시그라는 사람이 있는 곳을 가르쳐줘. 괜찮겠지?"

3일......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걸 찾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겠지. 하지만, 이 의뢰를 끝내지 못하면 시그 앞에서 가슴을 펼 수 없다. 같은 곳에 서고 싶다고 말 못해.

"알았어"

그러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는 아야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뭐야, 이거?"

내 손바닥을 바라보고, 아야노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계약성립 악수"

"..... 할 수 없네"

마지못해 아야노는 내 손을 잡는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주 잡고 웃는다.

"나, 열심히 할게"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아도 좋아"

다른 쪽을 보며 아야노가 대답한다.

하지만 그러면 안돼. 절대, 해내야 해.

이건--- 나에겐 첫 "임무"니까.

 

다음날 태양이 뜨기 전--- 산기슭이 밝아지기 시작할 무렵에 나는 살짝 방을 빠져나왔다. 하늘색 우산을 팔에 걸고, 시라타마를 가슴에 품고, 발소리를 죽이면서 복도를 걷는다. 이른 아침 공기는 차갑고, 습한 냄새가 섞여 있다. 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하늘에 구름이 듬성듬성 떠있다.

어젯밤에 내린 비는 소나기였는지도 몰라.

오늘 밤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고.... 안개는 괜찮겠지.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희망적으로 관측하고 판단한다.

복도 끝, 카타나의 방과 정 반대편--- 306호실앞에서 다리를 멈추고, 작게 똑똑하고 문을 두드린다. 그러면 찰칵하고 손잡이가 돌아가, 아야노가 얼굴을 내민다.

"...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았겠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경계하면서, 밖으로 나오는 아야노.

"응, 아마. 하지만 왜 이렇게 노크해야 하는 거야?"

나는 오늘 아야노가 츠쿠모카미로서 처음 눈을 뜬 곳으로 데려다 주기로 약속했다. 오늘밖에 달리 조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건 당연하지. 너랑 같이 있는 거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마음을 바꿔먹었다고 생각할 거 아냐.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낼 마음이 들었나보네요~ 라는 소리 듣는걸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소름 돋아"

팔을 쓰다듬으며, 정말로 싫은 듯한 얼굴로 아야노가 답한다.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건 시그와 같다고 생각하고 나는 고소했다.


"방금, 오오야씨 흉내?"

"-그래. 정말이지, 귀찮아 어이없어"

작은 목소리로 독설을 내뱉곤, 아야노는 계단으로 걸어간다. 나로선 내가 하는 일이 모두에게 알려지면 좋지만, 아야노가 그렇게 말한다면 할 수 없다. 뭐, 이런 작은 커뮤니케이션이다. 비밀로 하더라도, 언젠간 소문은 퍼지겠지.

아야노의 뒤를 따르면서,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혹시 지금도 방안에서 우리 발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생활소음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없는 마을은, 소리가 잘 울린다.

하지만 1층으로 내려오고 아파트 부지를 나가기까지 누군가에게 붙잡히는 일은 없었다. 아파트를 나가는 순간 공기가 변한다. 잘 말로 표현을 못하겠 지만, 조금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후우..... 어떻게든 탈출 성공"

아파트 앞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아야노가 어깨에서 힘을 뺀다. 꽤 긴장했던 모양이지만 어딘가 즐거워 보이지도 했다.

"뭔가 조금 두근두근했지만 말이야"

나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말한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어린애도 아니니까"

휙 하고 얼굴을 돌리고 빨리 걸어가는 아야노.

"기다려 아야노. 안개가 나오면 위험하니까, 조심해서 가야 돼"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아직 새카맛다. 동쪽 하늘은 밝아지기 시작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무심코 안갯속으로 들어갔다간 위험하다.

"...알았어"

아야노도 카타나시가 위험한 건 아는 것 같아서, 걸음을 느리게 한다.

아직 밝아지지 않은 폐허를 아야노의 지시에 따라 걸음을 옮긴다. 점점 푸른색이 옅어지고 태양이 산 너머로 얼굴을 드러낸다. 아침노을에 황금빛으로 마을이 물들어, 밤을 꾸미던 별들은 푸른색에 스며들어 사라진다.

햇빛으로 빛나는 마을은, 안개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방심하지 않고 길을 걷는다. 아야노가 향하는 곳은 마을의 남쪽에 펼쳐진 주택지 같다. 하지만 집이 있는 방향과는 조금 틀어져 있다. 나와 시그와 처음 만난 던 곳 주변--- 커다란 집이 늘어선, 비탈길이 많은 구획이 목적지 같다.

"저기, 아야노"

계속 조용히 있는 것도 질려서 말을 건다. 시야가 좋지 않았는데 조금 여유가 생긴다.

"....뭐야?"

싫은듯한 얼굴이지만, 아야노는 받아준다. 그녀도 심심했던걸 지도 몰라.

"아야노라는 건 인간이었을 때의 이름?"

나는 자기소개했을 때 신경 쓰였던걸 묻는다.

"그래"

무뚝뚝한 어조로 아야노는 짧게 대답한다.

"왜 다른 사람들처럼 매개체의 이름을 대지 않아?"

"그 녀석들의 룰에 따라야 할 이유라도 있어? 나는 아야노니까, 아야노. 그걸로 된 거 아냐"

확실히, 문제없다. 특히 아야노의 경우엔 남은 기억이 없어서, 인간이었을 때와 구분할 필요가 없겠지.

"응, 그걸로 된 걸지도. 하지만, 아야노의 매개체가 뭔지 신경 쓰이는데"

이름으로 유추 할 수 없어서, 솔직하게 물어본다. 우산을 가지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아야노는 손에 아무것도 없다. 매개체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니까, 뭔가 몸에 걸치고 있는 걸까... 한번 본 것 가지고는 모른다.

"-- 가르쳐줄 의리는 없어"

"에-..... 뭔가 단서가 될지도 모르는데"

"될 리 없어. 별로 특별한 것도 아니니까"

아야노는 안절부절못하며 머리에 묶은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답한다.

"..... 혹시, 그거야?"

내가 아야노의 리본을 가리키면, 그녀는 깜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뭐,뭐.... 어떻게 아는 거야?"

다리를 멈추고 경악한 표정으로 아야노가 다그친다.

"어째서냐니... 뭐, 그냥"

행동에서 다 들켜 버렸다는 걸 말할 수가 없어서, 말을 얼버무린다.

"너, 절대 나를 매개체 이름으로 부르지 마!"

아야노는 어째선지 진지한 눈으로 나에게 다짐한다.

"매개체 이름이라니---- 리본?"

확인하기 위해 묻는다. 그러면 아야노는 예상외의 반응을 보인다.

"으갸아아아아아아, 그-만-둬!"

내 멱살을 쥐고 짤짤 흔들어대는 아야노.

"니얏!?"

시라타마가 놀라서, 폴짝 땅으로 뛰어내린다.

"잠깐,미,미안, 이제 안 그럴 테니까!"

나는 당황해서 사과한다. 그러면 아야노는 멱살을 놓고 크게 한숨을 쉰다.

"으와아.... 죽어버릴까 했어"

어째를 떨어트리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아야노.

"그렇게 싫어.....?"

"당연하잖아! 리본짱이라고 불리는 거 상상해보라고! 전신에 닭살이 돋아서 닭살 때문에 죽을 거야!"

자기가 말하고도 기분 나빳는지 아야노는 팔에 돋은 소름을 손으로 감싼다.

"아, 새로운 사인이네"

고소하며 나는 맞장구친다.

"정말 이제 하지 마. 참나...."

아야노는 투덜대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게 인간이었을적 이름을 쓰는 첫 번째 이유?"

길가에 난 잡초에 흥미를 보이는 시라타마를 안아 올린 후, 아야노의 등에다 대고 묻는다.

".... 시끄럽네. 그럼 안돼?"

아야노는 뒤돌아보고 나를 째려본다.

"안 되는 건 아냐. 하지만, 재밌었어"

"너, 날 바보 취급 하고 있지"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는 아야노.

"으으응, 재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역시 바보 취급 한거 잖아!"

아야노가 소리치며 어깨를 치켜 올리고 성큼성큼 걸어간다. 하지만 뭔가가 생각났나 다리를 멈춘다. 오른쪽으로 빙글 돌아 아야노는 나에게 삿대질한다.

"말해두겠는데, 나는 네가 싫으니까!"

"인간이니까?"

"그래. 원망할 거라면 인간 츠쿠모카미로서 태어난 걸 원망해"

"----별로 원망하지 않아. 아야노같은 사람이 대화하기 쉽고"

생각한 걸 그대로 말한다. 그러면 아야노는 "으-....."라고 낮게 신음한 후, 몸을 반쯤 돌린다.

"너, 이상한 애네"

"그러지도 모르네"

나는 웃는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한 건 처음일지도 몰라. 시그 정도로 친근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착한 사람으로 있지 않으려는 아야노와는 신경 쓸 거 없이 말할 수 있다.

어제 내린 비로 생긴 물 울덩이를 밟으면서 걸어가면 아야노는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다.

나는 싫다고 말했는데도, 아야노는 작은 둔덕이나 물웅덩이가 있으면 "조심해"하고 주의를 준다.

그녀는 착한 사람도 나쁜사 람도 아니야. 그저, 친절한 아이겠지.

바람에 흔들리는 분홍색 리본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30분이 상 걸었을까. 우리는 마을 북서--- 산골짜기 경사면에 있는 주거지까지 왔다. 확실히 집 크기가 다르다. 이 구획은 유복한 가정이 많았던 거겠지.

하지만 훌륭했던 집도, 지금은 비바람에 방치되 부식돼있다. 문은 녹슬고 마당은 황폐하고 벽은 금이가 있다.

"여기야"

그리고 아야노가 멈춰서 가리킨 곳은 그런 집 중 하나. 앞마당과 2개의 주차공간이 있는 3층집. 어딘가의 건축 디자이너가 손댄 건지, 묘하게 점잔빼는 외견이다.

"아야노가... 처음으로 눈을 뜬 곳?"

"그래, 어느 순간, 이 집에 있었어"

아야노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연일까, 나도 같은 상황이었다.

"그럼, 일단 안을 볼까. 들어가도 돼?"

""왜 나한테 허락받으려고 하는 거야"

"하지만 여기 아야노네 집이지?"

"-- 아마 그렇겠지만, 기억하는 것도 적어서 내 집이라는 느낌도 아니고. 조사하고 싶다면 좋을 대로 하면 돼"

어깨를 으쓱하고 아야노는 들어가도 된다고 한다.

"그럼, 실례합니다"

부지에 발을 디디고 현관으로 향한다. 내 집과는 달라서, 제대로 문이 달려있다. 하지만 밀어도 당겨도 문이 열리지 않아.

"아아, 그 문은 열쇠가 삭아서 움직이지 않아. 안으로 들어가려면 이쪽"

아야노는 그렇게 말하고, 담을 넘어 뒤편으로 안내한다. 거기엔 작은 뜰과, 마루가 있다. 마루에 있는 창문에는 금이가 있어서, 너덜너덜해진 커튼 너머로 살짝 어두운 실내가 슬쩍 보인다.

"유리 파편이 흩어져있으니까 신발 신은 채로 들어와"

틀만 남은 창문 안으로 들어가는 아야노. 나도 마루에서 실내로 들어간다. 자박하고 발밑에서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 전부,낡아버렸네 "

나는 방안을 둘러보며 중얼거린다. 여긴 아마 거실이겠지. 방안은 넓고, 비싸 보이는 생활용품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전부다 너덜너덜하다. 나무제품은 썩어 문드러져 있고, 벽에 걸려있던 그림은 색이 바래 더러워져 있다. 마루 바닥은 유리 조각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방구석에 놓인 커다란  화면의 TV는 액정이 깨져있다.

"바람이나 비가 새들어온 것 같고, 할 수 없잖아?"

남 일 처럼 아야노가 말한다.

"아야노가 눈뜬 곳은 이곳?"

"아니, 2층이야"

아야노는 주방에서 나와, 나를 현관 가까이에 있는 계단으로 이끈다. 삐걱삐걱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아야노. 푹 빠져버리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면서, 나는 신중하게 다리 밑을 확인한 후에 걸음을 옮긴다.
2층 복도엔 창문이 없어서 약간 어둡다. 방은 복도를 끼고 좌우에 2개 있는 모양이다.

아야노는 오른쪽 방으로 다가간다. 거기만 문이 열려있다.

"여기"

그렇게 말하고, 아야노는 방안을 바라본다. 나는 아야노의 앞에 서서, 방안을 였본다.

"와...."

생각지도 않게 소리를 내버린다. 방은 츠쿠모관의 방보다 넓고, 놓여 있는 가구는 책상과 책장, 옷장에 침대,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벽장. 침대 위나 벽에는 많은 옷이 떨어져 있다.

웃은 동물을 모티브로한 패션이 많지만, 안에는 잘 모르는 캐릭터도 있다. 방안에 창문은 없어서, 그 덕에 방 전체에 먼지는 쌓였지만 낡지는 않았다. 벽지는 색이 바랬지만. 핑크색. 아야노의 리본과 같다. 그녀는 이 계열의 색을 좋아하는걸 지도 몰라.

"... 여자애 방이라는 느낌이네"

나에겐 전혀 없는 것들뿐이라, 그런 감상이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나온다.

"소녀 취향이라 미안하네"

하지만 아야노는 비아냥으로 받아들인 것건지, 언짢은 듯한 얼굴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저기... 이방, 여러 가지 조사해도 돼?"

"좋을대로 하라고 말했잖아.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

"그러네. 미안"

나는 고소를 띄우고 사과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마루에 시라타마를 내려놓고, 양손을 자유롭게 하고 조사를 계시했다.

먼저 책장. 참고서도 있지만 거의 소녀만화. 보존상태도 나쁘지 않다.

- 시그가 보면 좋아하려나. 그게 아니면 소녀만화는 취향이 아닐까나.

머릿속에서 그런 걸 생각하면서, 시선을 옮긴다.

아야노의 핵이 되는 것은 뭔가를 가지고 싶은 마음. 그 뭔가를 알려면, 먼저 아야노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책장에선 특별히 눈에 띄는 물건을 찾지 못하고, 나는 옆에 있는 옷장으로 이동한다. 안에는 속옷이나 얇은 옷이 들어있다.

"우와, 부들부들"

속옷을 하나 손에 들고, 중얼거린다. 살짝 낡긴 했지만, 그래도 고급스러운 옷감이다. 집이나 옷도 좋고, 아야노는 나름대로 아가씨였을지도 몰라.

"자, 잠깐, 남의 팬티 빤히 보지 말라고! 변태!!"

입구에서 가만히 있던 아야노가 가까이와 나한테서 속옷을 빼앗는다. 약간 뺨이 붉다.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해도, 자기 걸로 생각되는 속옷을 빤히 보는건  부끄럽겠지.

"아하하... 실례했습니다"

"정말... 좋을대로 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거야"

투덜거리면서 아야노는 팬티를 집어넣는다. 더이상 옷장을 조사할 상황이 아니라서 나는 벽에 붙어있는 벽장 앞으로 이동한다. 문을 열면 곰팡내가 퍼진다. 벽 안에 있었던 탓으로 습기 차기가 쉬웠던 것이겠지. 옷은 곰팡이에 먹혀있다.

그중에, 교복 같은 것도 있다. 잘 보면, 옆 마을 유명한 사립중학교 교복이다. 아무래도 아야노가 다니던 중학교는 나완 다른 학교 같다. 책장에 있던 참고서도 내가 쓰던 것과는 다르다. 서랍 안에는 필기 용품이나 자질 구레한 물건들이 들어가 있다.

일단 조사를 끝내고, 나는 팔을 꼬았다. 어느 정도 정보는 들어왔지만, 아야노가 가지고 싶은 한정하기엔 아직 그렇다. 하지만 일단 현시점에서 적합한 것을 생각해보자.

"저기, 아야노. 가지고 싶은 게 책이나 만화일 가능성은 없어? 이를테면 다음이 궁금하다던가, 도중에 책이 빠져있어서 그걸 찾고 싶다 던가......"

바닥에 앉아 시라타마를 쭈뻤쭈뻤 쓰다듬던 아야노에게 물었다.

"헥? 그,그럼..... 힌트는 안 되겠지만"

당황해서 시라타마에게서 손을 떼고, 답하는 아야노. 그 모습은, 아무래도 예상외 인것 같다.

또, 이방에서 눈에 띄는건.....

"그럼, 인형은? 이걸 모았으니까, 좋아했던 거지?"

나는 침대위와 벽에 늘어서 있는 인형을 가리킨다.

"뭐.....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작고 귀여운 걸 난 좋아하고. 하지만, 인형이 가지고 싶다는 정도로 츠쿠모카미가 되진 않을 거야"

시라타마를 바라보면서 아야노가 답한다.

"으-음, 확실히......"

여긴 틀림없이 유복한 가정. 아야노는 무엇 하나 부족함도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가지고 싶은 게 있더라도 거의 간단히 손에 넣었겠지.

"나아-."

시라타마가 나를 격려하는 듯이 울고, 출입문으로 끌고 간다.

"그러네....생각만으론 어쩔 수 없네. 시라타마, 다른 방도 보러 갈까"

"냐"

마치 맞장구 치는 것같이 시라타마는 짧게 울었다.

나는 문을 열고 2층에 있는 다른 방을 엿본다. 아야노는 뒤에서 탐색하는 나를 바라본다.

건넛방은 부모님 방 같다. 옷이나 생활용품으로 그런 판단을 한다. 아야노의 옆방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었다.

3층은 베란다가 있는 방만 치워져 있지만, 남은 건 전부 창고 상태. 이런저런 물건이 어수선하게 쌓여있다.

그 후, 1층으로 돌아간다. 1층에는 주방이나 침실. 욕실 같은 게 있었지만 아야노가 가지고 싶은 물건의 단서는 얻지 못했다.

그리고 창문이 부서진 거실로 돌아간다.

"이걸로 일단, 모든방을 돌아본거네....."

흩어진 유리조각이 위험해서 시라타마를 안아 올리고 나는 중얼거린다.

"그 얼굴로는 앞길이 어두워 보이네. 무리라면 무리로, 별로 포기해도 상관없어?"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으로 아야노가 어깨를 으쓱인다.

"으- 앞길이 막막한 건 사실이지만, 알아낸 게 있어"

포기할 생각 따윈 없다. 나는 덤벼들 듯한 눈초리로 아야노를 바라봤다.

"헤에, 뭐야?"

"아야노가 가지고 싶은 것은, 손에 넣기가 힘든 거라고 생각해"

"비싸단 뜻이야?"

"그럴 가능성도 있고, 싸더라도 뭔가 의미가 있는 특별한 걸지도 몰라. 그런 쪽으로 뭔가 생각나는 거 없어?"

물어보지만, 아야노는 어려운듯한 얼굴이다.

".... 그런소릴해도, 정말 기억나는 게 조금뿐이니까---"

"그럼, 질문을 바꿀게. 아야노의 "욕구"는 어떤 "욕구"인지.... 가르쳐줘"

가장 큰 힌트는 아야노 자신의 마음. 그래서 나는 마음의 '바탕'을 묻는다.

"어떤?"

"이를테면 그... 격렬하다던가.... 갈증 난다던가.... 그런거"

가지고 싶은 것 때문에 살아가는 감정은 다르다. 그래서 마음의 '바탕'으로 어느 정도 좁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아야노는 위태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댄다.

"으-음.... 말로 하기엔 어려운데"

"그걸 어떻게든!"

".... 뭐랄까, 미묘하게 장사꾼 같네"

한숨의 쉬고, 아야노는 눈을 감았다. 내면의 의식을 집중하는 것 같다. 나는 방해되지 않게 시라타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조용히 기다린다.

"조금... 아픈 느낌일까"

툭 아야노가 중얼거린다.

"아파?"

"아프고, 무서워. 가지고 싶지 않은데, 굉장히 가지고 싶어. 그런 느낌이네"

아야노는 눈을 뜨고, 자신의 마음을 설명했다.

"에에-... 그러면 전혀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쩔쩔맨다. 마음이 가지고 싶은 것의 모습이 모이지 않아. 전혀 상상할 수 없어. 가지고 싶지 않은데 굉장히 가지고 싶은 건 뭐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혼란하다.

"정말! 네가 부탁하니까 가르쳐준 거잖아!"

비위 상한 아야노가 고개를 돌려버린다.

"하지만 좀 더 알아듣기 쉬운 힌트가 필요했어-"

"그런 힌트가 있으면 내가 직접 찾아. 너는 말이야, 내가 못하는걸 하려는 거야 그 자각은 있어?"

"으......"

말이 막힌다. 자신의 마음을 제일 이해하는 건 아야노. 그런데도 가지고 싶은걸 예상하지 못한다면, 내가 알 리가 없다.

조사해서, 추리해서..... 그것을 찾아낼 만한 것이 아니였던 것이다.


"-미안. 난 지름길을 찾고 있었을지도. 역시 착실히 할 수 밖에 없네. 여기부터는, 샅샅이 뒤질게"

"너,너.... 어쩔 생각이야?"

싫은 예감이 든 것인지, 아야노는 쭈뻤쭈뻤 묻는다.

"말 그대로인데? 단서를 순서대로 아야노에게 이런 저런 걸 만져보게 해서, 뭔가 마음이 끌리는걸 찾을거야"

"......진심?"

"응, 완전 진심"

나는 미소를 띠고, 긍정한다.

지금, 떠오르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여유도 없지만,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행동한다.

나는--- 시그와 같은 임무를, 다른 수단으로 처리하기로 정했으니까.

 

그날은 꼬박 하루 걸려서, 아야노의 집에 있는 물건을 조사하며 다녔다.

인형이나 책, 옷, 가구, 식기 같은 아야노를 억지로 끌고 가 전부 만지게 했다. 하지만 어떤것 도 아야노의 마음엔 반응하지 않고- 이윽고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붉어진다.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역시 걱정하겠지. 나와 함께 나온 걸 알리고 싶지 않은 아야노는, 오늘은 이제 끝내고 싶다고 선언했다.

어느 쪽인가하면 어두워지면 수색할 수가 없으니까 우리는 아야노의 집을 나와 츠쿠모 관으로 향한다.

"역시 아야노의 집에 있는 게 아닌것 같네. 내일은 다른 데서 찾아볼까"

"....이짓을 내일도 할거야?"

내 말을 듣고, 아야노는 지친 얼굴로 어깨를 떨어트린다.

"물론. 왜 다른 방법이 없잖아"

"절대로 찾아낼 거라 생각되지 않지만"

아야노의 목소리에는 이미 포기할 기미가 보인다.

"하지만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야. 비슷한 거라도 연상해서, 가지고 싶은걸 생각해낼지도 모르잖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널 위해서라고 말해도...... 나도 내 일인데도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지 않아"

어딘가 의심스러운 듯한 눈으로 아야노는 나를 봤다.

듣고보니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오늘 내가 한 일을 객관적으로 보면 조금 우습게 느껴진다. 조금 너무 힘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생각은 없다.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어째서야. 혹시, 너를 위해서지만, 너를 위해서가 아닌 걸지도"

뇌리에 그제 밤에 본 시그의 옆모습이 스친다. 그리고--- 끝나길 바라는 아야노의 지친 표정도 생각해낸다.

"의미를 모르겠어"

아야노가 침울하게 중얼거린다.

"아하하, 나도 몰라"

천연덕스레 웃으면, 아야노도 조금 미소를 보여줬다.

"-너, 바보지"

황혼의 마을에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

붉게 비치는 시라타마의 털은 아야노의 리본과 같은색이 되었다.

 

 

 

 

츠쿠모관이 보일쯤에는 거의 태양이 산골짜기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아야노의 강한 요청으로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두고 따로 들어가기로 한다.

내일도 오늘처럼 빨리 출발하기로 약속하면서 나는 혼자서 츠쿠모관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오른다, 휙 돌아보면 페허 뒤에 숨어서 이쪽을 엿보는 아야노와 눈이 맞는다.

나는 고소하고, 다시 앞으로 향한다. 부지 입구에는 카타나의 모습이 있다. 어제도 카타나는 그곳에 있었다. 경호원인 그녀는 거기서 밖을 바라보는 일이 많을지도 몰라.

"어디 갔었어. 방안에도 없어서 걱정했다고"

목소리가 들릴만한 거리가 되면 카타나가 말을 걸어온다.

"미안,조금 산책했어"

"....그런가. 뭐, 뭘 하든 자유지만, 안개가 나오는 날만큼은 외출을 자제해줘"

"응, 알아"

고개를 끄덕이고, 내 방으로 향한다. 카타나가 뒤따라온다. 오늘 무슨 일을 할지 말했다면 카타나는 밖에 있을 필요도 없고 나를 기다리지도 않았겟지.

".....미안해"

조금 미안해져 다시 한번 사과한다.

"내일도 맑으면 산책 할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미리 말해둔다.

"알았다. 미안하네-- 반대로 신경 쓰게 만들어버린 모양이다"

카타나는 옅게 웃고, 뺨을 긁었다.

그리곤 말도 없이 3층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문에 손을 댔을 때 확하고 생각난다.

"저기, 카타나 아야노는 어떤 애?"

옆방에 들어가려 하던 카타나가 멈추고 머리를 갸우뚱한다.

"왜 그래, 갑자기?"

"아니, 조금 신경쓰여서... 어제 바로 나가버렸고"

목소리를 높여버리지만 카타나는 그 설명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아아- 그러고 보니 아야노는 자기 이름만 가르쳐줬네. 그녀는 리본의 츠쿠모카미로 본 그대로 조금 까칠해. 하지만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친하게 지내줘"

나쁜 녀석은 아냐-. 카타나가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단 것에 놀란다. 완전히 아파트 안에서 미움 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나쁜 녀석이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아야노는 우리가 말을 걸면 강하게 버티고 가끔은 거친 말도 내뱉어. 하지만 자신이 악언을 하거나 일부로 남이 싫어하는 짓을 하진 않아. 오랫동안 어울리다 보면, 그냥 성격이 뒤틀린 애라는 것 정도는 알아"

"그,그래...... 가르쳐줘서 고마워"

예의를 말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카타나가--- 츠쿠모관의 주민이 품고 있는 아야노에 대한 인식. 그건 내가 하는 생각과 거의 같다.

하지만 위화감이 있다. 뭐가 이상한진 몰라. 하지만 나는 아야노가 미움받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놀랐던 거다.

....뭐지 이거.

그 날밤, 잠들 때까지-- 가슴속의 안개가 거치지 않았다.

 

나와 야야노는 다음날도, 아침 일찍 츠쿠모관을 나왔다.

어제보단 구름이 많지만, 오늘도 맑다. 안개가 발생할 상황은 아냐.

아침노을 속에서 향한 것은 역앞의 상점가. 마을 안에서 제일 다양한 물건이 모인 곳이다. 아야노의 물건을 찾기 좋다.

시그와 걸었던 길에 도착해, 나와 아야노는 역 앞의 교차점까지 왔다. 빌딩 사이에 밖혀 있는 전차는 변함없이 무겁게 이질적인 존재감을 풀고 있다.

-- 여기는, 시그가 있는 빌딩이랑 가까운데.

빌딩이 있는 장소를 바라보면서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 아야노에게 시그가 있는 곳을 가르쳐줄 마음도 없고, 나는 아직 시그와 같은 곳에 서지도 않았다.

"오늘도 샅샅이 뒤지기 작전?"

시작하기도 전에 아야노가 핼쑥한 표정으로 묻는다.

"물론. 그럼, 저기 있는 편의점부터 시작할까"

상점가 입구에 있는 임대빌딩 1층- 전면의 유리가 부서져 드나들 수 있는 편의점을 내가 지목한다.

"....네네. 알았어"

어깨를 조금 떨어트리고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는 아야노. 시라타마가 그녀를 응원하는 듯이 냐아-!"하고 기운차게 울었다.

편의점 안은 지독했다. 거치대가 쓰러지고 천장에서 떨어진 벽돌이 굴러다닌다. 생각보다 남아있는 물품은 작다. 식료품은 전혀 없고, 풍화된 흔적조차 없다. 호치키스나 건전지 같은 썩은 잡화가 바닥에 흩어져있다.

아야노는 엄청나게 싫은 듯이 그걸 만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이 끌리는 건 찾아지지 않아.

"아아 정말, 손이 새까매"

편의점 조사를 끝낸 후, 아야노는 더러워진 손바닥을 치켜든다.

"그러네. 손수건 같은걸 가지고 있으면 빌려주겠지만....."

"됐어 이걸로 닦을 거니까"

아야논느 그렇게 말하고 내 스커트로 손을 닦는다.

"악, 하지 마!"

놀라서 날뛰지만 이미 스커트는 더러워졌다.

"츠쿠모카미의 옷은 한숨 자면 리셋되고, 손수건 대신 써도 상관없어?"

"그러면 네 옷으로 닦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건 그거, 이건 이거. 내 손이 더러워졌으니까 너도 더러워지라고"

깨끗해진 손을 펴 보이며 아야노는 웃었다.

"정말 길동무 삼지 마"

나도 어째선지 웃고 있다.

"하지만 넌 모기만 하는걸. 길동무 삼지 않으면 내 수고에 어울리지 않아"

"할 수 없네.... 같이 더러워져 줄 테니까 빨리 다음으로 가자"

아야노를 재촉해, 옆 가게로 간다.

상점은 셔터가 닫혀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모르겠는 가게도 많다.

그런 데는 뒤로 미루고 우리는 수색을 진행한다.

기본적으로 남아있는 상품은 적다. 완전히 텅 빈 가게도 몇 개 있고, 샅샅이 뒤지기 작전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아.

폐옥을 돌아본 탓으로 우리는 먼지투성이. 아야노의 손수건 대신이 돼버린 내 옷은 상당히 더러워져 버렸다.

태양이 질 때까지 조사한 건 20채 정도. 만진 건 아마 100종류 이상. 그래도 아야노의 마음이 반응하는 물건은 찾을 수 없다.

혹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남쪽에 있던 태양이 기울기 시작할 때, 약국 체인점에서 밖으로 나온 나는 바람 냄새가 변한 걸 깨닫는다.

"하늘, 흐려졌네...... "

철골만 남은 상점가의 천장을 올려다보고 아야노가 중얼거린다.

주위는 약간 어둡고, 공기는 습기가 차 있다. 먼지로 회색이 돼버린 시라타마는 계속해서 앞발로 세수한다.

비가 내릴 것 같다. 비는 안개와 카타나시를 부른다. 위험을 피하려면 이제 수색을 그만두는 편이 좋다.

하지만......

나는 상점가를 둘러본다. 아직 조사하지 못한 가게가 잔뜩 있다. 아야노가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단서마저 보이지 않는다. 아야노와 약속한 3일- 내일이 기한. 이제 남은 시간에 여유는 없다.

"아야노 츠쿠모관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망설이면서도, 결국 그렇게 말한다. 나뿐이라면 몰라도 아야노를 위험에 노출할 수는 없다.

"그러네. 서두르는 편이 좋을지도"

"응.... 비가 내리기 전에"

마음속 초조함을 숨기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젖은 풀 향기를 풍기는 바람은 점점 강해진다. 빠른 걸음으로 츠쿠모관으로 향하면서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을 덮은 구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비구름이 --- 가까이 왔다.

 

 

하늘이 울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츠쿠모관에 도착하고 바로 나서였다. 비가 내리는걸 미리 알았는지 밖에 주인의 모습은 없다. 아야노와 3층 복도에서 헤어진다. 내일--- 맑아서 안개가 나오지 않는다면, 계속 찾기로 약속했다.

그 후, 카나타의 방을 노크해서 돌아왔다고 알린다. 비가 내려서 걱정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카타나는 나를 마중 나가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역시 카타는 조금 과보호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방으로 들어오면 나는 창가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점점 강해진다. 으르릉하고 멀리서 천둥소리가 난다. 놀란 시라타마가 내 무릎에 뛰어오른다.

나는 시라타마를 쓰다듬으면서, 하늘에 빌었다. 부디 비가 빨리 그치게 해달라고.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다음날, 나는 빗소리에 눈을 뜬다. 창가에 펼쳐둔 이불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창밖을 본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경치는 어둠에 안겨있다.

새까만 세상을 채우는 것은 빗방울의 단말마. 저편에서 때때로 번쩍이는 것은 번개. 비명처럼 들리는 천둥소리.

바깥은 이 정도로 나를 거부하고 있다. 방안에 갇혀있으면 위압적인 번개에 몸이 떨린다. 무척이나 밖에 나가도 될만한 날씨가 아냐. 혹시 비가 멎는다 해도 안개의 위험성이 있어서 오늘 탐색은 중지겠지.

할 수 없어. 운이 없었다. 어차피 아야노가 가지고 싶은 것을 찾을 가능성은 낮았다. 이번엔 시그에게 맡기고, 다음번에 힘내면 돼. 이건 계속 되풀이되던 일 누구도 무엇도 불평하지 않아.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 가슴속에서 흘러넘친다. 하지만, 시그의 괴로워 보이는 옆모습과 아야노가 가끔 보여주는 미소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 시그가 야야노의 매개체를 쏘아 부수는 순산을 상상하면 마음이 삐걱거린다.


아아- 이제, 되돌아갈 수 없어.

이제야 알았다. 다음 기회는 없다. 나는 아야노에게 너무 깊이 연관됐다. 어느 순간 그녀는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됐다.

아야노가 살해당하면 그런 짓을 한 시그를 분명 같은눈으로 볼 수 없게 되버려. 츠쿠모관의 주민과 같은 편에 서버리겠지. 시그가 있는 곳에는 2번 다시 가까지 가지 않겠지. 아야노를 전부 잊어버린다는 수단은 선택할 수 없고, 그런 것 의미 없다.

강한 마음은 쓰레기상자에서 흘러넘쳐 나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냐-고"

베갯머리에서 몸을 둥굴게 말고 있는 시라타마가 나를 올려다보고 울었다. 현관 건너로 타박타박 걸어가곤 나는 뒤돌아본다.

"어울려 줄 거야?"

"나아-"

수긍하는 듯이 높은 소리로 우는 시라타마.
매개체에 공생하는 시라타마는 누구보다 내 마음에 민감한 걸지도 몰라

"--- 고마워"

나는 예의를 말하고, 일어선다. 마음은 정했다.
아야노를 끝내는 건 나. 그녀가 사라지면 태어날 슬픔도 안타까움도 분노도 죄도 전부 내가 떠맡는다. 다른 누구에게도-- 시그라도 넘기지 않아. 넘기고 싶지 않아.

시라타마를 안아 올리려고 몸을 숙인다. 그러면 시라타마는 자기가 직접 내 몸에 올라, 어깨 위에 앉는다.

"냐아-오"

출발이라고 말하는 것 같이 시라타마가 운다.

나는 감사의 말 대신에 시라타마를 한번 쓰다듬고, 하늘색 우산을 손에 들고 현관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갈 거라면  모두가 자는 새벽밖에 없다. 혹시 들키면 절대로 말린다. 카타나시에게 습경 당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카타나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게 얼마나 모두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인지 이해는 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나쁜 사람이겠지. 다른 사람보다도 내 마음이 중요하다. 내가 깊이 얽힌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문을 열면 빗방울이 섞인 강한 바람이 흘러들어온다. 복도엔 불이 들어와 있다. 나는 밖에 나와서 가능한 한 조용히 문을 닫는다.

옆--- 카타나의 방을 바라보며, 입안에서 작게 중얼거리며 "미안"라고 사과했다.

젖은 복도를 걸어간다. 아야노의 방을 지나 계단을 내려간다. 이건 내 고집. 그러니까 아야노까지 끌어들일 이유가 없었다--.

 

아파트 입구까지 오면, 나는 하늘색 우산을 펼친다. 강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지지만, 안이 부서지진 않았다. 매개체는 매개체로만 부서진다는 말을 기억해낸다.

나는 우산을 바로 세우고, 몸을 앞으로 기울기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츠쿠모관은 꽤 밝았지만, 부지 밖으로 나오면 어둠이 밀도를 더해 시야가 어둡게 칠해진다.

거의 보이지 않아. 눈에 익어도 알겠는 건 건물의 윤곽과 하늘과 땅의 경계뿐. 기억에 의지해, 어둠 속을 걸어간다.

목적지는 아야노의 집. 아야노가 같이 없는 이상, 샅샅이 뒤지기 작전은 쓸 수 없다. 한번 더 다시 정보를 모아, 아야노의 마음을 추측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건 그 정도다.

뺨을 때리는 비 때문에, 앗 하는 사이에 젖어버린다. 발밑이 보이지 않아, 몇 번인가 굴러버린다. 어두워서 알 수 없지만, 아마 옷이 진흙투성이가 됐겠지.

까칠까칠한 혀로 뺨을 핥는 시라타마에게 격려받으면서, 가혹한 진행을 계속한다. 하지만 당분간 그렇게 하면 구름 건너가 약간 밝아진다. 아마도 태양이 뜬 거겠지.

어둠이 옅어지고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걷는 속도를 올려 서둘렀다. 눈을 부릅뜨고 안개를 경계한다. 오한을 동반하는 안개의 차가움을 알아차릴 수 있게, 감각을 예민하게 한다.

계속 집중하고 있던 탓에 아야노의 집에 도착할 즘에는 정신이 심하게 지쳐있었다.시간도 저번보다 2배 이상 걸린 것 같다.

하지만 쉴 수 없다. 나는 뜰로 향해, 부서진 창문을 통해 실내로 들어간다. 쫄딱 젖은 교복에서 물방울이 뚝뚝하고 마루로 떨어진다.

우산을 접고 빗방울을 털며 스커트를 짠다. 젖은 옷은 차갑지만 감지는 걸리지 않겠지. 나는 츠쿠모카미니까.

구두 안에 들어간 진흙을 너덜너덜한 융단에다 닦고 2층으로 향한다. 아야노의 방은 아무것도 변하지않았다.

저번에도 여긴 세세히 봤지만, 그래도 아야노가 있던 탓에 재대로 보지 못한 부분도 있다. 이번엔 구석구석까지 조사할 생각으로 먼저 책장으로 향했다. 1권 1권 책을 꺼내서 안을 확인한다. 이런다고 해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몰라. 하지만 뭔가 있을 거라 믿고, 조사에 몰두한다.

책장 조사가 끝났을 때 즈음엔 빗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생각한 것보다 시간을 더 써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고도 수확은 없다. 아야노가 취향의 책을 알게 된 것뿐.

다른 세계로 불려서 모험하고, 사랑한다. 그런 이야기가 많다.

옷장도 안에 잇는걸 끄집어내 깊숙이 까지 찾고 곰팡내 나는 벽장도 옷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하지만 별로 진전도 없는 채로, 시간만 흘러간다. 밖은 이미 밝아지고 있고, 천둥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 비는 잔잔하게 계속 오고 있지만, 이제 곧 있으면 그것도 그치겠지.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아야노의 책상 조사를 시작하지만- 저번과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책장에 꽂혀있는 어떤 참고서를 손에 들고, 페이지를 넘겼을 때, 뭔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어라....?"

중얼거림을 듣고 어깨에 타고있던 시라타마가 깜짝 놀라 머리를 든다. 나는 참고서를 다시 바라보고,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책 자체가 낡아있어서 저번에는 몰랐다. 이 참고서는 한 번도 쓴 흔적이 없다. 책을 펼칠 때 지는 주름 자국도 없고 밑줄 긋고 중요한 부분을 체크해둔 흔적도 없다.

교과서도 조사해봤지만, 전부 같은 상태였다. 게다가 잘 생각해보면, 부족한 게 있다. 수업을 들을 때 쓰는 노트가 전혀 보이지 않는 거다. 책장을 뒤져 찾은 건 새하얀 노트 1권뿐

"혹시 아야노는..."

이런 점들에서 도출되는 추측을 나는 중얼거린다.

"학교에 가지 않았던 걸까나"

이유는 모른다. 아야노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마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야노가 인간을 싫어하는 것은 여기에 원인이 있을지도 몰라.

혹시 정말로 아야노가 등교거부를 했던 거라면 분명 무척 괴로운 일이 있었던 거겠지. 모든 사람에게 혐오를 품을 정도의 뭔가를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과서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아야노의 내면에- 마음 한구석에 다가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아직.... 몰라.

빛바랜 핑크색 벽지로 덮인 방을 바라본다. 아야노는 이방에서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뭘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제 답을 낼만한 조각은 전부 모였다고 생각한다.

아야노의 기분이 돼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시선을 돌렸을 때, 창밖에 새하얀 안개가 낀 걸 알아차린다.

"---안개?"

나는 서둘러 창문 옆으로 달려가 바깥경치를 내려다 본다. 비는 이미 내리지 않는다. 구름 사이에서 밝게 비추는 마을을, 새하얀 안개가 덮이기 기작했다. 이 근처는 비탈길이 많다. 안개는 낮은 곳으로 흘러. 모인다, 밀도를 더해간다.

아야노의 집은 비교적 높은 장소에 있다. 게다가 내가 있는 곳은 3층 여기에 가만히 있는 한은, 위험할 일은 없겠지. 하지만-.

"한동안, 움직일 수 없겠네...."

나는 중얼거린다. 가령 아야노가 가지고 싶은 것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오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쓸모없어진다.

"뭐 하지만, 지금은 먼저 아야노의 마음을 알아야 하네"

안개는 내가 걱정한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냐. 기분을 바꿔서, 나는 생각을 재개하려 했다.


"------!!"


하지만, 뭔가.... 히미한 소리가 귀에 들린다.

"냐아-오 냐아-오!"

시라타마가 쫑긋 귀를 세우고, 창밖을 향해 울었다.

"----아앗!!"

또, 들렸다. 이번엔 아까보다 확실히 들렸다. 멀지만, 아마도 사람의 목소리. 여성의 비명. 사람의 생활 음이 사라진 조용한 마을에서, 누군가가 비명 지르고 있다.

싫은 예감이 솟아올랐다. 이 마을에 사람은 없다. 소수의 츠쿠모카미만이 살고 있을 뿐. 나는 방을 뛰쳐나와,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츠쿠모관의 주민이 안개가 나올 때 마을을 돌아다니는 건 무기의 츠쿠모카미인 카타나 정도지만 그녀는 내가 있는 곳을 모른다. 찾으러 온다 해도 너무 이르고, 카타나는 저런 비명을 지르진 않을 거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아야노....!

상상한다.

아침, 아야노는 비 내리는 하늘을 봤겠지. 오늘 탐색은 중지라는걸 이해했겠지. 그 후, 변덕스레 내 방으로 왔을지도 모른다. 텅 빈 내방을 보고 아야노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아야노는 내가 터무니없는 짓을 하더라도 바보 같은 짓이라며 어이없어 할거라 생각했다.

왜, 아야노는 인간이 싫다고 말했으니까. 내가 싫다고 말했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뒤쫓아올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왜....왜.... 왜---!"


나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서, 거실에 부서진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옅은 안개가 피부에 닿아 소름이 돋는다.

이 이상 앞으로 가고 싶지 않다고, 몸이 거부한다. 하지만 꼼짝 못하는 다리를 무리하게 움직여서, 나는 안갯속으로--- 비명이 들리는 비탈길 아래로 향한다.

오한이 등골을 타고 올라와, 딱딱하는 잇소리에 몸이 떨린다.

저지대에 꽤 광범위에 짙은 안개가 엉켜있다. 그 경계는 새하얀 벽 같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안갯속으로 다리를 들이밀었다. 아플 정도로 차가운 냉기에 싸인다. 눈을 뜰 수 없다. 나는 눈을 감고, 그저 똑바로 달려간다.

몸에서 열을 전부 빼앗아버릴 정도의 냉기에 견디며 앞으로 나간다. 당분간 그렇게 하면, 약간 차가움이 가셨다. 살짝 눈을 뜬다, 주변은 하얗게 흐려져 있지만, 10미터 앞이 보일 정로도 안개는 옅어져 있다.

여긴 안개의 벽에 덮인, 반경 20미터 정도의 공간. 그 중심에서 엉덩방아를 찍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야노를 발견한다.

 

"--- 아야노!"

나는 바로 달려가려 한다. 하지만 아야노가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이 긴장한다. 시선 끝에 떠 있는 것은, 거대한 하얀 팔.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에 인간의 입이 있는 괴물.

---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울리는, 잇소리.


기시감이 나를 덮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가 처음으로 카타나시에게 습격당했을 때와 흡사하다. 하지만 역할이 다르다. 위기에 처한 것이 아야노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온것은 시그가 아닌.... 나.

카타나시는 저번에 나를 먹으려 한 것과 같지만, 크기는 2배에 달한다. 평범한 카타나시는 자연 소멸하는 것 같아서, 그때와 같은 카타나시는 아니겠지. 하지만--- 같은 마음에서 태어난 카타나시 일지도 몰라.

여기는 시그와 만난 장소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안개가 흘러와, 더 많은 마음과 섞여 전보다 거대화한 카타나시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싫어! 오지 마!!"


아야노는 주저앉은 채로 뒷걸음질친다. 하지만 카타나시는 유유히 거리를 지우며 아야노을 위에서 덮치려고 한다.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몸이 움직였다. 우산 손잡이를 꼭 쥐고, 강하게 아스팔트를 박찬다.


"아야노----!"

소리치면서 카타나시에게 우산을 휘둘렀다. 흐물흐물한 찰흙 같은 감촉이 전해진다. 안개 주제에-- 무겁다.

힘을 실어 전력으로 때렸는데도 카타나시의 진행방향을 살짝 비트는 것마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야노를 붙잡으려 했던 다섯 손가락은, 허공을 가른다. 그 기세에 카타나시는 지면으로 돌진해, 깊이 박힌다. 퍽하고 아스팔트 파편이 날린다.

"아야노 이 사이에 얼른!"

나는 아야노의 팔을 붙잡고 강하게 당긴다. 카타나시한테서 서둘러 멀어지려 한다. 하지만 안개의 벽에서 또 하나의 하얀 팔의 카타나시가 나타나 갈 길을 막는다.


-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앞뒤. 겹쳐지는 소리. 굶주린 잇소리.

잘 보면 카타나시의 동체는 벽에 붙어 늘어나고 있다 이어져 있다. 뱀 머리와 꼬리가 저마다 하얀 팔이 돼버린 듯한 상황. 둘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완전히 둘러싸였다. 도망칠 곳은 없다. 어깨 위의 시라타마가 전신의 털을 세우고 그르르하고 울고 있다.

"어떻게 된 거야....아냐노"

오른손으로 우산을 검처럼 쥐고, 왼손으로 아야노의 손을 잡으며 묻는다.

"그ㅡ그건-"

"위험하단 건 알고 있을 텐데...."

생각치도 못하게 한스러운듯한 말투가 되버린다.

"너, 너야말로, 자기가 직접 안갯속으로 들어오다니 바보 아냐? 왜 이런 자살행위를 하는 거야!"

"하지만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아야노라고 생각했으니까"

한발 한발 거리를 좁혀오는 카타나시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그러면 아야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 죽고 싶어 하는 츠쿠모카미를 살려서 어쩔거야. 이래선, 내가 온 의미가 없잖아.... 널 길동무 삼다니, 최악이잖아!"

말을 흐리는 아야노. 그 말에 자신에 대한 분노가 보였다.

"내가 싫은 거 아니었어?"

"싫어하는 게 당연해! 멋대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참견하고, 그걸 자길 위해서라고 말한주제에.... 이렇게 위험에 뛰어들어. 이유를 모르겠어서, 짜증나!"

"야아노는 말하는 거랑 하는 게 뒤죽박죽이야. 싫으면 그냥 내버려두면---"

카타나시는 빙글빙글 하고 주변을 돌아, 동체를 길게 늘인다. 우리는 그 안에 갇혀버렸다.

"나도, 이렇게 하고싶지 않았어! 하지만 가만히 있을수없었으니까 할수없잖아!"

적하반장으로 아야노가 부르짖는다.

"아야노....."

이제 까지 계속 느끼고 있었던 아야노의 위화감. 그 정체가 지금 확실히 보인 것 같다. 아야노는 확실히 인간이 싫겠지. 하지만 타인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분명 그것뿐만이 아니다.

싫기만 하다면, 애초에 츠쿠모관에서 살지도 않았다. 혼자서 자기 집에 있으면 된다.

타인은 싫어하기만 할뿐이라면, 아야노 자신도 싫어할 거다. 그런데도 아야노는 비뚤어진 사람으로 츠쿠모관의 주민으로 받아들여져 있다.

나를 싫어하기만 할 뿐이라면, 이렇게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츠쿠모관은 마음에서 태어난 존재. 그래서 마음에 묶인다. 마음을 축으로 삼아 행동한다.

그렇다면 아야노의 마음은--.

내 안에 하나의 답이 떠오른다.

하지만 전부다, 너무 멀다. 최악의 결말이 정해져 있다.


-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하얀, 굶주린 2개의 손바닥이 잇소리를 내면서 거리를 지워간다. 손가락과 손바닥, 합쳐서 20개의 입이 침을 흘리며 붉은 혀를 내밀고있다.


카타나시는 츠쿠모카미를 먹어 매개체를 빼앗는다. 그건 즉 먹히는 건 마음이라는 것. 이렇게 인간의 모습을 모방한다는 것.

 

상상하는 것마저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그 미래는 이미 바로 앞까지 가까이와 있다.

 

"카사--- 미안. 나 때문에......"

아야노가 내 이름을 처음으로 부른다. 포기한 목소리로, 나에게 사과한다.

"누구 탓도 아니야. 아야노는 나를 걱정해준 거고, 나는 아야노를 구하고 싶었을 뿐. 사과할 필요 따윈 없고, 아직 끝난것도 아냐!"

나는 접은 우산을 붙잡고, 카타나시를 견제한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우산으로 카타나시를 쓰러트릴 순 없지만, 얌전히 먹힐 생각은 없었다. 아마 혼자였다면 빨리 절망하고 꿇어앉아 있었겠지. 하지만 여기에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야.

어깨 위에서 떨면서 위협하고 있는 시라타마를 왼손을 뻗어 살짝 쓰다듬는다. 내 마음은 이 애의 우산이 되는 것. 으으응.... 사실 좀더 단순 해. 이런 하찮고 의지 되지 않는 우산이라도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지키고 싶어. 구할 수 있다면 구하고 싶어.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나는 시라타마의 우산이 됐다.

이 몸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는 건 그런 마음. 그래서 분명 마음속 어딘가에서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야노를 구하고 싶다고.

시그를 지키고 싶다고.

 


앞뒤에서 동시에 굶주린 새하얀 팔이 덮쳐온다.


"---!!"

나는 아야노의 손을 당기며 달려간다. 하지만 길게 뻗는 카타나시의 동체 때문에 도망칠 곳이 막힌다

멈춰서, 뒤돌아본다. 우리를 노리는 팔은 그대로 정면출돌했다.

마치 박수치는 것 처럼 2개의 팔이 이어져, 섞인다.

경계를 잃어버린 하얀 팔은 팽창해서 나와 아야노의 머리 위를 덮었다. 더욱더 동체와 이어져 하얀 반구체의 돔을 형성한다.

꿈틀거리는 하얀 벽 천장에는 커다란 입이 열려 돔이 하나의 거대한 손바닥으로 변해간다. 완전히.... 갇혀버렸다.


- 갈작 갈작 갈작 갈작 갈작 갈작 갈작 갈작 갈작 갈작!

아스팔트를 뚫고 다섯 방면에서 거대한 나무줄기 같은 손가락이 다가온다.


-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

심하게 잇소리를 내면서, 굶주린 손바닥이 내려온다. 나는 순간 우산을 펼치고 천장의 입에 쑤셔 넣는다.

칵!!

귀에 거슬리던 잇소리가 멈추고, 카타나시의 체중이 우산에 깔린다. 우산은 삐걱거리지만 씹히지는 않았다.

매개체는 매개체가 아니면 부서지지 않아. 즉 카타나시는 츠쿠모카미의 마음을 먹을 수는 있어도 매개체는 문자대로 이를 세울 수 없는 거겠지. 하지만 머리 위의 입을 막아도, 5개의 손가락이 다가온다. 이 이상, 막을 방법이 없다.

"-----큭.....!"

나는 분해서 입을 씹는다.

역시, 분수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작은 우산으로 아야노를 구하는건.... 더구나 시그를 지키겠다니, 교만했던 것 같다.

등을 민 결과, 시라타마 나 자신까지 지기지 못하게 됐다.

 

...... 미안.

 

말하지 않고, 가슴속으로 중얼거린다.

아야노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아야노에게 하는 게 아니야 시라타마와-- 시그에게 향한 사죄.

눈을 감고, 최후를 기다린다.

형편 좋은 기적은 기대하지 않았다. 저번처럼 구해주러 올 리가 없다. 아야노도 아마 살짝 츠쿠모관을 빠져나왔을 거다. 비 오는 날에 외출은 키타나가 허락할 리가 없어.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있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

 

"하나의 탄환 공격"

 

들릴리 없는 목소리가 하얀 절망을 꿰뚫었다.


마른 파열음과 겹쳐져 바로 머리 위에서 무거운 것들이 결투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린다. 우산을 통해 강한 충격이 전해진다.

나를 부수려 하던 압박이 사라진다. 몸을 비트는 카타나시가, 우산 건너로 보였다.

카타나시는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떨어져, 흙먼지가 올라온다.


"에......?"

얼빠진 소리를 낸 뒤, 나는 정친을 차렸다. 당황해서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향한다. 건너편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하얀 안개의 벽 안에 검은 실루엣이 떠오른다. 카타나시 안개를 넘고 전신이 새가만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손에는 옅은 회색으로 빛나는 권총.


"......시그?"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시그는 나와 카타나시의 사이에 선다. 이쪽으로 등을 돌리고, 일어서려는 카타나시에 총을 겨눈다.

바람이 불고--- 검은 코트가 나부낀다.

멍하게 시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뒤에서 어깨를 친다. 뒤돌아보면, 그곳엔 안도의 표정을 띄운 카타나가 서 있었다.

"어떻게는 맞춘 모양이네. 무사해서... 다행이야. 여기선 시그에게 방해 돼 조금 떨어지자"

재촉받아, 나는 시그에게서 떨어진다. 아야노도 반쯤 방심하고, 카타나의 말에 따른다

"어떻게....."

내가 의문을 짜낸다. 그러면 카타나는 우리를 노려봤다.

"너희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니까, 찾는 게 당연하잖아. 틀림없이 시그가 있는 곳으로 갔을 거라 생각하고 가봤더니 허탕이고.... 그때부터 둘이서 마을을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하지만--- 왜, 여기에 있는 걸 알았어?"

구해주러 올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키스도 카타나도, 우리가 이런 곳에 있단걸 알리가 없다.

"너희가 있는 곳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야 시그의 지시로 먼저 안개가 발생하는 장소로 향했을 뿐이다. 안갯속에 없다는 것만 확인하면 일단 안심할수 있으니까"

요컨대 최악의 가능성부터 지우려고 했던 거겠지. 그래서 최악의 상황이었던 우리를 구했다.

탁 탁하고 자갈이 떨어지고, 카타나가 흙먼지 속에서 빠져나온다.

다섯 개의 손가락과 손바닥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입은 이빨을 세우고, 시그를 위협하고 있다. 그 거대한 카타나시에겐 손목도 없고 이젠 팔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시그는 혼자서 싸우는 거야?"

불안해져서 묻는다. 그러면 카타나는 고소했다.

"내가 돕는다 해도 오히려 시그의 발목을 잡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총은 무기의 매개체중에서도 특별하고 시그는 총의 츠쿠모카미 중에서도- 특별해"

카타나의 표정에서 나타난 것은 시그에 대한 절대적 신뢰.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

잇소리를 내면서, 카타나시는 손가락을 꿈틀거린다. 직후-- 5개의 손가락이 뱀처럼 늘어나, 시그를 습격한다. 손끝에 있는 입을 벌려 시그를 씹어먹으려고 하는 붉은 입을 엿본다.


맞서 싸우면서 강철같은 낮은말.

"2개의 탄환 파도(破刀)"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은, 거의 동시에 울려 굉음에 사라진다.

폭탄이 작열하는 것 같은 폭발이 일어나 시그에게 다가오던 카타나시의 손가락이 전부 사라진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손바닥에 붙어있던 입에서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흘리는 카타나시.

"저것이, 총의 츠쿠모카미가 특별한 이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타나가 말한다.

"무슨 뜻이야?"

"총은 탄환을- 매개체 일부를 쏘아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본체에서 떨어지면 탄환은 바로 매개체의 기능을 잃지만, 그때까지의 얼마 안 되는 시간.... 정말 일순간, 담겨있던 마음 구현화 하는 거야.그 현상을 공격에 이용하면, 저렇게 돼"

카타나는 그렇게 말하고 괴로워하며 뒹구는 카타나시를 가리킨다. 찌정진 손가락의 단면은 윤곽이 애매해지고 안개로 돌아간다.

엄청난 파괴력이다.

하지만 주변의 안개를 빨아들여 카타나시는 재생을 시작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더욱더 거대해졌다.

하지만 시그는 당황하지도 않고 재조준한다.

"탄환이 마음을 구현하는 시간은, 정말 짧아. 총 정도의 초속이 아니면 상대에게 닿지도 못하고, 공격으론 쓰지 못해."

카타나가 시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시그는 복원해서 거대화한 카타나시를 향해 부르짖는다.

"3개의 탄환- 관령(貫?)"

총에 탄환에, 시그의 의사가 장전된다. 방아쇠를 당기고 담긴 마음이 해방된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귀 울림과 비슷한 새된소리가 울린다. 대기를 안개를 강한 빛의 기둥이 저편까지 꿰뚫는다.

뒤늦게 달아오른 강한 바람이 불어, 주변의 안개를 흩어버린다.

빛의 광선 위에 있던 카타나시는, 몸의 중심이 쏘아졌다. 손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전신의 윤곽이 부서져 간다. 안개가 바람으로 흩어져, 이제 재생도 되지 않는것 같았다.

카타나가 감탄의 숨을 흘리고 입을 연다.

"총의 츠쿠모카미 중에서도, 시그가 특별한 이유가....이 돌출된 위력이다. 시그가 마음에 그린 공격의 이미지 구축은, 누구보다도 정확하고 빨라, 명확하고 강력하다"

혹시 그건, 시그가 만화 기술을 흉내 내는 것에서 기인한 걸지도 몰라.

 카나타나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시그가 쓰는 건 칠총사에서 나오는 캐릭터가 쓰는 공격. 주인공들의 앞길을 방해하는 악역이 쓰는 기술.

일부러 악인의 기술을 선택한 점이, 시그 답다고 생각한다.

카타나시는 안개 손가락을 뻗지만, 밀도가 너무 옅어서 시그의 몸을 그냥 통과해버린다.

시그는 카타나시의 바로 옆에 멈춰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겨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악역이 쓰는 총탄은 네종류. 다음이, 마지막.

"마지막 탄환- 흑양(黑陽)"

날카롭고, 무거운, 시그가 파멸로 인도하는 마음을 장전한다.

방아쇠를 당기고 마른 총성이 울린다.

총구 바로 앞 공간에, 팟하고 검은 균열이 달린다. 만들어진 균열은 바로 무너져 공간 건너편에서 칠흑의 불꽃이 흘러나온다. 검은 불꽃은 구형으로 부풀어 올라 카타나시를 완전히 집어삼킨다.

원망과 한탄의 소리는 바로 사라져, 불꽃과 함께 카타나시는 흔적도 없이 소실했다.

핵이 되는 마음을 잃은 탓인가 주변의 안개가 개인다.

시그가 총을 내리고, 나는 위기가 지나간 것은 안다. 기간의 실의 끊긴 것인지 아야노는 털석하고 지면에 주저앉는다.

시라타마가 "냐아-오" 라고 시그를 부르는 듯이 운다.

그 소리가 들린 것인지 시그는 이쪽을 돌아본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 서린 낯빛은 무서운 색.

그것을 보고 알아차린다.

내 싸움은----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왜 이런 짓을 했어"

내 앞에 다가온 시그는 입을 열자마자 딱딱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대답하려 한다. 하지만, 조금 빨리 아야노가 입을 열었다.

"전부, 내 탓이야. 내가, 카사를 말려들게 했어"

"무슨 뜻이야"

시그의 시선이 아야노를 붙잡는다, 아야노는 조금 풀죽으면서도, 경위를 설명했다.

"----- 즉, 카사는 내 흉내를 내려고 했단 건가"


이야기를 끝내면 시그는 나를 노려본다.

"응... 아야노에게 무리하게 말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아야노 탓이 아냐. 이렇게 된 건 내 책임"

시그와 시선을 맞추고, 나는 말했다.

"그래, 네 책임이다. 이제 두번 다신 이런 흉내 내지마. 츠쿠모카미를 끝내는 건 내 임무다"

단언하는 시그. 하지만, 나는 최대한 용기를 쥐어짜서 머리를 가로 젓는다.

"그건..... 아니야"

"뭐라고?"

"억지 부려서 카타나시에서 습격당하고...... 민폐 끼친 건 미안하다고 생각해. 정말로..... 미안. 하지만-- 아야노를 끝내는 건 시그의 임무가 아니야. 나에게 의뢰했어, 내 임무. 기한인 3일은 아직 지나지 않았어!"

절대로, 넘기지 않아. 그 마음을 담아서 시그를 바라본다. 시그는 더욱더 표정을 위험하게 해서 나를 노려본다.

긴장이 높아진다. 그러면 그곳에 있던 아야노가 끼어들었다.

"이제 됐어, 이제 됐어...... 이 사람이 시그인 거지? 나, 이 사람이게 부탁할 테니까 이제 억지부리지 마!"

부르짖는 아야노. 그 말에 시그는 끄덕인다.

"--- 그녀가 말하는 대로다. 이 역할은 짐이 너무 무거워. 그녀를 끝내는건 너는 할 수 없어"

"으으응, 할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즉답했다. 아야노라 놀란 듯이 숨을 들이마시고, 시그는 의문스러운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카타나의 표정도 조금 변한다.

"나, 찾아냈으니까. 아야노의 마음- 아야노가 가지고 싶은 것, 아마 알았으니까. 이제 억지 부릴 필요 없어. 지금, 이곳에서 아야노의 소원을 이루워 줄게"

"정말......로?"

멍해진 얼굴로 아야노는 묻는다.

"정말이야. 그러니까, 맡겨줘"

아야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면서, 시그 쪽을 바라본다.
"시그 내가 앞으로 할 일..... 봐줬으면 해. 마지막까지"

매개체를 부숴서 무리하게 존재를 끝나게하는 것 보다도.... 만족하고 끝을 맞는 편이 좋아. 시그라도, 분명 그렇게 생각해.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끝내는 것은 힘들 거야. 굉장히----- 아플 거야.

그날 밤, 시그는 그런 얼굴이었으니까.

".....알았다. 하지만, 실패 했다간 내가 한다. 그리고 너는 내 임무에 절대로 끼어들지 마"

"응, 약속할게"

시그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나는 아야노에게 향한다. 아야노는 날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띄웠다. 자신보다, 나를 걱정하고 있다.

역시 매우 착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아야노"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그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뭐, 뭐야?"

"지금, 뭔가 느껴지지 않아?"

"에.... 어떤 의미?"

당황한 모습으로 아야노는 잡힌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대로의 의미야. 이렇고 있으면 아야노는 뭐가 느껴져? 어떤 기분이야?"

"잘 모르겠지만...... 뭐, 따듯해? 그리고.... 조금,안심 돼. 이건 아마, 아까 너무 추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네가 갑자기 나타나서 우산으로 카타나시를 후려쳤을 땐 어이없었어"

그 때를 생각해 낸 것인지 아야노는 고소를 띄웠다. 그 대답을 듣고, 나도 안심했다. 내가 낸 대답은 잘못된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미안해, 아야노, 나 완전히 이상한 곳만 찾아다녔어"

확신을 품은 나는 아야노에게 사과한다.

"....그래?"

"응, 아야노는 말이야..... 계속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찾고 있었던 거야.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더라도, 자기 힘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었어. 시간만 조금 지나면, 언젠간 아야노는 그것을 손에 넣었을 거라 생각해"

아야노는 사람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츠쿠모관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아야노에게 가지고 싶은 것을 손에 넣는 수단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라는 끝낼 계기가 나타난 탓에 아야노는 도중에 포기해버리고 만 거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됐다는 거야? 조금 힌트가 부족한데......"

"그래, 서두를 필요 없었어. 천천히, 진심을 알았다면 소원을 이루워졌을 거야"

"아-정말-..... 으쓰대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정답을 알았다면, 빨리 가르쳐줘"

초조해졌는지 아야노는 나를 재촉한다.

나는 미소를 띠고 내심 각오를 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야노는 아직도 내가 싫어?"

"..... 몇 번째야, 그 질문. 인간은 싫다고 말했겠지"

"정말로?"

"...... 정말이야"

눈을 바라보고 다짐하면 아야노는 시선을 돌렸다. 분명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야. 아야노는 정말로,  어떻게 할수도 없을 정도로 인간에게 혐오를 품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인간에 대한 감정은 그것뿐만이 아니야. 다른 것도 있으니까, 아야노는 내 눈을 피했다고 생각해.

"나는 많이 아야노가 좋아"

그러니까 먼저 내가 솔직해진다. 아야노에게 대한 마음을 확실히 내보인다.

"무......"

아야노는 기막혀하면서도 순식간에 뺨을 불게 물들인다.

"가, 갑자기 부끄러운 소리 하지 마! 바보 아냐!?"

"뭐, 확실히 바보일지도 모르겠네"

이런 간단한 답을 몰랐으니까.

"하지만- 부끄럽지 않아.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한거니까. 나, 아야노와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 폐허 탐색도 아야노와 함께여서 굉장히 재미있었어. 츠쿠모관을 슬쩍 빠져나왔을 때는 두근두근 했어. 아야노는 어때?"

"우... 확실히ㅡ 탐험 같아서 즐거웠지만--- 너, 너는 싫어. 특히, 지금같이 부끄러운 대사를 할때가!"

"응, 싫어도 괜찮아. 하지만, 함께 있어서 즐겁다면---"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리고, 내 본심을 사실은 말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한다.

 

 

 

"친구가..... 되지 않을래?"

 

 

 


그 목소리는 조금 떨려버렸다.

아야노가 깜짝 놀라 어깨를 떤다.

어이없는 얼굴. 하지만 그다음 변화가 나타난다.

아야노의 뺨이 붉어진다.

눈동자가 촉촉해진다.

주르륵 흘러넘친 눈물이 뺨을 탄다.

아야노의 손을 붙잡고 있던 내 양손이---- 허공을 가른다.

계속 느끼고 있던 온기가, 멀어졌다.

"내가 가지고 싶은건.... 이런, 이런거 였던거야?"

실체을 잃고 투명해진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아야노는 중얼거린다.

"--- 그런 것 같네"

나는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한다. 참으려고 했지만, 문물이 멈추질 않아. 게다가 콧물까지 나온다. 엉망진창인 얼굴을 팔로 닦는다.

등교를 거부할 정도로 인간을 싫어했던 아야노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인. 싫어하는 이상으로 좋아하는 친구. 혼자뿐인 방에서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

아야노는 계속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까 싫어하는 사람들 속에서 일부러 지신을 몸을 두고 있었다.

"뭐야, 이거....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기쁜거야......"

꽉 주먹을 쥐고 억울한 듯이 말하는 아야노.

"몰라. 나도 기쁘지만, 왠지 몰라"

나는 고소를 띄우고 대답한다. 투명해진 아야노의 몸은 이제 만질 수 없다. 눈에서 흘러넘쳐 멈추지 않는 것은 분명 기쁨의 눈물.

"--- 네, 탓이야......"

"그러면..... 내가 기쁜 건 아야노 탓"

그렇게 대답하면 아야노는 웃었다. 울면서, 기쁜 듯이 웃었다.

아야노와 지낸 나날이 뇌리를 스친다. 짧았지만, 나에겐 굉장히 특별한 3일이었다.

무뚝뚝한 자기소개, 방으로 찾아왔을 때의 언짢은 얼굴, 옷장의 솟옷을 빤히 봤다가 화내던 모습, 내 치마를 손수건 대신으로 썼던 때의 미소-- 그것이 현재 아야노의 미소와 겹쳐진다.

흘러넘친 눈물이 가느다란 빛의 알갱이가 돼서 허공에 퍼진다.

"------- 고마워, 카사"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분홍색 리본을 남기고 아야노의 모습이 반짝이는 입자로 변한다. 그 빛은 한번 공간에 퍼진 후 리본으로 모인다. 빛은 리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이 사라지고, 아야노의 보습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

툭하고 떨어지는 리본을 나는 손으로 받아낸다. 체온이 남은 리본은 약간 따듯하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어쩔 수도 없을 정도로 어이없다.

이별의 말을 할 여유도 없었다.

좀 더 전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내 목소리는 이제 닿지 않아.

"이걸로.... 아야노는, 끝난 거야?"

리본을 움켜쥐고, 나는 중얼거린다. 지켜보고 있는 두사람에게,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대답해 준 것은 카타나.

"엄밀히 말하자면 끝난 것 보다는 잠들었다는 표현이 올바르겠네. 매개체가 부서진 게 아닌한 츠쿠모카미는 죽지 않아. 아야노의 마음은 변함없이 그 리본에 머물러 있어. 그저-- 마음이 채워져서, 실체화할 필요성이 사라진 거야."

"..... 그런거야"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가슴에 활짝 열려있던 구멍을 채운 감정이 있다.

나는 손안에 있는 친구를 바라본다.

끝난 게 아니야. 아직, 계속되고 있는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해 아야노"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야노의 리본으로 자신의 머리를 묶는다. 목덜미에 공기가 닿아서 갑자시 시원해진다.

아야노가 원한 것은 친구. 아무리 원하고 바래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

나는, 아야노의 친구가 된 것이 기뻤다. 아야노가 나를 친구라고 인정해 준것에---- 굉장히 안심했다.

아마 제일 두려웠던 것은, 나는 안된다는 말을 듣는 것.

아야노와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은 무척 슬퍼. 친구가 돼서, 힘들어.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잊어버리겠다니, 당치도 않아.

손에 들어온 인연을 없었던 걸로 하지 않아.

왜냐면--- 나에게도 아야노는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으니까.

나는 이런저런 것을 잊어버리지만, 분명 그렇게 단언한다. 이런 마음을 한번 품은 적이 있다면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거야.

바람에 흔들리는 리본을 만지고, 시그쪽을 바라본다.

"끝났어 시그"

"--아아"

시그는 낮은 목소리로 맞장구친다.

"나, 아야노의 소원을 이루어 줬어. 시그와 다른 방법이지만, 시그와 같은 일을했어"

"그래"

"이 일... 나는 계속할 거니까"

"다음에도 잘될 거라 할 수 없어. 첫 번째 이번에도 우리가 달려오지 않았다면 너희는 카타나시에게 먹혔어"

냉정하게 시그는 현실을 말한다.

"확실히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을지도 몰라. 시그의 총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사람도, 반드시 있어"

"그럼----"

"그러니까!"

시그의 말을 자르고 나는 부르짖는다.

"그러니까- 같이 일하자, 시그"

"같이....?"

시그는 당황한 모습으로 되묻는다.

"응, 같이 츠쿠모카미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일을 하자. 매개체를 부숴서 끝내기만 할 뿐인 부수는 사람이 아니랴...... 좀 더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서 절대로 무리라는걸 알 때까지 마음을 이루어주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만물상을 시그와 하고 싶어"
 
"...... 꿈같은 이야기다. 상대에게 깊이 관련될수록, 끝났을 때는 고통이 깊어. 부수게 된다면 더욱더 다. 거기에 더해 다른 녀석들에게 미움받아. 그런 반복에 네가 견딜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아"

이상을 말하는 나에게 시그는 무거운 현실을 아는 목소리로 부정한다.

"괜찮아, 아마"

자신은 없지만, 나는 밝게 말한다.

"무슨 근거로....."

"시그와 함께니까"

"대답이 되지 않아"

현재 마음을 말할 생각이었지만 시그는 화난 얼굴이다. 웃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이번엔 진지한 표정을 만들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시그에게 전한다.

"---- 그건 말이야, 되고 말고가 아니야.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 그게 내 마음이야. 이런 보잘것없는 우산이라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이 되고 싶어"

"마음..... 인가"

그것은 츠쿠모카미에게 있어서 가장 무거운 말. 시그의 눈동자에 망설이는 듯한 빛이 흔들린다.

"응- 그러니까 부탁이야, 시그. 나를 시그와 같은 곳에 있게 해줘"

총을 붙잡고 있는 시그의 오른손에 손을 겹치고 묻는다. 똑바로 시그의 눈동자를 바라 본다.

"...... 내가 있는 곳은, 어둡고, 싶어. 누군가의 힘이 되고 싶어 도와주고 싶어라는 각오는 대단하지만...... 그런 생각으론 바로 파멸해. 구하지 못하고, 부술 수 밖에 없을 때-- 너는 정말 그것을 허용 할 수 있어?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건가?"

나는 매개체를 부술 수 없어. 그럼, 최후의 수단은 시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마 시그는, 어떻게해 서든 나를 같은 곳에 세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아니야. 두 사람이 다른 것을 하면, 함께 일할 수 없어. 이번처럼 내가 실패하면 시그가 끝내는... 그런 관계가 돼버린다. 그건 안돼.

 

 


"시,시그.... 무겁다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 꿇는다. 어떻게 된 것인지 시그의 얼굴을 엿보면 눈을 감고, 숨소리를 내고 있다.

"뭐, 슬슬 이렇게 될거라고 생각했어"

카타나가 가까이 와서, 내 반대편에서 시그를 지지한다.

"무슨 뜻?"

사정을 모르고, 묻는다. 그러면 카타나는 고소를 띄웠다.

"탄환을 해방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깍는 거야. 쏘면 쏠수록 소모되. 이번엔 네발이나 썼으니까 쓰러져도 어쩔 수 없어"

"..... 괜찮은 거야?"

"아아, 걱정 없어. 자면 회복해. 하지만-- 이 화물을 빌딩까지 옮기는 건 등골이 휘겠는데"

정말로 질리는 듯한 말투여서, 나는 웃는다. 시그를 제대로 지지하기 위해 자세를 바꾸면 시라타마는 시그의 어깨로 이동한다.

"니야-?"

시그의 얼굴을 발끝으로 건드리는 시라타마를 보면서, 카나타와 보폭을 맞추고 걸어간다.

드디어 돌아간다.

시그의 빌딩에---- 우리가 있을 곳에.

 

 

 

 

 

에필로그

잠은 깊고, 무거웠다. 어두운 의식 아래에서 기어 올라와 깨어남의 빛이 보여와도--- 좀처럼 그 이상 진행되지 않아.

총탄은 전부 써버렸을 때는 항상 이렇다.

정신력의 소모도 크지만, 총탄의 소실은 매개체의 누락과 같다. 그 데미지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걸  나는 알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 총탄은 재사용할 수 있다. 단, 네발까지만, 본래, 탄창에는 여덟 발까지 탄이 들어가는 모양이지만, 회복하는 건 네발까지.

이것은 내가 츠쿠모카미가 된 시점에서, 탄은 네발이 남아있었겠지. 남은 네발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른다.

나는 어두운 잠의 바다에 흘러가면서 눈뜰 때를 기다린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는 그다지 오래 있고 싶지 않아. 이곳에 있으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기억의 아래에서 떠오른다.

이를테면, 이제까지 부순 츠쿠모카미의 얼굴.

이를테면, 나를 증오하는 츠쿠모카미의 눈초리.

 


빨리 눈뜨고 싶어. 하지만 현실의 빛은 아직 멀다.

 

 

"--------"

 

 

하지만 돌연, 의식이 급격히 떠오른다. 꿈의 건너가--- 굉장이 소란스럽다.

"--- 아, 시라타마! 거긴 아직 안 말랐으니까, 올라가면 안 돼! 윽, 아아-...... 발자국 남았다"

"나아-?"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자신이 있는 곳을 인식한다. 주거로 삼고 있는 빌딩의 사무소, 항상 자는 소파 위.

"으......"

신음하면서 몸을 일으킨다.

"아, 시그 겨우 일어났어?"

튀어나온 목소리가 귀에 닿는다. 시선을 이동하면, 건너 소파에 앉아있는 소녀와 눈이 맞았다.

"카사.....?"

나는 소녀의 이름을 부른다. 분홍색 리본으로 머리를 묶은 카사는 "좋은 아침. 꼬박 이틀 잤어?"라고 말했다.

그렇게나 잔건가하고 생각하면서, 카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보고 어깨를 으쓱인다.

"뭘 하고 있어?"

카사는 붓을 가지고, 탁상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나무판자에 이상한 마크를 그리고 있다.

"아, 이거? 츠쿠모관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빌린 거야"

붓과 그림 도구를 보여주며 대답하는 카사.

"아니, 그게 아니라.... 뭘하고 있는지, 묻고 있는 거지만"

"뭐냐니, 간판 만들고 있는 거야"

당연한듯이 카사는 말한다.

"간판?"

"응. 이제 여기는 부수는 집이 아니니까, 그것 알리기 위해 새로운 간판을 만들려고. 저기ㅡ 어때? 이 마크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카사는 나무판자를 들곤 나에게 가까이 온다. 거기엔 하늘색으로 우산과 총의 실루엣이 조를 이룬 마크가 그려져 있다. 그 옆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붙어있다. 게다가 잘 보면 글이 새겨져 있다.

"시그와 카사의 만물상.....?"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그 문자를 읽는다.

"그래, 어때?"

"어떻냐니.... 너---"

말하고 싶은 건 산더미처럼 있지만, 나는 그럴 기분을 잃고 "좋을 대로 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낸다.

카사는 그 말대로 좋을 대로 한거 겠지.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하던지, 그만둘 생각은 없겠지.

나는 한숨을 쉰다.

"마크는 괜찮다하고...... 그 명칭은 어떻게 안 되는 건가?"

"에에- 알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시그는 뭔가, 있어?"

물어봐서 생각한다.

"이를테면-- 총과 우산의 영어에서 따와서 칸브렐라 라던가"

"우와...... 시그 센스없네"

제법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카사에게 슬픈 눈을하게 해버린다.

"아니, 시라타랑 비슷한 발상이겠지"

이름이 불려서 탁상 위에 있던 시라타마가 이쪽을 바라본다.

"같은 취급하지 마. 시라타마는 귀엽잖아"

"칸브렐라도 멋있잖아"

"으으응,촌스러워"

확실히 말해서 어깨가 처진다. 이해 가지 않지만, 카사에게 이길 마음은 없었다.

포기하고 다시 소파에 눕는다.

".... 어떻게든이라고 말한다면, 영어로고 정도는 넣어줄까?"

삐쳤다고 생각했지만, 어린애를 상대로 하는듯한 목소리로 카사가 물어온다.

조금 자존심에 상처 입었지만, 나는 그 아픔을 삼키고 낮은 소리로 답한다.


"..................... 부탁한다"

 

간판의 이름에는 고집부리고 싶다.

왜냐면 이 다음에도 계속----  잘못하면 언제든지--- 어울리게 될 이름일테니까.

 

 

후기

제가 어렸을 적부터, 어째선지 우산에 로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로망이라는 것은 거대한 로봇이라던가 치마와 니삭스의 사이라던가, 정형화된 필살기 같은 것에 느껴지는, 그 말이 되지 못하는 뭔가가 들어오는 듯한 차가운 야망의 충동입니다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아마 우산의 형태나 존재의의라던가, 그 주변에 끌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가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지 전, 학생 시절 그렸던 그림을 다시 보면, 제법 많이 우산을 가진 소녀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것이 "츠쿠모의 하늘 우산"의 주인공 카사의 원형 이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아마 나는 계속 그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거겠죠. 쓰고 싶은 것이 잔뜩 있어서, 이번 작품은 제1화 2화의 이부 구성이 되었습니다. (머릿속에는 24화 정도 있었던 건 비밀입니다.) 이 세계를, 등장인물을, 조금이라도 좋아하셨다면 기쁘겠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페이지가 적어서 감사의 말을 옮기려고 생각합니다. 이름이 세글자 라는 걸로 묘하게 친근감을 느낀 에비비씨. 매우 맑은 일러스트 감사합니다. 카사는 무척 귀엽고, 시그는 굉장히 멋있었습니다. 담당 M씨, 항상 문제점을 지적해주셔서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츠쿠모의 하늘 우산을 사주신 독자분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럼 또 다시.

츠카사